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남자 김제동

김제동은 객석에 마이크를 돌렸다. 진짜 마이크가 필요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고 싶었다. 객석이 말하는 동안, 김제동은 듣는다.

 

워크 베스트는 스펠바운드 by 오쿠스, 줄무늬 옥스퍼드 셔츠는 엔지니어드 가먼츠, 스카프는 레이버데이.

<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 >를 보면서 울다 웃다 했어요. 자유로운 형식이지만, 아무래도 방송보다는 콘서트가 훨씬 자유롭죠? 그럼요, 저도, 관객도 훨씬 더 자유로워요. 그런데 방송에서도 한 10~15분 지나면서 점점 편해지는 게 있어요. 진짜 관객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방송이니까 하러 갈 때도 설레고. < 힐링 캠프 > 피디가 들으면 또 싫어하겠다. 하하. 근데 정말 이렇게 설레는 느낌이 있어요. 제가 연예인 누구를 만난다고 하면 ‘아, 이런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예상을 하잖아요? 근데 < 톡투유 >는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으니까. 생전 처음 가보는 곳에 여행가는 느낌이에요. 설레는 거죠.

첫 토크 콘서트는 2009년 부산이었죠? 밤새 긴장했다 들었어요. 그 긴장이 무대에서 삭 사라지는 순간이 있나요? 그 순간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 직업이 무당 같다고 그랬죠. 관객하고 파도를 타는 날도 있고 기싸움을 벌일 때도 있고. 그게 처음 만나가는 과정이에요. 관객들도 ‘이게 어떻게 되나 보자’ 하고 저도 ‘아유,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면서 투닥투닥하는 그 시간. 사람들하고 만나서 1대 1로 친해지는 과정이 3시간 공연 안에 고스란히 다 있다고 보면 돼요. 그때 첫 공연이라 되게 많이 떨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알아줬어요. ‘얘가 떠는구나.’ 강아지가 처음에는 사람을 겁내다가 나중에 머리 쓰다듬어 주고 말도 걸고 안아주고, 그러다 보면 짖는 걸 멈추고 긴장을 풀잖아요? 그날 부산 관객들이 저를 그렇게 쓰다듬어 줬어요. 그때 관객들 앞에서 엄청 울었어요, 고마워서. 왜냐하면 이게 가수 공연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니고. 2천 명이 그렇게 같이 뭔가 얘기하고 가는 경험이 사실 없거든요. 스탠드 업 코미디도 있고 개그도 있지만 좀 달라요. 제일 유사한 걸로 보면… 굿하는 것 같아요.

거의 대화에 가까운 공연이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려면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알아야 하거든요? 그 작업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상황은 달라도 감정은 비슷하거든요. 제가 (이)경규 형을 볼 때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에게 느끼는 여러 가지 애증과 같고, (성)유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새로 들어온 사람하고 호흡을 맞춰나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과 같은 것처럼요. 불안, 우울, 일말의 기대, 이런 감정들도 사실 다 같거든요.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감정은 같다. 거기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조금 더 확신이 생겨요.

두 번째 방송에서, 약 47분 정도 됐을 때 관객들이 완전히 풀어졌다고 느꼈어요. 관객하고 딱, 걸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여자친구랑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행복하잖아요? 관객하고도 그런 순간이 이렇게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와요. 나, 너, 관객, 사회자, 방송 같은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상태. 그때는 잘 모르는데,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서로 와요. 무릎 위에 앉기도 하고, 퍼질러 앉기도 하고. 그렇게 놀다가 마칠 때쯤 시간 딱 보고 “세 시간 반이나 지났어?” 그러면 관객들도 놀라고.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진 않아요. 만약에 끝까지 그런 분위기가 안 되면 그날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형식, 형태의 프로그램이에요.

jtbc 보도제작국 손석희 사장이 제안한 프로그램이라고 했죠?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당신께서 해보고 싶었던 유형의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 100분 토론 > 같은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 토크 콘서트 >를 방송으로 한번 옮겨보면 어떻겠냐? 그러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하고 거의 유사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랬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냐.” 하하. 그랬더니 손석희 사장님이 웃으면서 “인정하기 싫지만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너 밖에 없다” 그러시면서.

하하, 그분은 왜 그걸 인정하기 싫어하셨죠? 매번 웃으면서 그러세요. 그런 시기들이 잘 맞아떨어졌죠. 또 무대 위에 있는 김제동이 가장 편한 방식대로, 거기 오신 분들이 위주가 되는 프로그램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연예인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사는 이야기들을 좀 해보고, 마이크를 대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분들에게 마이크를 돌려주고. 그게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점점 제한된 사람들과 긴밀한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지니까 낯선 사람, 불특정 다수를 만나면 문득 공포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방송에서 누군가 울기 시작할 때 앞자리에서 휴지 건네주신 분 있었죠?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그저 우는 사람한테는 휴지가 필요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어찌나 고맙던지. 전에 토크 콘서트 할 때, 여자 분한테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는 건데 남자 분이 무릎을 안 꿇어서 제가 장난삼아 “무릎 꿇어! 여자한텐 무릎 꿇어야 되는 거야” 그랬어요. 그랬더니 어떤 어머님이 뒤에 앉아 계시다가 “어이구,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자꾸 무릎을 꿇으라 그러냐”고 그래서 “어머님 아는 분이세요?” 그랬더니 모른대요. 그런데 내 아들 같아서 그런다고. 마치 세월호 집회 때 어머님들이 전의경들 보면서 아이고, 저놈들 보면 내 아들 생각난다. 쟤들은 뭔 죄가 있냐, 그러시는 걸 제가 듣듯이. 그런 것들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세상엔 있잖아요? 그 모습 하나로 그냥 아, 이래서 사는 거구나, 이래서 살 만하구나, 그런 느낌들이 드는 거죠.

진짜 재밌는 건 객석이 좀 더 뻔뻔해지거나 진심을 보여줄 때죠? 조마조마할 정도로. 거기에 핵심이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 내 친구 이야긴 재미있잖아요? 우리가 일상 다반사라는 말을 하는데, 이 다반사茶飯事가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이거든요. 인생에서 그게 핵심이란 얘기예요. 그렇게 속내를 털어놓고, 자기 감정을 확인 받고. “내가 누굴 때려죽이고 싶어.” 그럴 때 누가 옆에서 “아 맞네 누가 봐도 때려죽이고 싶겠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도 때려죽이지 않는 거예요. 그런 감정을 다 같이 확인받는 시간은 재미가 없을 수 없어요. 큰 파도만 멋진 게 아니잖아요? 시냇물 졸졸졸졸 흘러가는 것 보면 그게 곧 바다니까. 그거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가장 개별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신기하게도 내 감정과 동일하거든요. 그게 재미있는 거 거든요.

하지만 모두가 호의적이진 않죠?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 섭섭함, 아쉬움, 때로는 무시도 섞여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럴 수 있죠. 일단 모두 저를 좋아해야 한다는 그 생각 자체가 의미 없고 잘못됐다는 걸 이제 조금 알아요. 연예인들은 그거 알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괴로운 거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또 힘들지 모르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불편이 거기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마음을 직면한 적 있죠? 어떠셨어요?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고,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얘기잖아요”라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좀 수월해져요. 때론 그런 확인을 받고 싶은 거니까. 토크 콘서트 할 때, 지금도 기억나요. 부산이었나? 아버님 한 분이 “그런데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 그래서 제가 “정치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요”, 그랬더니 “평소에 하지 않았냐?” 그래서 “그 말씀하시려고 지금 돈을 내고 오셔서, 직접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씀을 해보시라” 그랬더니 “애국심을 가져라”, 하셨어요. 그래서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를 가진 적은 있지만 내 나라 안 사랑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랬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곧 나라를 사랑하는 것 아니겠냐. 내 생각은 그렇다” 그랬더니 “군대는 갔다 왔냐” 그래요 갑자기. 자기는 특전사를 다녀왔다고. “나도 비록 방위지만 3대 독자여서 그랬던 것뿐이지 피할 의도는 없었다” 그랬죠. “만약 군대 안 갔다 오신 분을 찾아서 비난하시고 싶은 거라면 지금 청와대나 정부에 보면 훨씬 많다. 거기 가셔서 말씀하셔야 되지 않냐.” 그랬더니 본인도 웃으시더라고요.

콘서트 중간에 꽤 오래 얘기를 나누셨네요? 한 10~15분 한 것 같은데요. 그분도 술 한잔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여기 저를 보러 오신 분들이 계시고, 콘서트를 진행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그분한테 막 야유를 보내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관객들한테도, 사실 친구들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싸움 말리면 왜 든든하잖아요? 그래서 참으시라고 하고. “이분도 지금 여기선 소수 의견 아니냐. 소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말씀해주신 이분께 박수를 쳐달라” 그래서 사람들이 박수를 쳤어요, 약간 멋쩍어하시더라고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시더라고요. 그래서 대기실에 잠깐 들어가 계시라 그랬어요. 그때 마침 게스트로 (윤)도현이 형이 와 있었거든요. 아마 거기서 도현이 형과 긴 얘기를…. 형이 되게 힘들었을 거예요. 하하. 그런 경우죠. 근데 그런 얘기 들을 때 있어요. “저 새끼 저거 정치적 성향은 맘에 안 드는데.” 제 성향을 어떻게 아시는진 잘 모르겠지만. “저 새끼 정치 얘기만 안 하면 좋겠는데.” 그런 얘기 되게 고마워요.

 

남색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는 김서룡 옴므, 리넨 포켓 스퀘어는 폴로 랄프 로렌, 흰색 티셔츠는 김제동의 것.

김제동과의 인터뷰 2편, ‘말하는 남자 김제동’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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