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과 화 권하는 사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화를 참는다. 횡단보도, 식당, 어떤 회사 앞, 컴퓨터 앞에서 누가 쓴 기사를 읽다가도. 진짜 중요한 문제 앞에서 투정만 부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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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소한 장면은 며칠 전 횡단보도에서였다. 정지선 앞에 스쿠터를 타고 앉아 있었는데 오른쪽 뒤편에서 규칙적인 경적 소리가 났다. 분명히 짜증이 섞여있었다. “빵!”하고 쉬고, 다시 좀 길게 “빵-!”하고 쉬고, 마지막으로 “빵빵빵-!”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십수 명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 오전 9시 반 즈음이었다.

첫 번째 경적이 울렸을 때 바로 앞에 있던 아주머니의 시선이 돌아갔다. 두 번째 경적이 울렸을 땐 그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이 동시에 왼쪽을 봤다. 마지막 경적이 울렸을 땐 그 뒤편에 느긋하게 서 있던 사람들까지 고개를 돌렸다. 몇몇은 욕을 했다. 동시에, 뒤에서 경적을 울리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앞차로 다가갔다. 운전석 유리를 두드렸다. 우회전 차선을 왜 막고 있느냐는 거였다. 앞차는 택시였다. 기사가 반박했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져 일순 긴장했지만 곧 신호가 바뀌었다. 둘 다, 큰소리로 욕을 하곤 헤어졌다.

두 번째 사소한 장면. 한 친구가 여자친구 회사에 뭘 갖다주려다 느낀 짜증에 대해 말했다. “경비실에 맡기면 된다고 해서 물어봤어. 이러저러해서 ‘이걸 좀 맡기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하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그러시더라. ‘에헤, 안 돼, 안 돼.’ 순간 화가 났는데 일단 참고 다시 물었어.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랬더니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어기 맡길 수 있어, 아, 어딜 봐? 저기라니까! 가봐’ 그러더라. 내가 잠깐 다른 데 보고 있었거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경비 아저씨였다. 친구는 30대 중반이었다. 친구가 분노한 건 아저씨의 하대와 말투 때문이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목소리를 좀 높였어. 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야. ‘저기 가면 다른 경비실이 있다는 겁니까?’ 하고, 좀 힘을 주고 다시 물었지. 그랬더니 주춤하시더라. ‘가시면 있다니까…’하고, 그제야 존대하시더라고.” 친구가 물었다. “그 아저씨는 왜 그렇게 공격적이었을까?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개인적인 상황일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주관적인 얘기일는지도. 하지만 이 사소한 분노의 진짜 근원을 찾자면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아주 표면적인 것으로부터 깊이 숨어 있는 뿌리까지 침착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주 일상적인 차원에서 맞닥뜨렸던 분노의 순간을 모두 모으면, 그 실체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 같은 순간이 여럿 있었다. 거대한 화물차가 온몸이 쭈뼛거릴 것 같은 경적 소리를 낼 때, 누가 갑자기 가래침을 뱉을 때, 심지어 누가 툭 치고 지나가거나 기다리던 택시를 애먼 사람이 가로챌 때도. 그저 개인의 매너가 체화되지 않은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게 무례인 줄 모르고 범하는 상황일는지도. 하지만 그 반응으로서 일상적인 화의 수준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런 걸 수치로 객관화할 수는 없겠지만…. 신영복 교수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쓴 말이 생각났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2015년은 누가 건드리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상태로 보냈다. 계절과 관계없이 교도소의 여름 같은 한 해였다.

이런 장면은 어떨까? <조선일보>에 실린 중국집 간장 종지에 대한 칼럼은 해가 바뀌어도 기꺼이 다시 언급하고 싶을 정도로 상징적이었다. 그저 투정에 가까운 글이었는데, 그마저도 제 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개인적인 얘기를 지나치게 정색하고 썼다. 한국 언론의 뿌리 깊은 권력조차 방향을 잃고 있다는 증거, 그도 기자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한국인으로서 여름 징역을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11월 28일, ‘1등 신문’의 한적한 주말 지면 위에서 한국어가 낭비되고 있었다.

한편 일주일 뒤 광화문의 한 장면. 12월 5일 광화문에는 모두의 합당한 분노가 감당하기 힘든 대상을 향하고 있었다. 수만 명이 모였다. 금지할 수 없는 것을 금지 당했다가 허락받을 필요가 없는 일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이 속보가 되었다. 경비원에 분노했던 그 친구도 그 광장에 있었다. “뭐, 머리 하나라도 보태고 싶었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해서 잠깐 좀 같이 걷다 왔어.” 사실상 거기 모인 모든 깃발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어쩌면 광장의 진짜 의미에 저절로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날의 집회는 평화롭게 마무리됐지만, 또 다른 투정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다섯 번째 장면. 그날의 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니, 도대체 왜 나와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시끄럽잖아요, 그건 피해 아닌가? 상인들 장사 못하잖아요, 그건 생각 못하나?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 아니에요?” 우리는 그 말이 너무 익숙해서, 싸움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대꾸하지 않았다. 이건 집회에 대한 한국의 아주 오래된 클리셰, 상대의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그저 투정을 포장하는 세련된 방식이기도 하다.

조용하고 침착한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현대의 미덕이라고 믿는 사람의 항변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반만 아는 얘기. 사실상 타인의 분노와 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이기적인 고백일 뿐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사람의 일상은 평화롭기만 할까?

문화학자 엄기호는 12월 14일 <경향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다. “이들에게 평화의 책임은 전적으로 말하는 자가 지는 것이다. 말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가급적 조용히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는 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으면 그것은 평화를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 여기서 다시 그들이 말하는 가장 좋은 평화가 나온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침묵, 즉 죽음이다.” 그들은 살아있을까? 시인 김수영은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이렇게 썼다.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다섯 가지 장면이 있었다. 어떤 모든 장면은 야경꾼에 대한 증오 같았다. 친구는 그래서 부끄러 워했다. 딱 한 장면만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쉽게 오해받았다. 이런 장면이 섞이고 섞여서, 분노와 투정이 서로 꼬리를 무는 게 한국이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화를 내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 정도일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일 정도로.

모두 이렇게까지 극도로 곤두선 시대라면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모든 시끄러움에도 이유는 있다. 툭 건드리는 감정이야말로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은 내 삶을 흔들기는커녕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때의 감정을 분노라 생각하면 좀 곤란하다. 그저 투정이다.

분노는 다르다. 모두의 사소하고 하찮은 투정과 분노를 같이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럼 그 분노가 짜증나는 옆 사람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누굴 놀리듯이 남아 있을 것이다. 투정과 분노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구든, 삶을 침해당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누구의 삶도 사소하지는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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