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레드제피 셰프가 말하는 음식의 미래

르네제피 셰프가 레스토랑 ‘노마’를 접는다. 발효와 채집에 관한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다. 그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

2015년 가을, 르네 레드제피 셰프는 자기 레스토랑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철학적 위상과 지리적 위상 모두 포함해서. “사람들은 ‘노마’를 현지 레스토랑으로 여겨요.” 레드제피가 말했다. “통념에 따르면 현지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푸드 마일즈Food Miels라는 개념으로 보면 우리를 실상 폴란드식 레스토랑과 똑같은 곳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푸드마일즈는 아직 명확한 정의랄 것이 없긴 하지만, 2008년에 의회를 통과한 미국 농업법에 따르면 약 6백50킬로미터 안에서 식재료를 구하면 된다는 거니까요.”

서른여덟 살 레드제피는 기다란 계단 끝에 있는 넓은 탁자 구석자리에 몸을 곧추세워 앉는다. 찰랑찰랑하는 갈색 머리칼은 가르마를 타 넘겼고, 코미디언 데이비드 미첼을 닮은 구석이 있으며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이곳 ‘노마’는 2011년에 개축한 18세기 창고 건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해사시대의 유산들을 되비추는 코펜하겐 중앙의 해수 수로변에 있다. 한때 소금에 절인 생선과 고래로 만든 생산품, 북대서양 전역에서 나는 유지와 모피들을 쌓아두던 곳이었다.

‘NFL’라고 부르는 이 공간은 덴마크 건축회사 3XN이 설계했으며, 조립식 가구를 놓은 사무 공간과 수경식 허브 정원(한련화, 레몬 버베나, 세인트 존스 워트, 라벤더들), 직원들이 밥을 먹는 식탁이 있다. 레드제피는 흰 요리사 재킷에 검정색 앞치마를 둘렀다. 그는 말할 때 생각에 생각을 포개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을 신중하게 잇고 다시 한 번 사려 깊게 다듬은 후 대답한다.

레드제피는 종일 쾌활했는데(레드제피는 사투리 억양을 따라 하는 재능이 있었다. 런던 사투리가 미국 코미디언 딕 반 다이크보다 영국 배우 대니 디어에 더 가까웠다), 사람들이 파도처럼 이곳을 잇따라 쓸고 지나가는 동안에도 그랬다. 인턴들은 ‘프렙 키친(준비 주방)’에서 데스 메탈과 힙합을 들으면서 갓 도착한 식재료들을 분류했고, 옆문으로 나와 이곳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끼니는 생각보다 싸고 간소하다. 점심은 치즈를 올린 토스트, 저녁은 데친 생선과 샐러드.) 세 시쯤에는, ‘노마’의 본질을 이루는 제철 재료를 채집하는 꾼들이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스커비풀, 샘파이어, 어린 완두콩 싹, 바닷가에서 자라는 겨자와 사탕무, 쇠비름, 지채芝菜를 구하기 위해 해안선과 삼림지대를 헤집고 다닌 결과물이다. 오후에는 내내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몰려와 ‘노마’의 시설들을 둘러보고, 일주일에 새 요리 여섯 개를(요리 하나를 개발하는 데 대락 80~90시간이 든다) 만들어내는 ‘테스트 키친(시험 주방)’의 사진을 찍었다. 허브 정원에서 나는 흙내와 유기물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문 옆에는 커다란 신발장이 있다. 이곳에서 ‘노마’의 모든 사람은 버켄스톡 코르크 슬리퍼로 갈아 신고 일터로 들어간다.

‘노마’가 2003년 2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재료를 공급받는 지리적 특성에 근거한 요리를 한다는 것이 철학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 끌린 야심 찬 요리사는 그 철학을 더 복잡하고 제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레드제피는 이미 있는 요리를 위해 식재료를 다루거나 단순히 차용하고 싶지 않았다. “요리는 훌륭했어요. 하지만 우리만의 것은 아니죠.” 레드제피가 말했다.

매해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곳을 발표하는 영국 월간지 < 레스토랑 >은 2010년, 2011년, 2012년 그리고 2014년에 ‘노마’를 목록 상위권에 올렸다. 이 무렵 ‘노마’에서는 새로운 감각이 생겨났다. 자신들이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노마’ 구성원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독창적이고 본원적인 것을 하려면 오랫동안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온 서구적 상차림 형식을 부숴서 날려버려야 했다. ‘노마’의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라르스 윌리엄스 셰프는 이렇게 말했다. “12년 전 노마를 열었을 때, 북유럽 식재료로 가스트로노믹 레스토랑을 차린다고 하면 비웃음을 샀습니다. 최상급 레스토랑이라면 프렌치 비둘기 요리, 푸아그라, 캐비어를 내야 했습니다. 우리가 고집한 방식, 그러니까 현지 식재료로 설득력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는 비현실적인 농담이었습니다.”

프렙 키친에서 작업하는 ‘노마’의 인턴 요리사들. 데스 메탈과 힙합을 들으면서 신선한 재료를 분류하고 다듬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토스트와 샐러드 같은 간소한 점심으로 배를 채운다.

‘노마’는 모든 것이 얼어붙는 북유럽의 겨울을 나기 위한 식재료를 찾는 일에 매진했다. 양파류는 스톡홀름이나 함부르크에서, 각각 7백 킬로미터, 3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받아와야 했다. 그래도 다른 재료는 넉넉했고, 지금도 그렇다. “물고기는 겨울이 제철이에요.” 레드제피가 말했다. “살코기는 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뱃속은 곤이나 이리로 가득 들어차는 때죠. 간이나 다른 내장, 지방들도 모두 완벽하게 싱싱하고요. 조개류도 맛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죠. 성게알, 굴, 코끼리조개, 괴상하게 생긴 온갖 조개들의 살이 꽉 차올라 있어요. 그럼 이 재료들에 집중해보자는 생각에 다다르게 돼요. 이 기간 동안만 해산물 레스토랑을 하면 어떨까? 이곳에 있는 걸 그대로 요리해보면 어떨까?”

이후 전 세계 요리사들은 매월 바뀌는 식재료의 흐름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계절과 지역, 이 두 가지에 근거해 메뉴를 만들었다. 계절성과 지역성은 ‘노마’의 모든 면모에 개성을 불어넣는 요소다. 음식부터 식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노마’의 주방은 이런 관점을 반영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전통 주방은 프랑스식 조리법에 기반을 둔 군대 집단, 즉 전문 요리사들이 각자 소스와 생선 요리, 그릴 요리, 로스팅 작업을 책임지는 위계적 관점을 염두에 두고 구성한 것이다. ‘노마’의 주방은 더 유동적이다. 그리고 열매, 뿌리채소, 허브, 과일을 다듬는 과정이 모든 요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노마’의 작업 과정도 반영했다. 2013년에 개축하면서 검정 거석으로 보다 간결하게 만들었다. ‘노마’의 여러 작업 공간은 대다수 주방이 지닌 경직적 특성에 맞선다. ‘노마’의 요리사들은 모든 요리를 만들고 낼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음악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요리사가 열광에 가까운, 생생하고 팔팔한 기운으로 맡은 바를 완수한다.

석쇠로 굽는 작업은 건물 밖 웨버 케틀에 숯불을 피워서 한다. 소테 팬에 익히고 굽는 것보다 선호하는 조리법이다. “맛에 훈연 풍미를 더할 수 있고 감칠맛도 훨씬 더 끌어낼 수 있습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단백질이건 채소건 모두 그릴에 굽고 마지막에 훈제 버터를 곁들여 풍성한 감칠맛이 돌게 한다. 웨버 케틀은 아침 일곱 시에 불을 피우기 시작해 밤 열한 시까지 쉬지 않는다. ‘노마’에서는 매달 웨버 케틀을 세 개씩 버린다.

요리는 이른 아침에 부분적으로 조합해둔다. 그중 어떤 작업은 의료용 족집게와 외과의사나 사용할 법한 기구로 한다. 다양한 소재를 더하느라 ‘노마’의 플레이팅 과정은 특히 더 복잡하다. 구운 채소, 가늘고 길게 자른 생선, 거품, 허브, 강판에 간 곤이, 소스, 식초, 베리류, 이끼, 돌덩어리가 일부는 풍경, 일부는 만찬이 돼 화사한 모습을 이루도록 서로 포개고 배열하는 것이다.

‘노마’의 발효연구실 앞에 선 ‘MAD’ 책임연구원 아리엘레 존슨. “발효는 프라이팬처럼 쉽게 쓸 수 있는 주방 도구예요.” 아리엘레 존슨은 윌리엄스와 함께 ‘노마’의 식품연구소인 ‘NFL’을 책임지고 있다. 얼마 전 짐바브웨 출장에서 식재료를 시식하다 배탈에 걸렸다. 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녀에겐 이 일이 제격이다.

레드제피는 여기에 ‘놀랄 거리’를 꼭 더한다. 손님의 호기심을 일깨우거나 의표를 찌르는 것이다. 누설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손님이 자리에 앉았을 때 앞에 센터피스처럼 보이는 꽃꽂이는 실은 전채요리다. ‘암탉과 달걀’ 요리를 주문하면 손님더러 젖은 짚더미 위에 놓인 섭씨 280도의 팬 위에 직접 야생오리 알을 깨서 부어달라고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모든 뿌리는 풍미와 미식에 대한 탐색이고, 그것은 우리의 주문呪文과 같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요.” 윌리엄스가 말했다.

윌리엄스와 아리엘레 존슨의 직무는 식품이 될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다듬는 것이다. 주석 머그에 담은 블랙커피를 연신 홀짝거리는 뉴요커 윌리엄스는 가슴주머니에 펜 세 개를 꽂은 흰 요리사 재킷에 검정색 청바지를 입었고 아래팔에 존 밀턴의 < 실락원 > 첫 15행(최초의 불복종으로 인간은 금단 나무에 맺힌 과실을 맛봤으니 그 필멸의 맛은 죽음을 세상으로 불러들이고, 우리의 모든 비탄을…)을 문신으로 새겼다. ‘노마’에 오기 전, 윌리엄스와 그의 덴마크인 아내는 헤스톤 블루멘탈 셰프가 영국 버크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더 팻 덕The Fat Duck’에서 만났고 함께 태평양의 보트에서 개인 요리사로 일 년가량 일했다.(윌리엄스는 와일리 뒤프렌 셰프의 전설적 레스토랑이자 뉴욕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자 요리의 성소인 ‘WD-50’에서도 한동안 셰프로 일했다.)

2009년 1월, ‘노마’에 온 윌리엄스는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 년 후 레드제피는 윌리엄스에게 북유럽 식품연구소Nordic Food Laboratory(이하 NFL)를 맡아 코펜하겐 대학과 합작 투자 중인 식품연구 계획을 수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부터 ‘노마’와 ‘NFL’이 분리됐다. 그때 ‘NFL’은 ‘노마’ 옆 항구의 누선樓船에 있었다. 업무는 스칸다나비안 식재료를 혁신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윌리엄스는 ‘노마’에서 차를 타고 25분쯤 가야 하는 지역에서 서식하는 유럽불개미를 연구했다. 개미에게서 나는 풍미와 맛이 품은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한 것이다. 코펜하겐 인근 숲의 한 종種에서 강력한 진저레몬그라스 맛이 난다는 것을 찾아냈다. 개미에게서 어떻게 그런 맛이 나는지 궁금해졌다. 윌리엄스는 특허 자료와 학술 자료들을 샅샅이 훑은 뒤에야 개미가 분비하는 페로몬의 상이한 화학구조와 그것이 맛과 맺는 관계를 도해한 문건을 발견했다. 그러자 막다른 골목이 들이닥쳤다. 윌리엄스가 컴퓨터에 띄워놓은 다이어그램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여름 동안 박사 학위를 끝내기 위해 ‘NFL’에서 일하던 존슨이 들어와 화면을 살폈다. “뭘 찾으려고 레몬그라스를 쳐다보시는 건가요?” 존슨이 물었다. 개미는 레몬그라스뿐 아니라 소나무와 라벤더에서 찾을 수 있는 분자로도 페로몬을 만들었다

“군집 곤충은 거의 페로몬이 있지만, 개미들의 페로몬이 가장 다양한 풍미을 내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우리 레스토랑에서 쓰는 저 유럽불개미는 대부분 레몬과 아주 흡사한 산을 방어기제로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훨씬 더 다양한 풍미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렌지나 고수, 박하 같은 풍미 말입니다.”

르네 레드제피 셰프

다양한 분야에 두루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NFL’ 같은 식품연구소의 일은 제격이다. 윌리엄스와 존슨은 방금 짐바브웨 출장에서 돌아왔다. 존슨은 출장 내내 배탈에 시달렸다. 우물물 때문이었는지 염소 내장 때문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반면 손에 잡히는 것을 모조리 맛본 것치고는 윌리엄스는 무척 건강했다. “광범위한 장내 미생물을 먹는 게 내 일입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소화기들이 더 왕성해진 겁니다.” 잠시 후, 윌리엄스는 일본의 삼림을 헤집고 다닌 채집 출장을 떠올렸다. ”이게 뭐지?” 윌리엄스는 방금 맛본 열매를 집어 들고 존슨에게 물었다. 존슨은 그게 까마중 열매, 그러니까 고독성 종자식물의 열매라는 걸 즉각 알아챘다. 그래도 윌리엄스는 멀쩡했다.

2015년 5월 어느 아침, 존슨과 윌리엄스는 ‘노마’의 무낭비 퇴비 기계를 시운전했다. 호주의 클로즈드 루프사에서 만든 것으로 1백 킬로그램의 음식물 쓰레기를 24시간 내 10킬로그램의 퇴비로 만드는 기계다. 윌리엄스는 퇴비를 맛본 적도 있다.

윌리엄스 “퇴비 기계는 젖산균을 활용하는 것이니까 못 먹는 건 아니죠.”

존슨 “그래요. 호열성 젖산균 같은 거죠. 독일식 김치에 있는 균종과 같아요. 내염성, 내열성이 엄청 세서 정말 안 죽는 것들이죠.”

윌리엄스 “그리고 그게 어떤 것을 집어넣든 24시간 안에 소화시켜버리는 거지. 솔직히 먹기 좀 그랬던 건 사실이야.”

존슨 “윌리엄스가 퇴비를 먹고 난 뒤 함께 여기 이 자료들을 모조리 뒤져봤어요. 온도 변화에 따른 사멸곡선을 찾으려고 시도했어요.”

윌리엄스 “그리고 말야, 일단 먹고 나니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더군. 내가 이걸 먹은 걸까? 이게 날 먹는 걸까?”

테이블이 12개밖에 없는 ‘노마’의 다이닝 공간이다.

‘NFL’의 직원들은 발효 연구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입한다. 스칸디나비아에는 이스트와 미생물로 음식물을 보존해온 강력한 역사가 있다. 날씨가 온화한 기간이 무척 짧아서 식물들이 성장하기가 어렵다. “풍미가 폭발하는 재료들을 확실히 보존하고 이걸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하는 방법이 절실합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NFL’은 그동안 숙성시킨 생선과 고기를 종종 너무 세게 훈제하거나 짜게 염장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클도 너무 시게 담그고 있었다. 구성원들은 발효법을 갖고 놀아보기로 했다. 음식들을 주방 선반에 얼마나 오랫동안 놔둘 수 있는지 대신 풍미에 집중했다. 아시아, 특히 일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일본인들은 쌀과 콩, 수 천년 동안 축적해온 지혜에 바탕을 두고 요리법의 전체 근간을 이루는 발효기법을 창조해냈습니다. 믿을 수 없이 복잡하면서도 우아했습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음식의 미래는 누룩균, 특히 누룩곰팡이균에 달려 있는 걸까? 일본 요리의 기초를 형성하는 코지 Koji라는 누룩에 요즘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2011년에 존슨은 스물여덟 살이었고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풍미화학과 미식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면서 ‘NFL’에서 하는 일들에 관해 들었다. 존슨은 그때 한 생각을 떠올리며 말했다. “요리를 탐구하는 연구소가 있는 레스토랑, 제가 정확히 하고 싶어 한 일이었죠.” 2012년 6월, 존슨은 함께 일하기 위해 연구소에 있던 마이클 봄 프뢰스트를 찾아갔다. 프뢰스트는 코펜하겐 대학 식품과학 부문에서도 역할을 맡고 있었다. 첫날, 존슨은 윌리엄스와 마크 에밀 톨스트럽 헤르만센을 만났다. 헤르만센은 ‘노마’의 푸드 심포지엄, ‘MAD’(덴마크어로 삭품이라는 뜻이며 ‘노마NOMA’ 뒤의 두 자가 여기서 나왔다. 앞의 두 자는 북유럽을 뜻하는 Nordic을 축약한 것이다)를 관장했다. 존슨은 2013년에 ‘노마’로 돌아와 정규직으로 일하기를 원했고 2014년 7월 코펜하겐으로 이주해 ‘MAD’의 연구책임자 됐다. “내 실제 직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존슨이 오고 얼마 뒤, ‘노마’는 컨테이너 네 칸을 인수했다. 그중 두 칸은 ‘노마’의 새로운 탐구, 윌리엄스의 말대로라면 “지구 최후의 날을 위한 계획”에 쓴다. 연구개발실로 쓰이는 그 사무실은 컨테이너를 포개 만든 곳으로 창문 한 쌍씩을 텄고, 안에는 오래된 이케아 주방과 중고품 긴 의자, 각종 요리 도구와 원심분리기 같은 과학 장비가 있다. 가파른 철제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디디는 발판이 거의 사다리 발받침에 가깝다.

컨테이너 내부는 일곱 가지 발효실로 나눠 놨는데 각 발효실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에서 영상 60도, 습도는 0에서 1백 퍼센트 사이로 각각 다르게 조절할 수 있다. 거의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윌리엄스와 존슨이 손수 지은 것이다. “배선 작업에만 일주일이 필요했습니다. 화요일 새벽 두 시에에야 간신히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윌리엄스가 말했다. 존슨은 제어반을 모두 재조정해야 했다.

‘NFL’에 있는 화이트보드 앞에 선 총책임자 라르스 윌리엄스. “북유럽 식재료로 파인다이닝에 도전하는 건 무모해 보였어요.” 뉴욕 출신인 윌리엄스는 존 밀턴의 < 실락원 >을 팔뚝에 문신으로 새겼다. ‘더 팻덕’과 ‘WD-50’에서 요리 경력을 쌓았고, 2009년 노마에 합류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식재료를 어떻게 혁신적으로 요리에 활용할지 연구한다.

두 사람은 가장 더운 발효실을 ‘가룸’실이라고 부른다.(가룸garum은 로마시대에 널리 쓰인 액젓으로 생선의 피와 내장을 발효시켜 만들었다.) 이곳에서 연구하는 것은 주로 단백질 발효로, 섭씨 55도에서 60도 사이에 최적점에 도달하는 효소 작용이다. 흑마늘 같은 채소 재료의 효소 발효는 인접한 발효실에서 개발한다. 누룩곰팡이균을 배양하는 발효실의 온도는 섭씨 33~35도 사이로 유지하고 습도를 높인다. 발효실은 한데 모여 있는데, 온도가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수확량이 고조에 이르는 9월이면 발효실 한 곳을 거대한 탈수기로 만든다. 섭씨 40도, 습도율 0퍼센트의 바람을 불어넣어 건조 과정을 촉진시킨다. 식초실과 콤부차(녹차 발효를 기본으로 한 음료)를 개발하는 젖산발효실은 괜찮다. 두 곳 모두 밀폐된 컨테이너에 있고 비슷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저장할 수 있다. 가을 오리 사냥철이 막을 올리면 염지 작업도 함께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을 저장하는 일은 ‘노마’에서 늘 중대한 사안이다. 윌리엄스와 존슨은 최근 폐기한 배춧잎에서 간장 1백 킬로그램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보관할 곳은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음식 이쪽저쪽을 훌쩍 넘나든다. 존슨이 “고등어와 장난치는” 방법을 얘기하면 윌리엄스는 “그때 막대한 메뚜기를 잡아들인” 얘기를 덧붙있다. 두 사람은 메뚜기로 앳젓을 만들어봤고 메뚜기액젓의 “단백질량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한다. 액젓 대화는 이어진다. 이 맛조개앳젓은 간장과 흡사하고 저 오징어액젓은 로마시대 액젓을 복원한 것에 가장 가깝다는 식이다.

“지금도 음식 분야에선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특히 과학을 접목한 레스토랑에서는요. 한 번도 끝난 적이 없죠.” 존슨이 말했다. “요리사가 미생물 생화학이나 풍미의 결합과 기질에 관한 화학 지식을 조금만 갖추고 있으면 식재료를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어요.” 윌리엄스는 자신들의 방법론을 ‘천연 생물공학’이라고 묘사한다. 발효는 오븐이나 프라이팬처럼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주방 도구와 같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노마’의 개발책임자 마크 에밀 톨스트럽 헤르만센 “그동안은 새로운 ‘노마’를 만들기 위해 연습한 거죠.” 헤르만센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사회인류학자다. ‘노마’가 운영하는 비영리조직이자 푸드 심포지엄인 ‘MAD’를 이끌고 있다. 그는 새로운 부지로 이주하는 프로젝트도 은밀히 추진했다.

“가끔 과학자처럼 요리하는 셰프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창조적 과정에 합리성을 도입하려는군’ 이렇게 생각을 하겠죠.” 존슨이 말했다. “하지만 절대 아녜요. 전 그 창조적 과정에 합리성을 도입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합리성이 창조성을 망쳐버릴 수 있으니까요. 과학은 어느 것이 맛있다고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녜요. 과학은 물질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그것을 통해 셰프가 갖고 있는 것들을 더 창조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올해 말이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노마’는 지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올해 1월엔 총 80명에 달하는 전 직원이 호주 시드니의 창고 건물로 캠프를 옮겼다. ‘노마’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서다. 2015년 도쿄 만다린 호텔에 문을 연 분점처럼, 2012년 런던 클라리지 호텔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연 것처럼 말이다. ‘노마’는 그 나라에서 난 식재료로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직원 80명과 그 가족들 모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새 도시로 이주하게 했다. 시드니의 팝업 레스토랑이 끝나면 5월에 코펜하겐에서 재개장하기로 돼 있지만, 이 공간도 12월 말이면 문을 닫는다.

그 후 ‘노마’는 목가적인 새 부지로 터를 옮겨 새로 문을 연다. 그리고 더 크고 야심만만한 계획에 착수할 작정이다. 기존 ‘노마’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자전거로 5분을 가면 덴마크 해군이 한때 광석을 보관하던 군용 창고 건물이 나온다. 히피와 무정부주의자들의 공동체인 크리스티아니아를 치맛자락처럼 감싼 동네다.

개발책임자 마크 에밀 톨스트럽 헤르만센이 건물 옥상으로 이어진 벽돌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는 동안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러 스친다. 건물은 두 호수 사이에 난 길고 좁은 매립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사회인류학자 헤르만센은 옥스포드에서 공부했고 1971년에 단종한 모리스 마이너 자동차를 몬다. 식품에 관한 진취적 사상가들의 가장 영향력 있는 규합이라고 할 수 있는 ‘MAD’를 이끌어왔다. 헤르만센은 지난 삼 년간 레드제피 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노마’를 덴마크 건축가 비야르케 잉엘스가 설계한 완전히 새로운 장소로 이동시킬 계획을 은밀히 추진했다. “지난 수년간 이 지역에서 할 요리법을 학습하고 연구해왔잖아요. 우리가 늘 연습해오던 레스토랑을 만들 겁니다.”

‘NFL’에 있는 원심분리기. 주스, 견과류 우유, 장미기름 같은 걸 정화하는 데 쓴다.

새 부지는 아직 버려진 공간과 다름없다. 그래피티 작가들에게 점령당해 빈 스프레이 페인트 캔이 바닥에 나뒹군다. 길이 1백 미터의 단층으로 현 레스토랑보다 훨씬 큰 규모다. 이곳에 사무실과 체련실을 비롯해 훈제장과 석조 화덕이 들어설 것이다. 허브와 채소를 심을 정원을 조성하고 작물이 늘어나면 호수에 부유식 평판도 띄울 예정이다. 옥상에는 겨울에 구할 수 없는 식재료를 키울 온실이 들어선다. 현재 쓰지 않는 녹지 대부분은 야생베리 덤불로 덮여 있는데, 그건 그대로 놔둔다. “너무 꾸며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헤르만센이 말했다.

새 ‘노마’는 현 생산자, 납품업자들과도 계속 관계를 이어갈 예정이다. 레스토랑은 농부들과 공유할 더 많은 퇴비를 생산할 것이고, ‘노마’의 요리사들은 땅에서 일하는 법과 그 땅이 담긴 요리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더 확실히 배울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을 키우고 가능한 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할 겁니다.” 윌리엄스가 호수 앞에 서서 말했다. 그곳에 서면 완공된 ‘노마’를 찾은 손님들이 탁자에 앉아 바라보게 될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접시 위에 올라오는 모든 것이 우리가 일구고 키운 것들이 될 겁니다. 우리가 접시 위 모든 요소를 통제할 겁니다.”

그래피티 작가들이 쓰고 버린 병과 모닥불 피운 흔적이 남아 있는 창고 안에서 헤르만센, 윌리엄스, 존슨은 배치도를 그렸다. 발효주방과 실험주방, 식기와 수저를 제작할 작업실, 고객사무실, ‘MAD’ 사무실, 체련실, 직원 식당, 준비 주방, 요리 주방 그리고 전체 부지로 따지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지금과 비슷할 식사 공간까지….

위)원래 있던 벌집들을 남겨놓은 노마의 중앙 현관. 올해 12월까지만 이 장소에서 영업하고 이후엔 여기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는 새 부지로 장소를 옮긴다.

테이블 12개짜리 식당이지만 ‘노마’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2015년 가을, ‘MAD’는 성인과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한 국제 채집 학교를(레드제피는 “그건 아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더 심오한 방법으로 그 아이들과 자연을 희망차게 연결해줄 거예요” 하고 말했다) 출범했고, 이번 봄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노마’ 최고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레드제피는 자신의 통솔 방식을 가다듬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인정한다. “모든 것을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물리적으로 없애야 했어요.” 레드제피가 말했다. “정말 대단한 결정이었지요.”

‘노마’의 레스토랑, 연구개발실, ‘MAD’를 다 둘러보고 나면 한 가지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레드제피가 레스토랑보다 더 값진 것을 좇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음식을 매개로 한 글로벌 공동체를 지으려는 것 같다. “우리가 성장해나가는 공동체로서 함께 일할 수 있고 서로에게 의지한다면 우린 각자 다른 일을 하지만 한 몸을 이루는 거지요. 그건 음식을 통해 인생을 탐험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재정적 성공과 지속 가능성과 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팀워크가 그러듯이요. 우리가 함께 일한다면 결국 우리 각자는 더 성공하게 될 거예요.” 레드제피가 말했다.

‘노마’가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그 지역에 맞게 개발할 수 있었던 힘은 위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다. 그 과정은 현지 생산물을 최대한 많이 맛보고 그 지역 생산물에 밑바탕으로 한 향신료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고 나서야 그 위에 요리를 쌓아올리는 과정을 시작한다. 윌리엄스는 최근 일본과 짐바브웨를 둘러보고 온 뒤 이렇게 말한다. “재료 본연의 맛에 근접하기 위해선 직관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 맛을 뒤집어보고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꾸는 것도 본연의 맛을 따라가면 가능합니다.” 시드니 ‘노마’는 이제 막 첫 삽을 떴다. 일정은 빡빡할 것이다. 윌리엄스는 2014년 크리스마스를 야생오리 1백 마리의 털을 뽑으면서 보냈다. 도쿄의 ‘노마’ 팝업 레스토랑 개장 준비 때문이었다.

초콜릿으로 감싼 식용 이끼를 준비하는 르네 레드제피와 그의 팀.

도시와 농장이 끊임없이 교류하도록 유도하는 ‘노마’의 방식은 레스토랑 주변의 공동체까지 개발할 것이고, 어쩌면 미식의 상위 계층 너머 인류의 먹는 방식에까지 광범위한 충격을 던질 수도 있다. ‘노마’의 납품업자들은 철저한 품질관리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납품업자들은 실험도 해야 한다. 버터 납품업자는 ‘보그 버터bog butter’를 개발하고 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인들이 수확한 우유를 토탄습지에 묻었다가 건초로 걸러내면서 독특한 풍미를 내는 우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노마’는 처음엔 버려진 창고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그 ‘노마’는 이제 새로 지은 해안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다. 레스토랑과 시 중심지를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는 거의 완성 직전이다. 20미터 확장 하나만 남겨놓았다. ‘노마’는 이제 변방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옮겨야 한다.

레드제피는 이렇게 말했다. “수입 대부분을 레스토랑 실험에 쓰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엄청난 거죠. 그러니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애정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걸 늘 머리에 새겨야 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다독여가며 일해야 하고 실패가 늘 그렇듯 비참한 기분도 엄청 자주 들 겁니다. 생각보다 터프한 일이죠. 이만하면 괜찮다는 타협적인 생각으로 어떻게 정신이 깃든 환경을 만들겠어요? ‘노마’에서 하는 모든 결정은 배짱이고 우리의 절실함입니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과 공동체를 확장해나가는 일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기꺼이 모든 위험을 떠안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레스토랑이 여기서 일 년도 못 버티고 없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짊어지고 가는 거다.’ 나에게도 물어봐요. 내가 그런 위험을 품고 살 수 있을까? 물론이죠.”

 

변화를 위한 시작

“우리가 원하는 건 음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겁니다.” ‘MAD’의 개발책임자 마크 에밀 톨스트럽 헤르만센이 말했다. ‘노마’의 비영리조직인 ‘MAD’는 식품 정보를 공유하는 일을 한다. 2011년에 시작한 연간 ‘MAD’ 심포지엄에서는 세계 유명 셰프들이 발표할 뿐만 아니라 화학자들, 농부들, 곤충학자, 농학자, 성게 캐는 잠수부까지 직접 나와 얘기한다. 더 나아가 ‘MAD’는 식품저술 개요서를 제작하고 성인과 아동을 위한 야생식품과 채집법에 관한 디지털 플랫폼까지 출범했다. 예일 대학교를 위해 경영수업을 고안하고 세계은행의 자문단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요리사의 창조적 잠재력은 레스토랑을 통해서만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품은 정치, 영양, 지정학, 문화, 직업, 굶주림, 미식의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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