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드슐라

 

시모 앤 무드슐라의 음반이 나온 지 3년이 지났다. 지금 들으면 어떤가?
사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들었다. “난 힙스터니까 이거 내고 끝”이 아니라, 항상 다음 작업을 생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뭔가 내놓는 거라 그렇다. 너무 기대하면 반응에 실망할 수도 있어서 신경을 끊고 다음 걸 준비하는 게 습관이 됐다.

작은 부분에 신경을 쓸수록, 결과물이 좀 질릴 수도 있을 듯하다. 워낙 반복해서 듣게 되니까. 워낙 많이 만지고, 의미를 담는 과정에서 좀 소진되기도 한다. 즉흥적으로 음악 만드는 친구들이 좀 부럽기도 하다.

작업하며 곡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설계도가 확실한 상태에서 출발하나? 처음부터 확실하지 않으면 아예 안 한다. 작업 과정에서 새롭게 창작하는 부분은 없다. 평상시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곡을 머릿속에 담아 둔다. 작업은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고. 그래서 곡에 힌트도 많이 집어넣는다. 정확한 설계와 의도가 있으니까, 듣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DNA Science’는 제목부터 직접적이다. 원래 추상적인 표현을 잘 안 쓴다. “이건 이 얘기야”라고 딱 하는 편이다. 곡을 듣고 “멜로디가 없어서 어렵다”, “리듬이 어렵다”가 아니라 “추상적이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란 반응은 좀 이해가 안 간다. 오히려 피아노를 막 풀어 치는 게 추상적인 것 아닌가? 들을 때 여러 생각이 드니까.

프로듀서 경연 ‘헤드룸 락커스’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유행만이 영원하다”는 유의 얘기를 했다. 뮤지션들이 새겨뒀으면 하는 말이었다. 제이 딜라 같은 프로듀서의 특정 작법을 두고 ‘타임리스’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어떤 곡이 있다. 거기서 어떤 프로듀서는 드럼을 샘플링하고, 어떤 프로듀서는 브라스를 샘플링할 것이다. 같은 음악에서 나온 소리인데 어디를 따면 클래식이고 어디를 따면 트렌드란 잣대가 이상하단 말이었다. 그리고 ‘타임리스’란 말 자체가 사람을 좀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다. 정답이 없어야지.

꽤 많은 프로듀서가 그런 ‘타임리스’의 관점, 흔히 말하는 ‘골든 에라’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하다. 지금 내가 사는 시대가 제일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만들면 골든 에라지. 유행이라는 것도 빌보드 차트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자기 안에 유행이 있는 거 아닌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옛날엔 말이야”라는 식으로 자꾸 박물관 안에 가두면 안 된다. 좋아하는 정서를 새 언어로 바꿔야지. 매일 유행이라고 생각하는 걸 멈추지 말고 키워나가란 말이었다.

‘DNA Science’와 마크 프리차드, 예전에 작업한 곡들과 플라잉 로터스의 이름이 함께 언급되는 건 어떤가? 크게 상관없다. 마크 프리차드의 색깔이 좀 느껴질 순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비슷하지 않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근접해 보이는 뮤지션을 언급하는 것일 텐데, 조금 추상적인 그림을 보면 피카소 이름부터 꺼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해외에 나가보는 건 어떤가?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은 글쎄. 꿈이 작아진 게 아니다. 어딜 나가서 월드 와이드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방에서 월드 와이드였으면 좋겠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해외를 다녀서 유명해진 게 아니지 않나?

외롭진 않나? 외롭다. 그런데 음악이 좋은 게 뭐냐면, 그런 외로움이 정당화가 된다. 이만큼 외로우니까 그래도 좀 특이한 게 나오는구나, 생각한달까?

그래서일까? 협업을 즐기는 편이다. ‘DNA Science’의 커버는 블랑코브의 원덕현, 뮤직비디오는 비주얼로직의 조아형이 만들었다. 덕현이는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콘셉트 멋있는데 장사는 안 해” 같은 소리도 들었을 거다. 아형이도 마찬가지일 거고.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끼리 뭉치게 된다.

이를테면 외인구단 같은 건가? 좀 그렇지. 그리고 혼자 작업하면서 좀 낙담해 있던 사람들이 “무드슐라 쟤도 재미있게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어”라고 힘을 얻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이 신 안에 진짜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외면당한다. 너무 튀어서 그렇기도 하고, 자기 개념에 빠져 있다 보니 사람들이랑 못 어울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난 그런 진짜들의 위상을 올리고 싶다. 예를 들어 음악이 좋아도 공연을 어리바리하게 하면 멋이 없다. 그래서 이미지나 콘셉트도 신경을 많이 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해야 내가 하는 장르나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멋있게 보일 테니까.

자기 모습에 취해 있거나, 사회적 질서에 무감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난 미친 사람 안 믿는다. 대부분이 미친 척하는 거다. 음악적으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그게 배설이 안 된 사람들이 자꾸 일상생활에서 미친 티를 낸다. 그래놓고 자꾸 핑계를 댄다. “허허. 완벽이 중요한가? 음악은 그냥 하는 거지.” 또 그렇게 살면서 행복하면 되는데, 항상 분노가 쌓여 있다. 부정적이고.

결국 모든 걸 이기는 건 근면일까? 번뜩이는 영감은 강렬한 자국은 남길 수 있지만, 어떤 개념이나 흐름은 못 만든다고 본다. 진짜 미친 거라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가 갈 길은 아니다. 그보단 머리 써서 논리적으로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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