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어딘가의 벤틀리

지난 몇 년 동안 벤틀리 플라잉스퍼를 타고 베이루트, 오키나와, 영국 곳곳을 돌았다. 서울에선 가장 최근의 플라잉스퍼로 한파를 뚫고 달렸다. 세계가 침묵했다.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정직한 프로필 엔진 W12기통 6.0리터 터보 최고출력 625마력 최대토크 81.6kg.m 최고속도 시속 322킬로미터 복합연비 리터당 5.8킬로미터(도심연비: 리터당 4.8킬로미터, 고속도로 연비: 리터당 7.9킬로미터) 0->100km/h 4.6초

저기, 길 건너에 밝은 크림색 벤틀리 플라잉스퍼가 서 있었다. 고개를 이렇게 돌려 보고 저렇게 돌려서 볼 때마다 그 강직한 차체에 반사되는 빛의 방향이 달라졌다. 면과 선이 달리 보이고, 이 다양한 표정까지 계산에 넣었을 어느 디자이너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크루에서 만난 디자이너 이상엽은 “벤틀리를 그릴 땐 맑은 날 햇빛의 반사까지 예측해서 그린다”고 귀띔한 적이 있다. 그는 영국 크루 벤틀리 본사에서 벤틀리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다.

열쇠를 받아 들고, 버튼을 눌러 도어를 열기 전 몇 발자국 떨어져서 다시 플라잉스퍼를 바라봤다. 사실 운전은 이때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사계절의 어떤 아침, 시동을 걸기 전. 곧 출발해야 하는 플라잉스퍼를 향해 걸어가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으레 운전이라 하자면,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혹은 가속페달을 밟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사전에는 “기계나 자동차 따위를 움직여 부림”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사전이 말하는 기계적 의미의 운전 저 너머에 있다. 기계적 체험 이전에 차와 관련한 모든 경험을 총괄하는 개념이 운전이라는 걸 스스로 웅변하는 차다.

운전석 문을 닫는 순간 바깥과 실내는 완벽에 가깝게 차단된다. 나만의 공간에서, 눈앞에 보이는 배경과 인테리어 곳곳에 새겨진 물성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계속된다. 인테리어는 완벽하게 좌우 대칭인 가운데 실내에 쓰인 나무 무늬 또한 완벽한 좌우 대칭이다. 캐나다에서 온 호두나무인지, 어딘가의 밤나무인지 유칼립투스인지…. 울창한 침엽수림의 고고한 풍경과 숲 냄새를 상상하면서 핸들을 잡으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영국 크루 공장 의자에서 한 땀의 간격을 가늠하며 손으로 꿰매는 가죽. 바늘구멍 옆에 세세한 잡힌 주름은 공장의 장인이 가한 적절한 힘의 흔적인 것이다.

W12기통 6.0 터보 가솔린 엔진이 내는 시동음은 넓고 깊다. 피가 몰릴 정도로 달릴 수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소리만은 스포츠카처럼 카랑카랑하지 않다. 차 전체를 울림통으로 써서 내는 소리, 다만 달릴 준비가 됐다는 정도로 내는 든든한 소리다. 자기 실력을 요란하게 알릴 필요 없다는 듯 듬직하고 자신감 있는 소리, 굳이 과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벤틀리를 탈 때마다 으레 갖추게 되는 차분한 자세, 그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플라잉스퍼는 세단이다. 운전석에서는 핸들을 잡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을 극대화했고 조수석 뒷자리, 상석에 앉으면 여타 브랜드와 비교할 수 없이 안락한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콘솔 박스 뒤쪽에 준비된 리모컨으로는 차 안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터치스크린을 손으로 쓸거나 누르면서 내비게이션, 온도 조절을 위한 공조장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다. 좌석을 덥히거나 시원한 바람이 나오게 하는 조작도 같은 리모컨으로 가능하다. 스크린을 터치하는 느낌은 상상 이상으로 산뜻하다. 클릭과 스크롤에마저 여유가 있고, 또한 기민하다. 볼륨을 높였을 땐 앞좌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감이 생긴다. 8채널 스피커가 실내 곳곳에 장착돼 있다. 여덟 개의 스피커가 각각 만드는 파동이 귀에서 하나로 합치되는 걸 눈을 감고 느낄 수 있다.

어디라도 좋을 거라 여겼다. 다만 겨울이니까 올림픽대로를 타고 동쪽으로, 강원도 방향으로 달렸다. 올림픽대로에선 제 속도를 낼 수 있었고, 경춘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막히면 막히는 대로, 한산 하면 또 그런대로 괜찮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벤틀리를 운전할 때는 늘 그런 마음이었다. 운전석 핸들 너머로 시야에 들어오는 보닛의 양감,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곧게 뻗은 선, 알루미늄 페달을 밟을 때 느껴지는 냉철함, 그 사소한 느낌으로 부터의 신뢰까지….

플라잉스퍼를 운전할 땐 지루할 틈이 없다. 굳이 각박해질 이유도 없다. 음악이나 문학이 이런 일을 해줄 때가 있다. 어떤 음악에 완전히 몸을 맡겼을 때는 그 기분대로 춤을 추기도 한다. 몸은 여기에 있고, 의식은 묶여 있지 않다. 분명히 쫓기고 있는 일상인데 ‘그래도 괜찮다’ 여기게 되기도 한다. 다 잘될 거라고, 대책 없는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풍성하다는 걸 플라잉스퍼가 알려준다. 이 차가 상징하는 무수한 것들. 성공과 취향, 욕망과 여유, 권위와 격식. 시속 150킬로 미터를 지나 빠르게 올라가는 속도계, 분명히 점이었는데 선으로 이어지는 터널 속 빛을 통과하면서….

간간히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장난을 치고 싶어지기도 했다. 설악 요금소를 빠져나가 다시 서울 쪽으로 달리기 시작할 때 도로는 광활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힘껏 가속했다. 치솟는 엔진 회전수, 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속도계의 숫자, 저릿해지는 아랫배, 쪼그라드는 것 같은 뇌…. 어쩌면 소년의 욕망, 성숙한 남자에게 요구되는 모든 사회적 함의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같은 것. 이 또한 벤틀리에 내재된 유전자 중 하나다. 1930년, 프랑스 남부 칸에서 북부 도시 칼레까지 달렸던 초호화 열차 블루 트레인과 달리기 시합을 펼쳐 승리했던 그때였을까? 브레이크 없이, 핸드 브레이크만 장착한 차로 레이스에 참가해 우승한 1921년부터였을까?

벤틀리 창업자 월터 오웬 벤틀리는 벤틀리야말로 가장 고급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어떤 차보다 빠르기를 원했다. 모든 격식과 역사를 이해하면서도 유머와 운동을 사랑하는 신사. 벤틀리는 그렇게 달린다. 그건 1919년의 영국 런던이라도, 2014년의 서울에서도 달라질 것 없는 벤틀리의 고유함이다. 시속 100킬로미터 구간단속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시켰다. 제한속도에 맞춰 최고속도를 설정하고 오른발을 페달에서 내려놓았다. 하위차선에서 고속도로를 유영하듯 할 때, 옆 차선에서는 조금 더 급한 차들이 바람소리도 없이 앞질러 갔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천천히 시내를 유람했다. 다리를 몇 번 건너고, 일부러 산길을 택했다. 어느 한적한 골목에 잠시 내렸을 땐 벤틀리를 타고 달렸던 다른 나라의 여러 도시를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서울이 좀 달라 보였다면 과장일까? 자동차의 물성 자체가 의식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은 몇 겹의 사람이 층층이 쌓여 살아가는 것 같은 도시다. 천만 명이 살고 있다면, 사실 천만 개의 서울이 있는 건 아닐까? 이대로 다시 한남대교를 건널 땐 지는 해를 보고자 했다. 매우 조용하게, 때론 과감하게. 하릴없이 속도를 높이는 속도계를 살짝 보기도 하면서.

1 W12기통 엔진은 거칠 것 없이 달린다. 안아줄 듯 포근하기도 하고 모두 놀래킬 정도로 과격하기도 하다. 이 엔진을 레드존까지 몰아세울 때,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펜더 뒷부분에는 벤틀리를 상징하는 장식이 새로 생겼다. 헤드램프가 두 개의 동그라미인 건 전 세대와 동일한데, 이번엔 바깥쪽 램프의 크기를 키웠다. 더 강인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리어램프도 더 납작하고 넓어졌다. 장착된 위치도 더 낮아져, 비 오는 날 빨간 브레이크 등이 젖은 땅에 반사되는 묘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2 실내는 완벽한 좌우 대칭이다, 날개를 펼친 것 같기도, 코브라가 화났을 때 펼치는 목 주변의 후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새처럼 유영하거나 성난 코브라처럼 날쌔거나, 기분에 따라 달릴 수 있는 차라는 뜻이다. 공조장치는 손으로 당기면 닫히고, 누르면 열리는 식으로 고전적이다. 가운데엔 브라이틀링 다이얼 시계가 달려 있다. 패널에 쓰인 나무의 결, 크롬을 촘촘한 격자무늬로 세공한 방식에서도 벤틀리의 고집을 느낄 수 있다. 뒷좌석에 준비된 리모컨으로는 필요한 모든 조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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