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박효신

박효신은 노래할 때 계산이 없다고, 무대에선 객석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와장창 깨부수고 싶은 건 좀 있다.

진녹색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셔츠는 생 로랑 파리.

오늘처럼 노래하면서 촬영해본 적 있나요? 있는데, 확실히 누가 찍느냐에 따라 달라요. 오늘처럼 핏대 서고, 남자답고 그런 사진 좋아해요.

어떤 장소에서 부르느냐가 그날의 노래를 결정하기도 하나요? 녹음실에선 온 신경이 목소리에 가 있어서, 제가 뭘 하는지도 몰라요. 무대에선 퍼포먼스도 생각하면서 불러야죠. 가수마다 다른 것 같아요. 누구는 언제나 노래에만 집중할 수도 있는 거고.

무대에서 여유가 생긴 건가요? 그냥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어렸을 땐 그냥 가슴에 손 얹는 게 다였다면, 이젠 가사하고 노래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제 손도 같이 가는 거죠.

콘서트 무대와 뮤지컬 무대는 어떻게 다른가요? 뮤지컬 무대엔 주고받는 게 정말 많아요. 관객들도 있고, 배우들끼리도 그렇고. 저도 그냥 커다란 전체 중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콘서트 무대엔 저를 지지해주는 든든한 하늘 같은 게 있는 느낌이에요. 저는 그걸 바라보는 큰 나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대본과 가사는요? 노래는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까 제 임의로 정리할 수 있다면, 대사는 더 연습하고 어드바이스를 받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리고 노래는 원래랑 좀 다르게 해도 라이브의 특성상 좋을 수가 있어요. 대사는 살짝만 정신이 흐트러지면 원하지 않는 톤이 확 나와서 어색해져요.

가수로는 어떤 노래를 하든 박효신이겠지만, 뮤지컬에선 토드(<엘리자벳>)와 볼프강(<모차르트!>)이 되죠. 그렇죠. 라이브 무대는 좀 즐기는데, 뮤지컬은 진짜 역할에 집중해야 돼요. 무대 뒤에서 신 직전의 절 보면 약간 미친 놈 같을 수도 있어요. <엘리자벳>에서 토드 역 맡았을 때는 배역의 특성상 저도 모르게 호흡도 거칠어지고, 막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올라갔거든요.

긴장한 게 아니라 자기 최면을 거는 건가요? 긴장하진 않았어요. 그보단 단시간에 역할에 빠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리고 신 끝나면 나와서 쉬다가 또 다음 신 직전에 빨리 빠져들려고 노력하고….

박효신이란 가수가 그 부분 하난 확실했죠. 노래에 빠지는 것. 제가 볼 게 그거밖에 없죠. 하하.

배역에 동화될 수 있는 습관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부족해요. 딱 그렇다고는 못할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시동을 거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어요. 그리고 <엘리자벳>에선 (옥)주현 누나가 상대역이었는데, 제가 좀 흐트러질 듯할 때 누나 표정을 보면 다시 확 빠져들었어요. 더 연습해서 저도 상대역한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겠죠.

늦은 시작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갓 데뷔한 아이돌도 조연부터 뮤지컬을 시작하곤 하는데. ‘먼저 시작했으면 더 위에 올라가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지금이 저한테 맞는 때예요. 왜냐하면 그만큼 갈망하고 있을 때 시작했으니까. 계기가 확실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데도 희한하게 해보고 싶단 생각은 없었어요. 뮤지컬은 그렇진 않았는데 접어두고 있었죠. 그러다 제대하고 <오페라의 유령>을 아무 생각 없이 보러 갔는데, 배우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그때 가수 말고 제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면 저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똑같은 무대지만, 또 다른 무대니까.

노래엔 확실히 자신이 있었나요? 조금 그렇기 한데, 그것만으로 자신감을 가질 순 없었어요. 뮤직비디오 같은 데서 연기를 경험해볼 순 있었지만, 뮤지컬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는 거니까. 노래는 그중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생각했죠.

공연장엔 어쨌든 모든 관객이 박효신을 보러 오지만, 뮤지컬은 그렇지 않은 무대죠. 특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무대에서 제 할 일을 하다 보면, 사실 객석은 커튼이 쳐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객석이 안 보이나요? 콘서트는 서로 호흡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좋은 분위기가 난다면, 뮤지컬은 배우들끼리 집중하고, 무대에서 뭔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요. <모차르트!>의 볼프강 역할은 <엘리자벳>의 토드보다 훨씬 제 자신을 보면서 해야 돼요. 바깥은 거의 블랙아웃 상태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성화는 반대 얘길 했어요. “1천 명을 놓고 공연한다 치면, 그중 한 명만 안 웃어도 다 보인다”고요. 전 그렇진 않아요. 콘서트는 바깥으로도 조명을 막 쏘고 그러잖아요. 원래부터 관객들이랑 같이 하려고 열어놓은 세트죠. 뮤지컬은 안으로 더 집중되는 구조인 것 같아요.

회색 니트 톱은 호프 by 비이커, 진청색 바지는 빅터앤롤프 by 쿤, 반지와 목걸이는 박효신의 것.

뮤지컬은 재관람률도 높고, 유독 적극적인 소비가 이뤄지는 장르죠. 후기를 읽기도 하나요? 안 보려고요. <엘리자벳> 때는 봤어요. 근데 도움되는 말이랑 안 되는 말이 공존하더라고요. 뭐가 더 맞는지 판단하려고 본 건데, 오히려 헷갈렸어요. 이젠 저한테 집중할 거예요. <모차르트!>는 옛날얘기지만, 어쨌든 제 삶과 공통점이 많을 거란 생각을 해요. 대부분의 음악 하는 사람들은 제일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저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어봤을 거예요. 그런 것만큼은 진짜 잘 표현해보고 싶어요. 모노드라마처럼.

<엘리자벳> 후기엔 “애드리브가 과하다”는 평이 꽤 있었어요. 노래만큼은 절 믿는 편이에요. 박효신이란 가수를 제가 평가할 때 한 번도 “너 오늘 잘했어”라고 얘기해준 적은 없어요. 겸손하고는 다른 얘기예요. 저는 늘 채찍질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무대에 올라갈 땐 그전에 저를 많이 힘들게 해요.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 시작할 때도 “원래 뮤지컬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아예 없었어요. 주위에선 많이 걱정했을 거예요. 원래 받은 악보랑 멜로디를 다르게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다 끝나고 들은 얘긴데, 배우들도 제가 첫 공연하기 전까진 반신반의하셨대요.

연습을 보면서요? 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전 전혀 몰랐죠. 어쨌든 그런 후기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전 벌써 저에 대한 평가를 다 끝내놓고 올라간 거기 때문에.

토드는 초현실적인 캐릭터였어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죠. 반면 볼프강 모차르트는 실존인물이에요. 노래에 대한 생각은 똑같아요. 정해져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뮤지컬을 미뤘던 것도 사실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이상하게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해외 작품을 보면 표현이 정말 자유로운데, 국내에서 열리는 작품은 뭔가 딱딱하게 들렸어요. 오히려 오페라에 더 가까워 보였달까요? 그러다 브래드 리틀의 <오페라의 유령>으로 자신감을 얻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구나…. 새로운 길을 열고 싶어요.

<엘리자벳>에선 시아준수와 토드 역을 번갈아 맡았고, <모차르트!>는 시아준수가 신인상을 받은 뮤지컬이에요. 신경이 쓰이기도 하나요? <엘리자벳> 연습할 때랑 모니터링을 할 때 말고 아직 준수가 출연한 작품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준수의 연기가 어떤 느낌인지 잘 몰라요. 전 오히려 오리지널 팀의 표현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같이 출연하는 동료의 연기를 보게 되면 그 안에 갇힐 수도 있잖아요.

뮤지컬 때문에 창법을 바꿨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뮤지컬 때문에요? 아니요. 배역에 제일 잘 어울리는 보컬을 찾는다는 생각만 했어요. 창법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신곡 ‘야생화’의 다소 생경한 보컬을 두고 곳곳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제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전 어떤 노랠 표현할 때도 자신이 있어요. 비트 있는 노래든, 새로운 장르든. 그래서 “아, 좀 변한 것 같아, 전에 부른 게 더 좋아” 같은 말에 대한 흔들림은 없어요. 곡에 맞춰서 하는 거죠. 어떤 노래를 선택했으면, 그 노래에 어울리는 호흡이나 표현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되게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늘 좀 달랐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박효신의 목소리’는 정형화되어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해요. 다 다르게 불러도, 사람들은 그걸 비슷하게 여긴달까요? 자주 모창의 대상이 된다는 건 그 증거일 수 있고요. 제 욕심은 사실 그냥 제 이름 석 자거든요. 한 가지 머릿속에 딱 남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좋지만, 여러 모습을 다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노래를 해도 박효신은 우리가 원하는 걸 들려줄 거야” 같은 소리를 듣고 싶죠. 하지만 제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평가할 순 없어요. 대중가수니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말에 맞추는 건 아니고요. 제 일은 노래를 다 만들었을 때 끝나는 것 같아요.

“박효신 정말 노래 잘하는데, 목소리 있잖아 그거. 워어어 하는…” 같은 말도 괜찮아요? 이상하게 그런 것에 대해 감정이 있었던 적은 없어요. 전의 노래가 좋다고 하든, 요즘 노래가 좋다고 하든,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똑같다고 하든. 정말 겸손하려는 게 아니고 전혀 상관이 없어요. 대한민국에 가수가 저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음악을 충분히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자연스러운 일부분인 거지, 밥처럼 꼭 먹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음악을 “내가 이거 꼭 들어야지” 하고 들을 때보다, 그냥 듣고 싶을 때 듣고 싫을 땐 안 듣는 게 좋아요. 자유롭게.

티셔츠는 알렉산더 왕.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뭔가요? 누군가는 목소리를 꼽기도 하고, 공간을 잘 확보한다는 평도 있고, 음역 자체가 넓다고도 하죠. 저도 잘 모르는 얘기들이에요. 몸의 어디를 열고…. 음악은 그렇게 계산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 단지 노랫말과 멜로디의 느낌을 살핀 뒤에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해서 담아내는 것뿐이에요. 소리를 어디서 내고, 열고 하는 걸 계산하면 감정이 늘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데, 많은 분이 분석해주시더라고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같은 말처럼 들리네요. 물론 연구하고, 풀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저한테도 다른 과정이 있었죠. 후배들이 소리 어떻게 내냐고 물어보면 맨날 답은 똑같아요. 좋아하는 음악 많이 듣고, 그 소리 내고 싶으면 많이 불러보라고. 저는 처음에 연습할 때 어떤 한 소리를 내는 데 1년이 걸린 적도 있어요.

음색에 대한 얘기인가요? 발성, 톤 전부 포함되는 거죠. 1년 넘게 했을 때 어느 날 탁 소리가 났어요.

득음한 건가요? 보통 그렇게 얘기하는데, 시점도 제가 확실히 파악 못할 만큼 어느 순간 그렇게 된 거예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충이 있었죠.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제 모든 몸을 다 써가며 이것저것 시도한 거니까,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노래를 가르쳐볼 생각은 없나요? 제 코가 석 자예요. 아직도 목표점에 도착하지 못했고요. 그리고 만약 제가 어떻게 부르라고 누구한테 가르쳐줬을 때 그걸 정말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도 할 수 있는 표현과 발성이 있고, 안 되는 게 있는데. 자신이 힘든 과정을 통해서 느끼고 연습해야 돼요.

장르에 대한 생각도 하나요? 같이 학교를 다닌 탓에 자주 비교되던 휘성, 환희와는 달리 특정 장르가 쉽게 떠오르진 않아요. 많은 분이 수식어를 붙여주긴 했지만, 전 여러 장르를 다 할 수 있는 제가 좋아요.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가수가 있나요? 없어요. 저는 파이터는 아니에요. 제 음악을 하고 싶은 거지 누가 라이벌이고 그런 건…. 누굴 이기고 싶어지는 순간 음악의 본질 자체가 좀 뭉개지지 않을까요? 그게 음악일까, 란 생각까지도 해요.

자주 같이 언급되던 김범수와는 서로의 음반에서 듀엣 곡을 부르기도 했어요. ‘친구라는 건’과 ‘무제’. 당연히 범수 형이 정말 잘하는 노래가 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노래가 있겠죠? 듣는 분들은 잣대를 댈 수 있지만 제 스스로에게 라이벌은 없어요.

자정이 넘었으니, 4월 11일이 되었네요. 오늘 나오는 이소라 8집의 ‘난 별’을 미리 불러 공개했죠. 그 노래가 박효신에게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하면서 너무 어려웠는데. 하하. 노래라는 게 제각각 의도하는 바가 있잖아요. 댄스를 발라드처럼 부를 순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면 잘 어울리겠다, 생각하고 부른 거예요. 내 노래였으면 한다는 것까진 못 느꼈어요. 소라 누나가 음반을 오랜만에 내는 거잖아요. 저도 그럴 때의 기분을 잘 아는데다, 누나는 정말 자기 맘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었어요.

‘야생화’는 자작곡이에요. 보컬리스트로서 그런 ‘의도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선 확실히 자기가 쓴 노래가 유리한가요? 제가 만든 노래는 저를 제일 많이 표현할 수 있어요. 멜로디도 중요하고 코드워크도 중요하지만, ‘야생화’는 무엇보다 제가 가장 원하는 걸 했기 때문에 만족스럽죠.

박효신에게 담백함이란 건 어떤 숙제 같은 거였죠. 그걸 담백하게 불러야겠다는 강박보다, 직접 쓴 멜로디나 노랫말의 서사로 떨쳐낸 인상이었어요. ‘야생화’는 내면까지 다 보여줘야 하는 노래예요. 마음으로 느껴야 되는 노래. 멋 부리거나 뭘 더 하려다 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가사도 담담하게 쓰고, 곡도 그렇게 안 부르려고 표현을 다 해놨으니까요.

다음 노래는 또 완전히 다르게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죠. 저희 대표님이 늘 걱정하시는 부분이에요. 넌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아서 아무거나 막 하고 싶어 한다고.

5집은 ‘소몰이 창법’이 가요계를 잠식하자 박효신이 그 흐름을 거스르고 싶어 창법을 바꾼 음반이란 정설 같던 얘기도 그저 풍문인가요? 그러니까요.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전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늘 했던 것밖에 없어요. 데뷔 초반에 거친 음악을 했을 땐 그런 뮤지션들의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발성이 두껍고 뭔가 포효하듯 부르는 목소리.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부드러운 게 좋을 때도 있었고요. 그렇게 음반에 때마다 제 모습을 담는 것뿐이에요. 뭔가 판단해서 ‘이건 별로니까 이걸 해야지’라는 식으로 계획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흔히 말하는 대표작 욕심 같은 건 없나요? ‘동경’, ‘해줄 수 없는 일’, ‘눈의 꽃’은 명백한 박효신의 노래지만, 한 장의 음반이 쉽게 떠오르진 않아요. 어렵네요. 음악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을 안 해요. 계산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장르가 있으면 하고, 그게 많은 사람의 삶의 일부분이었으면 좋겠는 거지, 어떤 음악이나 음반으로 저를 대표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어떤 뮤지션의 몇 집이 명반이야, 같은 얘긴 거의 세대를 거슬러까지 내려오곤 하잖아요. 어떤 한 장의 음반이 명반이란 얘길 들으면 부담이 너무 세지지 않을까요? 거기에 맞춰서 자꾸 뭘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저한테는 앞으로 할 음반이 전부 다 명반인 거예요. 그래야 게으름을 채찍질하면서 새로운 음악에 최선을 다하겠죠. 물론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땐 제 나름의 평가가 있어요. 좋아하는 음반은 더 자주 듣게 되고. 하지만 제가 즐기는 노래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언정, 제가 해야 될 노래들한테는 그런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아요.

노래 하나하나가 소중해서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어떤 노래가 히트했다고 해서 그 노래와 똑같이 다시 하고 싶진 않아요. 예를 들어 ‘눈의 꽃’이 좋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눈의 꽃’ 과 비슷한 걸 또 원하겠죠? 그런데 그런 노랠 다시 어떻게 만들어요? 그 노래는 그 노래인데. 그래서 오히려 외부 작곡가의 곡을 받기보다 제가 점점 더 쓰려고 하는 거예요. 작곡가 분들은 ‘박효신의 어떤 옛날 노래가 좋았으니까 그 스타일로 하면 될 것 같아’라는 맘으로 곡을 주시는데, 당장 제가 원하는 음악이 아니라 음반에 못 실을 때가 많죠.

제일 깨부수고 싶은 편견은 뭐예요? 절 표현할 때 다들 발라드만 얘기하잖아요. 그게 약간 답답해요. 음반에 늘 여러 느낌의 노래를 수록하고, 공연장에선 발라드보다 오히려 비트 있는 노래를 더 신경 써서 편곡하는데.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발라드 황태자의 귀환’, ‘발라드의 시대가 왔다’ 말고.

하필 좀 우울해 보인다는 얘긴 어때요? 오늘은 전혀 그런 사람 같진 않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음악 색도 좀 영향을 미친 것 같고. 그런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어떤 분들은 저를 처음 만나면 “생각하고 너무 다르다”, “차가워 보이는데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충분히 이해해요.

음악에 대한 평가든, 어떤 이미지든 그걸 바꾸기 위해 뭔가 나서서 하는 사람은 아니죠. 그렇죠. 대중 앞에서 뭔가 하려고 의도하는 건 저랑 안 어울려요. 노래든 뮤지컬이든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면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떤 수식으로 불렸으면 해요?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장르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 같은 뮤지션 이런 것도 아니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아름다운 멜로디로 만든 음악은 저를 버틸 수 있게 해주고, 가장 즐거울 수 있게 해주는 딱 하나예요. 대낮에도 막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을 때가 있어요. 제가 많은 사람에게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으면 좋겠어요. 발라드도 아니고 어떤 장르도 아니고, 그냥 ‘그런 노래’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정말 삶에 힘이 되고, 제가 느끼는 걸 사람들이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노래. 황태자, 왕, 레전드, 본좌 같은 말 있잖아요. 감사하지만, 한 번도 그게 나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보다 제가 무대에서 노래하다 관객을 바라봤을 때, 그분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제가 어떤 노래를 사랑스럽게 듣는 표정하고 똑같을 때가 있어요. 눈을 감은 모습, 기쁨이 넘쳐 어쩔 줄 모르는 모습, 가슴에 손을 댄 모습, 많이 우는 모습…. 그런 게 다 제 수식어인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 제 전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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