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의 비트 제네레이션

비트는 곡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리듬 패턴을 얘기하기도 하고, 그저 드럼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2014년 현재, 나름의 장르로서도 유효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선율의 흐름보다 비트의 구조가 궁금한 여섯 명의 음악가를 당장 만났다.

신세하

“사진 찍을 때 80년대 포즈 같은 거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쟤 뭐 하는 거야? 그럴 때도 있어요.” 70년대 말 콜드웨이브 계열의 음악을 멋지다 말하고, 플랙스플로테이션 영화의 주인공같이 구레나룻을 다듬은 신세하는 올해 스물둘. “좋아하는 것들을 습득해서 이런 걸 만들었어, 란 포인트에서 자부심을 갖는 거예요.” 그의 음악은 그가 받은 영향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제가 안 살아본 시대잖아요. 거리감에서 오는 호기심.” 대부분의 곡을 쓴 김아일의 <boylife in=”” 12″=”” style=”line-height: 1.6;”>에서 신세하의 호기심은 80년대 어디쯤에 맞닿아 있는 듯하다. 잔뜩 증폭된 신시사이저 소리, 먹먹한 공간감. 말쑥한 뉴로맨틱스 밴드와 짓궂은 네이티브 텅 힙합 패거리가 번갈아 떠오른다. 거기서 김아일과 신세하는 음악에 얽힌 것이라면 모조리 흡수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옷차림은 물론이고 그 시절 멋쟁이들의 행동양식까지. 한편 신세하는 옷 잘 입는 남자애들이 그렇듯, 음악에서도 도드라진 포인트를 드러낸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베이스 라인이나 신시사이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거 재밌어요. 한 개가 나오면 하나가 빠지고.” 모든 걸 조화롭게 꾸민다기보다 좋아하는 걸 내세우겠다는 마음. 그건 일보단 놀이에서 나오는 태도일 것이다. “그냥 노는 거죠. 구글링 하고 유튜브 보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놀 땐 친구들이 있기 마련. 얼마 전 데뷔 EP를 낸 배드 조이스카웃은 요즘 그의 든든한 친구들이다. 신세하는 곡도 쓰고, 첫 싱글 ‘Birthday’엔 내친 김에 피처링도 했다. “레드 기운이 많은 분홍색? 레드는 정열적이고 섹시하잖아요. 제 음악은 새빨간 건 아니고 한발 물러난 부드러운 느낌인 것 같아요.” 얼굴에 드리운 자홍빛은 이 말을 듣기 전에 골라뒀다.

 

오대리

샘플러를 쓴다는 것은 모든 소리를 비트Beat화 한다는 의미와 같다. 비트Bit화라 말할 수도 있다. 비트Beat 하면 가장 먼저 힙합이 생각나지만, 오대리의 음악을 힙합이라 보긴 어렵다. 형태적으로라면. 하지만 작법의 측면이라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소리를 채집한 뒤 그것을 자르고 붙여 곡을 완성시키니까. 지난해 낸 <국풍’13>은 대부분 샘플러 기능이 막강한 MPC로 만들었다. <국풍’13>이 듣자마자 기분이 개운해지는 음반은 아니다. 사방으로 튀는 기계적 소리, 뉴스에서 발췌한 듯한 비장한 목소리, 기존의 노래에서 따온 소리의 파편들이 곳곳에서 섞이고 부딪친다. 그렇게 오대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탐닉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MPC에 64개의 샘플을 넣을 수 있는데, 일단 LP나 다른 기계에서 받은 샘플로 다 채워요. 그래서 그 안에서 해결을 보려고 해요.” 스스로를 64개의 짧은 소리에 가두고 그 안에서 기필코 매듭을 지으려는 의지는, 탐닉을 확고한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고자 하는 연구자적 자세일 것이다. 한편 짧은 소리라도 꼬리는 꽤 긴 편. 오대리는 샘플을 깔끔하게 자르기보다, 미세하게 따라붙는 노이즈까지 보존한다. “노이즈가 쌓이면서 특유의 그루브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까진 아니지만, 그런 작법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요.” 타악기든, 타자 소리든 모든 소리엔 높낮이가 있고, 그것을 이으면 결국 멜로디가 된다는 새삼 단순한 진리. “따뜻한 소리를 좋아해요. 디지털 회로와 기계의 굉음은 달라요. 저는 기계를 쓰잖아요. 요란하지만, 두세 시간씩 들어도 별로 안 피곤해요.” 거친 소리는 차갑다는 것 또한 편견일 터. 큰 소리로 <국풍’13>을 다시 듣는다.

 

그레이

익숙한 전자음악 같은데, 구체적인 이름은 잘 떠오르질 않는다. 다시 집중해보면 생경한 소리가 들린다. 발광하는 신호등 같은 신시사이저, 모래처럼 쓸고 가는 베이스. 국내 여행이 그렇지 않나? 이미 본 곳 같지만 머물다 보면 외국보다 더 타지 같은 기분. 그런 노래를 만드는 그레이는 군산에서 왔다. “군산이란 이미지로 사람들이 절 좋아해요. 떠나더라도 뭔가 만들어놓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거기서 만든 EP는 또렷하다. 개별적인 소리를 짓뭉개거나, 과장하기보단 담백하게 가공한 쪽이다. “본 걸 정확히 표현하려고 했어요. 새벽바람이 불면 그 감상을 음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리버브를 엄청 걸면 사람들이 못 느낄 것 같았거든요. 힌트를 많이 준 거죠.” 그런가 하면 싱어송라이터 후쿠시 오요와의 프로젝트 75A의 음악은 손에 잡히기보다 흐릿하다. 몽환적이라 말할 수도 있다. 의 또렷한 군산 풍경이든 75A의 야릇한 분위기든,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른바 ‘그루브’란 말은 모호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감각의 영역이니까. “쿵, 빡!이 아닌 미묘한 그루브를 만들 수 있느냐를 항상 고민해요. 곧 나올 곡에선 스네어 드럼을 뺐어요.” 더하기보다 빼는 것이 현대 전자음악의 과제라고 할 때, 그루브는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악기에 최대한의 노력을 더해 자연스레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밴드의 드러머 탈퇴는 슬픈 소식이지만, 그래서 드럼 없이 그루브를 만들겠다는 그레이의 선언은 반갑다. “제 음악이 상상력을 자극했으면 해요. 따당, 따당 소리가 있다면 파리라 생각할 수도 있고, 꽃가루라고 느낄 수도 있겠죠.” 전자음악이 기계적이라고만 여긴다면 오산일 테고, 그레이는 군산에서 왔다.

 

썸데프

썸데프의 첫 EP는 잘 만든 메뉴판 같았다. 그림이 정확히 실려 있어 친절하지만 그렇다고 그림 때문에 난잡하지 않은. 그것을 좋은 ‘레이아웃’ 덕이라 부를 수 있다면, 썸데프 EP의 레이아웃, 그러니까 틀은 견고하다. 보컬이든 악기든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소리엔 개성이 있는데, 그걸 제가 따로 만든 필터 같은 걸 거쳐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요.” 물론 기계적 필터에 대한 얘긴 아니다. 덥스텝, 네오 솔, 지-훵크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수록곡에 같은 효과를 먹인다고 일관된 질감이 생기진 않는다. 썸데프는 레코드 엔지니어로 데뷔했고, 디제이이기도 하다. 그는 그렇게 갈고 닦은 예민한 귀로 각각의 소리를 공들여 세공했을 것이다. “악기 하나하나가 꽉 차는 느낌을 내려 했어요.” 썸데프의 음반을 들을 때야말로 방을 꽉 채우는 고성능 스피커가 필요한 순간일까? 여기까지가 뮤지션 썸데프의 몫이라면, 그는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진보, 알샤인, 시모 등과의 협업에선 썸데프의 고집보다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튀어 오른다. “제 곡을 듣고 보컬들의 다른 자아가 나왔던 것 같아요.” 겸손인 한편, 어떤 식의 보컬이든 자신의 틀로 걸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돌이켜보면 그는 시모 앤 무드슐라의 조력자였고, 360 사운즈의 일원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장점을 흡수한다. “가까운 곳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면 집중도가 다르잖아요.” 썸데프는 자신의 음악을 힙합이라 부른다. “제일 큰 카테고리라고 생각해요. 덥을 차용하면 덥, 훵크를 샘플링하면 훵크 같은 힙합이 나오는 거고.” 다양한 음악적 특질을 통합하는 뮤지션이자, 동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프로듀서에게 퍽 어울리는 수식이다.

 

피제이

음악 감상을 멜로디와 코드 위주의 접근과 리듬 중심의 이해로 나눈다면, 요즘 힙합과 전자음악을 듣는 일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피제이의 음악에선 비트만큼 음표가 두드러진다. “화성에 신경을 많이 써요. 머니코드라고 하잖아요. 웬만하면 그대로 안 가려고 해요. 가도 그것처럼 안 들리게 하고.” 그래서 피제이의 음악은 누구에게도 안심하고 권할 수 있지만, 그것이 타협을 뜻하기보단 얕은 요령을 부리지 않는 뮤지션의 정정당당한 결과물처럼 들린다. “제 음악은 솔인 것 같아요. 솔풀한 음악. 힙합은 제 세대가 즐겨 듣던 음악이니까 밑에 깔려 있는 거고.” 어느 한 곡 도드라지기보다 안정적이고 풍부하다는 인상. 그래서 좀 오래 걸린 걸까? 피제이는 힙합 듀오 라임버스로 2007년 데뷔했다. 그때부터 음악가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지만,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다. 맵고 짠 노래를 만들었다면 더 빨랐을 텐데. 전환점은 2010년 진보와 의기투합한 마인드 컴바인드의 음반이었을 것이다. 그의 결과물 중 가장 솔에 가까운 음악. “써놨던 곡들이에요. 진보가 듣고 한 달 만에 가사 써서 나왔죠.” 예의 단정한 곡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대답.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 태양의 ‘Intro(Rise)’ 역시 뮤지션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담담하긴 마찬가지다. “조화가 중요해요. 드럼에 맞는 음색이라든가, 볼륨 밸런스도 많이 고민해요. 누군가는 깔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깔끔하게 만들진 않았는데.” 튀는 방법이야 수백, 수천 가지겠지만, 말끔히 정리하는 일이라면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깔끔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말처럼, 해부하자면 피제이의 트랙이야말로

양껏 복잡할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드슐라

“DNA, DNA, DNA….” 지난 4월 발표한 ‘DNA Science’는 거듭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다. 보컬의 목소리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아, 구글 번역기의 그 여자. 우주를 떠도는 듯한 분절음은 첨단의 악기가 아닌, 디지털이란 말조차 생소할 때 녹음해놓은 소리처럼 들린다. 그렇게 간단한 재료, ‘오픈 소스’로 무드슐라는 한 곡을 뚝딱 해치웠다. “비트는 작곡보단 건축에 가까운 것 같아요. 놀고 싶은 공간에 못 가니 설계하는 거죠. 우리 세대는 <트론> 같은 걸 보고 자랐잖아요. 옛날 IBM 컴퓨터 소리나 이미지를 써보고 싶었어요. <블레이드 러너>를 요즘 스타일로 푼 거라 말할 수도 있죠.” 흥얼거리다 보면 마침내 음악적 구조와 마주친다. 2014년의 최전선에 서 있는 풋워크 리듬과 닮았다는 인상. “겉보기는 풋워크지만, 아프로 비트예요. 샤머니즘적 느낌을 내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입에 착 달라붙는 걸까? 속도 모르고. “리듬이 제일 중요해요. 샘플링을 안 하게 된 것도 리듬을 갖고 놀기 어려워서예요.” 2011년에 낸 시모 앤 무드슐라의 음반에선 꽤 전통적인 샘플링이 도드라졌다. 그때의 곡에서 지금의 무드슐라를 연상하긴 어렵다. “제가 신Scene이라고 생각해요. 경쟁자가 많은데 내가 최고라는 게 아니라, 제가 가는 쪽에 경쟁자가 너무 없으니까.” 그제야 곡의 명확한 의도가 궁금해지지만, 그는 되레 손사래를 친다. “결국 엔터테인먼트예요. 다른 세상 사람처럼 어렵게 말해도, 듣는 사람은 뮤지션들을 캐릭터로 보겠죠.” 그를 좀 괴짜지만 속임수는 안 쓰는 과학자라 얘기해보면 어떨까. 구닥다리 컴퓨터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무슨 일을 꾸미는진 몰라도 반기게 되는 SF 영화 속 남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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