2013 GQ 어워즈<2>

신중히 생각하고 완전히 멋대로 뽑았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로따로 올해의 수상자와 수상작과 수상한 것들을 가려냈다. 갈채와 꽃다발과 위로와 유감과 냉소와 분노 또한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로따로 전하고자 한다.



올해의 여배우 / 전지현
올해 전지현은 <베를린> 단 한 편에 출연했다. 작년엔 <도둑들>이 전부였다. <도둑들>에서 늘씬한 몸과 능청스러운 욕으로 다시 전지현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렇지, 전지현은 그런 몸이었지. 그건 새로울 게 아니었다. 욕은 또 어떤가 하면, <엽기적인 그녀>의 바로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전지현은 뭘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건, 아주 정확한 북한 사투리였다. 그러곤 최대한 몸을 숨겼다. 그런 자세는 말 그대로 ‘북한 스파이’로 믿을 만했다. 새삼 2009년의 <블러드>에서 영어를 쓰며 교복을 입고, 머릴 땋고 칼부림을 하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러곤 그녀는 3년 동안 한국에 없었다. 전지현은 이제 한국에 있다. 영화에서 자신의 몸을 숨긴 여배우는 올해 전지현뿐이었다.

올해의 인물 / 윤후
토실토실 알밤 같은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올해 한 일은 나라에 몸 바치겠다며 핏대 세우던 국회의원 수백 명보다 훌륭했다. 일요일 저녁, 잠도 덜 깬 얼굴로 텔레비전에 처음 등장한 이 꼬마는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더니, 월요일엔 모든 사람의 얘기 속에 등장했고, 머잖아 ‘나도 저런 아이를 낳았으면’이라는 저출산 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이름은 윤후, 나이는 여덟 살. 무엇보다 윤후는 예뻤다. 하는 말이, 짓는 표정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가 어쩌면 저럴까 싶도록 예뻤다. ‘먹방’ 같은 추한 말이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렸을 뿐이다. 언제나 문제는 어른이다. 질문은 이것이 마땅하다. 윤후에게 어떻게 좋은 어른일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그 예쁜 꼬마에게 할 수 있는 겸허한 답례다. 윤후는 이제 여덟 살, 얼굴과 몸집과 목소리와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갈 것이다. 거기에 대고 “윤후도 어느새 진정성 잃은 듯.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같은 댓글 나부랭이가 달리는 기도 안 차는 세상이라서, 걱정이 당연히 앞서나간다.

올해의 연예인 / 존박
<방송의 적>의 ‘적’이 이적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존박은 이름에 ‘적’ 없이도 이 프로그램의 적임자였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할 자기 객관화된 얘기를 하는 정도로, 사람들에게 “솔직하다”는 평가를 듣는 게 연예인이다. 존박은 사람들로부터 ‘저래도 되나’ 싶은 걱정과 통쾌한 웃음을 샀다. “적이 형은 연예인 나부랭이가 아니라 뮤지션이잖아요.” 방송국에서 시키는 바보 연기라든지, 비욘세 춤이라든지, 싫어도 해야 되니까.” “방송국 놈들아, 내가 다 죽일 거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잖아요.” ‘연예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면서 자신도 함께 투신했다.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바보를 기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바보가 아니란 걸 안다. 빤히 맞는걸 아는데 아니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면 모를까.

올해의 군인 / 연예인
비가 전역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팬 미팅 외에 방송, 잡지, 공연에 이르는 어떠한 국내 활동도 없다. 올 초 벌어진 외박 특혜 논란이 잊히기도 전에, 연예 병사들이 마사지 업소에 출입한 사실이 밝혀지며 비의 사례도 재차 환기됐다. 폐지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연예병사 제도를 없앴다. 한편 예능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군인들이 환영받았다. 군대 관련 프로그램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과는 좀 다른 사례였다. <진짜 사나이>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봤다. 그렇게 ‘아기 병사’ ‘유격왕’ ‘긍정왕’이 탄생했다. 군인은 연예인이 될 수 없었지만, 연예인은 군인이어야 했다.

올해의 목소리 / 김일두
지금까지 솔로로 부른 노래들, 그러니까 만든 지 10년이 넘은 곡들까지 담은 <곱고 맑은 영혼 - 김일두 콜렉션>에서 왜 동시대와 공명하는 애수가 느껴질까. 언제 어디건 헐벗은 청춘은 있기 때문이겠지만, 세상과 주변에 사소하면서도 헌신적으로 마음을 쏟는 노래가 귀해진 시대를 무시할 수 없다. 통속적인 말을, 어설프고 건조한 보컬로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투항할 수밖에 없는 힘을 지닌 노래들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곧 그의 태도였다.

올해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버스커버스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리는 공기 반 버스커버스커 반이었다. 뭐든 실시간으로 주고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노래는 “카톡~” 소리처럼 맨날 들렸다. 고유한 개인이기보다 기꺼이 대중에 묶이길 원하는 시대, 대중이면 누구나 그 노래를 좋아한다니 언제 어디서나 그 노래를 틀고 부르는 건 당연지사였다. 레코드 가게를 대신하는 거리의 화장품 가게 스피커에서도, 아침저녁 따질 것 없이 라디오에서도, 방방마다 청춘으로 가득한 대학가 노래방에서도, 끝도 없이 그 목소리가 스피커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먼지는 털기라도 하는데, 노래는 그럴 수도 없었다.

올해의 PD / 나영석 & 김용범
PD는 프로그램에 등장하지도 않고, 화면에선 역할이 확실히 보이지도 않는다. 올 한 해 <꽃보다 할배>를 연출한 나영석과 <댄싱9>을 연출한 김용범을 통해 비로소 PD의 선명한 역할을 깨닫는다. 재작년 <1박2일>에서 최지우, 김하늘, 염정아 등을 섭외하며 여배우 특집을 기획했던 나영석 PD가 <꽃보다 할배>를 기획했다고 했을 땐 기대가 한없이 부풀었고, 방송을 통해 어르신들의 개성과 역할을 세심하게 편집한 장면을 봤을 땐 고개를 끄덕였다. <댄싱9>의 김용범은 또 오디션인가, 싶은 지루함을 입 안에 넣은 별사탕이 터지듯 파바박 터뜨려버렸다. ‘춤’이라는 덜 친근한 소재의 매력을 한껏 뽑아내는 능력도 대단했다. 좀 잔인한 확인일지 몰라도, 지금의 <1박2일>과 <슈퍼스타K 5>를 보다 보면 이 두 PD의 능력과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헤아릴 수 있다.

올해의 장기자랑 / ‘빠빠빠’ 5기통 댄스
크래용팝 다섯 명은 수트 안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도록 귀여웠다. 그들이 소위 ‘개다리춤’으로 시작해 다섯 명이 엇갈려 뛰는 5기통 댄스에까지 이를 땐 모두가 신이 났다. 잘 짜인 군무이면서도 가장 개인적인 신명의 중간에 있는 춤. 그저 뛰기만 하면 되니 올 한 해, 참 많은 사람이 이 춤으로 각각의 무대에 올랐다. 허벅지 배꼽 드러내고 추는 그 흔한 섹시 군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얘기. 일단 하기만 하면 모두가 즐거운 무대. 부산고, 서문여중, 영파여중, 횡성휴게소 맛 자랑 대회, 리버사이드 한인 교회 어린이 장기자랑…. 제각각 맞춰 입고 눈치 볼 것도 없이 놀았던 한 판이었다. 그 와중에 삼각 수영복만 입은 남자 여럿이서 ‘그러는’ 건 좀 당황스러웠지만…. 크레용팝이 <전국노래자랑> 무대, 그 쨍한 자연광 아래서 노래할 땐 어머님 아버님도 새된 목소리로 ‘빠빠빠’를 따라했다. 그러니 과연 모두의 장기자랑, 2013년의 엔터테인먼트라 할 만 하다. “다 같이 쿵! 날 따라 헤이! 다 같이 뛰어 뛰어!” 그들이 노래했고,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각각의 무대에서, 참 신나게도 뛰었다.

올해의 안무 / 선미 ‘24시간이 모자라’
마른 몸, 아직 달뜬 것 같은 눈, 머리가 젖은 건 샤워기로부터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3분 20초…. 무대 위에서, 선미는 누군가 내 방에서 그랬던 것 같은 맨발이었다. “내가 너를 만지고 네가 나를 만지면” 부르면서 추는 춤은 이미 둘이서 합의한 유혹 같았다. 허락할 걸 알면서 둘이서만 하는 게임 같은 것. 둘 말고 다른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농밀한 순간들. 하지만 무대 위의 선미는 또한 혼자였다. “네가 나를 잡아주면 두렵지 않아” 했지만, 그녀는 혼자라서 불안해 보였다. 무릎을 감싸고 앉았다 일어서며 시작한 무대도 무릎을 감싸고 다시 무너지듯 앉으며 끝났다. 살쾡이처럼 앉아서 골반을 튕기거나 검지로 왼쪽 손목을 톡톡 치면서 어깨와 목을 꺾을 땐 마리오네트 같았다. 누군가 실에 묶인 그녀를 맘대로 다루는 것 같았다면 과한 상상일까? 혹시 내가? 그녀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담보하는 건 같이 있는 시간, 닿아 있는 살로부터의 열락뿐인 것 같아 또한 불안했다. 지금 가장 ‘패셔너블’한 몸으로 그녀가 무너지듯 춤출 때, 카메라는 잊을 만하면 그녀의 맨발을 비췄다. 특정한 몸짓 때문이 아니라 ‘무드’ 자체의 밀도가 다른 무대. 실조차 끊겨 우르르 무너진 그녀의 무표정한 무대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또.

올해의 작사가 / 박재범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 예, 지갑이 꽉 찼네”(사실이야). 그는 걸핏하면 클럽에 있다. “음악 소리 높이고 / 여러분 모두 짠하고 네가 집에 갈 수 있는 교통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리듬 타고 / 엉덩이를 흔들고 / 직업인 것처럼 춤추고 / 수업에서 질문 있는 학생처럼 모두 손 머리 위로”(I Like 2 Party). 그러다 여자를 만난다. “돼지 아니지만 너의 허벅지는 꿀꿀 / 그냥 흘러가봐 지금 분위기는 물물 / 뭘 굽는 건 아니지만 베이비 너는 불불”(HOT). 그리고 여자와 방으로 간다. 우선은 이 정도로 말한다. “옷을 안 벗고 가만히 있어도 넌 너무 야해”(Welcome). 이내 이렇게 변한다. “이불 덮지 말고 해 레이디 / 불도 끄지 말고 해 / 난 니 몸을 봐야 해”(Welcome). 마침내 이런다. “이건 19금 러브송 / 니 음악성을 보여줘 / 오늘밤은 삼단 고음 올라가게 해줄게”(Welcome). 모두 올해 박재범이 쓰고, 박재범이 부른 노래다. 그의 가사가 뛰어난 건 단지 노골적인 표현 때문이 아니다. 어떤 텍스트가 구체성을 획득하는 방식과 태도와 표현이 모두 한 개인으로 모인다는, 아주 간결한 매혹 때문이다. “오늘밤 미친 듯이 춤춰” 같은 개나 소나 다 쓰는 말이 아니라, “직업적인 것처럼 춤추고”라고 말하는 박재범만의 감각과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채 박재범은 노래한다. “이건 잘난 척이 아니고 다 사실이야 다




올해의 여우조연 / <감자별> 금보라
올해 금보라는 두 편의 인상적인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차이는 좀 있다. <금나와라 뚝딱>에서의 금보라가 그저 굉장했다면, <감자별>에서의 금보라는 새삼 쳐다보게 만들었으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감자별>에서의 금보라, ‘왕유정’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그녀의 캐릭터는 이렇다. “왕유정, 62세. 여장부 시대를 몸소 실천하는 노씨 집안의 실세, 수동의 아내. 전라도 시골 여상 출신으로, 30대 중반까지 기반을 못 잡던 수동을 이끌어 완구사업을 하도록 하고, 재산을 사실상 전부 자신이 부동산 투기와 치맛바람으로 일궜다고 생각해 당당하게 수동을 휘어잡고 산다. 해서, 그 꼴을 절대 못 보는 시아버지와 맨날 으르렁대며 싸운다.” 과연 시아버지인 노송(이순재)과의 대결 구도는 극 초반부터 거세도록 몰아쳤는데, 신경전은 신경전대로 활발하다가 마침내 식탁에서 한판 붙을 때는 대사를 ‘주고받는’다는 형식마저 무시하고 동시에 핏대를 올린다. 이때 중요한 건 왕유정의 얼굴에서 움직이는 게 입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시술 얘기가 아니다. 온전히 캐릭터 얘기다. 왕유정은 순하고 느리게 말할 때나 화내며 빠르게 말할 때나 항상 따따따따 스타카토인데,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바로 안면 근육을 전혀 쓰지 않는 금보라의 연기다. 물론 김병욱표 시트콤답게, 배우가 캐릭터를 흉내 내며 표방하는 일은 없다. 17년 만에 찾은 아들을 처음 대면하는 장면, 진짜 아들일까 의심하는 장면, 알고도 어쩐지 어색해하는 장면, 마음을 열고자 잠 못 이루는 장면을 거치며 금보라는 가히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얼굴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잘도 그런다.

올해의 남우조연 / 정웅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 1화, “지금처럼 꼭꼭 숨어 있어. 말하면 죽일 거야. 니들 말을 들은 사람도 죽일 거야. 그러니까 평생 숨어 있어.” 이 말을 하고, 쇠파이프를 바닥에 끌며 화면 밖으로 퇴장하는 장면. ‘올해의 숨막힘’이라고 꼽을 만하다. 올해 유난하던 ‘너목들’의 인기는 정웅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너목들’ 전까지 <세 친구>나 <두사부일체>에서 소심하고 찌질하거나, 어깨에 소화기를 메고 ‘호랑나비’를 부르던 모습만 남았었다. 그러니 공포스러운 악역으로 나온다면 낯선 게 무리도 아니다. 그런 점도 한몫했을까? 민준국을 이전의 정웅인과 연결할 수 없으면서 완벽하게 낯선 배우가 탄생했다. 코믹 연기가 순발력이 중요하듯이 그의 공포엔 논리보단 즉흥적으로 내뿜는 공포가 있었다. 공포는 논리적이지 않을 때 가장 섬뜩하다.

올해의 귀요미 / 김슬기
아무리 지독한 욕을 해도, 아무리 귀여운 척을 해도, 김슬기가 하면 웃음의 끝이 산뜻했다. 아무리 그래도 올해의 광고로 그 제습기 광고를 차마 뽑진 못하겠지만.

올해의 우정상 / 지드래곤
지드래곤은 2집 수록곡 ‘늴리리야’를 래퍼 미시 엘리엇과 같이 불렀다. 둘은 LA에서 열린 <엠 카운트다운 왓츠 업>에서도 같이 무대에 섰다. ‘쿠데타’엔 이미 구면인 디플로와 올해 유튜브에서 가장 뜨거웠던 ‘Harlem Shake’의 바우어가 참여했다. 그라임스가 서울을 방문했을 땐 지드래곤이 백스테이지를 찾았다. 케이팝 애호가인 그라임스는 그의 팬이라고 했다. 저스틴 비버 내한공연의 애프터 파티,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을 위해 입국한 에이셉 라키의 클럽 공연에도 지드래곤이 있었다. 우정은 “어디서 누굴 봤더라”라는 목격담이나 뉴스가 아닌, 직접 찍거나 SNS에 올린 사진으로 남았다. 지드래곤이 국내 활동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면, 해외에선 CL이 우정을 다졌다. 퍼렐, 제레미 스캇, 에이샙 라키, M.I.A 등의 얼굴이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올해의 개척자 / SBS <인기가요>
뮤직비디오만으로는 부족하다. SBS <인기가요>의 카메라로 한번 잡아줘야 비로소 완성된다. 케이팝 퍼포먼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인기가요>는 이제 경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쌓인 노하우가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다. 노래와 안무가 멈추지 않듯이 그 속의 숨은 의도까지 핀셋으로 골라내는 연출은 결코 머물며 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기가요>는 올해도 어김없이 매주 거침없는 명장면을 쏟아냈다. 하나를 뽑는다면 샤이니의 문제적 퍼포먼스인 ‘Everybody’를 매번 새로운 앵글과 방식으로 잡아낸 10월 한 달 동안의 무대다. 새롭다는 건 역시 스스로 개척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한다.

올해의 무한반복 /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지난 11월 2일, 무한도전 가요제가 방송됐다. 2년 만이었다. ‘강변북로 가요제’, ‘올림픽 대로 가요제’,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 이어 ‘자유로 가요제’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실제 음악가를 섭외해서 가요제를 위한 곡을 함께 창작하고 공연하는 똑같은 밑그림이었다. 관객 3만 5천 명이 운집한 역대 최대 규모였고, 2주가 지나도록 음원 차트 20위권에 모든 곡이 머물렀다. 시청률처럼 변동 폭이 작은 지표라면 모호하지만, 성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프로젝트였기에 <무한도전>의 여전한 흥행력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대단해지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가요제 자체의 재미는 점점 떨어졌다. 음악가들도, <무한도전>의 멤버들도 무한도전 가요제가 의미하는 바를 잘 주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가 계속되면서 어느 정도 규격화된 틀을 그들이 쫓아간달까. 유재석과 이적의 ‘말하는 대로’를 잇는 엔딩곡 ‘그래 우리 함께’를 다 같이 부를 땐 노래방에서 마지막에 부르는 ‘사랑으로’마저 생각났다. ‘사랑으로’를 부르는 건 습관이지,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나마 2년 전에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과 궤를 달리한다는 의의라도 있었다. 이제는 부를 만큼 불렀다.

올해의 무대 /샤이니 ‘Everybody’
볼 때마다 샤이니는 “더! 더! 더!” 를 외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까지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니는 매번 한계를 돌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계는 한계일 뿐 끝이 아니기에. 과연 10월에 발표한 ‘Everybody’는 또다시 뭔가를 갱신하고야 말았으니, 제복을 입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무대는 흡사 기계가 사람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이었다. 방송국 카메라들은 도대체 이 무대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첨예한 고민에 빠졌고, 보는 사람은 그저 입을 벌린 채 황홀했다. 또다시 생각한다.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아니다. 기대다.

올해의 자아 / 박진영
박진영은 3년 동안의 이스라엘 여행에서 “성, 결혼, 연애, 일 등에 대한 생각이 모두 바뀌었다”고 했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첫해는 창조를 가지고 물리학 하는 데 1년,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지적 설계하는 데 1년, 중동 지방 역사와 종교 자료 확인하는 데 1년을 보냈다”고 한다. 작년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밝힌 대로 “이 세상을 누가 왜 창조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창조에 대한 그의 탐구가 유대교 기반인 것을 알 수 있다. 창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연구로는 매우 지엽적이다. 문명은 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았고, 문명 이전에도 신화로서의 종교는 있었다. 박진영은 “우리 몸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고, 모든 운을 창조자가 주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겸손해지고부터” 더 열심히 산다고 했다. 하지만 겸손에 대한 이해도 1차적이다. 겸손은 나의 믿음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나의 믿음의 오류의 가능성을 알기에 발휘하는 미덕이다. 즉, 창조주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데서 온다. 그런데 박진영의 행보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겸손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아에 대한 강박이 너무 심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쪽이다. 언젠가부터 박진영의 솔로 앨범이 왠지 부담스러운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올해의 문제작 / 박해천 <아파트게임>
디자인 연구가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은 아파트가 주인공이지만, 여기서 아파트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 등장하는 존 말코비치의 뇌 같은 주인공이다. 뭐가 들어가도 아파트라는 필터를 통해 보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아파트가 사람들의 취향과 감수성에 끼친 영향을 조사했다. <아파트 게임>에서는 한국이 중산층이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 아파트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밝힌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주인공은 아파트라기보다, 박해천이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신문, 논문, 소설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황의 얼개를 만들어 행위자를 그 내부로 밀어 넣은 뒤, 특정한 시점을 택해 양자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다.” 자연주의 소설가처럼 인물을 특정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건을 쓰겠다는 것.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창작이 앞서는 한국의 연구 풍토에서 등장한 흥미로운 분석 틀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은 또 하나의 문제작.

올해의 전집 / 지만지 동화선집
헌책방에서 인기가 높은 분야 중 하나가 아동문학전집이다. 학원출판공사의 <에이브 전집>과 <메르헨 전집>, 계몽사의 <어린이 세계의 명작>, 계림출판사의 <계림문고> 등등. 어른들이 향수에 젖어 찾기도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으로 내 아이들도 읽기를 바라며’ 찾는 경우가 태반이다. 올해 부모님들은 대안을 찾았다.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한국동화선집 1백 권이 출간됐다. 이태준, 방정환, 강소천, 현덕을 포함한 90년대까지의 국내 동화작가 100명의 작품이었다. 지만지 고전천줄 시리즈가 그랬듯이, 선집이라는 효율성을 택했고, 정확하게 텍스트를 전달하는 것 외에는 모두 배제했다. 속도의 시대에 걸맞게, 아이들에게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핵심으로 향하는 동화책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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