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연기력의 부적절한 관계

드라마에서 뛰어난 연기는 어떤 걸까? 정확한 발음? 매끄러운 시선 처리? 안정된 제스처? 과연 자연스럽기만 하면 연기력이 좋은 걸까?

Television판형

1999년, 립싱크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가수가 무대 위에서 입만 벙긋하는 게 도대체 뭐냐고 맹비난하는 쪽과 “립싱크는 새로운 문화”라고 맞서는 식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립싱크에 대한 논란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MR 제거’ 라는 말이 생겨났다. 격한 춤을 추면서도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확인하는 과정. 사람들은 그걸 듣고 ‘소름 끼치는’ 가창력이라는 말을 꺼낸다. 가창력, 즉 노래를 부르는 능력. 흔들리지 않는 고음, 정확한 박자, 넉넉한 호흡 등등. 그러면서 아이돌이 ‘가수’로서도 훌륭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2014년, 연기력 역시 논란의 중심은 아니다. 오히려 한동안 연기력을 의심 받은 배우들에 대한 칭찬이 있다. <미스 코리아>에서 이연희는 연기력 논란에서 ‘해방’되었다고 하고, <감격시대>에서 김현중은 연기력을 ‘검증’ 받았다고 한다.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연기력 논란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16년 차 배우로 비춰진다. 그러니까 다들 안정적이란 얘기다. 안정된 발음, 감정의 몰입, 자연스러운 움직임 등등. 대부분 타인에게 동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소만으로 연기력을 평가한다. 연기력, 즉 배우의 연기 기술과 연기에 대한 역량. 한때 외모로만 주목받던 연예인이 연기 기술도 괜찮은 배우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불현듯 10년 전 방영된 <천국의 계단>을 꺼내고 싶다. 최고 시청률이 40퍼센트가 넘는 엄청난 인기였다. 시청률이 지금보다 비교적 높았던 시기임을 감안해도 꽤 인기가 좋은 드라마였다. 주인공은 권상우, 최지우, 김태희. 당시 권상우, 김태희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된 2~3년 차 배우였다. 이 둘에겐 부정확한 발음, 표정의 과잉, 어색한 말투 등 온갖 논란이 따라다녔다. 그뿐 아니라 거의 10년 차 배우였던 최지우도 ‘혀 짧은 발음’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천국의 계단>은 시청률이 40퍼센트가 넘으면서도 대부분의 주인공이 연기력으로 혹평을 받은 유일한 드라마다. 한데, 왜 그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을까?

질문을 바꿔본다. 사람들은 어떤 걸 볼 때 눈을 떼지 못할까? 예쁘고 멋진 것.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TV를 통해 방영된다. 채널을 바꾸는 건 TV의 속성이다. 채널을 멈추려면 화면에 아름다운 장면이 꽉 차 있어야 한다. 시청자가 한 드라마에 빠지기 전까진 잠시만 지루해도 채널을 바꾼다. 드라마 제작진은 시청자가 리모컨에 손대지 않게 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반대로 돌리던 채널을 자신의 드라마로 멈추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눈에 확 띄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보통은 배우의 얼굴. 드라마는 클로즈업 숏의 연속일 때가 많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보다 먼저 배우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많다. 성형-필러-보톡스-성형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덴 이유가 있다. 드라마는 배우의 얼굴을 촘촘히 걸어놓는 특별전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캐스팅이 중요하다. 영화보다 드라마가 배우의 외모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중 주인공의 얼굴은 제일이다. 게다가 청춘 드라마는 주요 시청자 연령층을 ‘20대에서 30대 여자’로 정확하게 겨눈다. 대한민국에서 외모에 가장 예민한 집단.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또 있다. 여자 배우는 여자가 봐도 예쁠 것. 그건 남자들이 여자에게 느끼는 성적인 매력과는 좀 다르다. 여자가 동의하는 여배우의 미모는 부러움과 선망의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그래야 채널을 멈추게 한다. 반면 남자 배우는 어떤가? 물론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 배우들도 있겠지만 신선한 매력을 지닌 얼굴이 등장했을 때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확실히 끌수 있다. 최근의 사례를 굳이 꼽자면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과 <상속자들>의 김우빈이 아닐까? <천국의 계단>을 다시 본다. 김태희의 얼굴은 여자가 봐도 예쁜 눈, 코, 입, 얼굴형을 모두 합쳐 그린 것 같았다. 권상우는 천진하면서도 매서운 눈매, 웃을 때 파이는 눈 옆 주름은 소년과 남자를 오가는 새로운 얼굴이었다. 최지우는 그녀가 10년 동안 건재할 수 있는 이유를 미모로 설득했다. 그러니까 세 주인공의 얼굴엔 브라운관을 채우는 에너지가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찬란한 젊음을 만났을 때 보여주는 힘. 채널은 멈췄다. 주인공의 연기를 봤다. 아주 많은 시청자가 보고 또 봤다. 연기력 논란. 여기서 연기력을 빼면 논란만 남는다. 즉,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 결국 많은 사람이 보지 않으면 논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가 화면을 장악하는 힘은 얼굴만으로는 부족하다. 뛰어난 배우이면서 연기 교사였던 미카엘 체홉의 말. “배우의 기본은 감정을 발산하는 능력이며, 발산이야말로 연기의 첫 걸음이다. 발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기초 연기 수업>, 안재범) 체홉은 극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배우의 발산이 일어나지 않으면 장면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으며, 발산의 능력을 지닌 배우의 영혼이 그 배우가 지닌 카리스마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을 무리해서라도 드라마에 적용하고 싶다. 그리고 2002년 <인어아가씨>의 심수정을 연기한 한혜숙을 그 예로 떠올린다. 아리영(장서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좁혀지는 미간, 뽀글 파마 가발을 쓰고 처량하게 내민 입술, 따귀를 시원하게 맞고 “얘, 만만한 게 나니?”라며 째려보는 눈빛. <인어아가씨>에서 심수정은 아리영의 대척점에서 액션보다는 리액션을 주로 하는 역할이었다. 그때마다 천부적인 연기력으로 ‘심금’을 울리는, 과연 ‘선생님’이란 칭호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발성이나 ‘내면연기’와도 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장악했다. 발산의 힘이다. 본래 배우가 지닌 감정의 크기가 크고 그걸 온전히 표현할 때만 가능한 기운이 화면 안에 있었다. 채널은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극한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폭발시킬 때 멈춘다. 그건 어쩌면 보통 연기력이 좋다고 할 때의 잣대, 기술적이거나 객관적인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상력을 꺾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상상력의 내용엔 책임이 없다. 우리는 생각하도록 교육받아 왔으므로 지금 자신의 개성은 본모습이 아니다. 상상력만이 진정한 자신이다.”(<즉흥연기>, 키스 존스톤) 영국 왕립 극단에서 연기를 가르친 키스 존스톤은 연기를 가르칠 때 어떤 기준도 세우지 않았다. “예술은 자기 안에 있으며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학생보다 우월하지 않다. 선생은 학생에게 연기 시범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처럼 연기는 어떤 틀로 가르치기 어렵고, 그래서 뭐라고 평가하기도 쉽지 않은 영역일 수 있다. 배우가 지닌 탤런트, 한때는 드라마 배우를 지칭했던 이 단어처럼 재능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드라마 연기를 마냥 자연스럽다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게다가 드라마엔 드라마만의 특성이 있다. 그건 영화나 연극의 성질과는 다르다. 우리는 뛰어난 연극배우가 영화에서 단박에 잘하기 힘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도 드라마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연기력’이 있지 않을까? 불특정 다수의 눈길을 한 번에 빼앗는 힘. 발산만 되면 드라마를 이끄는 바로 그 재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