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고성능 버전을 시승했다. 이름 뒤엔 무지 빠르다는 뜻의 슈퍼벨로체가 붙는다. 핵심은 숫자 ‘50’이다. 아벤타도르의 무게를 50킬로그램 줄이되 성능은 50마력 높였다. 가속은 외모처럼 섬뜩하다. 그러나 운전은 의외로 까다롭지 않다.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빠른 차가 나왔다. 아벤타도르 LP750-4 슈퍼벨로체(이후 SV)다. ‘엄청 빠른’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아벤타도르의 최강 모델이다. 이 차의 핵심은 50이다. 아벤타도르에서 군살은 50킬로그램 더 쥐어짜고 힘은 50마력 더 높였다. 지난 5월, 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가뜩이나 강력한 차가 얼마나 더 흉흉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시승회의 베이스캠프는 바르셀로나에서도 ‘핫’하다고 소문난 W호텔. 정문 앞엔 아벤타도르 SV를 세워놓았다. 차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봤다. 차를 발견한 순간의 반응은 비슷비슷했다. 눈이 커지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에게 한눈에 반했을 때의 반응과 같았다. 역시 외모는 중요하다.

람보르기니 슈퍼벨로체의 역사는 1971~1973년 미우라 SV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최고출력은 385마력. 1996~2000년엔 530마력의 디아블로 SV, 2009~2011년엔 670마력 품은 무르시엘라고 SV가 명맥을 이었다. 이제 아벤타도르가 4년 만에 SV의 불씨를 살릴 차례다. 아벤타도르 SV의 핵심은 출력과 무게, 공기역학이다. 우선 V12 6.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의 회전 한계를 기존의 8,350에서 8,500rpm으로 높였다. 가변 밸브 타이밍과 가변 흡기 시스템을 손질한 결과다. 최고출력은 50마력 더 늘어난 7백50마력(hp). 레드 존의 목젖 간질일 8,400rpm에서 나온다. 최대토크도 70.3kgm까지 끌어올렸다.

람보르기니 측은 자연흡기 엔진의 장점도 강조했다. ①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반응성이 보다 뛰어나고, ② 엔진 회전수가 선형적으로 치솟아 실수할 여지가 없는 데다, ③ 풍성하고 울림 깊은 사운드를 낸다고 설명했다. 최근 터보 엔진으로 돌아선 페라리를 의식한 듯했다. 출력을 높이고 무게는 줄인 아벤타도르 SV의 마력당 무게비는 2.03킬로그램이다. SV 역시 일반 아벤타도르와 마찬가지로 상시 사륜구동 방식이다. 할덱스의 4세대 전자제어식 다판 클러치로 구동력을 옮긴다. 앞뒤 구동력은 상황에 따라 60:40~10:90을 분주히 오간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1천 분의 몇 초에 불과하다. 아울러 뒤 차축은 기계식, 앞 차축은 전자식 디퍼렌셜(ESP 제어)로 좌우 구동력까지 쥐락펴락한다.

 

한편, 람보르기니는 “아벤타도르보다 SV의 무게를 50킬로그램 더 덜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벤타도르의 차체는 애당초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비중이 높다. 따라서 추가로 무게를 줄일 방법이 많지 않다. 람보르기니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령 흡음재, 카펫 등을 거둬냈다. 심지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뺐다. 원하면 무료 옵션으로 달 수 있다. 아울러 아벤타도르 SV는 커다란 뒷날개로 다운포스는 170퍼센트, 공기역학 효율은 150퍼센트 높였다. 날개 각도는 수동으로 조절한다. 서스펜션엔 자기유체 댐퍼를 끼웠다. 감쇠력 조절 시간이 1천 분의 1초에 불과하다. 람보르기니 다이내믹 스티어링(LDS)도 기본이다. 주행속도와 스티어링 앵글, 운전 모드에 따라 스티어링 기어비를 연속으로 바꾼다.카탈루냐 서킷엔 아벤타도르 SV가 색깔별도 웅크리고 서 있었다. 600대 한정판엔 포함되지 않는 시제작 차. SV의 외형은 아벤타도르 기본형과 단박에 구분된다. 흡기구는 입을 쩍 벌렸다. 범퍼 끝엔 삽날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스커트를 둘렀다. 아울러 카본의 섬세한 결을 드러낸 부위가 보다 많다. 가만 보니 SV 로고부터 까칠한 성미를 암시하는 듯했다.

이날 우린 카탈루냐 서킷을 네 차례에 걸쳐 네 바퀴씩 돌 예정이었다. 드라이버 한 명당 총 16랩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페이스 카는 ‘그냥’ 아벤타도르. 담당 인스트럭터는 “잘 따라오면 알아서 간격 벌려줄 테니 꽁무니 ‘쪼지’ 말라”고 친절하게 경고했다. 나아가 “고속 코너가 많은데 위축되지 말고 가속페달을 밟은 채 속도를 유지하라”고 귀띔했다. 손잡이를 건들자 경첩이 ‘철컥’ 풀렸다. 문은 의외로 가벼웠다. 살짝 들자 부력으로 둥실 뜨듯 사뿐히 올라갔다. 가윗날처럼 비껴 열린 공간으로 실내가 드러났다. 지붕 높이는 1,136밀리미터. 그런데 로커 패널은 높았다. 따라서 선택은 둘 중 하나. 높이뛰기 선수처럼 허리 접어 들어갈지, 림보 하듯 다리부터 밀어 넣고 상체를 접수할지. 그래도 로터스보단 쉽다.

시트도 한 덩어리의 카본이다. 쿠션 같은 사치는 없다. 덕분에 디자인을 몸으로 읽게 된다. 시트벨트는 3점식. 좌석은 수동으로 밀고 당긴다. 높낮이 조절은 없다. 스티어링 휠은 틸트와 텔레스코픽 다 된다. 그래서 원하는 운전 자세를 딱 맞출 수 있다. 실내 곳곳엔 카본 소재가 드러나 있다. 천장과 기둥엔 가볍고 질긴 새 합성소재 ‘카본 스킨’을 씌웠다. 새로운 TFT 계기판의 바탕은 가을 은행잎처럼 샛노랗다. 시동은 센터페시아의 버튼을 눌러 건다. 먼저 빨간 뚜껑을 젖혀야 한다. 미사일 쏘는 것처럼 비장한 기분이 든다. 등 뒤의 V12 엔진은 우렁찬 호통과 함께 잠에서 깬다. 첫 랩은 탐색전. 페이스 카의 궤적을 따라 서킷을 살폈다. 횡가속력 때문에 기약 없이 밀려나갈 듯한 고속 코너가 인상적이었다.

 

한 조는 페이스 카 한 대와 아벤타도르 SV 세 대로 구성했다. 한 랩을 돌 때마다 SV들은 순서를 바꿨다. 1번이 맨 뒤로 가고 2번과 3번이 당기는 식. 느린 드라이버를 앞세웠다 시승을 망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왠지 불안한 뉴질랜드 아줌마 기자와 한 팀을 이룬 나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룰이었다. 마지막 랩은 브레이크를 식히기 위해 서행 해야 한다. 예상은 적중했다. 뉴질랜드 아줌마를 앞세운 랩은 ‘느리게 감기’ 모드. 어차피 서킷도 아직 낯선데 잘 됐다. 페이스 카의 레코드 라인을 면밀히 살필 기회였다. 아벤타도르 SV의 운전 모드는 스트라다(일반 도로)와 스포츠, 코르사(트랙)로 나뉜다. 코르사에선 수동 변속 모드만 지원한다. 난 스포츠 모드를 골랐다. 스티어링 반응과 감각에 몰입하고 싶어서다.

서킷 관람을 마친 뉴질랜드 누님이 맨 뒤로 빠졌다. 이제 내가 선두였다. 본능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순간 몸이 시트에 빈틈없이 들러붙었다. ‘똥침’의 기운을 눈치 챈 페이스 카는 잽싸게 내빼기 시작했다. 여유만만하게 도망가는 자와 가슴 졸이며 쫓는 자의 기묘한 추격전. 설상가상으로 내 뒤엔 남아공 기자가 이제 좀 달리나 싶어 바짝 붙었다. 전날 바르셀로나로 가면서는 아벤타도르의 ‘끝판 왕’에게 고작 50마력 얹어준 건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지랖 넓은 걱정이었다. 이미 성능과 무게의 한계에 다다른 차에서 다시 한 번 마른 수건을 쥐어짠 결과는 섬뜩했다. 특히 서킷에서 가속 성능의 한계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답게 속도 낼수록 힘은 더 뾰족하고 매서워졌다. 고속 코너가 다가왔다.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은 발에서 힘을 뺐다. 순간 페이스 카가 확 멀어지며 무전이 날아들었다. “괜찮다니까, 더 밟어!” 오장육부가 쏠린 상태에서 다시 가속. 사륜구동이 접지력을 챙기느라 궤적이 삐뚤빼뚤해졌다. 그 와중에도 스티어링은 차분했다. SV는 물리력과 직각 이룬 쪽으로 가속을 이어갔다. 랩이 반복될수록 불안은 빠르게 희석되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샘솟았다.

아벤타도르 SV는 과격한 조작에 더 활기차게 반응했다. 앞쪽 여섯 개 피스톤, 뒤쪽 네 개 피스톤의 캘리퍼를 물린 브레이크는 페달이 부러져라 밟아도 풋풋한 상태를 유했다. 제원에 나온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멈춰설 때까지 거리는 불과 30미터. 잘 서니까 가속도 과감해진다. 아벤타도르 SV가 사륜구동이라고 늘 접지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 약속을 하기엔 너무 강력하고 빠르다. 수동변속 때 조금만 조작이 늦으면 스티어링 휠 림의 빨간 LED 경고등이 요란스럽게 번쩍인다. 고속 코너에서 드로틀을 급격히 여닫으면 꽁무니를 삐쭉삐쭉 흘린다. 전자장비의 감시망이 느슨해지는 ‘코르사’ 모드에선 역동적으로 허리를 뒤챈다.

그러나 무섭진 않다. 외모만 야수지 성격은 까다롭지 않다. 이런 예는 많다. 가령 사운드와 가속력은 살벌한데 불안하진 않다. 정작 단점은 빠듯한 시야와 ‘시선 집중’ 도어다. 다들 람보르기니의 매력으로 손꼽는 요소다. 으스스해 보이지만 실은 편안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불편하다. 이는 비단 아벤타도르 SV뿐 아니라 람보르기니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이다. 이날 스테판 윙클만(람보르기니 사장 겸 CEO)을 만나 물었다. 모든 차가 빨라지고 있는데, 람보르기니는 어떻게 그 한계를 넘어설 것인지. 그는 말했다. “람보르기니는 총체적 경험으로 차별됩니다. 사운드와 첨단 장비, 즐길 수 있는 운전까지요. 아벤타도르 SV가 누구를 위한 차일까요? 분명 프로 드라이버를 위한 차는 아닙니다.

 

INTERVIEW – 스테판 윙클만 람보르기니 사장 겸 CEO

왜 하필 600대 한정인가? 우린 한정판을 기획할 때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 일단 주요 대륙별 수요를 파악하는 게 첫째다. 그 다음엔 우리의 생산 능력을 감안한다. 아벤타도르 SV의 경우 아메리카와 유럽, 아시아에서 각각 200대의 수요를 예상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요보다 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시장엔 몇 대나 배정했나? 우린 시장별로 대수를 한정짓지 않는다. 수요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공급한다. 현재 아벤타도르 SV는 5백여 대가 계약된 상태다. 따라서 아직 기회가 있다. 1백 대 가까이 남아 있다. 한국 시장에서 수요가 있다면 얼마든 줄 수 있다. 우린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람보르기니 코리아를 설립한 걸로 알고 있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우리가 자본을 1백 퍼센트 투자해 세운 현지 법인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캐나다, 인도, 중국, 일본, 싱가포르 정도다.

아벤타도르로 레이스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는? 오너들이 경주차를 직접 구입해서 참가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트랙 전용으로 쓰기에 아벤타도르는 너무 비싸다. 반면 우라칸은 가격도 적당하고 극단적인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원메이크 레이스를 운영하기엔 여러모로 잘 맞는 차종이다.

람보르기니의 창업과 관련된 일화가 유명하다. 그런데 엔초 페라리에게 실제로 면박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단족으로 만난 적 없다는 반론도 있다. 진실은 뭔가?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엔초를 직접 만나 페라리 불량을 항의했다. 엔초는 “트랙터나 열심히 만들어 파세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래서 열 받은 페루초가 직접 스포츠카 회사를 차렸다. 그게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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