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도시, 활화산 같은 활기로 무장한 도시, 그런가 하면 ‘착한 커피’가 잘 되니 그 옆에 ‘더 착한 커피’가 생기는 도시, 비현실이 현실을 앞질러 눈앞에 놓여있는, 우리들의 서울.

City판형

출근은 종로구 이화동에서 강남구 논현동으로. 퇴근은 반대. 택시요금은 대략 8천5백원이고 한강은 동호대교로 건넌다. 한강을 오간다는 것, 거기에 투영하는 어떤 낭만을 서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호젓한 권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동호대교를 건너는 그 시간을 뺀 나머지는 온통 오물 속을 허우적대는 것 같다고. 실은 ‘강을 건넌다’는 뉘앙스를 빼면, 다리 위에서조차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모든 것이 눈과 귀와 코와 피부를 썩게 만드는 것 같다고.

거리의 쓰레기를 안 치웠다거나, 냄새가 기괴한 택시를 탔다거나, 화장품 가게에서 질 나쁜 스피커로 튼 최신 가요가 귓속을 긁었다거나, 거스름돈으로 받은 지폐가 쭈글쭈글 젖었다거나,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된다. 당장 각자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 이 도시 (일부가 아니라) 자체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걸로 치면, 거리에 침이나 뱉는 것만큼 어울리는 행동이 있을까? 여긴 그냥 더럽고 추하고 복닥거리는 곳 아니니? 하이패션? 규범과 예절? 유기농? 디자인 시티? 전통과 역사?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있을 거야. 그런데 가짜잖아. 척하는 거잖아. 서울에 하이패션? 서울에 유기농? 서울에 전통과 역사? 숭례문 복원한 거 봐. 다 드러나잖아.” 그러니 서울은 점점 추해질 판일까?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택시 이태원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새로 생긴 디&디파트먼트에서 큰 걸 좀 샀더니 들고 다니기 힘든 터였다. (왜 짐이 있으면 택시를 타면서도 양해를 구하는 기분이 들까?) 빈 차가 왔고, 탔다. “창덕궁 정문 쪽 부탁합니다.” 기사는 대꾸가 없고,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대 시간….” 그는 거의 중얼거리다시피 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니까 상황 파악은 했다. 차고지로 돌아가야 하는 교대 시간이니 방향이 맞지 않아 못 간다는 소리. 이러니저러니 따지며 말 섞었다간 짜증만 더 날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알지만, 말이 나왔다. “그럼 태우지 마셔야죠. 불 끄고 1차선으로 가야죠. 타기 전에 묻기라도, 아니 지금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왜 화를 자초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말은 안 통한다. “뭘 찍어? 빨리 내려요.” 휴대전화로 차량번호 사진을 찍자 기사가 처음 알아듣겠는 볼륨으로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배운 대로 차 문을 세게 닫는 대신 차 문을 열어두고 걸어가 다른 택시를 잡았다. 이번엔 개인 택시였다. 기사가 묻기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돌이켜보면 유치하지만 그럴 때 뭔가 ‘일러바치면’ 기분이 좀 풀리기도 하니까. “꼭 신고하세요. 시민들이 자꾸 신고를 해야 돼요. 정말 그런 놈들 때문에 전체 서울 택시가 욕 먹잖아요. 신고만 하지 말고 처벌을 원한다고, 결과를 통보해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럴까 하는 생각도 잠시, 기사가 연설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 새끼, 저 새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그 연설은 창덕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됐다. 그리고 카드를 내밀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금이 좋은데. 1천원짜리 몇 개 없어요?” 역시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기에, ‘죄송해요. 현금이 떨어졌네요’ 웃으면 그저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땐 ‘내가 왜 그래야 돼?’ 버튼이 눌린 상태였다. 기사는 계속 중얼거렸다. “먹고살기 힘들고….” 이번에도 친구에게 배운 대로 했다. “없다고요. 뭐, 종이에 그려드려?” 그때 기사의 표정이라니. 택시기사 에피소드를 모으면 굉장할 거라고 모두 입을 모은다. 승객 에피소드를 모으면 굉장할 거라고 기사들도 말할까? 둘 을 한데 묶으면 되겠다. (잘 팔리진 않을 것이다.) 친구가 말했다. “그 책이 서울이지 뭐.”

역사 홍상수 감독은 서울을 ‘자연스럽게’ 담는다. 그의 영화 속에서 서울은 어디를 어떻게 보여주려는 의도로 골라 찍는 로케이션이 아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거나, 아는 만큼 보인다거나 그런 거 없다. 여긴 원래 이렇게 생긴 동네라는 식이다. 전통이나 역사라는 말로 묶일 장소가 자주 나오지만 집중된 의도라기보다 그저 나오는 곳 정도다. 관련해서 재미있게 생각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오! 수정>에 서, 말하자면 지식인인 영수(문성근)가 경복궁을 쳐다보며 말한다. “우리 궁 참 작다.” 수정(이은주)의 대답은 “커야 돼요?”였나, “커서 뭐 해요?”였나. 두 사람의 말은 서울에 있는 조선의 궁궐에 갈 때마다 화두가 된다. “우리 궁 참 작다”는 말 그대로, 우리 궁은 참 ‘작게’ 느껴진다. 바깥에서 문 하나만 열면 바로 보이는 훤한 구조에, 전각들은 옹기종기 붙어 있다. 저렇게 가깝고 단순한데, 사극에서 본 수많은 계략과 밀담과 암투 따위가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은 좀 더 나간다. 조선은 과연 뭔가 체계를 세우고 다듬어 보여주는 미학이 첨예한 나라였을까? 무슨 소리, 한복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조선의 가구가 얼마나 뛰어난데. 근데 그건 ‘우리 것’에 대한 상대적 과대평가가 아닐까? (도자기만큼은 예외로 치겠지만.)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의 막사발’이라는 말은, 우리가 ‘막사발’까지 그토록 아름다운 물건을 썼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전혀 예쁜 줄도 모르고 쓰던’ 막사발에서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발견한 일본 사람의 안목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매번 문제가 되는 단청 보수를 보면서는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과연 조선시대엔 완벽하게 잘 칠했을까?

두말할 것 없이 서울은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부터 이어진 도시다. 그런데 경성이 끼어 있다. 우리가 근대문화유산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제국주의와 일제의 산물이다. 없애기도 여럿 없앴고, 보존하기도 좀 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거기서 어떻게 우리를 발견할 것인가? 그것으로부터 이어진 게 우리에게 있나? 그러다 육이오와 고도성장에 이르면 질문은 저 밑에서 다시 시작된다. 서울은 대체 어떤 도시인가? 불과 10년 전 거리도 알아볼 수 없도록 온통 바꿔 치우는 판에, 백 년 전에 외국이 들어와 만들어놓은 근대문화유산과 오백 년 왕조가 남긴 ‘작은 궁’은 어떤 의미로 서울의 역사를 상징할 수 있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은 설날 특집으로 서울을 다뤘다. 학림다방, 배재학당, 태극당, 명동성당, 남산 팔각정, 창경궁 등의 장소를 다니며 과거 부모님의 시간과 현재 ‘나’의 시간을 잇는 인상적인 기획을 선보였다. 거기서 한 출연자에게 PD가 물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서울의 어디를 보여주고 싶으세요?” 나는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궁궐은 남아 있겠지.’

서울사람 요즘엔 그런 얘기 안 하나? 뉴요커, 파리지엔 하듯이 서울도 뭔가 정하자는 얘기. ‘서울러Seouler’니 ‘서울라이트Seoulite’니 하지 말고 ‘서울사람Seoulsaram’이 어울리며 옳은 대답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울러나 서울라이트야말로 서울에 어울리지 않을까? 정체를 알 수 없으며 보이는 모든 것이 눈에 거슬리는 판에, 그런 이름이야말로 금상첨화, 화룡점정이지. 역설의 가면을 쓰고 비웃자는 게 아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다는 편이 맞다. 아파트 이름은 우루루 유행따라 캐슬에 팰리스고, ‘착한 커피’가 잘 되면 그 옆에 ‘더 착한 커피’가 생기고, 무슨 동네가 떴다 하면 프랜차이즈가 건물을 통째로 사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뭔가 있다면, 서울사람일 것이다. 서울은 여전히 관광객에게 주인을 내주지 않았으니, 밤이면 빛나는 수많은 불빛이 모두 이 도시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조명일 것이다. 인터넷이 안현수 얘기로 떠들썩할무렵, 알고 지내던 형 내외가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서 뭘 어떻게 할 건지는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채, 일단 떠나고 본 경우였다. “뭘 시작해도 여기보단 나을 테니까.” 그렇게 서울의 인구는 두 명 줄었다. 그런 와중 서울의 인구가 25년 만에 1천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공교로운 일이겠으나 잔상이 오래 남았다. 그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예쁜’ 걸 만들던 디자이너였다.

2009년, 서울에 관한 책을 만드는 이로부터 인터뷰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 서울은?” 그때의 대답은 이랬다. “매일을 사는 곳입니다. 친구들이 사는 곳이고요. 있었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할 테고 뭐가 되든 여기서 될 겁니다.” 5년 후인 지금, 대답은 조금 다르다.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친구들도 아직은 여기에 남아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어요.”

다시 택시 하필 도쿄에서 돌아온 밤. ‘하필’이라는 말을 쓰는 건, 그 어느 도시보다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정서적 낙폭이 크기 때문이다. 각오를 해야 한다. 불과 몇 시간 전 긴자에서 택시를 탈 때 느꼈던 상냥함은 당장 삭제해야 한다. 차를 세우자마자 뛰어나와 인사하고 짐을 싣는 제복 입은 기사는 서울에 없으니까. 김포공항 택시 승강장 쪽으로 줄이 길었다. 체격 좋은 노인이 손님을 안내한다. 몸에는 두꺼운 야광 띠를 둘렀고, 손에는 시뻘건 봉을 들었고, 입에는 호루라기를 반쯤 물었다. 그가 봉을 휘두르며 손님과 택시를 짝짓는다. “자, 손님은 이리 가시고, 손님은 저리 가시고, 손님은 이거 타시고, 거기는 그 뒤 차 타시고….” 언행에 악의라고는 없다. 하지만 불쾌는 폭발 직전이다. 도쿄 택시의 흰 장갑과 서울 택시 승강장의 시뻘건 봉은 어떻게 충돌하는가. 마침내 차례가 되어 그가 시뻘건 봉으로 오라가라 하며 캐리어를 잡아 끌 때, 이를 악물고 나오는 소리를 참았다. ‘돈 터치 미!’

잡동사니로 이미 반쯤 채워진 트렁크에 짐을 싣고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는 통화 중이었다.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신호 대기 중에 무심코 창밖을 봤다. 횡단보도 옆으로 여야가 내건 플래카드가 있다. 어르신들 걱정 마시란다. 그 위로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 있다. ‘베트남 처녀’라는 글자 그리고 전화번호, 창밖을 계속 봤다. 2009년의 설문 중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도 있었다. 그때 내 대답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술일까? 우선은 눈을 감았다. 웬만해선 뜨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