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반대말

나는 여전히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말이 거북하다. 처음부터 그랬다. 맥락을 모르는 채로도 듣자마자 인상이 푹 찌그러졌다. 그 말은 마치 일상, 소통, 위로, 힐링, 청춘, 수제, 착한, 소소함 같은 (단어 자체에 무슨 죄가 있을까만은, 이 쯤 되면 죄를 물어야 할 것 같은) 말을 모두 합친 다음 ‘해시태그’라는 소스로 버무려 탄생한 절대 괴물 같다.

고르고 고른 사진을 올리면서 “못생겼다” 써놓는 일, 진지하게 고민한 작품을 내놓으며 “그냥 어쩌다 만들어본 거예요” 주뼛대는 태도, 다수에 속했다는 안심이면 곧장 안하무인이 되는 지경들, 요즘 착하다는 말의 쓰임새, 모두 지향을 잃어버린 시대의 표상일 테니 그저 안타까워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 위악을 붓고 겸손인 듯 양념을 치는 꼴에는 곧장 분노가 생긴다. 왜 거짓말을 하는가. 거짓말인 줄은 아는 가 모르는가.

나는 방금 지향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썼는데, 과연 그렇지 않나 한다. 요컨대 더 좋은 것, 더 예쁜 것, 더 큰 것, 더 비싼 것 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더 팔리는 것’ 이겠다.) 뭐 하나 간절할 게 없다. 달리 ‘대세’라는 말이 대세를 탈까. 하나뿐인 하나가 되기보다, 큰 무리에 속하는 것만을 원하고, 일단 속했다는 판단이 들면 거기서 멈춘다. 그러고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여기에는 시대적인 절망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갈 테지만, 어차피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 너나 나나 똑같은 수저를 쓴다는 절망. 때는 이때, 사기꾼들은 재빨리 약을 팔았다. 청춘이라 그런 거야, 내가 위로 해줄게, 네 손을 잡아줄게,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지 말자…. 대중의 화답은 길게 지속되는 중. “아직도 그 책이 잘 팔려?”라는 질문은 얼마나 순수하던지.

지향의 동력을 상실한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과녁은 자신과 주변뿐, 끊임없이 복제하고 소비하는 수밖에 없다. 내 얼굴, 내 밥상, 내 커피, 내 케이크. 그래, 나의 일상. 지금껏 찍어 올린 라테 사진이 7천 장이면 오늘도 무사히 7천 한 장을 올릴 수 있다. 어제까지 찍어놓은 ‘브이’ 셀카가 9만 장이면 오늘 너끈히 9만 열 다섯 장이 가능하다. 나쁠 거 있나? 일상을 돌보는 기쁨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렇게 일상이 드러누운 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바로 꿈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일상은 절대 스스로 꿈꾸지 못한다. 맴돌며 제자리를 반복할 뿐이다. 일상이 대세인 시대, 스스로를 가장 보통이라고 칭하는 존재의 일상타령은 필시 그들의 꿈을 좀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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