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로 간 젊은 여자들

[고아라]
올해 가을, 고아라는 <응답하라, 1994>의 대학생 나정이를 연기하며 자신이 SM의 바비 인형 아라에서 다시 배우 고아라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차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나정이는 코믹하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아야만 하는 캐릭터다. 고아라는 나정이의 그 부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연기하는 듯하다. 눈과 콧구멍에 힘을 주고 씩씩거리거나, 때로는 술에 해롱거리거나, 농구선수 이상민 오빠에 홀딱 빠져 넋이 나가 있다. 하지만 결코 눈살 찌푸리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대신 코믹한 캐릭터에 코 끝에 묻은 생크림 같은 사랑스러움을 살짝 올려놓는다. 칠봉이와 나정이가 함께 라면을 먹는 장면은 이런 능청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이 드러난 명장면이다. 식탁 의자에 발을 올리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발을 삼키는 나정이는 코믹하다. 하지만 볼이 미어지도록 면발을 물고 “맞나”를 연발하면서 두 눈을 깜빡거릴 때 이 소녀는 순진무구하고도 귀여워진다. 쓰레기와의 첫 키스 장면도 마찬가지다. 쓰레기 앞에서 기마자세를 취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그녀는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감고 팔을 벌리는 순간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대로 키스신을 부르는 장면으로 변한다. 고아라는 시청자들이 개그 캐릭터에 방심하는 순간 모든 이가 반할 만큼 사랑스러운 멜로물의 여주인공으로 나정이를 변신시킨다. 동시에 그 변신의 순간에 우리는 SM의 바비 인형 같던 고아라가 코믹과 멜로를 단숨에 넘나드는 노련한 배우로 성장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박진규(소설가)



[하연수]
하연수를 처음 발견한 건 자막이었다. <감자별> 방송 예고 자막. 배우 하연수가 촬영 중 부상을 당해 주 4회 방영을 당분간 2회로 축소한다는 것. 호기심이 일었다. 시트콤의 거인 김병욱 PD가 선택한 신작의 여주인공. 누굴까. 하연수는 특이했다. 일단 외모가. 얼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입과 눈 그리고 아담한 키. 이국적인 인상. “왕십리에서 햄버거 파는 나진아라고 합니다”라는 기이한 통성명. 시트콤의 여주인공은 두 가지 장르를 요구받는다. 코미디는 기본, 그리고 멜로. 생활능력자, 귀요미, 어둠의 광녀를 빛의 속도로 오가는 나진아처럼 하연수는 두 장르를 아직은 거칠지만 자기 방법론으로 넘나든다. 데뷔 시절 김선아, 김하늘, 김혜수가 그랬듯이. 회사 면접에서 “뭐든 던지면 앙, 이렇게 받아먹습니다”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핀잔을 주는 사장에게 5년 동안 일한 햄버거 가게에서 단 한 번도 지각, 조퇴, 결근하지 않았다며 서글픈 표정을 짓는다. 이 1990년생 여배우는 코미디의 본질에 본능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코미디는 페이소스로 자란다. 채플린의 마력은 미소가 아니라 무표정이던 것처럼. 엽기와 과장이 아니라 일상성의 비애가 뒷받침될 때 코미디는 꽃처럼 만개한다. 버스를 타거나 상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런 서글픔이나 안쓰러움을 말없이 풍부한 표정만으로 그려내는 하연수의 생기 넘치는 얼굴은 그래서 흥미롭다. 비슷한 정서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게다가 놀랍도록 닮은) <나나>의 미야자키 아오이처럼 작지만 다부진 그녀의 표현방식이 날로 농밀해지길 기다린다. 김수경(시나리오 작가)

[예은]
드라마 <빠스껫 볼> 제작발표회. 공형진이 예은에게 묻는다. “자신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곽정환 감독이 대답을 가로챈다. “촬영장에서 ‘원더걸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요. 오직 오디션을 통해서만 뽑았으니까요.” 이어진 예은의 대답. “저는 연기를 아주 못한다고 생각해요. 시선 처리나 감정 표현이 어려워요. 하지만 하녀 역할인 고봉순은 저랑 많이 닮았어요.” 아쉽게도 <빠스껫 볼>의 시청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본래 24부로 기획되었지만 18부로 줄었다. 신인급 배우들도 대거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는 데 실패했다. 한편 예은이란 이름도 어느새 익숙하진 않다. 원더걸스의 오랜 공백과 침체기, 원더걸스에서 예은이 도드라지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빠스껫 볼>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신인 배우로서 예은은 놀랍다. 보고 있으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단지 눈만 꿈벅꿈벅 거리는데도 미소 짓게 한다. 그녀는 하녀로서 충실하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정말 똑부러진 하녀 같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에유”하고 주인 아가씨 최신영(이엘리야)에게 얘기하는 장면. 카메라는 예은의 표정을 아주 짧게 비춘다. 그 표정엔 “저러다 남자한테 된통 당해야 정신 차리지”라는 말도 담겨있다. 입을 ‘ㅅ’자로 만들고 눈은 그저 응시할 뿐인데, 그녀는 말을 보태고 있다. 한편 울 때도 하녀로서 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아슬아슬하다가도 한을 삭힌다 . 그래서 그녀가 다시 웃으면 안도하게 된다. 울다가 웃으면 안 될 일이지만, 그녀의 눈물과 미소는 모두 구봉숙의 것이다. 과연 예은의 성격이 구봉숙과 닮았기 때문일까? 혹시 그녀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감정과 경험이 겹겹이 쌓인 건 아닐는지.
원더걸스의 멤버 소희가 배우가 되고 싶다며 다른 기획사를 알아보고 있다. 원더걸스라는 그룹이 계속될 수 있을까? 원더걸스에서 예은은 평범한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건 옳다. 그건 보호받을 수 있고 기회를 주기도 하니까. 예은에게 배우란 직업은 꽤 옳은 건 아닐까? 이제 ‘배우’ 예은은 우체통처럼 눈에 띈다. 에디터/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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