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국주론

2014.07.30손기은

어마어마한 덩치로 ‘으리으리’를 외쳐도, 이국주는 예쁘다.

의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의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오늘 카메라 앞에서 많이 안 웃었어요. 이런 건 첨이에요. 남들에게 코믹한 게 저한텐 멀쩡한 거예요. 남들에게 멀쩡한 이게 전 지금 너무 코미디예요.

원래 자신의 모습이 없어진 것 같나요? 네. 근데 그래도 어디 가나요 그게? 저도 여성스러운 면들이 가끔 보이죠. 화장할 때나 요리할 때요.

밤엔 무슨 옷 입고 자요? 뭐 입고 자냐보다는, 저한텐 뭘 먹다 잠들었냐는 질문이 더 자연스러운 건데, 흐흐. 사실 저 잘 때 좀 챙겨 입어요. 원피스를 입든가, 옷의 색깔을 맞추죠. 핑크색에 민트색은 안 어울리잖아요. 핑크색이라면 흰 티셔츠를 입어요.

그거 입고 뭐 먹었어요? 어제 거하게 먹고 잤어요. 정말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김치수제비 해 먹었어요.

이국주란 이름을 몰랐던 건 아닌데, 그동안 ‘이국주’ 하면 떠오르는 개그가 별로 없었죠. 지금의 보성댁과 식탐송 이전까지. “MBC에 그 뚱뚱한 개그우먼 있잖아” 하면 “아-” 이런 느낌이었죠. 요즘 정말 감사한 건 9년이 지나서 지금 순간이 왔다는 거예요. 갑자기 기회가 왔으면 철없이 즐기다가 끝났을 수도 있잖아요.

8년은 고통이었나요? 그렇죠. 활동을 오래했는데 이 ‘급’이 안 올라가는 거예요. <코미디 빅리그>에서 1등도 하는데, 딱 거기까지. “어, 이국주가 여기도 나오네?”라고 말 할 ‘급’이 안 됐어요. 예를 들면, 제가 <강심장>에 나가면 어색하다 이거죠. 초반에 비호감이라고 사람들이 절 꺼릴 때가 지금보다 20킬로그램이나 가벼웠거든요? 뚱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캐릭터로 호감을 주느냐, 사람들 눈에 얼마나 익었느냐가 중요한 거였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런닝맨>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어요. 아아악! 1년 동안 스케줄 없이 <런닝맨> 하나만 해도 행복하겠다 생각할 정도로요.

MBC가 아니라 KBS 공채였으면 어땠을까, 후회해본 적도 있겠죠? 처음 대학로 극단에서 개그 준비할 때, 몇몇 선배들이 저랑 KBS랑 안 맞는다고 했어요. 괴롭힘 같은 건데, 개그우먼도 예쁘고 호감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KBS 말고 다른 데 시험을 보자 생각했죠. 당시 MBC가 시트콤이 강했거든요. MBC로 가면 카메오로라도 시트콤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 그런데 질문이 뭐였지?

KBS였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 제 좌우명이 ‘될 년은 어떻게든 돼, 안 될 년은 뭘 해도 안 돼’예요.

하하. 이제 어떤 프로그램을 나가고 싶어요? 어디든…. MC 바로 옆은 안 되고, 저기 끝에서 재롱 떠는 그런 거 있잖아요. 아! 근데 건강 프로그램은 안 하고 싶어요. 지금도 매니저와 싸우는 이유는 그거 하나예요. 누가 봐도 정상 몸무게와 정상 외모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 가면 안 좋은 데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거봐 쟤, 문제가 있어.” “오래 살려면 살 빼” 같은 댓글이 어마어마할 거란 말이죠.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유쾌했으면 해요. 제가 개그를 쳤을 때, “쟤 살 좀 빼긴 빼야 되는데” 이런 생각하는 게 싫어요.

그런 맥락에서 요즘 주로 ‘연애’를 주제로 개그를 한다는 점이 이국주의 강점 같아요. 뚱뚱하지만 연애 잘한다! 맞아요. 못생기고 뚱뚱하면 항상 ‘모태솔로’ 개그를 했는데, 그러면 관객석에서 ‘어후…’ 그래요. 제가 놀림 당하면 사람들이 ‘쟤는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제가 거기다 개그를 쳐요. “어우~” 그러면 “뭐, 너는 잘났니?”

같은 ‘뚱뚱이’ 캐릭터라도 개그맨과 개그우먼의 생존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르죠, 달라요. 일단 남자는 뚱뚱해도 막 불쌍해 보이진 않아요. 여자는 다이어트하고 예뻐지려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저 같은 캐릭터로 어필했을 때, 관객들이 ‘너도 이쁘고 싶지 않니?’ ‘너도 되게 사랑받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아닌데! <개콘> ‘네 가지’ 코너처럼 김준현 선배가 막 “야, 돼지들은 이래” 얘기하면 사람들이 편하게 웃어주는데 여자가 그러면 부담스러워해요. 그걸 이겨내야죠.

그래서 <코미디 빅리그>에서 선보이는 ‘10년째 연애 중’이나 과거 ‘리얼 연애’ 같은 코너에서 이국주가 더 빛나는 것 같아요. 문규박, 김여운 같은 남자 파트너들도 근사했잖아요? 그런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그중에 제 스타일 한 명도 없어요. 다들 부러워하시는데, 전 사람들한테 그래요. “여운 오빠 매력 겁나 없어” 흐흐흐. 요즘 인터뷰할 때 여운 오빠와 극 중에서 뽀뽀하면 설레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왜 저한테 그걸 물어보죠? 그 오빠가 더 설렐 수 있잖아요.

뭐가 바뀐 거예요? 요즘 하는 것마다 터지잖아요. 마인드가 바뀌었어요. 작년 말에 700일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만든 캐릭터가 ‘수상한 가정부’의 보성댁이에요. ‘으리으리!’를 외치고 바지도 촌스럽게 입고 수염도 그리고…. 그동안 분장하는 걸 쑥스러워했었요.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이별하고 나선 완전 될 대로 되라…. ‘10년째 연애 중’에선 시간이 흘러 못생겨진 여자친구 역할인데도 제가 ‘식탐송’을 부르면 사람들이 “어! 귀여워”, “겁나 웃겨” 하잖아요. 이래야 내가 더 멋있어 보인다는 걸 사실 9년 만에 깨달았어요.

확실히 무대에서 흡입력이 생기고 전달력이 좋아진 것 같아요. 대사가 장황했던 ‘불만고발’, ‘돼지공화국’, ‘리얼 연애’에 비해, 짧게 끊어 치는 개그의 임팩트도 커졌고요. 제 경험을 녹인 긴 대사를 많이 했어요. “놀이공원 갈 때 송곳 들고 간다? 피 안 통하는 입장 팔찌에 구멍 새로 뚫으려고!” 이런 거 진짜 제 얘기잖아요. 그때 말이 좀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지금의 툭툭 내 뱉는 연기도 더 좋아진 것 같고요. 그리고 당시 라디오 게스트로 연애상담, 결혼상담을 많이 하면서 말문이 트였죠. 감독님도 어느 순간 ‘얘봐라, 말 좀 하네’ 하면서 기회가 더 많아졌고요. 지금의 ‘으리으리’도 좋지만, 솔직히 잠깐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말로 길게 풀어내는 게 더 좋아요. 보성댁 다음에 어떤 비주얼로 승부해야 할지 부담이 있는데, 말로 하는 개그를 다시 하고 싶어요.

지금 김보성의 CF 활약은 이국주의 보성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하기 싫다고요? 네. 너무 싫어요. 주변에서 “김보성 아저씨가 뭐 해줬어요”라고 자꾸 물어요. 근데 뭐 해주실 필요도 없고 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분이 몇십 년을 해온 캐릭턴데, 제가 그거를 끄집어낸 것뿐인데…. 어떻게 보면 저도 덕 본 거잖아요. 농담삼아 “저 식혜 안 먹어요”라는 멘트를 어디서 했는데, ‘이국주, 절대 식혜 안 먹어’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와요.

보성댁과 김보성 이슈는 SNS가 개그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요즘은 <개콘> 출신이 아니라도 SNS로 뜰 수 있죠. 정말 그래요. 세월호 여파로 <코미디 빅리그>가 4주를 쉬었는데, 그 사이 보성댁이 뜨고, 김보성 아저씨 CF가 뜨고, 그때 누가 저의 식탐송을 모아서 페이스북에 올린 게 ‘좋아요’가 8만이 넘었어요. 4주 후에 녹화를 다시 들어갔는데, 제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관객들 소리가, 소리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요즘 술자리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뭐예요? (정)주리 언니와 (안)영미 언니랑 자주 마시는데, “네가 잘돼서 좋다”예요. “뭐가 맞을지 모르고 어디서 걸릴지 모르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도 해주니 고맙죠.

그들이 위기를 느껴야 하는 거 아니예요? 경쟁해야 하는 거 아녜요? 하하. 셋 다 다른 캐릭터잖아요, ‘드럽고’ 야한 걸로 웃기는 애, 못생긴 걸로 웃기는 애, 뚱뚱한 걸로 웃기는 애…. 사실 당연히 선배들의 자리를 너무 뺏고 싶죠. 김신영 언니나, 이영자 선배님 자리로 가고 싶죠. 그런데 그분들은 다 저에겐 신 같은 존재들이에요. 닮고 싶은 거예요. 다행인 건 신영 언니가 살을 빼서…. 캐릭터가 안 겹치니까. 흐흐.

연애에 능수능란한 캐릭터로 나가면 어때요? 연애 밑천은 두둑해요? 그래서 요즘 많이 찾고 있어요. 한 달 뒤에 소개팅 하나 약속돼 있고…. 한 살 연하래요.

남자들은 이국주의 어디를 좋아해요? 겉모습이랑 진짜 모습이 다른 거? 그래서 여우 같아 보이지 않고 작업할 거 다 하고, 꼬리칠 거 다 칠 수 있어요. 요즘 친한 아이돌이 많은데, 그 팬들이 절대 걱정을 안 해요. 제가 “야, 니들이 뺏겨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래요.

하하. 오늘 사진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지큐> 남자 독자 분들이 보고 좋아하셔야 할 텐데…. 오늘 누드는 안 찍나요? 저 요즘 완전 한창인데!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전힘찬(CHUN, HIM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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