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13 is Lucky Number!

2014.02.27GQ

EL LOGO생일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꼭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들은 친구 생일날에도 선물 같은 건 기대하지 말라면서 표표한 척합니다. <지큐>는 생일이 중요합니다. 선물을 찾고 사는 동안 삶과 섞이는 다정한 구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창간 기념호를 만들 때마다 우리를 어디서 찾을지 알 수 있도록 편지함에 풍선을 매달아 날려보내는 기분이 듭니다.

<GQ KOREA>가 창간 13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정도를 롱런이라고, 스스로 갱신을 반복해온 오랜 미디어의 세월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쉬지 않고 열매를 맺는 가지처럼 뻗어오기 위해선 많은 발판과 높은 사다리와 긴 로프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는 명백합니다. 처음의 기이한 열의는 퇴색되지 않았고, 편집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며, 잡지 저널리즘의 룰은 기어코 지켰습니다. 당신이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 취향을 학습하기 위한 정보의 중요성, 기초가 튼튼한 스타일의 다양성이라는 모토도 그대로입니다.

다양성은 얼핏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데 모순인 듯 보입니다. 저는 스타일의 일부일처제에 정착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람, 장소, 책, 유행처럼 살아 있는 것은 자꾸만 재생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물의 기발함에 감탄하고, 신기술에 열광하며, 스타일의 가변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패션은 문화의 합법적 형태로서 예술과 동등합니다. 클래식은 중요 하지만 취약한 것들과의 경계를 아우르는 유연함도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로 말하자면, 나는 발렌시아가의 후발 주자가 아니라 미래의 대담한 아웃사이더를 찾았습니다. 우아함과 유머러스한 비틀기의 혼합, 헤드라인을 덮는 한 문장의 직격탄, 지큐적 글쓰기의 기조도 공고히 했습니다. 문득, 깊진 않지만 형언할 수 없고, 미스터리하지만 빽빽한 13년이 하나의 자전적 연감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비밀이 생깁니다. 대부분이 자기에게 중요한게 뭔지 금방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즘을 지배하는 기분, 사소한 좌절, 정치적 고답 상태, 가족의 딜레마에 대해 토로합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출 이자의 부담과 보금자리 주택의 행복에 대해 들려주기도 할 것입니다. 거개가 일정량의 현재적 챕터를 규정하는 이야기들이지요. 이 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말들의 상징과 의미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잡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잡지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당신이 부자건 사려 깊건 못생겼건 상관없이 (당신은 나오지도 않는데) 만날 일도 없는 유명하고 예쁜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봐야 할 잡지들이 있습니다. 사치로 가치를 재는 사람을 위한 잡지, 정치적 옳고 그름과 그 곡직을 따지는 사람을 위한 잡지는 필시 따로 있을 것입니다.

문화를 스타일에 대입한 새로운 세대를 무수히 마중 나가고 환영하는 동안 우리는 공부했습니다. 무엇이 좋은 스타일인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보는가? 누가 격식을 아는 남자인가? 그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 어떻게 묘사되는가? 그것은 불변인가? 부득불 지금 필요한 것인가?

포스트페미니즘 시대는 남자들을 근본적으로 길 잃은 상태로 방치합니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무엇을 할지, 누구를 따라갈지 모르는 어리둥절한 고아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를 끌며, 감정과 지능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적절한 정도의 야망을 보여주며, 언제나 대화할 수 있는 남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멋진 남자란 20세기 후반 페미니즘의 견해가 만든 판타지 아닐까요? 어쨌든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불가능하고, 도대체 비합리적이며, 진부하고 극적인데다, 누구도 부응할 수 없는 가상의 ‘상품’은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감각의 영역에서 명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 이미지를 이상화된 모형과 맞추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시간을 당기고 환상을 향해 날아오르려 해도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마분지만큼 딱딱한 어른의 수트가 첫 경험만큼 두렵고 황홀한 소년기를 보내자,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이 강한 유대로 엮인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특징적 유사성을 이어주는 유전 코드, 손만 들어도 마음이 통하는 민감함, 완전히 상호 보완적인 이해, 서로가 바라는 만큼의 진지함은 다른 표본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최고의 우정은 스스로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를 채우는지 압니다. 그런 우정은 깊은 배려, 배려의 태도, 태도의 방식, 방식의 선명함으로 건축되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축이 기울기라도 한 듯 요즘 삶의 기준은 바뀌었습니다. 이젠 성공이 더 빠른 차와 직장 내 높은 지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종일 일한 대가로 통장이 두둑해진 사람만 부자라고 칭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풍부함입니다. 예민한, 그러나 까다롭지 않은. 적극적인, 그러나 허세는 뺀. 선크림을 바르는, 그러나 필요하면 턱수염을 기르는.

탈산업화, 탈근육화 시대에 어떤 역할을 고르고 맡아야 할지 당신은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건 소년의 몸과 거북한 남성성을 교환하려 드는 것 만큼 무모한 일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어야 하고, 너무나 충분하며,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당신의 13년 된 친구는 이렇게 조언하려 합니다. <GQ>를 읽고, 심장이 하는 대로 따르십시오.

signature

    에디터
    이충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