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REGAINED

송지오가 정의하는 남자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

오늘도 운동하셨어요? 새벽 조깅을 좋아해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한겨울이든 거의 거르지 않아요. 요즘엔 수영도 다시 시작했어요. 해마다 트레이닝을 받는데, 자세도 교정하고 스피드 테크닉도 배워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운동량이 많이 줄었어요.
송지오에게는 늘 밝은 기운이 있어요. 기분 좋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이에요. 그런가요? 사실 인상이 강해서 일부러 더 그렇게 보이려고 해요. 회사에서도 농담도 많이 하고, 직원들을 편하 게 대하려고 해요. 팀, 협력 업체, 그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긴 싫거든요. 반대로 혼자일 땐 심각해져요. 힘든 일도 많이 생각나고.
심각하고 힘든 일이라면 파리 컬렉션이겠죠? 벌써 8년이 됐네요. 처음엔 좀 급했어요. 정말 잘하고 싶단 생각뿐이었어요.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살고, 여행하고, 쉬었던 파리에서 이젠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파리가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더라고요. 처음엔 프레젠테이션으로 작게 시작했어요. 그러다 첫 쇼를 하고, 비즈니스와 홍보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글로벌 브랜드와 맞서는 건 쉽지 않았어요. 저처럼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라면 아마 같은 얘기를 할 거예요. 마케팅, 홍보, 자금력 모든 게 상대가 안 되니까 미디어들도 그쪽으로만 자꾸 관심을 갖더라고요. 게다가 전 패기와 치기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이는 벌써 지났잖아요.
8년 전과 지금, 송지오의 남자들은 좀 달라졌어요. 정신이 번쩍 드는 수영복과 수트들은 다 어디 있나요? 서울에서의 송지오 옴므는 늘 밀리터리였어요. 강하고, 단단하고, 거칠고, 전투적이었죠. 파리 컬렉션에선 다른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사에서 무사로, 현대에서 고전으로. 그래서 사무라이나 도령을 생각했어요. 때마침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거기서 송지오가 다시 시작된 거예요. 문학도 좋아하고, 예술에도 관심이 많은 지금의 남자들요.

그럼 그 남자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살까요? 소설도 자전적인 내용이 크게 성공하고, 화가들도 자화상을 잘 그리잖아요. 패션도 마찬가지예요. 어린 시절부터 몇십 년 동안 갖고 있던 취향, 내가 입고 싶은 옷이 컬렉션에 드러나요. 내가 지금 20대라면 매일 한 벌씩 옷들을 갈아입고, 가로수길이든 로데오길이든 막 걸어 다닐 거예요. 진짜 20대 때 명동길을 그러고 다녔던
것처럼요. 저처럼 집에선 엄하게 교육을 받았겠죠. 60, 70년대처럼 가난했던 시절에도 한국의 부모님들은 남자란 이래야 하고, 이러면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으셨잖아요. 그런 교 육을 받고 자라서 좀 엄격한, 하지만 멋과 흥도 잘 아는 우아하고 세련된 남자면 좋겠네요.
나이가 들수록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산과 바다, 그리고 동물들…. 동감해요. 추상과 자연이 요즘 컬렉션에 많은 영향을 줘요. 이번엔 바위가 주제였어요. 거친 암석과 요철을 표현하기 위해 텍스처나 프린트에 공을 들였죠. 지난 시즌엔 숲이었고, 다 가올 시즌엔 나무를 생각하고 있고요.

이번 <지큐 스타일> 주제인 ‘벨 아미’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아름다움이죠. 책 속 주인공인 조르주 뒤로이의 모든 건 아름다움에서 시작되잖아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아름다움. 실제로 귀족이 아니었음에도 귀족 생활을 했고, 날이 갈수록 화려한 치장을 하고. 살롱 문화와 파티와 귀족과 사치. 아름다움 때문에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었어요.

만날 때마다 지금 읽는 책에 대해 얘기해주시잖아요.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어요? 일곱 권으로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있어요. 어릴 때 3분의 1쯤 읽다 덮었던 적이 있어요. 미루고 미루다 요새 다시 읽어요. 4권을 읽는 중인데, 사실 좀 힘들어요.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문장이 참 아름다워요. 디자이너이다 보니 아름다움
에 본능적으로 끌려요. 그게 글이든 옷이든 사람이든. 이 책 1권에 종탑 끝이 얼마나 가늘고 얼마나 선명한 분홍빛이었는지, 손톱으로 하늘에 줄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런 아름다운 문장들이 어서 또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읽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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