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에 지은 집

맨해튼 미드타운에 초고층 주거용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9천5백만 달러(약 9백68억원)에 팔린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96층은 서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주거지가 될 것이다. 센트럴 파크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가운데, 이 건물들의 건축과 설계와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따져봤다.

57번가에 우뚝 선 One57을 비롯한 초고층 건물들과 그 그림자를 찍은 항공사진이다. One57에 비하면 다른 건물들은 아주 작아 보인다
57번가에 우뚝 선 One57을 비롯한 초고층 건물들과 그 그림자를 찍은 항공사진이다. One57에 비하면 다른 건물들은 아주 작아 보인다

너무 비싸다, 말랐다는 말은 여자에게만 적용됐다. 그러나 요즘은 초고층 빌딩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뉴욕의 주거용 건물에 대해서라면 더 그렇다. 예전 건물들에 비해 훨씬 높고, 가느다랗고, 비싸다. 기존 건물은 새 건물의 완전히 새로운 형태와 가격에 밀려나고 있다. 두툼한 상자 같은 아파트 건물의 시대가 끝나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보인다. 뉴욕의 부자들이 집을 짓는 최신 방법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연필만큼 가느다랗고, 쳐다보면 목이 뻐근할 만큼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 최근 건축중인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은 96층짜리 콘트리트 타워다. 56번가와 파크 애비뉴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완성되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46미터가 더 높다. 새 1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사람이 상주하는 최고층보다 더 높은 곳에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225 웨스트 57번가에는 그보다 더 높은 초호화 빌딩이 내년에 건설될 예정이다. 뉴욕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건물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라는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지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건물들은 미드타운과 로어 맨해튼의 거리를 바꿔놓고 있다. 스카이라인으로 따져보자면 더욱 그렇다. 트라이베카에도 초고층 주거건물이 두어 채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미드타운이다. 현재 53번가와 60번가 사이에 이미 공사를 시작했거나 계획 중인 주거용 빌딩이 벌써 일곱 채다. 그중 무려 네 채가 57번가에 몰려 있다. 57번가는 쇼핑의 거리로 유명했지만 점점 더 높은 벽에 둘러싸인 협곡처럼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소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다른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란 소문이 속속 나오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웨스트 57번가의 멋진 서점 리졸리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말도 있다.

가공의 세계

해일처럼 몰려드는 이 건물에 그나마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다들 날씬하다는 점이다. 멀리서 보면 박스보다는 바늘에 가까운 모양이다. 덩치 크고 위가 평평한 건물들로 가득했던 미드타운과 로어 맨해튼의 전통적인 스카이라인이 깨지고 있다는 점은 일견 긍정적이라 볼 수도 있다. 새로 들어서는 건물들이 맨해튼을 세련된 유리 건물이 빼곡한 산 지미냐노(아름다운 탑들의 도시)로 탈바꿈시켜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삐죽삐죽 흥미로운 스카이라인이 형성되긴 할 것이다. 건물 그림자도 가늘다.

건물 그림자에는 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새 건물은 전부 센트럴 파크에서 가깝기 때문에 그림자가 미치는 영향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공원 남쪽 부분에 지금보다 더 많은 그림자가 생길 것이란 사실은 확실하다. 새 건물들의 형태가 아주 가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센트럴 파크 남쪽 부분엔 언젠가 줄무늬가 생길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건물들이 드리울지도 모를 더 어두운 그림자는 사회적, 경제적 그림자다. 누군가 소득 불균형의 상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면 바로 57번가를 찾으면 된다. 사실 57번가의 새 건물들은 뉴욕의 집값 기준으로도 무척이나 비싸다. 세계적인 부호들을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중동, 중국, 남미에 살면서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가듯 런던, 상하이, 상파울루, 모스크바를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살게 될 곳이다. 이런 사람들은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된 이후로 언제나 있어 왔지만, 건설업자들이 이런 부호들을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 십 년 안에 시작된 일이다. 2004년 콜롬버스 서클에 생긴 타임 워너 센터는 그 시발점에 가깝다. 새로운 글로벌 주거 시장을 겨낭해, 경치가 끝내주고 엄청나게 비싼 주거용 건물을 시험 삼아 지어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런던의 원 하이드 파크, 홍콩의 컬리넌과 오퍼스도 비슷한 예다. 뉴욕이 범지구적인 도시라는 걸 생각해보면, 57번가는 다른 도시들이 부자들을 상대하는 방식과 똑같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미드타운을 홍콩이나 상하이처럼 보이게 한다는 대가가 따르겠지만…. 이제 57번가는 뉴욕 거주자들을 위한 거리가 아닌, 전 세계 1퍼센트 중에서도 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분이 내킬 때 오는 곳이 되는 것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그런 높고 가느다란 빌딩이야말로 오랜 뉴욕의 전통이다. 1902년에 완공되어 아직도 뉴욕의 상징 중 하나로 남아 있는 플랫아이언 빌딩, 이제는 없어진 싱거 빌딩(1908), 메트로폴리탄 라이프 타워(1909), 울워스 빌딩(1913) 등이 그 예다. 그 시절엔 마천루가 지금처럼 뚱뚱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창문 가까이서 생활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형광등 조명, 에어컨, 밀폐된 창문, 크고 널찍한 사무실을 선호하는 경향은 나중에 일어난 변화다.

지금 뉴욕의 높은 주거용 건물로 창출되는 돈의 액수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무용 건물에 비해 주거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훨씬 적어도 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전망이 좋은 집에 사는 데에 아낌없이 큰돈을 지출한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특히 센트럴 파크가 보이는 집, 한 층을 통째로 차지할 수 있는 구조의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센트럴 파크가 보이면서 한 층 또는 한 층의 절반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집이 가장 인기다. 그런 수요를 감안하면, 가느다랗고 높은 건물이 센트럴 파크 근처에 들어서는 일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아주 가늘고 높은 초고층 타워가 새로운 형태의 마천루입니다.” 로어 맨해튼의 스카이스크레이퍼 뮤지엄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캐롤 윌리스가 말했다.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디자인한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은 건설업자 해리 맥크로우와 CIM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데, 104개의 집이 각각 한 층 전체 혹은 절반을 차지한다. 가장 높은 층인 96층엔 딱 한 집만 산다. 그 집은 서구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공간이다. 적어도 225 웨스트 57번가의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그렇다.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펜트하우스는 이미 9천5백만 달러(약 9백68억원)에 팔렸다. 누가 그 집을 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제곱미터당 11만5천 달러(약 1억 2천만원) 정도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이 건물의 평균 호가는 1제곱미터당 7만 달러(약 7천1백만원) 정도였다. 작년 초호화 아파트 평균가의 거의 세 배다.

이만한 돈을 쓰는 대가로 432 파크 애비뉴 건물 입주자들은 크라이슬러 빌딩과 미드타운의 거의 모든 정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심지어 157 웨스트 57번가에 들어선 푸른 유리의 90층짜리 건물, One57에 사는 이웃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One57은 올해 말 완공 예정이지만 이미 입주한 사람들도 일부 있다. One57은 뉴욕에 들어선 최초의 초고층, 초고가 건물이다. 크라이슬러 빌딩보다 겨우 13미터 낮은 이 306미터 높이의 건물은 곧 뉴욕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건물이란 지위를 다른 건물에 내놓아야 한다. 고작 몇 달 동안 그렇게 불릴 뿐이다. 다음 차례는 내년에 완공될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이다.

One57은 건물 내에서 가장 큰 집을 9천만 달러(약 9백17억원)에 팔아치워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구매자는 금융가 빌 애크먼이 이끄는 투자 그룹이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했을 때, 크레인이 부서져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도 꽤 주목을 받았다. 당시 주변 7개 블록 내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건설업자인 엑스텔의 개리 바넷은 10년 동안 One57의 공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2005년,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기 전부터 뉴욕의 주거용 건물 시장은 디자인에 매우 예민해지고 있었다. 리처드 마이어, 자크 헤르조그, 피에르 드 뮤론, 프랭크 게리, 장 누벨, 로버트 A. M. 스턴 같은 유명 건축가들의 이름이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했다. 집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판국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일군의 여자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에 3천, 4천 달러(약 3백, 4백만원)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드 포르장파르크가 뉴욕에서 디자인한 첫 번째 건물은 57번가의 LVMH 타워였다. 조각된 유리를 이용한 디자인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One57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원래 구상한 One57은 중간중간 파인 곳이 있고, 곡선 천장을 얹은 날씬한 유리 건물이었다. 전체적인 모습으로는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뉴욕의 지옥 같은 건설 절차를 거치고 나자, 폭포 같은 느낌은 거의 남지 않았다. 완성작은 다양한 빛깔의 푸른색과 은색 유리로 된 밋밋한 건물이었다. 한 쪽엔 줄무늬, 한쪽엔 작은 반점도 남아 있었다. One57은 여전히 날씬하고 높긴 했지만, 요란한 색깔 때문에 전혀 낯선 건물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내부는 고급스러운 인상이었다.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예일에 있는 고딕 스타일의 하크네스 타워를 보고 했다는 말처럼, 건물의 내부에선 건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센트럴 파크와 맨해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건설업자인 개리 바넷은 올 초 유난히 춥고 공기가 맑던 날, 나를 One57 꼭대기 층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30~40층짜리 건물에서 내려다본 센트럴 파크의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90층에 서면 땅을 쳐다보는 동시에 하늘에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 도시는 지도처럼 쭉 뻗어 있었다. 훌쩍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은 과연 이것을 그저 집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됐다. 전망은 양쪽으로 모두 트여 있어 북쪽으로는 타판 지 다리, 남쪽으로는 새 1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였다.

도시의 큰손들

2008년, 드 포르장파르크가 One57을 위한 첫 번째 계획을 세웠을 때 뉴욕은 불황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얼어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기질로 도박사적인 본능을 숨기는 전직 다이아몬드 딜러 바넷은 부동산 시장이 다시 살아날 거라고 확신했다. 당시 같은 상황이라면 시장이 다시 활발해지는 순간, 다른 건설업자들에겐 팔 수 있는 건물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바넷은 경기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을 때 건설에 착공한다면, 한발 앞서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새로운 물결이 몰아칠 때, 새로운 초호화 주거용 건물을 보유한 유일한 건설업자가 되는 것이다. “일단 땅에 구멍을 뚫었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바넷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판단은 보편적인 현상에 반하는 것이었다. 부동산은 경기 상승을 이끌기보다 경기 상승을 뒤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최고의 아파트들이 팔리지 않고 있는데, 그 아파트보다 더 비싼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는 건 미친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넷은 자신이 일반적인 경제 흐름을 따르는 전통적 구매자들을 위한 주거용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런던에 말도 안 된게 비싼 원 하이드 파크 타워를 세운 닉과 크리스찬 캔디 형제, 경기 침체 직전에 15 센트럴 파크 건물을 만든 아서와 윌리엄 라이 제켄도르프 형제처럼 말이다. 바넷은 건물에 실제로 살 사람들을 위해 아파트를 짓는다는 착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One57은 투자 상품이 될 것이고, 돈 많은 소유주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세운 유한 책임 회사들, 기껏해야 1년에 몇 주 정도를 거기서 보낼 전 세계의 부호들이 그의 고객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쯤 One57의 놀라운 전망을 보며 눈을 뜨고, 통근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면 어떨까 생각하는 커플이나 가족도 있겠지만, 그곳을 실제 거주지로 원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근까지도 뉴욕의 고급 주거용 건물이란 5번가, 파크 애비뉴, 센트럴 파크 웨스트의 점잖은 조합원 아파트를 뜻했다. 1040 5번 애비뉴 같은 곳에 있는, 역사가 짧고 귀족적 면모도 없는 새 건물이 어떻게 그것보다 비쌀 수가 있을까? 조합원 아파트는 묘한 존재다. 건물 내의 집을 산다기보다 건물을 소유한 거주자 조합의 한 몫을 공유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누구나 인터뷰, 재무 공표,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유한 책임 회사의 이름으로 아파트를 사서 본인의 신분을 숨길 수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초고층 건물들은 집보다 상품에 가깝다.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대상이다. 현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고, 프라이버시도 완벽히 유지된다. 뉴욕의 부동산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요즘 뉴욕 부동산 시장은 더욱 뜨겁다. 초호화 초고층 건물 내의 집값이 뉴요커들에겐 비이성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홍콩이나 런던보다는 확실히 싸다. 홍콩과 런던에선 심지어 2억 2천1백만 달러(약 2천2백50억원)에 거래되는 집도 있다. 부동산 감정 회사 밀러 사무엘의 조나단 J. 밀러가 뉴욕의 새 건물들을 두고 “자신의 귀중품들을 전부 넣어두되, 썩 찾아갈 일이 없는 은행 금고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넷의 재무 파트너들은 “이 집들은 경기의 부침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살테니,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시작할 이유가 없다”는 바넷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세상이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자신감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는 2010년, One57의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상품으로서의 집이 아닌, 사람들이 실제로 일하거나 살기 위한 건물을 짓는 부동산 업계는 아직 수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드 포르장파르크는 빠듯한 경제 상황 때문에 마지못해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옆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디자인 변경은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One57의 최초 가격은 1제곱미터당 5만8천8백90달러(약 6천만원)였는데, 워낙 빨리 팔려서 엑스텔은 건물을 짓는 동안 가격을 몇 번이나 올렸다.

바넷이 건물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은 것은 유명하다. 그들은 공사 중에 건물 안에 들어가볼 수 없었다. 단지 계획만 들을 수 있었다. One57과 두 블록쯤 떨어진 사무실에 엑스텔이 마련해둔 세일즈 센터에서 실제 크기 부엌과 화장실을 구경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선 One57이 보였다. 세일즈 센터의 사무실은 One57에 사용한 것과 같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센터는 가격을 두고 입씨름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아했다. 일단 센터를 방문한 사람들은 45초짜리 영상을 관람했다. 흐르는 물이 서서히 건물 모양을 취하는 영상으로, 포르장파르크의 디자인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잠재적 구매 고객은 1.8미터짜리 건물 모형이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만약 진지하게 더 살펴보고 싶으면, 다른 공간에서 주방과 화장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먼저 영상으로 흥미를 자극한 뒤, 하나하나 실제와 가까운 공간을 체험시킨다는 설정이었다.

여기에 넘어가 구매를 결정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어느 중국 여성은 두 살짜리 딸에게 비교적 저렴한 6백50만 달러(약 66억원)짜리 아파트를 사줬다. 마이클 코어스와 타미 힐피거의 경제적 성공의 배후에 있던 홍콩 출신 투자자와 몬트리올 출신 투자자는 각각 5천만 달러(약 5백9억원) 정도를 써서 한 층 전체를 차지하는 집을 한 채씩 구입했다. 빌 애크먼은 투자자들의 컨소시엄을 만들어 거대한 침실 6개짜리 복층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곳이 바로 건물에서 제일 높은 공간에 유리로 둘러싸 만든 ‘윈터 가든’이 있는 75층과 76층의 집이다. 그들은 9천만 달러(약 9백17억원)를 쓰긴 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가격이 몇 배 이상 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넷이 One57으로 성공을 거두자 다른 건설업자들도 바넷의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바넷 역시 이후엔 더 대담해졌다. 딱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비슷한 건물을 하나 더 짓기로 결심한 것이다. 주소는 225 웨스트 57번가. 건물 아래층은 노드스트롬 백화점과 입점 계약을 맺었다.(One57의 저층부에는 파크 하얏트 호텔이 들어올 예정이다.) 시카고의 건축가 애드리언 스미스와 고든 길이 디자인하고 있는 노드스트롬 타워 역시 유리로 만들 예정이지만, One57보다 좀 더 각진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뉴욕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건설사 중 하나인 보네이도의 스티븐 로스 또한 초고층 건물 건설에 뛰어들었다. 그는 15 센트럴 파크 웨스트 건물을 디자인한 전통 건축의 사도 로버트 A. M. 스턴스를 고용해 바넷의 노드스트롬 타워 바로 북쪽의 220 센트럴 파크 사우스에 초고층 건물을 짓기로 했다. 보네이도 타워의 초기 디자인을 보면 자신들의 센트럴 파크 웨스트 건물보다 더 가늘고 길다. 옛날 스타일을 모방하면서도 굉장히 현대적인 외형이 돋보이도록 한 것이다.

보네이도와 엑스텔의 새로운 초고층 건물은 서로 상대의 계획을 취소시킬 뻔했다. 바넷은 2005년부터 자신이 건물을 세울 부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로스가 미리 점찍어둔 220 센트럴 파크 사우스의 낡은 임대아파트를 매입한 해였다. 그런데 바넷은 로스가 그 자리에 고층 건물을 세우면 바로 남쪽의 자기 건물에선 센트럴 파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넷은 로스 몰래 보네이도가 산 건물의 차고와 건설 현장 한가운데의 작은 땅 한 구획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영역을 쥐고 7년 동안 버티며 로스가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마치고 건물 철거 준비까지 끝낸 뒤에도 새 건물을 위한 공사를 못하게 만들었다. 로스는 바넷을 고소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난가을에야 결국 두 사람은 합의에 이르렀다. 보네이도가 엑스텔에게 1억 9천4백만 달러(약 1천9백76억원)를 지불하고 바넷이 사둔 차고와 작은 땅을 산 것이다. 그리고 새로 지을 건물을 센트럴 파크 사우스 현장의 서쪽 끝으로 옮기기로 했다. 대신 바넷은 자신이 세울 건물을 동쪽으로 살짝 밀어 보네이도 타워에서도 센트럴 파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 했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바넷의 새 건물이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예술 학생 리그 건물과 딱 붙어 서게 된 것이다. 예술 학생 리그는 다코타 호텔과 플라자 호텔을 디자인한 헨리 J. 하든버그가 1892년에 만든 건물이다. 그럴 경우 뉴욕시 랜드마크 보존 위원회는 새 건물에 대한 디자인 심사 권한을 갖게 된다. 그리고 보존 위원회는 예술 학생 리그 바로 옆에 4백34미터짜리 건축물이 있어도 랜드마크를 해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이 모든 주거 건물들이 완공되고 나면, 맨해튼 미드타운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이 모든 주거 건물들이 완공되고 나면, 맨해튼 미드타운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체면 차리기

One57은 새로운 형태의 초고층 건물 중 최초였기 때문에 유명세를 꺼리는 축에 속했던 건설업자 바넷은 초고층 건물을 변호하는 편의 중심에 서야만 했다. 지난 2월에 열린 공공 포럼 패널 중 건설업자는 바넷 한 명뿐이었다. 그는 4백25명이 모인 사자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초고층 건물을 보며 격분하고 경악하는 사람들이었다. <뉴욕 옵저버>를 통해선 “One57이 앞으로 20년간 부동산, 호텔 수익, 기타 세금 등으로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을 창출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호화 초고층 건물은 결국 건물보다 그 안의 돈이 핵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One57과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은 적어도 인테리어엔 꽤 공을 들였다. 천장이 엄청나게 높고, 넓은 방은 끝내주는 전망에 잘 어울린다. 1제곱미터당 8만 달러(약 8천1백만원) 이상의 가격을 받으면서 좁은 방에 싸구려 마감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긴 한 모양이다. 바넷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4천만, 5천만 달러(약 4백7억, 5백9억원) 값어치를 하는 집을 파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좁은 방에 끼어서 지내는 걸 싫어하거든요.” 두 건물 모두 건설사에서 지었다기보다 특별 주문 인테리어에 가까운 우아한 화장실을 자랑한다. 주방도 으리으리하다. 뉴욕에선 주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을수록 요리를 더 적게 한다는 가설이 여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One57의 외관이 좀 유난스럽긴 하지만, 난 가느다란 초고층 건물 전부를 진지한 건축물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비뇰리가 디자인한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은 One57이 요란한 만큼이나 고상하다. 평평한 옆면은 매끈한 콘크리트를 써 부드럽게 마감했다. 콘크리트를 대리석보다 더 감각적이고 고급스럽게 사용하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떠오른다. 아무리 마감을 잘해도 콘크리트는 콘크리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건설업자 해리 맥크로우가 돈 많은 사람들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줄 만하다. 맥크로우가 실제 살고 있는 건물은 건축가 찰스 과스메이가 디자인했다. 과스메이는 맥크로우의 취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맥크로우가 이윤을 위해 건물을 짓는 건설업자라기보다 건축가처럼 ‘디테일’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다.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은 사소한 부분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맥크로우는 돈을 아낌없이 쓰는 대신, 나중에 엄청난 값을 받고 아파트를 팔아 메우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래서 87층을 통째로 쓰는 집에는 7천4백50만 달러(약 7백59억원), 64층의 침실 세 개짜리 집엔 3천75만 달러(약 3백13억원)의 가격을 매겼다.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디자인은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에 도전하고 있다.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이고, 어디 한 곳 휜 데 없이 꼭대기까지 쭉 올라간다. 사면의 벽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그 벽에 1제곱미터 정도 크기의 창문들이 바둑판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 만약 창문 유리가 없었다면, 이 건물은 조각가 솔 르윗이 1980년대에 만든 탑 조각 같아 보였을 것이다.

맥크로우는 절제와 풍요로움을 동시에 팔아치우고 싶어 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One57보다도 더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단 제너럴 모터스 빌딩에 커다란 세일즈 센터를 만들었다. One57의 세일즈 센터와 마찬가지로, 432 파크 애비뉴의 마감재, 주방, 화장실을 재현해놓았다. 실내 디자인은 비뇰리가 아니라 건축가 데보라 버크가 했다. 양장본 책, 432 파크 애비뉴를 위한 특별 잡지, 완성된 집의 모습과 실내 다섯 군데에서 촬영한 전망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영어, 러시아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도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디자인 에이전시 디박스가 만든 영상이다. 영국의 컨트리 하우스, 개인용 제트기 등 호사로운 이미지들이 하나로 합쳐져 432 파크 애비뉴가 된다는 내용이다. 영상에선 마마 카스가 부르는 ‘Dream a Little Dream of Me’가 흐른다. 금욕주의가 이렇게 세련되게, 어쩌면 방탕하게까지 느껴진 적은 없었다.

옛 드레이크 호텔 자리에 들어설 432 파크 애비뉴 타워가 주위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인상이라면(사실 좀 그렇긴 하지만), 그런 문제가 역사적으로 처음이 아니었다는 걸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변에서라면.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대각선 방면엔 세계 최초의 초고층 주거용 건물 중 하나인 리츠 타워가 있다. 1925년 에머리 로스와 카레르 & 헤이스팅스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41층 구조로 높이는 165미터다. 지금 426미터라는 432 파크 애비뉴 건물의 높이가 어처구니없게 높다는 생각이 들듯, 1920년대에 165미터 높이의 빌딩은 압도적이었다. 작가 아인 랜드가 <파운틴헤드>에 경멸조로 쓴 “고무로 르네상스식 궁전을 만들어 40층 높이까지 잡아 늘린”이라는 표현은 분명 당시의 리츠 타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57번가 근처에 들어설 두 곳의 새 건물들 또한 432 파크 애비뉴처럼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뉴욕 현대 미술관 옆의 53 웨스트 53번가 건물은 몇 년 전 장 누벨이 하인스 건설사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했지만, 2009년 이후에는 작업이 연기되고 있다. 사실 53 웨스트 53가 건물은 대로변이 아닌 곳에 들어설 건물 중 가장 높으며, 뉴욕 현대 미술관이 저층부로 확장이전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01년에 지은 아메리칸 포크 아트 미술관의 멋진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해 악명을 얻었다.

승승장구

건설사 SHoP이 디자인한 111 웨스트 57번가 건물 또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완공 이후 뉴욕의 초고층 건물 중에서도 가장 날씬한 건물이다. 가장 우아한 건물이 될 가능성도 높다. 높이는 426미터인데 폭은 18미터밖에 안 되며, 프로퍼티 마켓츠 그룹의 케빈 말로니와 JDS 개발 그룹의 마이크 스턴이 합작해 지을 예정이다. 스턴은 최근 뉴욕의 호화 부동산 시장에 진출했다. 웨스트 18번가의 낡은 아르데코 양식의 전화교환 건물을 세련된 워커 타워로 바꾸며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스턴은 뉴욕 건축 역사에 푹 빠져 있다.(워커 타워란 이름은 전화교환 건물을 디자인한 18세기 건축가 랄프 워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뉴욕 건축의 역사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스턴은 111 웨스트 57번가 건물의 북쪽과 남쪽 벽은 유리로, 동쪽과 서쪽 벽은 동과 테라코타로 덮을 예정이다. 이 건물 또한 뉴욕의 랜드마크 옆에 들어선다. 석회석으로 덮인 사무실 건물로, 1층엔 멋진 피아노 쇼룸 스타인웨이 홀이 있다. SHoP의 디자인 파트너인 그렉 파스콰렐리와 비샨 차크라바티는 111 웨스트 57번가 건물을 다른 도시가 아닌 꼭 뉴욕에만 어울리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뉴욕의 DNA를 가진 건물이요. 상하이나 홍콩의 스카이라인에서 뽑아온 것 같지 않은 모양으로요.” 파스콰렐리가 말했다.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는 북쪽 벽은 곧게 세우고, 남쪽 벽은 건물의 상층부일수록 조금씩 뒤로 기울일 예정이다. 결국 꼭대기엔 공간이 없고, 뾰족한 유리벽만 남는다. 과거 뉴욕의 ‘웨딩 케이크’라 불리는 형태의 마천루에 대한 섬세하고 현대적인 재해석이다. 거기다 뉴욕 건축의 고전적 소재인 테라코타를 가미하고, 지금의 기술을 마음껏 활용해 이 모든 요소들을 조합할 것이다. 디자인 계획에 따르면, 건물은 서서히 상승하다 마치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새로 들어서는 뉴욕의 초고층 건물들은, 드높은 40층에 산다는 게 뻔뻔한 일로 여겨지던 1920년대에 리츠타워가 맨해튼 스카이라인에 끼친 충격을 재현한다. 도시 풍경을 바꾸는 만큼, 건물에 살게 될 몇 안 되는 부호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리츠 타워가 생기고 몇 년 뒤, 더 높은 월도르프 타워가 들어섰다. 작곡가 콜 포터는 거기서 꽤 오래 살았다. 그가 쓴 “깊고 깊은 90층에서”라는 가사엔 어떤 고민이 담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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