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R의 모범 혹은 대표 레코드 15

세계일주하듯,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수집한 레코드 15장.

Ned Doheny < Hard Candy > 2014 커버부터 훌렁 웃통을 벗고 있다. 캘리포니아(말리부)에서 나고 자란 네드 도헤니의 음반은 그렇게 보기부터 시원하다. 불필요한 악기는 걷어내고, 찰랑거리는 기타와 느긋한 관악기의 조합. 그리고 네드 도헤니의 까칠한 목소리. 가시보다는 대나무처럼 들리는 한편 핏대를 세우는 일이 없다. 그보단 (역시 자기 목소리인 ) 코러스를 덧칠하는 식으로 절정부로 향하는 멜로디를 쌓아 나간다. 수록곡인 ‘Get It Up For Love’는 모타운 디바 타타 베가가, ‘A Love of Your Own’은 솔/훵크 그룹 에버리지 화이트 밴드가 다시 불러 꽤 히트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면 아래 있던 네드 도헤니의 이 음반은 2014년 비 위드 유 레코즈를 통해 재발매됐다. Editor’s Pick ‘A Love of Your Own’

 

Various < AOR Global Sounds 1977~1982 > 2015 이미 < Caribbean Disco Boogie Sounds >와 < Brazilian Disco Boogie Sounds > 시리즈 등, 영미권 바깥의 장르 음악을 부지런히 발굴해온 페이보리트 레코딩스Favorite Recordings의 컴필레이션에는 실패가 없다. < AOR Global Sounds 1977~1982 >는 특정 지역을 벗어나 브라질, 하와이, 캐나다, 이탈리아, 폴란드 등 70~80년대에 몰아친 범세계적 AOR의 거대한 물결을 아우른다. 하지만 그곳의 ‘로컬리티’를 잔뜩 드러내기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AOR 사운드의 보편성에 집중하는 모양새. 각기 다른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한 덩이로 힘차게 이어지다, B사이드의 초저녁 같은 연주곡들로 서서히 문을 닫는다. Editor’s Pick ‘Got To Be Lovin’ You’

 

Björn Gärdsby < On The Line > 1980 이곳저곳 풍성하다. 기타가 이끌던 리듬에 피아노가 합세하고, 온갖 종류의 퍼커션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때로 현악기 앙상블까지 동원한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플루트가 곡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 스웨덴의 뮤지션이자 작편곡가, 세션 기타리스트는 영미권의 주류 AOR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요령껏 이겨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건 아닐까. 그러면서도 풋풋하게 흐르는 귀여운 팝(혹은 포크록을 연상케 하는) 멜로디는 노래의 고향, 북유럽의 맑고 담백한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On The Line’과 ‘You’처럼 훵키한 곡에서만큼은 그 다부진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듯하다. Editor’s Pick ‘On The Line’

 

The New Topnotes < The New Topnotes > 1975 주로 홍콩에서 활동한, 다국적 아시안 밴드 디’톱노츠에서 파생된 훵크, 디스코 유닛 더 뉴 톱노츠의 데뷔작이다. 코모도어스, MFSB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커버 곡으로 꽉 찬 음반이지만, 원곡을 대하는 방식이 꽤 색다르다. 어떤 노래든 색소폰을 비롯한 관악기과 오르간의 비중이 꽤 높은 편으로,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퍼즈 기타의 과용 없이도 곧잘 만들어낸다. 역시나 커버 곡을 자주 연주하던 70년대 한국의 사이키델릭 및 훵크 밴드와 비교해보며 당대 아시아권의 록(이라 불리던, 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장르가 포함되어 있던) 음악을 가늠 및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Editor’s Pick ‘Under Pressure’

 

Nohelani Cypriano < Nohelani > 2015 디제이들 사이에 먼저 번진 ‘Lihue’(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한 지역이자, 하와이어로 ‘소름이 돋는 기분’이라는 뜻의 곡 제목) 7인치 싱글 열풍을 시작으로, 노헬라니 사이프리아노의 1977년작 < Nohelani >가 재발매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음반은 다른 AOR 음반의 대개 먹먹한 소리에 비해서도 꽤 ‘빈티지’하게 들린다. 깊고 짙은 보컬 덕이기도 하지만, 생경한 악기 구성이야말로 그 섬세한 차이의 비결이다. 클라비넷, 하와이안 스틸 기타, 비브라톤, 새 피리, 중국 피리…. 듣기에 한없이 편안하지만, 이런 은근한 실험을 발견하는 것 또한 AOR을 듣는 재미다. Editor’s Pick ‘Island Boy’

 

Jigsaw < Jigsaw > 1981 < Jigsaw >는 직소의 마지막 음반이다. 이 음반은 자국인 영국이 아닌 몇몇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만 발매됐다. 의도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미국적인 음반이기도 하다. 하늘을 찌르는 팔세토, 겹겹이 쌓은 화음, 그만큼 두툼하게 감기는 현악 앙상블. 록 밴드의 한계를 시험하듯, 필리 솔에 육박하는 오케스트라 규모의 편곡에 도전했다. 그러면서도 기타나 드럼을 비롯한 리듬 섹션은 무뚝뚝한 록의 방식 그대로 둬, 어색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위기를 낸다. 곡마다 냉탕 온탕 오가듯 리드보컬(혹은 곡을 시작하는 보컬)이 바뀌는 재미도 있다. 직소는 맨체스터의 나이트클럽 이름에서 그룹명을 따왔다. 실로 맨체스터는 그렇게 언제나 이상한 교배가 벌어지는 곳이었으니, 수긍이 간다. Editor’s Pick ‘Here We Go Again’

 

Yamashita Tatsuro < Melodies > 야마시타 타츠로는 지난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그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80년대를 전성기로 꼽는다면, < Melodies >를 그 정점에 놓을 수 있을까? 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일본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Christmas Eve’가 수록된 음반이란 사실과 별개로, < Melodies >는 확실히 여름보단 겨울에 가까운 음반이다. 1982년작 < For You >까지의 행보가 톡 쏘는 열대 과일 같다면, 단박에 유턴하듯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달까. 그리고 그 변화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영감보다 시간과 끈기가 필요한 근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곡의 질감에 기인한다. 똑같은 재료로 완전히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맛보듯,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고 듣다가 덩그러니 새로운 도시에 불시착한 듯 낯선 ‘무드’에 휩싸이게 된다. Editor’s Pick ‘Merry-Go-Round’

 

Rasa < Everything You See Is Me >  이것은 일종의 종교 음반이다. 이스콘ISKCON(하레 크리슈나)의 포교 활동을 위해, 마치 CCM처럼 ‘컨템포러리 하레 크리슈나 음악’을 만들자는 기치로 제작했다. 모르고 들으면 짐작조차 가지 않는 일. 로베타 플렉의 ‘Feel Like Makin’ Love’를 쓴 유진 맥다니엘스의 아들 런던 맥다니엘스와 크리스 맥다니엘스의 주도하에(둘 다 당시 채 스물이 되지 않은 나이로, 런던 맥다니엘스는 버클리 음대 신입생이었다), 그야말로 ‘젊은 감각’을 쏟아낸다. 어쩌면 종교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일. 1978년, 재즈 훵크가 팝과의 접점을 찾으며(허비 행콕이 < Sunlight >를 낸 바로 그해다) 주류로 치고 나오던 때인 만큼, 도시적인 ‘그루브’로 충만하다. Editor’s Pick ‘When Will The Day Come’

 

Rafika Duri   1978년, MBC와 < 경향신문 >이 주최한 서울국제가요제가 열렸다. 당시 18세, 라피카 두리는 특별상을 받았다. 당시 < 경향신문 > 기사엔 이렇게 쓰여 있다. “76년 인도네시아 국영방송이 주최한 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아 그곳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라피카 두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시대 음악계의 조류를 수용했다. 80년대 초엔 일련의 보사노바 음반 시리즈를 만들었고, 이후엔 새로운 프로듀서와 함께 AOR 음반 < Getar Asmara >를 발표했다. ‘컨템포러리’의 감각과 좋은 팝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줄곧 높은 기대치로 먼 곳을 내다보던 보컬리스트와 만난,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없는 음반. Editor’s Pick ‘Getar Asmara’

 

김현철 < 김현철 Vol. 1 > 1989 한국의 시티팝에 대해 물으면, 김현철의 데뷔 음반은 그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 음악의 결로 따지자면 봄여름가을겨울이나 빛과 소금의 초기작 또한 함께 둘 수 있겠으나, 그들의 음악이 밴드 기반의 재즈 퓨전에 가깝다면, 김현철의 첫 음반에선 대도시(더군다나 서울 강남)에서 줄곧 자란 도회적인 개인이 엿보인다. 재즈 퓨전의 영향을 듬뿍 받은 한편, ‘팝’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는 점 또한 그렇다. 개인이 받은 AOR의 흔적이라면 이전 유재하의 음반 < 사랑하기 때문에 >의 빠른 트랙들에서도 두드러지지만, 김현철은 그것을 동아기획의 연주자 및 엔지니어들과 오래 다듬어 계열화할 수 있는 소리로 만들었다. 그것을 우리는 시티팝 혹은 AOR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이후 김현철이 곡을 쓴 여러 음반에서 이른바 ‘90년대 고급 가요’의 일관된 사운드로 남았다. Editor’s Pick ‘동네’

 

Hiroshima < Another Place > 1985 히로시마는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밴드다. 커버엔 여느 시티팝 음반들처럼 바다가 전면에 드러나 있지만, < Another Place >는 휴양지의 감각이라기엔 다소 치열하게 들린다. 해변에서 흥얼거리다 쓴 노래라기보다, 먼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연구에 몰두한 듯한 곡들이 들어 있달까. 현악기인 샤미센과 타이코 드럼을 비롯한 일본의 전통 악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오히려 정교한 재현 과정에서 자기 색이 은근히 묻어나는 본국의 시티팝, AOR 뮤지션들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히로시마에게 AOR이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넓은 울타리 안에서 뭐든 맘껏 시도할 수 있는 망망대해 같은 팔레트일지도. Editor’s Pick ‘Save Yourself for Me’

 

Various < Tequila Sunrise > 1988 일몰을 보듯 잔향이 진하게 남는 기타와 불길을 당기듯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남자의 목소리의 만남. 록 발라드도 모던 록도 프로그레시브 록도 아닌 AOR, 문자 그대로의 ‘앨범(혹은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의 특질이라면 과연 그런 기타와 보컬이 빚어내는 서정의 정서와 남성적 문법의 충돌이 아닐까. 데킬라는 한숨에 털어 넣는 박력으로 마시는 술이지만, 데킬라 선라이즈의 화려한 색은 낭만이란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처럼. 멜 깁슨, 커트 러셀, 미셸 파이퍼가 출연한 영화 < 데킬라 선라이즈 >는 한국에서는 < 불타는 태양 >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꼭 그 잘 지은 이름 같은 노래들을 한창때의 듀란 듀란과 앤디 테일러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Editor’s Pick ‘Surrender to Me’

 

Marek & Vacek < Marek & Vacek > 1984 80년대, 장르를 넘나들며 퍼질 대로 퍼진 AOR의 전파력은 냉전의 장벽까지도 넘나들었던 게 아닐까. 마렉 & 바섹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듀오다. 갑자기 AOR을 하겠다고 등장한 것은 아니고, 60년대부터 클래식을 현대적 방식으로 연주하거나 신곡을 쓰며 70년대에만 10여장이 넘는 음반을 내놓은 베테랑 뮤지션이다. 그러다 몇 년의 공백기 후 발매한 1984년작 < Marek & Vacek >은 한결 가뿐한 모양새다. 데이비드 포스터의 경쾌한 연주곡에 비할 만한 ‘Święto (Festivity)’, 행진하는 베이스를 따라 질주하는 ‘Country Rock’ 등은 두 대의 피아노가 얼마나 많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시원하고 명쾌하게 보여준다. Editor’s Pick ‘Święto (Festivity)’

 

지숙 < Love Message > 1983 경부고속도로’를 부른 지숙과 조커스의 지숙이 일본 활동 중 한국에서 발표한 솔로 데뷔 음반. 감도 높은 커버 사진과 B면 수록곡의 면면, 음반 이름까지 단박에 70~80대 일본의 솔, 디스코 디바들을 연상케 하지만 A면은 어떤 장르든 일단 트로트 멜로디를 붙이고 보던 그 즈음의 한국 시장을 과하게 의식한 인상이다. 이선희와 정수라로 대표할 만한 80년대의, 빨랫줄같이 곧은 가수들의 감정선을 좀 방탕하게 비틀면 지숙의 목소리가 될까? 어떤 노래도 능수능란하게 넘어서는 가운데, B면의 ‘It’s Too Late’와 ‘Summer Time’에서는 동시대적 AOR, 디스코 편곡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낸다. 지숙은 위대한 코미디언 서영춘의 조카이기도 하다. Editor’s Pick ‘It’s Too Late’

 

Amy Holland < Amy Holland > 1980 이 음반의 프로듀서는 다름 아닌 마이클 맥도날드다. 70년대 중반 이후, 즉 후기 두비 브라더스의 새로운 조타수이자 블루 아이드 솔에 대해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이름. 블루 아이드 솔이야말로 AOR의 보편적 특징(멜로디, 편곡, 악기 구성, 보컬, 소리의 질감 모두 통틀어)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인 만큼, < Amy Holland > 또한 AOR의 정수 같은 곡들로 꽉 차 있다. 음반의 포문을 여는 ‘How Do I Survive’는 빌보드 싱글차트 22위까지 오른, 에이미 홀랜드의 유일한 ‘톱 40’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3년 후, 그녀는 마이클 맥도날드와 결혼한다. 그 사이 블루 아이드 솔의 머릿돌 같은 음반, 마이클 맥도날드의 첫 솔로작, < If That’s What It Takes >가 나왔고 에이미 홀랜드는 거기에 코러스로 힘을 보탠다. 둘의 이런 ‘케미스트리’와 불꽃의 시작이 고스란히 담긴 음반이 아닐까? Editor’s Pick ‘Strengthen My Love’

#2 지금 AOR, 두 명의 뮤지션과 하나의 레이블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