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미의 딸, 케이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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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영미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서 디자이너로서의 엄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어요. 평범한 기억을 하나 얘기하자면, 초등학교 때 뉴웨이브 컬렉션을 보러 갔는데 사회자가 어머니를 소개하면서 “디자이너 우영미~!” 라고 외쳤어요. 그 순간 너무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불쑥 나네요.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건, 솔직히 힘들어요. 사실 저는 어머니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건 제가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고, 가끔씩 완전히 다른 의견도 있어요. 처음엔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든다던데, 제 경우엔 저에게 그런 종류의 시련을 주는 사람은 여전히 어머니예요. 칭찬도 비난도 유일하게 솔직하게 해주는 존재. 우린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씩은 서로에게 시련을 주는 모녀 사이예요. 사랑이 있으니까 버티고 견디는 거겠죠. 지금은 둘이 사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요. 영감이나 취향이라는게 매일의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거잖아요. 회사가 아닌 밖에서 시간과 생각을 공유하니 점점 공통분모가 많아지는 걸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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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제가 생각하는 코트가 있는 어떤 날의 풍경은 추운 유럽 밤거리에 카멜색 펠트로 만든 롱 코트를 입은 남자가 코트 깃을 세우고 회색빛 돌 바닥을 빠르게 걷는 모습이에요. 오래된 나무 바닥과 큰 창문 그리고 벽에는 오프 화이트 페인트가 발려 있는 높은 천장의 넓은 스튜디오 역시 동시에 연상되고요. 코트는 차를 타고 다니는 곳보다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에 더 어울려요. 겨울밤에는 해도 짧고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그런 우울함과 쓸쓸함이 코트와 맞아요. 코트를 고를 땐 라펠의 놓임과 단추를 채웠을 때의 허리 선, 두 가지를 꼭 봐야 해요. 아, 코트의 길이도 중요하죠. 올겨울엔 늘 입는 길이 말고 아주 긴 걸로 입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그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드는 코트가 아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만드는 여백이 있는 코트가 좋은 코트라는 말은 꼭 하고 싶네요. 캐시미어 스카프,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어울리는 코트요. 만약 코트를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하나 쓴다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새는 사람들’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제목은 <고독의 이면>정도로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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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바스키아, 서도호 조용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 기본을 아는 사람, 드러내지 않고 가림으로써 잔잔한 향기를 내는 그런 사람이 코트와 어울려요. 유머가 있는 상냥한 사람, 친절하긴 하지만 사교적이진 않은 사람, 시간을 아끼진 않지만 낭비도 안 하는 사람도요. 할아버지는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셨어요. 큰 키에 해리스 트위드 소재의 롱 코트와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입고 그레이 헌팅캡과 버건디 실크 스카프를 살짝 더하는 식으로 옷을 입으셨어요. 할아버지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은 충격적일 만큼 패셔너블했다고 지금도 생각해요. 장 미셸 바스키아 포트레이트 중에서 그레이 니트 위에 빨간 셔츠 칼라 한쪽만 슬쩍 빼놓고, 다크 그레이 롱 코트를 입은 모습을 잊지 못해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척 지적이었거든요. 서도호 선생님의 아트를 대하는 진중함과 유머 또한 우영미 코트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그레이 터틀넥 니트와 그레이 울 크롭트 팬츠, 블랙 첼시 부츠 그리고 우영미의 소프트 다크 그레이 펠트로 만든 롱 코트를 추천하고 싶어요.

작업실 책상에 연연해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책상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한자리에 앉아 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늘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작업실 안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일을 하고 있어요. 작업실 벽에는 사진이 많이 붙어 있어요. 옷 사진이 아니라 아티스트 작품이라던가 자연 이미지 아니면 인물 사진들. 1929년 대공황 시대의 사진도 있어요. 시대는 힘들었지만 그때 남자들의 스타일 하나는 최고였거든요. 시즌이 시작되면 벽 색깔이 안 보일 정도로 사진을 붙여요. 개인적인 겨울의 낭만은 잘 모르겠어요. 쇼 기간이 다가오면 아침 일찍 출근해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겨울의 일과는 집과 회사뿐, 엄청 단순해요. 그래도 가끔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찬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는 시간은 좋아해요. 안 좋은 생각이 들면 나무나 나무로 만든 물건을 만져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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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케이티 2013년, 스물일곱 살 때 우영미에 합류해서 브랜드의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서른 살, 이 일을 하기에 적다고도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예요. 만약 이 일을 안 했다면 영화 쪽에서 일했겠지라는 상상도 때론 해보고, 가끔은 가족 사업에 뛰어든 걸 후회도 불평도 하지만, 이어나가고 싶은 의지가 더 강해요. 제가 두 살 때 어머니와 이모가 이 일을 시작했어요. 어렸을 땐 어머니가 저보다 일을 선택했다는 생각에 많이 서운했어요. 어린 마음에 철없이 동요 ‘섬 집 아기’를 개사해서 “엄마가 압구정에 옷 팔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라고 아주 못되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걸 다 이해해요. 그 시절의 엄마까지도요. 제가 만들고 싶은 우영미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예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아주 긴 역사를 가진 패션 브랜드가 없어요. 가장 중요한 사명은 우영미를 망치지 않고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는 거 예요. 어떤 한 시절 엄청나게 사랑받고 곧 사라지는 것말고, 긴 세월동안 잊히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저력을 키우고 싶어요.. 누군가에겐 브랜드고 또 누군가에겐 직장이겠지만 저에게 우영미는 제가 자란 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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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패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