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지하에서

모스크바에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1935년. 레닌, 트로츠키, 소비에트, 볼셰비키, 스탈린 같은 이름이 다만 강력했던 때. 그런데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인민의 궁전’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위용을 갖췄다. 전쟁 중에는 수많은 사람이 휘황한 샹들리에 아래로 대피했다. 요컨대 모스크바 지하철은 아름답다. 그리고 겨울은 모스크바에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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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여느 여행자는 한 번쯤 비슷한 생각에 빠진다. ‘이곳은 다르구나.’ 그가 우선 의심하려는 것은 보이는 문자다. 문자가 이렇게도 다르니 응당 모든 게 다르겠지. 여행자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든다. 하지만 설득의 효과는 부족한 편이다. 방콕이나 두바이에서는 그 문자를 알았던가? 순전히 느낌이지만, 보다 솔직한 울림은 ‘여기가 소련이었지’ 하는 인지로부터 온다. 어떤 식으로든 냉전의 시대를 경험한 바, ‘소련’이라는 발음에는 강력하게 통제된, 호기심조차 불가능한, 도무지 다다를 수 없을 듯한 비밀이 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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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모스크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서울에 있는 친구와 메시지를 나누다가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잘 안 웃어.” 그거였다. 통 미소를 접하지 못했다. “백화점에서도 안 웃었어. 심지어 뭘 샀는데도 말야. 나만 웃어. 길을 묻고, 메뉴를 고르고, 옷을 사고,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만 웃었어.” 모스크바에서 불친절을 겪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웃지 않음’은 불친절이나 냉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곳의 예의와 태도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대로, 너희는 너희대로. (그러니 평양은 과연 어떤 곳일까?)

친구에게 나는 이런 말도 했다. 아르바트선 콤소몰스카야역 플랫폼에서였다. “여기는 정말 ‘쏘쏘쏘련’ 같아. 이것 좀 볼래?” 나는 1분이 멀다 하고 들이닥치듯 도착했다가 느닷없이 떠나버리는 열차의 동영상을 전송했다. 엄청난 기울기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에스컬레이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여름이라 에어컨디셔닝의 효과를 노린 건지) 몇몇을 아예 떼어내버린 열차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굉음을 들려줬다. 그리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샹들리에 사진 수십 장을 한꺼번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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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많은 지하철역에는 샹들리에가 있다. 각각이 찬란한 위용을 드러내지만 결코 이리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예쁜 척하지 않고, 알랑방귀 뀌지 않는다. 어떻게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샹들리에뿐인가? 드높은 돔, 스테인드 글라스, 대리석과 청동 부조, 단련된 금속과 유리의 광채, 모두 ‘나는 나대로’ 다만 있다. 1935년 모스크바에 처음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때, 스탈린은 이곳을 ‘인민의 궁전’이라 칭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나치의 공습을 피한 인파가 샹들리에 아래로 몰려들었다. 핵 공격까지 감안했다는 그곳의 또 다른 애칭은 ‘지하의 낙원’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매일 아침 5시30분에 문을 연다. 몇몇 오래된 역들은 실제로 역무원이 바깥에서 삐걱삐걱 자물쇠를 연다. 총 12개 노선에 182개의 역이 있고 하루 평균 6백55만 명이 이용한다. 이용객 수로 보면 세계에서 도쿄 다음으로 많다. 그리고 위대하리만치 아름다운 역이 있다. 모스크바를 떠나는 날, 마야코브스카야역 플랫폼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면서라도 그곳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니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웃지 않고도 기쁨에 닿았다. 그것은 환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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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