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멜로디

한국어 가사를 한국어로 부른다. 그런 노래를 매일 듣는다. 과연 쓰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하기만 한가?

Music판형

한국어로 말을 하듯, 한국어로 노래를 부른다. 자연스러운가? 적어도 아는 말을 부른다는 점 에서는 편하다. 일단 소리를 내는 방식이 이미 익숙하다. 그리고 무슨 얘긴지 아니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대중가요 가이드 보컬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나 일본어로 부른 뒤 작사가에게 넘기는 걸까? 그것도 완전히 엉터리 문법으로. 작사는 결국 작사가가 하니까 그저 생각나는 대로 부르는 거라면, 당연히 모국어인 한국어로 불러야 마땅한 게 아닐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다른 언어로 녹음된 노래의 한국어 번역 버전을 듣고 있다. 그런데 그 원문은 정체불명의 언어다. 멜로디를 잘 살리면서, 가이드 보컬이 노래할 때 가장 편안한 언어다. 그러니까, 한국어는 노래를 부를 때 편안하지 않다. 심지어 가사 없이 내키는 대로 부르기에도. 보컬 트레이닝의 관점에서 표현 하자면, 발성에 효과적인 언어가 아니라 그렇다.

발음은 발성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목소리는 성대에서 난다. 성대의 진동을 통해 나온 1차적 소리가 공명기관의 빈 공간을 울리고 나면, 그것이 비로소 우리가 듣는 선명한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구강, 즉 입 속은 중요한 공명기관이다. 입 안의 모양을 어떻게 만드느냐, 공간을 얼마나 넓히고 좁히느냐에 따라 다른 울림과 음색의 소리가 난다.

그런데 발음 또한 입 속에서 생성된다. 입 술, 이, 혀 등은 말소리를 만드는 조음기관이다. 다른 말로 발음기관이라고도 한다. 말을 할 때 마다, 각 음절의 발음에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부분들이다. 그런데 조음기관이 움직이면 입 모양이 바뀐다. 밖에서 보이는 입술뿐만 아니 라, 입 안 공간의 모양도 달라진다. 공명기관으로서의 구강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한국어는 구강의 뒤쪽 공간을 쓰기 어렵게 만든다. 입천장 뒤쪽의 무른 부분을 연구개라 부른다. 연구개가 위로 올라가고, 성대를 포함한 후두가 아래로 떨어질 때, 입 뒤쪽 공간이 넓어진다. 원하는 만큼의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하품을 하거나 물을 가득 머금고 있을 때 입 뒤 쪽, 목 앞쪽 부분의 감각을 생각해보면 쉽다. 어 딘가 확실히 쩍 벌어진다. 그런데 한국어를 말 할 때는 입의 뒷부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히 뒷공간이 넓게 열리는 상황도 드물다.

“한국어를 말할 때는 입 앞부분을 많이 사용하게 돼요. 발음할 때 이나 입술에 힘을 주면서 불편하게 발음해야 하는데 우리 언어라 모르고 지내는 거죠.” 12년간 보컬 이론을 공부해온 DMR 실용음악학원의 이용훈 실장이 말했다. 한글 자음 중 입 뒤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ㄱ, ㄲ, ㅋ, ㅇ, ㅎ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입술이나 앞니 가까이서 발음이 형성된다. 물론 어떤 언어나 자음은 혀나 이 등의 조음기관이 크게 관여한다. 하지만 자음이라고 모두 똑같이 발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예로 ‘Oh My God’과 ‘오 마이 갓’, 또는 ‘Internship’과 ‘인턴십’을 제각각 영어식과 한국어식으로 천천히 발음해보면, 한국어로 말하는 쪽이 훨씬 더 소리가 입 앞쪽에서 형성된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음과 결합되는 모음을 말하는 방식이 달라서다. 어차피 자음만으론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용훈의 말에 따르면, 한국어를 쓰는 한국 사람들은 모음 또한 앞에서 발음하는 특징이 있다. “발성연습을 할 때 가장 먼저 연습하는 것이 한글의 모음을 입 뒷부분에서 발음하도록 끌어당기는 거예요. 앞에 붙어 있는 소리로는 원하는 음정을 낼 수 없어요.” 모음은 일반적으로 조음기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는 소리다. 혀를 이에 붙이거나 입술을 닫지 않고 내는 소리. 그러니 입 안쪽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미 입 앞쪽에서 생성 되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음도 앞에서 발음하는 습관이 배어 있는 것이다. ‘Oh’ 나 ‘Air’ 같은 말을 발음할 때의 입 속의 감각이 우리에겐 없다.

윤민수나 나얼은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그렇지만 보컬리스트들은 자음을 발음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모음으로 발음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노래를 할 때 자음은 재빨리 소화하고 모음을 쭉 발음하는 것이 입 뒤 공간을 넓히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의 작사가 함경문과 조수미, 김연우, SG 워너비 등의 노래를 쓴 민설이 합작해 낸 <작사노트>를 보면, “애드리브 또는 기교가 들어가는 부분에는 받침이 없거나 받침이 있더라도 연음 때문에 받침이 탈락되는 발음이 가수가 소화하기 수월하답니다”라고 쓰여 있다. 애드리브야말로 즉각적으로 보컬리스트가 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이다. 또 고음인 경우가 많다. 노래하기 편해야 한다. 즉, 받침 없이 모음으로 끝나는 가사야말로 보 컬리스트에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 모음조차도 훈련을 거쳐 입 뒤로 밀어 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어를 말할 때의 호흡 또한 만만치가 않다. 한국어는 종성, 즉 받침의 역할이 도드라진다. 대체적으로 각각의 음절을 분명하게 말 하는 편이다. 한국어 대화가 외국인들이 보기에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은, 올드 스쿨 랩을 하듯 따박따박 말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어를 오래 썼다면 말할 때의 호흡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노래, 특히 고음을 낼 때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받침을 발음할 때마다 호흡이 막히기 때문이다. 종성을 생략해 모음으로 문장이 쭉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한 영어처럼 부드럽게 흐르지 않는다. 즉, 한 호흡으로 원하는 만큼 노래를 부르기가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고음에선 호흡이 달리기 마련인데, 자꾸 호흡이 끊기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사 중간, 특히나 후렴구나 애드리브 부분에 영어 가사를 자주 섞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노래할 때만큼은 전혀 장점이 없는 언어인가? 보컬론으로 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난 보컬리스트를 무조건 완벽하다 말하지 않듯, 불편한 한국어를 되레 장점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쓸 수 있는 발음이 많아요. 저는 일단 쓰고 싶은 얘기를 쓴 다음에 가사를 바꾸는데, 일부러 발음을 턱턱 걸리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땅!’ 하면 되게 끊기고 내뱉는 발음이잖아요.” 회기동 단편선은 한국어와 한글로 노래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는 뮤지션이다. 그가 말했듯, 발음이 끊기는 것이 노래하는데 불편하다면 그 부분을 살려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f(x)의 ‘Electric Shock’를 비롯한 SM 엔터테인먼트의 노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를 테면 타격감이 있는 악기 소리가 박자마다 나온다면, 거기에 맞물리도록 탁탁 끊기는 음절을 배치하는 식이다. 차가운 전자음에 맞춰 분절적인 받침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전 전 전류들이”, “격 격 격하게” 같은 구절에서 긴장감이 생기는 이유다. 유영진이 쓴 ‘NU 예삐오’의 가사 또한 철저히 곡의 분위기를 보조하기 위해 짠 가사처럼 들린다. 가사의 여러 다른 목표보다 그게 우선인 듯하다. 느슨한 부분에선 모음이 줄줄 흐르고, 분위기를 고조시킬 땐 받침 있는 음절이 연이어 터진다. 절정부에선 받침이 없는 부분도 자음을 최대한 눌러 또박또박 발음한 다. ‘NU 예삐오’ 후렴구의 “기본 기본 사랑공식 사람들의 이별공식” 같은 부분은 거의 스타카토처럼 들리는데, 거기엔 그 가사를 발음하는 방식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연하게 불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영미권 팝의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장르는 한국어로 쓰기 진짜 어렵겠죠.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같은 노래는 부드럽게 부르는 게 어울리니까요. 한국어 어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그걸 넘어서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곡 안에서 너무 변화를 안 주는 것 같아요. 어떤 노래는 너무 매끈하게만 가고, 어떤 노래는 너무 세게만 가려고 하고. 발음을 잘 활용하면 곡을 만드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잘 써먹어서 로컬 리티로 만들 수도 있잖아요.” 단편선이 말했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음악계의 끊이지 않는 이슈다. 국악을 차용하기도 하고, 70년대 록에서 그 흔적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얘기라면, 2000년대 초반 한국 힙합 신에서 벌어졌던 ‘한국어 라임론’ 정도를 제외하면 논의 자체가 드물다. 그 얘기 역시 노래라기보다 힙합의 관점에서 가사를 어떻게 쓰느냐의 이야기에 가까웠다.

인도의 노래, 브라질의 노래를 듣는 일은 그 생소한 언어를 즐기는 경험이기도 하다. 인도의 어떤 노래를 들으며 웃고, 브라질의 노래를 낭만적이라 여기는 것은 악곡의 특성과 함께 언어가 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보컬론의 관점에서, 발성에 방해되는 한국어의 특정 부분을 분석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한국어의 결함을 인정하고, 그런 채로 좀 달리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