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끝, 재규어 XF

재규어가 새로 설정한 방향이 모두를 설득했다. XF는 명료한 방증이고, 재규어를 지금 가장 화끈한 브랜드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지난여름 스페인에서 시승한 올 뉴 재규어 XF의 모든 감상을 이제야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재규어는 제대로 진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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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 들썩였다. 고양잇과 맹수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낮게 그르렁거리거나 서로 싸우려고 변죽을 올리는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모두 한 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를 시작하는 소리 또한 멀리서 들려왔다. 재규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좀 떨렸을지도 모르겠다. 미처 몰랐던 사람이라도 그 소리를 들었다면 뒤를 돌아봤을 것이다. 좀 다른 방식으로도 한번 달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거의 공개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워진 재규어 XF를 타고 있었다.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끄는 건 재규어의 숙명 같다. 재규어 F타입을 타고 스페인 어딘가를 달릴 때도 같은 시선을 받았다. 마을에서는 일부러 조용히 달렸지만, 그런다고 아름다움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XF는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세단인데, 그렇다면 좀 얌전할 법도 한데, 거리에서의 존재감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쳐다봤고, 뒤돌아봤다. 한 번 꽂힌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 재규어 디자인 디렉터 이안 칼럼은 이렇게 말했다. “재규어는 스포츠카 브랜드예요.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지붕에서 트렁크로 떨어지는 선이 쿠페 같아서 날렵해 보인다거나, 공기저항 계수가 몇이라서 훨씬 빠르다거나 하는 설명은 재규어 XF 앞에서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둘 다 사실이다. 재규어 XF의 지붕선은 매우 유려하다. 공기저항 계수는 Cd 0.29에서 0.26으로 줄었다. 무게는 더 획기적으로 줄었다. 기존 XF 모델보다 무려 190킬로그램이나 가벼워졌다. 재규어는 차체의 75퍼센트를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로 짰다. 나머지는 부위에 따라 초고장력 강판과 마그네슘 합금을 써서 차체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줄어든 무게는 성능과 직결된다. 일단 엔진 다운 사이징. 더 적은 배기량의 엔진으로 훨씬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코너에서나 직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연료 효율도 올라간다. 재규어 경량 자동차 기술팀 수석 기술 전문가 마크 화이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알루미늄 구조에 대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여러 모델에 적용해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다. 새로워진 XF는 기존 모델에 비해 모든 면에서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경량화, 강성, 충돌 안전성, 연비, 핸들링, 정교함 등 모든 것이 향상됐다. 경량화에 단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규어 인제니움 2.0 디젤 엔진을 쓰는 XF의 경우를 볼까? 1,999cc 직렬 4기통 터보 디젤 엔진의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43.9kg.m이다. 변속기는 8단 자동,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1초다. 그 자체로 충분한 성능. 한국 출시 예상 가격은 6천3백80만~7천1백80만원이다.

스페인 남부 팜팔로냐 지방의 풍경이 원하는 속도로 지나갔다. 이 엔진에는 본받고 싶은 끈기가 있었다. 저속에서는 묵직한 힘과 안정감이 함께 느껴진다. 상상 이상으로 편안하고 부드럽다. 느지막이 일어난 오후 세 시, 저녁마저 비어 있는 나른한 시간. 재규어 안에서 이런 시간이 떠올랐다는 게 믿어지나? 느끼면서도 당혹스러울 만큼의 안정감….

하지만 고속도로의 풍경은 시선을 옆으로 돌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멀리 있는 산, 그 앞에 있는 밭, 내 앞에서 달리는 저 차의 엉덩이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면서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차체는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핸들도 점점 더 묵직하고 예민해졌다. 그대로 산길에 접어들었을 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좀 공포스러울 정도로 구불구불한 코너의 연속이었다. 더 몰아세웠다. 고속도로에서 달렸던 것보다는 낮은 속도, 하지만 그 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엔진 회전수. 꺾이는 길 앞에서 8단 자동 변속기로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릴 때마다 엔진 회전수 게이지가 레드존을 때렸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길과 나, 재규어 XF만 있는 것 같은 순간을 여럿 만났다.

재규어는 점점 더 날렵해지고 있다. 다른 독일 브랜드가 좀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까지 단숨에 왔다. 원래의 XF는 조금 더 느긋했다. 운동성보다는 품위를, 일탈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아름다움? 재규어의 디자인은 애초에 시대를 상관하지 않았다. 세대가 바뀌었다고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올 뉴 XF는 아주 다른 차라고 생각해도 좋다. 저속의 안락과 고속의 역동성 사이의 경계가 더 분명해졌다. 재규어 토크 벡터링 시스템은 코너에서 안쪽 바퀴에 살짝 브레이크를 잡아준다. 그럼 바깥쪽 바퀴가 더 많이 회전한다. 코너를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더 날렵한 코너링이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토크 백터링 시스템은 트랙과 굽잇길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스페인 북부 한 가운데, 나바라Navarra 레이싱 트랙이었다. 트랙에선 재규어 XF S AWD를 타고 놀았다. 고성능 사륜구동 재규어 XF였으니, ‘놀았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2,995cc V6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의 최고출력은 380마력, 최대토크는 45.9kg.m이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5.3초. 한국 출시 예상 가격은 9천9백20만원이다.

 

INTERIOR

 

그 트랙을 몇 바퀴나 돌았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채, 다만 내렸을 때의 몽롱함은 지금도 또렷하다. 한 곳에 오랫동안 집중한 후의 몽롱함이 그럴까? 시야가 좀 좁아진 것 같은데 보이는 건 모두 빛나는 것 같은 순간. 혹은 다시 어딘가에 집중하기 딱 좋은 상태일지도. XF S는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이 달렸다. 일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속도는 이미 지나 있었다. 직선 코스에서는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어 달렸는데, 조수석에 앉은 인스트럭터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조금 더 밟아도 돼요.” 앞 유리 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소실점 하나로 모일 때쯤,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기어를 몇 단 내렸다. 다시 높은 음으로 으르렁거리는 엔진 소리를 듣다가, 코너를 반쯤 돌아 나갔을 때 다시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적절한 각도에서 정확한 타이밍으로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것, 정확한 각도로 핸들을 꺾으면서 모범적인 궤적을 그리는 일. 트랙을 빠르게 도는 덴 왕도가 없다. 그 모든 순간에 생각하게 된다. ‘이 차는 내 생각을 얼마나 따라올 수 있을까? 몸의 반응은 얼마나 차지게 따라줄까?’ 이렇게까지 트랙을 달릴 수 있는 세단은 흔치 않다.

전세대 재규어에는 어떤 여지가 있었다. 그걸 ‘영국적 재치’라고 불렀다. 영국 자동차의 특성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맞물린 톱니처럼 가차 없이 돌아가는 독일차의 움직임에 비해,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감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재규어의 고집이자 낭만이기도 했다. 이번 XF에도 그런 매혹은 그대로 살아 있다. 다만 그 단호함과 정확함의 차원이 확연히 달라졌다. 아주 향상됐다. 가벼워진 차체, 진보한 댐퍼, 세심한 서스펜션, 토크 벡터링을 비롯한 모든 요소의 조화가 이뤄낸 성취였다. 재규어 XF는 운전 재미를 좀 더 본격적인 차원에서 논할 수 있는 차가 됐다.

 

DETAILS

 

이렇게까지 운전하고 나면 마냥 예뻐 보였던 디자인을 보는 시각에도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재규어 XF의 디자인은 잘 짠 드라마의 플롯이거나, 차라리 명료하게 좌뇌를 자극하는 추리 소설 같기도 한다. 모티브는 단 하나, 범인도 단 한 명. XF의 차체는 하나의 심플한 선으로부터 다른 모든 면이 조화를 이루는 식으로 그렸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설득력, 해석하기 전에 갖고 싶어지는 본능, 시선과 카메라를 거둘 수 없는 면과 면의 집합. 디자이너 이안 칼럼은 재규어 XF를 두고 ‘a Handsome Car’라고 말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과는 아주 다른 얘기. 그냥 ‘잘생겼다’는 말로도 조금 모자란 단어다. 사전에서는 찾자면 아마 두 번째 의미가 적절할 것이다. 1번은 ‘멋진, 잘생긴’, 2번에는 ‘(연약하게 생기지 않고) 당당하게 아름다운’이라고 쓰여 있다. 아주 강인한 하나의 선으로부터 비롯된 면이 단정하고, 그들이 모여 단정하면서도 날카로운 한 대의 차가 되었다.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XF 3.0d 포트폴리오 모델을 시승했다. 2,993cc V6 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71.4kg.m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6.2초. 이 엔진이야말로 강력하고 풍성했다. 저 고속도로를 조금 더 늘릴 수는 없을까? 이 산 꼭대기에서 내려가지 않고 조금 더 놀 수 있는 방법은? 재규어를 의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 수입차 시장의 메이저리그는 독일차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호기심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재규어가 설정한 방향은 옳고,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성취해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었을 때 스르륵 기어박스가 올라왔다. 위잉하며 공조장치가 열렸다. 어서 오라는 듯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재규어 XF는 자동차가 자극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점을 느긋하게 건드린다. 이로써 재규어가 또 다른 궤도에 올랐다. 한국에는 2016년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CH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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