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와 이소라와 박정현의 새 노래에 대한 감정적 대응

노래를 듣기 전에 이미 감정이 앞서는 세 가수의 새 앨범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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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가 5월에 컴백한다. 그런데 냉큼 공연티켓을 예매하다가 질문이 생기고 말았다. 나는 김추자를 아나? 우리는 김추자를 아나? 선뜻 답할 수 없는 채로 ‘김추자 컴백’과 ‘맨앞 줄’이라는 말의 조합은 막무가내 흥분되는 일인 동시에 완벽한 허구 같았다. 그럼 이소라라는 이름은 어떤가? 이선희는? 박정현은? 안다. 그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알고 노래를 안다. 근데 안다는 건 또 뭘까?

우선 이소라의 새 앨범 <8>. 1번 트랙 ‘나 FOCUS’와 잇달아 2번 ‘좀 멈춰라 사랑아’가 화염처럼 터진다. 록이다. 항간의 표현대로라면 ‘파격 변신’인데, 좀 과장된 말이다. 그런 경향이라면 이미 지난 앨범부터 아니, 5집 이후로 참여한 뮤지션만 봐도 내내 ‘록’이었다. 다만 이소라 노래는 목소리가, 가사가, ‘이소라’ 자체가 중요했으니, 장르야 록이든 재즈든 팝이든 그저 ‘이소라 노래’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앨범은 ‘록’이 앞서 치고 나온다. 그건 이제까지 이소라를 들었던 방식, 즉 한 곡 한 곡 어루만지듯이 들으며, 가사의 구절구절을 아로새기며, 스스로 청자와 화자를 오가며 스미는 마음과는 전혀 다를 것을 제안한다. 듣다 보니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난 됐어 이제 / 너 착하게 사는데도 / 다 준대도 / 뭘 잘해도 / 니가 하는 게 다 괴롭게 해 날.” (‘넌 날’ 중에서). 앨범에 참여한 새로운 이름은 ‘록밴드’ 메이트의 멤버인 임헌일과 정준일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7집에 이어) 이승환(더 스토리)이 없다는 점이다. 이승환이 없으니 피아노가 없다. 휘감는 피아노 대신 거칠게 기타가 에워싼다. 걸맞게 이소라는 ‘록보컬’로 색을 맞춘다. 내지르거나, 할퀴거나, 뒤집거나, 싹 치워버리거나 ‘다른’ 이소라를 드러내는데 몰두한다. 이 앨범을 ‘이소라의 변신’이라는 관점으로 대하는 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소라 변신 멋있다” 한마디면 될 테니. 하지만 이제까지 그녀의 모든 앨범이 그랬듯 ‘이소라 노래’로 보면 좀 다르다. 이소라는 하고 싶은 걸 했고, 전력투구했다. 갈채가 합당하다. 다만 한 가지, 이 앨범을 채운 ‘록’의 소리가, 구성이, 흐름이, 2014년인 지금 과연 멋지다고 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그녀의 공연장에서 늘 들리던 안토니 앤 존슨즈, 시규어 로스, 엘리엇 스미스, 피오나 애플 같은 ‘록’을 떠올리자니 얕은 탄식도 나온다. 요컨대 ‘록’이니 ‘변신’이니 하는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질문은 언제나 ‘그래서, 좋은가?’이다.

세 가수 중 박정현의 신곡이 가장 나중에 나왔다. 2012년 6월에 정규 앨범 <Parllax>가 있었지만, 박정현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강력한 이미지는 아직도 <나는 가수다>의 박정현이다. 같은 노래도 ‘박정현이 부르면 이렇게 끝내준다’는 그 이미지는 최근 <불후의 명곡>에서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정말 끝내주게 부르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현의 선택과 고민은 웬만큼 추측이 가능하다. 그 이미지를 껴안든, 빗겨가든, 마침내 넘어서는 ‘박정현 노래’를 부르는 것. ‘싱크로 퓨전’ 프로젝트 자체가 그런 선택과 도전일 터, 첫 곡은 ‘더블 키스’다. 시작하자마자 밀어 붙이는 대찬 비트가 그녀의 목소리를 대번 ‘스태디엄’급으로 상정해 놓는다. 한때 ‘대형 가수’라는 말이 흔했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그 표현이 덜컥 되살아난다. 하지만 ‘대형 가수’라는 말이야말로 지금 박정현이 건너야 할 긍정과 부정의 총체 같다. 쉬울 리 있나. 그녀는 신인이 아니고,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르는 식과도 거리를 뒀다. 말하자면 박정현은 끊임없이 더 좋은 뭔가를 만나야만 하는 운명이다. 더 좋은 작곡가,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무대, 어쩌면 더 좋은 관객까지. 윤종신이 오랜만에 가사를 쓴 ‘그 다음해’는 좀 이상한 노래다. 서툴게 들리는 멜로디와 더없이 완벽한 보컬 사이에서 뜻밖의 매혹이 생겨난다. ‘더 좋은 것’만을 향하는 흐름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균열을 만든달까? 생각해보면 박정현은 언제나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했다. 세상에서 제일 여린 듯, 하지만 한번도 꺾인 적 없는 강인함. ‘그 다음 해’를 들으며 오랜만에 박정현 노래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오랜 연인 사이를 다룬 가사는 마지막쯤 “우리 결국 같이 살 수 있을까”에 닿는다. 어떤 성숙. 사랑할수록, 살아갈수록 오히려 간결해지는 세월의 선물일까? 어여쁜 노래다.

이선희의 <Serendipity>는 셋 중 가장 먼저 나왔고,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복잡한 감정을 줬다. 앨범 표지에 쓰인 ‘30주년 기념’이라는 말이 더욱 부추겼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앨범은 지금 이선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다. 맥락, 정체성, 시도, 시도를 구현하는 조력자, 시장성, 의미…. 30주년이 됐는데 이 정도는 내야 한다는 생각에 성실하게 부응한다. 잘 차 린 한 상이다. 하지만 그 다음까지 확신하긴 어렵다. 잘 하는 건 알겠는데 마냥 좋아지진 않는, 그 차이가 제법 벌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이선희가 대중 앞에 어떻게 서는 가수였나 하는 점에서 온다고 본다. 이선희는 음반이나 음원보다 유난히 ‘노래하는 모습’으로부터 사랑받은 가수였다. 지칠 줄 모르고 쏟아낸 수많은 히트곡은 텔레비전으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찧고 까부는 별의별 쇼를 뒤로한 채 마침내 마지막 무대에 오른 이선희가 말끔한 바지 정장 차림으로 목소리를 “쫙” 뽑으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는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인가? 바꿔 말하면, 그렇게 속이 다 시원하도록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선희의 노래는 낯설다. 그런가 하면 유난히 회고적이며 자기 성찰적인 가사가 많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나이가 든다는 건 / 깊고 넓어지는 거라는데 / 난 언제쯤 깊어져 / 어디쯤에가 닿을까.”(‘나에게 주는 편지’ 중에서) 솔직한 말이라는 점에서 울림을 주지만, 이선희에게 대입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아직 나이든 이선희를 맞을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다. 젊은 감각과 통하고자 애쓴 흔적도 마찬가지다. 이선희 노래에 왜 랩 비슷한 게 나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이선희가 정말 이런 음악을 하고 싶었구나, 라고 느껴지지 않고,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게 안타깝다. 지금 이선희라는 가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완전히 자신을 통째로 맡길 수 있는 프로듀서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30주년이라는 말이 새삼 무겁다. 하지만 머물 수 없다면, 건너야 하지 않을까?

다시 김추자. 생각할수록 김추자를 본다는 일이 신기하다. ‘컴백’을 ‘처음’으로 경험하다니. 김추자는 더 이상 글자로 붙박인 이름이 아니라, 눈앞에서 움직이는 ‘라이브’로서 전혀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이선희와 이소라와 박정현은 어떨까? 변하든 그대로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팬’이라는 말은 오히려 너무 좁거나 작지 않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