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랑의 8PM

파리 남성복 컬렉션 기간의 마지막 쇼는 늘 생로랑이다. 저녁 8시. 파리의 한여름이라면 전조등을 켜기에 아직 이르고, 겨울이라면 저녁 약속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비주를 하며 장갑을 막 벗는 시간이다. 생로랑의 남성복 쇼는 늘 그때 시작한다. 지난 1월에도 어김없이 같은 시각에 생로랑 2014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이 열렸다. 큰 리본이 달린 실크 셔츠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자, 팬츠 밑위 길이가 끝도 없는 스모킹 수트에 웨스턴 부츠를 신은 남자, 가끔은 서로의 옷을 바꿔 입은 남자와 여자. 그들이 물방개처럼 쇼 장으로 몰려들 때, 이미 쇼 장 안은 낯익은 사람들로 첫 번째 줄이 채워졌다. 그중에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살쾡이 같은 얼굴의 밴드 보컬, 유명한 로커의 철없고 잘생긴 아들과 여자친구도 있었다. 이들은 헤미시 보울을 둘째줄로 밀어낼 정도의 에디 슬리먼의 ‘특급 친구’들이다. 에디 슬리먼이 사랑하는 그 ‘뮤지션’들 말이다. 아무튼 순식간에 불이 꺼지고, LED 사인이 체스판에 놓인 말처럼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며 쇼가 시작됐다. 한 뼘도 안 되는 골반을 가진 모델과 에디 슬리먼이 간판도 없는 퀴퀴한 LA 클럽에서 찾아낸 뮤지션 모델들이 건들건들,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에디의 친구들은 자신의 생로랑과 그들의 룩 혹은 태도를 꼼꼼히 비교하는 눈치였다. 기존의 울 소재는 스코틀랜드에서 생로랑을 위해 만든 트위드로 대체됐고, 생로랑의 슈퍼스타인 가죽 블루종과 스타디움 점퍼에는 송치와 퍼, 스터드가 더해졌다. 여자라도 하나쯤은 갖고 싶은 오버사이즈 트위드 코트는 라글란 소매와 매킨토시로 형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고, 스테이지 웨어라고 불리는 이브닝 라인들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처럼 평소보다 더 반짝였다. 피날레에 잠깐 등장한 에디 슬리먼을 제외한 모든 모델은 부츠 대신 납작한 클리퍼 슈즈를 신고 50년대 테디 보이처럼 런웨이를 활보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던 LED 사인이 조용히 꺼지면서 생로랑의 쇼가 끝났다. 그와 동시에 파리 남성복 컬렉션도 끝났다. 술판을 벌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