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 – 문신의 끝을 잡고

거슬러 올라간다. 보이지 않는 몸의 저 안쪽까지.

“궁금증은 끄트머리에서부터다. 저건 나비의 꼬리일까, 꽃의 줄기일까, 닻의 밧줄일까…. 호기심은 기어이 여자의 옷 속까지 파고들고 만다. 허락한 적도 없을 텐데. 저 문신의 반대쪽 끝은 어떤 모양일까,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특별히 마주 앉아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들은 아니다. 그보단 직접 묻기 전까지의 상상이 그 자체로 흥미로워, 질문을 일부러 미룬다.

문신에 대한 질문은, 어떤 면에서 애완동물의 안부를 묻는 일과 비슷하다. 서로 쉽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표면 너머의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귀여운 애완동물 사진을 신나게 살피다 보면 어느새 여자의 방과 동네, 집에서 입는 얇고 가벼운 옷 같은 게 익숙해진다. “집 사진 있어요?”라고 묻는 게 여전히 이상하게 들리고, “어디 사세요?” 묻는다고 사진을 보여주진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은 지름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신도 그렇다. 예쁜 건 보여주고 싶은 법이니까. 어떤 강아지를 키우냐고 물었을 때 꽁꽁 잠가둔 사진첩 비밀번호가 기꺼이 풀리듯, 문신에 대한 질문 역시 말보다 선뜻 옷을 걷어붙이는 식의 대답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쇄골, 허리, 허벅지의 맨살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티셔츠 가슴팍에 쓰인 글씨를 읽을 땐 가슴을 보지 않고 있다는 면죄부가 생기는 것처럼, 그 문신을 뚫어져라 본다. 여자의 몸이 아닌 문신을 보는 가운데, 오늘밤에 대한 상상은 점점 커진다.

문신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그걸 왜 섹시하다 느끼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문신이 있다고 숨겨진 잔 근육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없던 굴곡이 생기지도 않고, 피부 톤을 바꿔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름의 결론이라면, 충동과 가까이 닿아 있다는 것. 문신은 계획적인 한편 충동적이다. 어떤 모양(또는 글귀)을 할지 누구에게 받을지에 대해선 꽤 오래 생각하지만, 실제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만큼은 불꽃 튀듯 즉각적이다. 한 번 하면 지우기 어려우니 그만큼 단호한 결심이 필요한 일. 짧으면 30분 길면 몇 시간. 그러고 나면 몸에 평생 남는 뭔가가 생긴다. 그래서인지, 그런 충동이 오늘밤 어떤 충돌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게다가 지금은 의도치 않은 일을 벌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여름이니까.

이쯤해서 “하나만 했어요?”라 묻는 건 일종의 정면 돌파일까? 이제는 옷을 입었을 때는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는, 아예 숨겨진 몸의 어떤 부분에 대한 궁금증. 질문의 형태를 띤 은근한 제안인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문신은 그림이나 글씨로서의 문신이 아니다. 그 문신이 있는 몸의 어떤 부분을 함께 떠올린다. 곡선이 많은 몸의 앞보단 매끈한 몸의 뒤, 컬러보다는 흑백, 상체보다 하체…. 그런 세세한 취향은 앞에 앉은 여자의 몸과 더불어 더욱 구체적으로 변한다. 다만 그 문신을 왜 했는지는 언제나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어떤 뜻을 담은 글씨나 그림보다는 ‘그냥’ 한 것 같은 것이 좋다. 문신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로 빽빽한 몸과 섹스를 하는 건 어쩐지 좀…. 그 단단한 의지와 맹세와 기억 앞에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번뜩 들고 만다. 물론 그렇다고 침대에서 문신이 대단한 마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페티시라면 페티시일 테지만, 오히려 추측하고 짐작할 때의 흥분을 이어가는 쪽에 가깝다. 애매한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에 굉장한 풍경이 나타났을 때, 그 풍경에 감탄하는 만큼이나 드디어 찾아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처럼.

어쩌면 겨울의 만남에선 단서조차 없기에, 도무지 경험할 수 없었던 상황들. 간혹 밤이 지나고 얼굴은 잊어도 문신만큼은 또렷할 때가 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옷을 벗고 누웠을 때도, 아침까지도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있기 때문일까? 알몸이라도 더워 죽겠는 여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뜨거운 섬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밴드 리더, 마이티 스패로우의 ‘Tattoo Woman’을 즐겨 듣는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