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한 복판의 명백한 이발소

예원상이 머리를 만지면 자다 깬 남자도 달빛 아래 유유히 강을 건너는 수달처럼 매끈해진다. 그는 촬영장에서 스태프의 머리를 자주 잘라준다. 잠깐 짬이 나면 “이리 앉아봐. 잠깐이면 돼”라고 말한다. 말투는 좀 퉁명스러워도 화가 잔뜩 난 톱스타의 머리를 만지듯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는 촬영을 위해 모델의 머리를 다듬어야 한다고 말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모델 에이전트에 직접 전화해서 몇 밀리미터만 다듬겠다고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다가 ‘손도 대지 말라는’ 에이전트의 엄중한 경고 때문에 싸우기를 몇 번. 그는 “헤어 제품만 쓱쓱 바른다고 능사가 아니라 기본적인 것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한 헤어스타일을 준비할 때도 새벽기도처럼 오랜 침묵이 필요하다. 이리저리 머리를 넘기며 가르마 개수나 방향, 머릿결을 세심하게 살핀다. 예원상에겐 ‘적당히’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발소에 가면 좀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먼저 온 손님의 머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손을 놓는 법이 없으니까. 심지어 손님이 벌 떼처럼 밀려들면 손은 도리어 차분해진다. 그의 이발소가 최근에 압구정동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은 예전 그대로 블레스 바버숍. 전엔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새로 터를 잡은 곳은 넓어지고 스태프도 늘었다. 뭔가 ‘본격’의 분위기가 난다. 예원상은 이렇게 말했다. “이발소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그 특별한 공간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다음 달에는 블레스라는 이름을 달고 샴푸와 포마드도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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