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2호점

식당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곧 2호점이 등장한다.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2호점을 내는 식당의 개수도 부쩍 많아졌다.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Food판형

 

한 동네에서 유명해진 가게가 또 다른 동네에 2호점을 내는 일이 늘고 있다. 이태원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곳이 홍대 앞에도 생기고, 어느 날 보니 백화점 지하에도 있는 식이다. 유명한 식당을 찾아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그 집 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업주 입장에서도 아예 새로운 브랜드로 가게를 론칭하는 것보다 기존 식당의 이름으로 2호점을 내는 것이 자리잡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백화점은 유명해진 맛집을 통해서 고객을 끌어들이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갈수록 2호점이 많아지는 이유에는 이렇게 명확한 각자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한 뼘만 더 들어가 그 과정을 살펴보면 좀 더 재미있는 현상들이 보인다.

맛집이 2호점을 내기까지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것 누구일까? 소비자보다, TV 프로그램보다 더 즉각적인 쪽이 백화점 식음료 팀이다. 2년 전부터 백화점을 기점으로 미식 열풍이 서서히 불더니 갈수록 그 확장세가 거침없다. 가로수길 ‘보뚜아사이’는 오픈한 지 3개월 만에 갤러리아백화점에 팝업 스토어 형태로 입점했고, 이태원 밥집 ‘파르크’도 리뉴얼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입점했다. 블로그나 케이블의 맛집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지도를 좀 쌓으면 곧바로 백화점 바이어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것이 업주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신세계백화점이 그중 가장 발이 빠르고 롯데백화점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고메 494’는 가장 먼저, 그리고 대대적으로 로드숍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인 곳이지만, 지점과 공간의 여유가 다른 백화점에 비하면 약한 게 사실이다. 모두 밝힐 순 없지만, 지난 몇 달간 숍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업주 대부분이 백화점 입점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안을 받았다고 모두가 다 백화점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 식품관을 통하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2호점을 낼 수 있긴 하지만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고민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백화점이 입점을 제안하는 맛집들은 대기업처럼 식자재 공급이 원활한 곳이 아닌 데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이 골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이기 때문에 수수료까지 떼고 나면 수익이 불안정해지기 마련이고, 생산에도 차질이 생긴다. 다른 누군가의 규칙에 맞춰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래선지 올해 들어 백화점 식품관의 제2라운드는 지방 맛집의 2호점으로 옮겨갔다. 현대백화점이 속초 중앙시장의 ‘만석닭강정’을, 신세계백화점이 센텀시티점에 부산 명물시장의 ‘할매유부보따리’와 ‘이흥용 제과점’을, 롯데백화점은 군산 ‘이성당’을, 갤러리아는 속초 ‘코다리냉면’ 등을 입점시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해당 지역에 내려가 설득과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해외 브랜드를 유치하느라 바쁜 식음료 팀은 요즘 백화점의 핵심 부서다.

 

해외 브랜드의 지점 유치 전쟁은 디저트 분야로 폭이 다소 좁혀져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라뒤레’가 있다면 현대백화점은 지난 7월 ‘피에르 에르메’를 유치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요즘은 신세계백화점의 ‘레이디엠’과 ‘몽슈슈’, 현대백화점의 ‘주니어스 치즈케이크’ 등이 팽팽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9월 중엔 현대백화점이 뉴욕의 ‘스텀프타운’ 커피와 오사카의 ‘파블로’ 치즈케이크를 들여올 예정이라 백화점 간의 해외 디저트 브랜드 선점 전쟁의 엎치락 뒤치락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요식업계의 ‘명성 집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백화점 식품관의 지점 유치 경쟁을 보면 그 선을 넘나드는 듯하다. 당연히 잡음도 생긴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7월 말, 뉴욕의 3대 치즈케이크라고 불리는 ‘베니에로’를 입점시켰다가 3일 만에 ‘짝퉁’ 논란이 일어 가게를 뺐다. 입점한 브랜드가 뉴욕의 ‘베니에로’와 상관없는 ‘보니 베니에로’라는 상표명을 쓰는 한국의 브랜드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증이 부족했다는 것이 신세계백화점의 설명이다. 하지만 얼마나 급하고,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런 실수를 할까?

물론 해외 브랜드의 지점이 들어왔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을 때도 있다. 해외 어딘가에서 유명한 것이라고 하면 일단 팔리는 우리 시장의 구조가 만들어낸 독특한 형태의 지점들이랄까? 뉴욕 브랜드인 레이디엠은 한국에 지점이 6개다. 미국에는 4개, 싱가포르에 1개가 있으니 우리나라에 지점이 제일 많은 셈이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빨라쪼 델 프레도’는 이탈리아 로마의 본점 한 군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만 지점이 있다. 그마저도 해태제과가 본점을 아예 인수했지만, 홍보자료나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이탈리아 파씨 가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두 브랜드 모두 신 메뉴 개발을 국내에서 하고 있다. 뉴욕의 공정무역 커피로 이름을 알린 ‘띵크커피’ 도 비슷하다. 해외 지점은 한국이 처음이고, 지금은 서울식품에서 가맹점 관리를 하고 있다.

백화점의 입점 제안은 최근 바bar에까지 다다랐다. 한남동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아진 바들에도 식품관 입점 제안을 하고 있지만,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요즘 바의 형태와는 애초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청담동에 2호점을 낸 ‘볼트+82’의 이수영 대표는 “스피크이지(금주령 시대에 몰래 운영하던 바의 스타일) 바인데, 백화점처럼 복잡한 곳에 들어간다는 점이 콘셉트가 안 맞는 거죠. 그리고 백화점이나 대형 몰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 바 문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백화점을 한쪽으로 치우면 2호점을 차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보인다. 골목길이 유행가도에 빠르게 오르고, SNS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순식간에 맛집 반열에 오르다 보니 업주들로서는 2호점에 대한 벽이 상대적으로 쉽게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경리단길에서 3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몬스터컵케이크’의 김남환 실장은 최근 홍대에 2호점을 새로 열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경리단길의 열풍으로 가족끼리 경영하던 작은 가게는 큰 변화를 맞았다. 작은 공간에 손님들이 밀려들었고, 가게 확장을 하려 했지만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네 손님들이 주로 찾던 가게가 외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이 됐고, 자연스럽게 2호점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경리단길의 상승세로 생각보다 2호점을 빨리 낼 수 있었고, 자리 잡는 시간도 조금은 단축될 것 같아요. 가족 외엔 누구에게도 레시피를 공개할 수 없어 백화점과 놀이공원의 입점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김실장은 하루에도 두세 번씩 경리단길과 홍대를 오가며 두 매장을 운영 중이다. 경리단길에서 명성을 쌓은 까올리포차나, 더부스, 맥파이 등도 서울 등지에 2호점, 3호점을 냈다.

지역 상권에 따라 운영의 묘를 달리하기 위해서 2호점을 내는 경우도 많다. 여의도에 위치한 빵집 ‘브레드랩’의 경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에서는 만들지 못했던 빵을 최근 문을 연 연남동 2호점에서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여의도는 지역적인 한계가 있어서 케이크나 타르트 같은 디저트류를 구성할 수 있는 곳에 2호점을 내게 됐어요. 연남동은 요즘 추천을 많이 받은 동네이기도 하고, 지인들이 가게를 많이 운영하고 있어서 자리를 잡게 되었죠. 프랜차이즈 생각은 전혀 없고요,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선 안에서 해보고 싶었던 걸 더 할 수 있는 거죠. 다른 이름으로 가게를 내는 것보다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기도 좋고요.” 청담동에 2호점을 내면서 스테이크 하우스와 카페를 접목시킨 ‘볼트+82’도 1호점을 만들 때 하지 못한 것들을 더 과감하게 적용시켰다. “처음 가게를 만들 때는 위험요소였던 부분이 2호점을 통해선 구현하기가 좀 더 수월합니다.” 이수영 대표가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점을 통해 가게를 브랜드화하려는 의지가 2호점으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 동네를 가야 그 맛집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이젠 철 지난 말이 됐다. 물론 좋은 점도 생겼고, 동시에 아쉬운 점도 많아졌다. 골목을 지키던 고유한 터줏대감들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식당마저 브랜드를 따지는 시대가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화점의 출혈 경쟁으로 품질에 대한 보장 없이 이름값만 지불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 모든 상황과 자꾸만 공고해져가는 맛집의 명성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보석 같은 가게들을 가려버릴 수도 있다. 속도와 유행보다 중요한 것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