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 – 2

여기 앳된 얼굴을 드러낸 소년 소녀들은 국가대표라서, 소위 한국 스포츠 꿈나무라서 모인 게 아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성적과 목표와 꿈으로부터 달린다.

박치국, 야구선수, 제물포고 1학년.

박치국, 야구선수, 제물포고 1학년.

 

 

 

 

2005년, 그러니까 당시 경기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박태환 선수는 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나중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응당 ‘올림픽’이며 ‘금메달’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던 차에 꽤 당황스런 말이었다. 생각할 때마다, 그건 뭔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 아닐까 했다. 깡이니 정신력이니 하는 말로 시작해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과 애국가로 끝나는 한국 스포츠의 어떤 모형이 새로운 세대로부터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닐까? 국토에서 열리는 수많은 경기를 관람하며 느낀 것도 내내 비슷했다. 선수들은 다만 즐기고 있다는 기운이 역력했다. 그걸 ‘승부욕이 없다’는 식으로 재단할 수도 있을까? 당초 과녁이 다른 말인데. 누구는 예선에서 탈락하고 누구는 태극 마크를 단 국가대표가 된다.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과 겨루는 건 아니다. 각각의 이유로 여섯 선수를 만났다. 과연 여섯 명의 생각과 꿈은 여섯 개보다 많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3학년 이규진, 2학년 장준원, 1학년 황선웅, 1학년 임재준, 1학년 고창준 모두 충남체고 수구선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3학년 이규진, 2학년 장준원, 1학년 황선웅, 1학년 임재준, 1학년 고창준 모두 충남체고 수구선수.

 

 

 

 

 

치국의 여름방학

지난 5월 저녁, 치국은 같은 학년 야구부원 몇몇과 건물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려서 ‘일반 애들’은 야간자습을 시작했고, 다른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얼차려를 받는 게 분명했다. 치국은 대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체력훈련하는 거예요.” 그게 치국을 본 첫날이었다. “저희 못하는 애들 아니에요. 제물포고 야구로 검색해보세요.” 얼마 후 신문에서 소식을 접했다. 팀 성적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5월 황금사자기에선 16강, 7월 청룡기에선 8강에 그쳤다. 그리고 8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제물포고 교정에서 만났을 때, 치국은 다음 날 대통령배 대회를 위해 춘천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올해 유난히 아쉬운 경기를 많이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별로 기록에 남을 만한 시합을 해보질 못했고요. 이번 대회를 잘해야죠. 방학도 없이 이렇게 연습했는데.” 요즘 고등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치국이 유난히 더위를 탄다는 점이다. 단 한 번도 훈련이 싫었던 적은 없지만, 야구를 하면서 가장 싫다고 손꼽을 수 있는 건 “더운 날씨에 러닝 하는 거”라니, 그에게 이번 여름은 꽤나 길고도 가혹했을지 모르겠다.

 

“훈련하느라 유니폼이 더러운데 이대로 사진 찍어도 괜찮아요?” 치국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니폼이 멋있어서 야구부에 들어갔다. 줄곧 내야와 투수를 겸하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투수로 자리를 굳혔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투수는 팔 아파서요.” 이 무구한 대답 앞에 ‘엄살’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부상도 좀 있었거든요. 근데 중학교 3학년 때 제가 결정적으로 야구에 푹 빠진 일이 있었는데요.” 무슨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팀이 우승을 했어요. 그 후로는 팔 아파도 투수가 좋아졌어요.” 다소 시시하다는 표정에 대고 치국이 일갈했다. “저는요 욕먹는 게 싫어요. 못하면 욕먹죠. 근데 저는 욕먹는 게 너무 싫어요. 또 있어요. 이만한 통에 물 떠오는 거. 제가 아직 1학년이다 보니….”

 

그렇다고 꿈도 1학년만큼 꾸는 건 아니다. “제가 좀 작아요. 빠른 야구를 좋아하고요. 언젠가는 꼭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가고 싶은 팀도 있어요. 오릭스. 괜찮은 팀이에요. 돔구장에서 시합해보는 게 소원이에요. 존경하는 선수는 임창용 선수예요. 그 몸에서 160을 던지잖아요. 저는 이제 130 정돈데.” 치국의 말이 빨라졌다. “더워서요. 근데 다음 주면 방학이 끝나요. 시원한 데 한 번도 못 갔는데.” 방학이 끝나자, 여름도 끝났다. 더위 없는 하늘 아래 치국은 어떤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까?

 

김민혁, 탁구선수, 창원 남산고 3학년.

김민혁, 탁구선수, 창원 남산고 3학년.

 

 

 

 

 

준원의 멋

“근데 내일 훈련에 참가할 선수가 다섯 명 밖에 없습니다.” 선수 생활을 접고 올해 처음 충남체고 수구부를 맡은 박동호 코치가 전화기 저쪽에서 그렇게 말했다. 수구는 한 팀이 일곱 명인 경기. 박 코치가 이어서 말했다. “3학년들이 빠졌어요. 대학교 원서 준비하느라….” 어쩐지 말끝이 흐릿했다. 다음 날 수영장에서 그 이유를 들었다. “올해 저희 팀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성적이 나와야 수구로 대학에 가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데 그럴 상황이 못 되어서요. 3학년들이 일반 입시를 준비하는 거예요.” 현재 정식 수구부가 있는 대학은 전국에 두 곳뿐. 많은 선수들이 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다. 그런데 수구는 시작도 고등학교부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수영을 하면서 수구도 하는 식으로 하다가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수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요. 여전히 수영과 수구를 같이 하기도 하고요.” 2학년 장준원 선수가 말한다. 그 얘기는 단적으로 한국에서 수구라는 종목이 어떤 처지인지를 설명해준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 같은 도식적인 말과는 거리를 둔다. “멋있잖아요, 수구.” 준원은 충남체고 수구부에서 유일한 2학년이다. 즉, 내년이면 혼자 3학년이 된다. 준원을 처음 본 건 올해 4월 열린 제주 한라배 수영대회에서였다. 물 밖으로 몸을 내민 선수 중 준원은 가장 수구선수다운 덩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삭아 보인대요.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릴 때 ‘97년생’이라고 해시태그를 달아요.” 얼굴이 ‘삭아’ 보이고 말고 그런 얘기가 아니었는데, 준원에겐 언제나 그게 우선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준원의 인스타그램엔 종종 ‘어려 보이는’ 연출을 시도한 사진이 많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짓고는, 자신의 신장을 뜻하는 ‘188’이나 학년을 뜻하는 ‘고2’ 같은 말을 해시태그로 단다. 그러면 집약적인 ‘좋아요’와 함께 댓글이 달린다. “와 키 짱 크다” 준원이 거기에 다시 댓글을 단다. “키만 봐선 모델 하고 싶은데 얼굴이 ㅜ ㅋㅋ.” 늘 비슷한 패턴이다. 대개는 또래 여자애들 그리고 예쁜 누나들.

 

박동호 코치는 올해 남은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을 준비하는 한편, 내년에 어떻게 팀을 이끌어 갈지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수구를 진정 좋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성적은 따라오는 거니까요.” 그럼 준원은? “나중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수구를 했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어요. 제가 원래 멋부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예전엔 수구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페이스북 같은 곳에 멋진 수구선수 사진이 올라오니까 막 좋아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도 수구선수로서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저는 수구모가 정말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얼굴이 험악해서 다른 애들처럼 귀여워 보이지도 않아요.” 취재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준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강원체고랑 시합했는데 또 지고 왔네요…ㅋㅋ.”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진은 멋있게 잘 나왔나요?”

 

 

 

민혁에게 포커페이스란?

8월 초 영천에서 열린 전국남녀학생종별탁구대회에서 창원 남산고 3학년 김민혁 선수는 개인전 준결승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상대인 임종훈 선수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 그땐 키 차이가 엄청났는데, 이젠 제법 따라붙었다. “어라? 저 키 작았던 거 어떻게 아셨어요?” 뉴스를 보고 알았다. 허약한 체질에 심장병까지 있었는데 그걸 극복하고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선수라는 것을. 그러나저러나 경남 의령이 고향인 민혁이 애써 발음하는 표준어는 귀엽다는 말로도 모자란 뉘앙스가 있다. “제가요? 사투리 별로 안 쓰는데?”

 

지금 한국 남자 탁구는 새로운 얼굴 삼인방이 한껏 기대를 드높이는 중이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조승민, 일찌감치 독일로 탁구 유학을 다녀온 장우진, 그리고 김민혁. 이번 대회엔 우진이 불참했다. 개인전 결승에서 민혁은 두 살 어린 승민을 만났다. 처음 두 세트를 민혁이 이겼다. 순조로워 보였다. 그리고 내리 두 세트를 내줬다. 민혁의 얼굴이 조금 변했다. 중요한 건 아주 조금 변했다는 사실이다. “노력해요.” 민혁은 그렇게만 말했다. 탁구는 유난히 선수 사이의 기운이 눈에 보이는 종목이다. 욕심냈구나, 긴장했구나, 덤비는구나, 하나하나 보인다. 그만큼 수를 읽히기도 쉽다. 민혁의 노력이란 곧 보여주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다시 표정을 삭제한 민혁이 5세트를 이겼다.

 

“포커페이스요.” 탁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물었더니 그런 대답이 왔다. “상대 선수를 보면요, 무슨 표정이든 표정을 짓는 자체가 안 좋아 보여요. 나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랬던 민혁이 얼굴을 바꾸어 실실 웃기 시작한 건 시상대에 서면서부터다. 상장을 낭독하는 시상자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민혁은 새는 웃음을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는 인터뷰 내내 싱글거렸다. 중국 선수를 만나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준비하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이겨드릴게요.” 그의 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또래 선수 모두 같은 꿈을 꾼다. “짓밟아야죠.” 민혁이 씩 웃는다.

 

한편 여고부 개인전에선 안산 단원고 박세리 선수가 우승했다. 세리는 2학년, 민혁보다 한 살이 어리다. 둘은 이번에 난징에서 열리는 유스올림픽에 나란히 대표선수로 뽑혔다. “별로 안 친해요. 이제 얘기를 해봐야죠.” 경기장 밖에서 세리의 부모님이 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혁은 세리와 함께 태릉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세리에게 민혁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세리는 웃기만 했다. “세리가 그러는데,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대요.” 세리 어머니의 말에 민혁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란히 앉은 세리와 민혁이 손을 흔들었다. 거기에 울컥 튕겨나온 말이 그만 “파이팅!”이었다. 어느새 주먹도 쥔 채로. 민혁이 꾸벅 인사했다. 그 어정쩡한 포즈를 보더니 세리가 한 번 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