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중국이 답인가?

중국은 케이팝의 가장 큰 시장이다. 두발 다 담그고 성공을 만끽하기보다, 이제 적어도 한 발 정도는 더 먼 곳으로 벗어나야 한다.

중국 시장이 새로울 것은 없다. ‘한류’ 라는 용어 자체부터가 2000년 베이징에서 열린 H.O.T.의 콘서트를 묘사하며 중국 언론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중국 음악 시장이 성숙해지고 정상 궤도에 오르며, 중국 기업과 한국 연예기획사의 상호 협력이 지난 몇 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 상당량의 이윤을 내고 있는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곧 위안화의 홍수를 즐기게 될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의 대성공조차 미미한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이런 ‘중국행 골드 러시’를 맞이하기 위해 기획사들이 앞다투어 줄을 서는 모습이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보상에는 그만큼의 위험요소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09년, 중국은 현대자동차의 가장 큰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 현대자동차는 연속 8분기째 이윤 감소를 기록하며 중국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의 제품 수요가 곤두박질치는 데다, 서울의 한국인들조차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정책에도 불구하고 샤오미의 저가 휴대전화를 사기 위해 다이소 매장 앞에 줄을 선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케이팝 기획사는 중국에 대체 어떤 그리고 얼마나 큰 기회가 있는 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 중소기업청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지난 5년간 한국의 연예 사업에 3조원 이상 투자해왔다. 2015년 11월, FNC 엔터테인먼트는 지분의 22퍼센트를 쑤닝 유니버설 미디어에 약 3백30억원에 매각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월 알리바바 그룹에 지분의 4퍼 센트를 약 3백55억원에 팔았다. 한 주 뒤 JYP 엔터테인먼트는 디지털 음원 시장을 노리고 CMC(중국 최대 온라인 음악 관련 기업)와 50 억원 상당의 계약을 체결했다. EXID는 최근 중국 내 프로모션 활동과 관련해 중국의 미디어 관련 기업 바나나 프로젝트와 계약을 맺었고, EXID의 기획사 예당 엔터테인먼트는 한중 합작 기업으로 거듭나며 이름을 바나나 컬쳐로 바꿨다. 한편 중국은 한국에서 인기를 잃은 케이팝 그룹의 새로운 시장이기도 하다. 티아라는 중국에서 놀라울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주요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데다, 한 부유한 상속자의 생일 파티에서 간단한 공연을 하고 3억 원 가량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뭘까? 무엇보다 변덕스럽고 비밀스러운 중국 정부야말로 가장 큰 변수다. 지난달, 중국 공업신식화부 장관은 해외 기업이 만든 미디어(중국 기업과의 합작품도 포함) 상품의 온라인 게재와 배포를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국내외 기업 모두 “필요한 모든 기술 장비, 연관 서버, 저장 디바이스”를 중국에서 호스팅해야 하며, 콘텐츠 또한 자가 검열 후 정부기관의 검토를 받고 명확한 허 가를 얻은 뒤에만 온라인에 배포할 수 있다. 게다가 그 허가와 관련된 내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심지어 공업신식화부는 100퍼센트 중국 기업을 선호한다고까지 명시했다. 이 규제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엄격히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미 많은 해외 기업이 중국 정부의 이런 입장에 난처해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곧 혹은 먼 미래에 이런 적대적 규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4년 < 별에서 온 그대 >가 중국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둔 후, 중국 정부의 두 핵심 부처는 왜 중국은 이런 인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지 개탄하는 회의를 열었다. 실제 한 고위 공무원은 이 회의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 문화적 존엄성에 손상을 입힌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한국 드라마는 어쨌거나 “전통 중국 문화를 정제해 만든 것”이라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의 공을 중국으로 돌리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정부가 대중과 콘텐츠 배포 시스템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는 나라에서 보여주는 이런 반발심은, 한국 연예계 전체가 중국에서 환영 받기는 어려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중국 대중들 또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와이스는 활동을 재개하며 다시 가파르게 상승세를 회복하고 있지만, 지난 1월 그룹 멤버 쯔위가 TV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어 오해가 불거진 사건은 당시 파장이 꽤 컸다. 이런 중국 대중들의 공격적인 반응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아시아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에도 불안한 징조가 될 수 있다. 이 스캔들은 중국 정부는 물론 중국 대중 역시 한국 의 연예기획사에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중국 네티즌들의 거대한 반발이 일반적인 케이팝에 대한 대중의 인식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케이팝은 중국 내에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호시탐탐 중국 시장에서 케이팝을 밀어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문화적 존엄성’에 대한 한류의 모욕에 불만을 제기하고, 많은 중국 네티즌이 케이팝 그룹을 겁주기 위해 벼르고 있는데, 어떻게 케이팝은 지금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걸까? 왜 중국 기업은 케이팝에 투자를 하려 할까? 한 가지 명백한 이유는, 중국 대중은 다른 모든 나라의 사람들처럼 잘 만든 음악을 원하는데, 아직 중국의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스스로 그만큼 뛰어난 상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중국 대중음악이 아직도 듣기 괴로울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 반해, 케이팝은 승승장구하며 일부는 전 세계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기획사들은 중국의 음악 관련 기업들이 계속 뒤쳐져 있지 않을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심지어 전 세계 음악 산업에서 중국의 음원 스트리밍 및 판매율이 약 10 퍼센트의 지분 정도만 차지하는 지금도, 케이팝은 중국 차트에서 중국의 로컬 뮤지션들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TFBOYS 나 SNH48 같은 그룹이 아무리 어색한 노래와 춤을 들고 나와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5년 전, 아니 10년 전 케이팝 수준의 세련된 상품을 중국 연예기획사가 만들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날은 한국 기획사들의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중국은 빨리 배운다. 일례로 제조업의 경우 지난 6월, 한국 기업의 경영진들은 한국과 중국의 제조업 기술 간격이 1.4년으로 좁혀졌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보고서로 충격에 빠졌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연예 기획사들은 중국 기획사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고 품질 규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연일 중국 미디어 기업들이 더 높은 임금과 좋은 조건으로 한국의 PD와 배우를 스카우트한 새로운 사례가 보도되고 있고, 기민한 한국 네티즌들은 이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알고 그런 기사에 댓글을 달고 있다. 중국 연예 사업이 그들로부터 배울 것을 다 배운 뒤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그런데 케이팝이라고 예외일까?

SM 엔터테인먼트는 그들의 문화적 기술을 현지화하는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현지 스태프들과 일하며, (김영민 대표의 < 연합 뉴스 > 인터뷰에 따르면) 100퍼센트 중국인으로 구성된 중국 시장을 위한 그룹을 만들 예정이다. 당연히 이 새로운 그룹은 크게 성공할 것이다. 노래와 춤을 샤이니의 절반 정도로만 잘 해낼 수 있는 그룹이 탄생한다면, 중국 음악 업계의 모든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중국 대중들이 궁극적으로 해외의 그 어떤 도움도 없이 탄생하고 알려진 중국 그룹을 더 선호하게 될 때, 그리고 중국 연예계와 정부가 그렇게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100퍼센트 중국산’ 그룹에 어드밴티지를 주기 시작할 때. 중국 투자자들은 즉각적인 이윤과 배움의 기회를 위해 케이팝에 투자할 수 있지만, 결국 그들도 중국 대중과 연예계 전반 그리고 정부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기획사와 대중들은 지금처럼 케이팝과 한국 웹툰이 아닌, 일본 음악과 만화가 한국 시장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낸 20여 년 전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 드래곤볼 >과 < 슬램덩크 >는 주류 문화 그 자체였고, 90년대 케이팝은 일본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의 청사진을 따르며 발전했다. 많은 뮤지션이 제이팝을 참고하며 음악을 공부했고, 그만큼 잦은 표절 시비가 뒤따랐다. 케이팝과 웹툰으로 일본의 동종 업계 시장을 넘어선 지금,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상품은 그 힘을 잃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의 한류는 많은 면에서 9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지만 이제 중국은 인터넷은 물론이고 무제한에 가까운 자원이라는 이점을 갖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한류를 이겨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하자 중국 정부는 가능한 모든 산업에서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자국 내 해외 수입 상품을 국내 생산품으로 바꾸는 ‘수입 대체’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명백히 한국과 일본의 재벌 모델에 기반한 것인데, 거기에 더해 중국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재원과 노동력을 갖고 있다. 삼성과 전체 한국 경제의 오랜 ‘캐시카우’인 반도체 산업만 살펴봐도, 최근 중국은 자국 산업을 위해 1백80조원을 편성하고 자체 생산을 통해 세계 제일의 공급자가 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중국의 목표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전략 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라 예견한다. 실제로 중국이 태양 전지판 산업에 사용한 전략을 보면, 그들은 반도체를 과도하게 생산해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반도체는 중국 정부의 그 막강한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존엄성’을 걱정하는 분야도 아니니 말이다.

중국에서 케이팝의 운이 다했을 때, 다른 수입원으로 그 빈자리를 지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일단 국내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는 거대한 ‘소비 절벽’에 맞닥뜨렸고, 이 진이 다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상상 가능한 모든 경기 부양 조치를 동원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033년 한국 경제가 사실 상 파산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일본 시장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한류의 전성기는 지나갔으며, 지속적으로 야기되는 양국 간 정치적 혼란을 감안할 때, 한국의 기획사들이 지향 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은 소녀시대와 빅뱅 같은 그룹의 성공을 모방하는 것뿐이다. 또한 아베노믹스의 계속된 실패를 고려하면, 일본이 언제까지 세계 2위의 음악 시장으로 남을 지도 의문이다. 그러니 많은 케이팝 기획사가 중국이 유일한 희망인 것마냥 접근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기획사들은 중국의 한류 수요가 없어지는 재앙이 찾아왔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당장 케이팝 기획사와 팬들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중국 대중음악이 어마어마한 재정과 노동력의 이점을 동원해 한국의 홈그라운드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위협하는 일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성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샤오미와 화훼이의 무시무시한 초기 판매액과 맞설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2006년 이후 매년 1천2백 억원 이상의 중국산 김치를 수입하고 있는 걸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케이팝 기획사는 (왠지 이제는 좀 포기한 듯한 인상의) 서구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대부분의 기획사가 미국처럼 문화적 차이가 있고 공략이 쉽지 않은 시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것은 단지 한국 기획사들이 북미나 유럽 같은 서구 시장에서 정말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내는 전략을 몰라서일 뿐이다. 물론 그런 전략 없이도 빅뱅과 EXO 같은 그룹은 북미에 서 큰 규모의 투어에 성공했고,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는 2014년 영국 마이크로소프트 가장 큰 광고 캠페인의 BGM으로 쓰였다. 하지만 규모가 훨씬 작은 기획사들도 적절한 홍보 방식만 사용한다면, 서구 시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일궈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 기획사가 중국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미 달러나 영국 파운드 같은 통화들로 수입원을 다양화하는 것으로, 또 다른 쯔위 사태가 일어 났을 때 혹은 케이팝을 향한 전반적인 적대감이 커졌을 때, 재정적으로 완전히 막다른 골목 으로몰리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둘째는 서구 시장에서의 확실한 성공으로 케이팝을 향한 중국의 존경심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서구의 뮤지션, 음악 팬, 더 나아가 음악 산업의 인정을 받는 것은 중국(과 일본) 시장이 케이팝 기획사를 복잡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문제를 떠나 세계적 수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만 여기게 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케이팝 제국이 단지 아시아 시장에만 집중한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셋째는 세계적 관심으로 중국 네티즌들의 공격과 중국 시장이 잠재적으로 케이팝을 모방해 추월하는 상황으로부터 케이팝을 보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중국 기획사가 성공적으로 케이팝을 흉내내 서구 시장에서 더 나은 마케팅을 펼치면, 한국이 지난 10년간 이뤄낸 놀라운 음악적 혁신은 모두 중국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케이팝이 자신들의 성취를 서구 시장에 인식시키고 나면, 서구 미디어들은 발 빠르게 중국 기획사의 그런 모방을 알아채고 비판할 것이다. 한국 기획사에 대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공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의 주류 미디어가 쯔위 스캔들에 관심을 갖고 중국 대중들이 이 만 16세 소녀에게 얼마나 유치하고 폭력적으로 굴었는지 비판하기 시작하자, 결국 중국 정부는 방송계의 JYP 반대 운동과 쯔위를 향한 네티즌들의 공격을 종결하기 위해 개입했다.

분명히 케이팝 기획사들은 향후 몇 년간 중국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다. 거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삼성과 현대자동차에 단순히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중국에서 발을 빼라고 조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케이팝 기획사들이 자신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것들을 활용해 영리하고 효율적인 캠페인 전략으로 서구 시장에 진출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수도 없이 겪었을, 외국인 투자 유치 전문기관 인베스트 코리아의 한기원 대표가 최근 말한 대로 “새 친구는 만들되, 옛 친구는 그대로 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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