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의 결의

곽도원은 가식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막 살기도 싫다. 그냥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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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면서 스스로 배우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도 하고, 뭔지 모를 사명감도 생겼어요. 책임감도 느꼈고요.”
“<변호인>을 하면서 스스로 배우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도 하고, 뭔지 모를 사명감도 생겼어요. 책임감도 느꼈고요.”

오늘 <남자가 사랑할 때> 시사회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미연아 사랑해”라고 했다. 혹시 그 ‘미연이’…. 아, 배우 이미연은 아니다. 하지만 똑같은 이름이다. 하하하하. 무슨 ‘해명’하고 이럴까 봐 일부러 성을 얘기 안 했다. 아참 스튜어디스라고 보도됐는데 정말 아니다. 그냥 일반인이다.

그냥 ‘일반적으로’ 만났나?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 한 7개월 됐을까?

기자회견에서 돌방 행동을 하거나 무대 인사 때 박카스를 돌리는 모습을 보면, 새삼 무대에 오랫동안 섰던 연극배우였구나 싶다. 극단에 처음 들어갔을 때 형들한테 “너는 연기하면 안 된다. 넌 너무 내성적이고 숫기도 없으니 하지 마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성격이 바뀐 건가? 많이 바뀌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굉장히 주눅 들어 있었고, 비뚤어져 있었다. 그러다 연기를 배우면서 감정 드러내는 연습을 많이 했다.

이름이 바뀌면 성격도 바뀐다는데, 2012년부터 본명 병규 대신 가명인 도원을 쓴다. ‘복숭아 정원’이 아니라, 이를 도到, 으뜸 원元. 자를 쓴다. 지금 소속사로 들어오면서 이름을 바꿨다. 성격은 안 바뀌고 상황만 좀 많이 바뀌었다.

유명해졌다. 이제는 술 마시면서 욕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살긴 싫은데 욕은 하고 싶고. 하하하하. 워낙 목소리도 커서 조그맣게 얘기해도 다 들린다. 그래도 내 연기를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살아 있는 것 같다.

어제(1월 12일) <변호인>이 9백만 명을 넘었다. <변호인>의 핵심은 차동영(곽도원)이 ‘원톱’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을 얼마나 압도할 수 있느냐였다. 영화 안에서 형(송강호)에게 기가 눌릴 이유는 전혀 없다. 배우는 관객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좀 더 잘 나오려고 연기하거나, 상대 배우보다 잘하려고 욕심을 내는 순간 연기는 거짓이 된다. 연기는 액션이 아니고 리액션이다. 리액션을 잘해야만 컷이 살고, 신이 살고, 작품이 산다. 형도 결국 관객이 행복해지는 걸 바라니까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말은 쉽지만…. 관객이 없으면 알게 된다. 관객은 정말 소중하다. 내가 아무리 연습을 지랄같이 많이 하고 뜀박질을 하고 발성 연습을 해도 관객이 없으면 배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점을 처절하게 느낀 배우는 알지 않을까? 작품 분석, 캐릭터 표현,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리액션이 강한 배우가 좋은 배우다. 관객은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배우의 ‘반응’을 보는 거다. 배우가 빈 무대에 처음 올라갈 때, ‘여러분, 절 보세요, 멋있죠?’ 이러면 가짜다. 대신 배우가 빈 무대에 반응하면서 뭘 찾고 있다면 다음 배우가 “뭘 찾고 있어?”라는 대사가 가능하다.

배역을 선택하는 기준은 있나? <변호인>에서 연기한 대공분실 수사원 차동영은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기자 시사회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이 있다. “저는 안전빵 아닐까요?” 나도 <변호인>에 출연하기까지 겁도 나고, 용기도 필요했다. 스스로 배우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도 하고, 뭔지 모를 사명감도 생겼다. 책임감도 느꼈고. 노파심이 있었다면 계속 악역을 해서 식상할까 봐 걱정이었다. <범죄와의 전쟁>, <회사원>처럼 악역이니까 빤하다고 여길까 봐. 한번 고사했지만, 결국 선택했다.

이유가 뭔가? 작품이 좋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정치를 잘 모른다. 여당? 야당? 여당이 새누리당이고 야당이 민주당인가? 그것도 이번에 <변호인> 하면서 알게 됐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잘 몰랐다. 음…. 정치인들이 싸움박질하는 뉴스를 보면 무섭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거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한 달에 10만원, 20만원 벌어도 그 돈으로 맛있게 소주 마시고, 작품 얘기하고. 시나 읽으며 “이 시는 아름답지 않냐?” 이런 말이나 하며 살았다. 낭만주의랄까?

그럼에도 차동영을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나? 만약 내가 악마라면 천사라는 반대 인물을 보면서 ‘저놈이 계속 나를 방해하네?’ 하고 계속 관찰을 하겠지. 천사여도 자신을 보기보단 악마를 본다. 결국 어느 쪽이든 반대를 관찰하게 된다. 그동안 차동영 같은 사람들을 뉴스나 일상에서 많이 봐왔다. 사명감, 정당성을 핑계로 남을 짓밟는 사람들.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그럼 넌 약한 거야, 넌 약하니까 떨어져 나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끼리는 어깨동무하고 앞으로 가자, 우리끼리 전진!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배신하는 나쁜 놈들. 그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무명시절 때 느낀 걸까? 지금도 그렇다. 어떤 사람이 내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모습, 그에 대한 실체에 대해 의심이 든다. ‘저 웃음은 뭔가 좀 다른 느낌인데?’라는 어떤 막연한 생각. 음흉한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때도 많다. 그런 것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고, 여전히 전쟁터에 있구나 싶다. 가끔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되는 것인가?’, ‘같이 색깔을 맞춰야 되는 것인가?’, ‘이 슬픔을 어떻게 하지?’, ‘스스로를 치료하고 나와야 되나?’….

일이 잘되고 있는데도…. 그래서 불안하다. 대접해주니까 금방 건방져질 것 같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참는 것이 싫다. 어떤 후배들을 보면 좀 떴다고 저게 할 행동인가? 싶은데, 그 어린 얘들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들 웃고 있다. 그럴 때 ‘아, 저런 눈빛으로 내게도 웃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건 작품의 안위를 위해서일까? 자신의 삶을 위해서일까? 그런 고민을 한다. 결국 집에 와서 혼자 소주 한잔 하고.

이젠 혼자 술 안 마시겠다. 오랜만에 연애를 하는데, 여자친구는 이상형에 가깝나? 여자친구도 소주 좋아해 자주 마신다. 내 이상형은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예쁘고…. 아니 ‘예쁘고’가 가장 먼저다. 하하하하. 여자친구가 좀 이국적으로 생겼다. 가끔 영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는데 시골 사람이다. 충청도 온양. 말도 느리고 성격도 그렇다. 내가 좀 급하고, 욱해서 잘 맞는 것 같다. 아까 실시간 검색 보니까, 애인이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게 아니라, 다들 유부남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총각인 줄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니. 하
하하하.

덩치 때문일까?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고.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유부남을 연기한다. 중학생 딸을 키우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반성도 많이 했다. 어릴 때 사고 정말 많이 쳤다. 진짜 개처럼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구나…. 혼자 행복하려고 산 것 같다. (눈이 빨개지며) 난 아버지 얘기하면서 한 번도 안 울었다. 엄마만 슬펐다. 아버지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누님들도 아버지 얘기하면 안 운다. 근데 누님들도 이 영화를 보면 울 것 같다. “이제 형한테 절까지 하라고 하네.” 이 대사는 사실 아버지가 어머니 장례식 때 한 말이다. 그 말이 기억에 남아서 한동욱 감독에게 대사로 제안했다. 이 영화가 여러모로 진실된 건 한동욱 감독도 지독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환경이나 사랑 표현 방식이 꾸미지 않고 그대로 표현됐다. 내겐 그런 게 멋있다.

남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지 않는 것. 멋부리지 않고 그 사람 그 자체로 보여지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곽도원은 어떨 때 제일 곽도원 같나? 영화 보고 철철 혼자 쳐 울 때. 하하하하. 그게 제일 나 같다. 여자친구와 같이 술 먹으면서 힘들다고 울기도 한다.

결혼하면 어디서 살고 싶나? 의논해봐야겠지만 지금 살고 있는 능동 집도 좋다. 만약 여건만 된다면 제주도 해발 5백에서 8백 미터 사이 중산간 지역에서 살고 싶다. 제주도는 진짜 최고다. 그 좋은 데를 일본에 빼앗겼으면 진짜 어쩔 뻔했나?

의상 협찬/ 재킷 휴고보스, 흰색 셔츠 커드, 타이 모노갤러리 BY 커드, 바지 휴고보스.
의상 협찬/ 재킷 휴고보스, 흰색 셔츠 커드, 타이 모노갤러리 BY 커드, 바지 휴고보스.

그는 한 번도 작게 웃는 법이 없었다. “하하하하” 웃을 때마다 스튜디오는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다 카메라를 보면 어딘지 오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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