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VS 짧은 머리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밤은 더욱 길어진다.

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상 거기서부터 섹스 아닌가? 얼굴은 얼굴. 거기서부턴 몸. 남은 건 그대로 미끄럽게 내려가는 일. 목은 연약하고 민감하니, 목에 입술이나 하물며 손가락이 닿으면 별안간 소리가 난다. 그렇게 대화를 청한 건 아니었지만…. 목에서 시작된(그리고 목으로 내는) 교성은 섹스가 끝날 때까지 커졌다 잦아졌다 높아졌다 또한 낮아지며, 서로의 몸을 더욱 긴장시킨다.

물론 목은 보자마자 대번 욕망을 자극하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길고 가는 손가락을 두고 별의별 상상을 하듯, 활짝 드러난 목을 쳐다보는 일은 꽤 야릇하기도 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움푹 파이는 옆 목, 쇄골에서부터 이어지는 바짝 올라선 힘줄, 두피와 피부의 경계선쯤의 촘촘한 잔머리, 간혹 어디까지 숨겨져 있을지 추측할 수도 없이 등으로부터 뾰족하게 올라온 타투…. 목은 대개 그림자가 지고 옷깃과 머리카락에 가려 있어, 가까이 가면 비로소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 그러다 몸이 닿았을 때 얼굴을 파묻으면 상대 목소리의 진동과 온몸의 맥박까지도 느껴지고야 마는 곳. 또한 목의 예민한 감각이란 남녀 불문 공통의 것이니, 과연 목이야말로 서로의 쾌락을 정확히 알고 자극할 수 있는 평등한 부위인지도 모른다.

긴 머리와 짧은 머리 여자. 사실 단발의 기준을 여전히 정확히 모른다. 그저 ‘커트 머리’와는 다르게 쓰인다는 걸 아는 정도. 그러면서도 그 명쾌한 말을 좋아한다. 단발머리. 그러니까 짧은 머리. 국어사전은 “귀밑이나 목덜미 언저리에서 머리털을 가지런히 자른 머리”라 설명하고 있지만, 어쩐지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단발머리보다 모호하게 들린다.

그러고 보면 단발머리라는 말의 명쾌함은 꼭 그 머리 모양을 닮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불면 하늘하늘 올올이 흩어져 맥없이 날리기보다, 굵은 덩어리로 힘차게 움직이는 듯한 인상. 더불어 앞이든 뒤든 옆이든 어느 쪽에서 봐도 목과 어깨를 잇는 곡선이 개운하게 드러나는 머리. ‘귀 밑’ 길이든 ‘목덜미 언저리’까지 길이든 그것은 공통되는 사항일 테니.

어깨 아래의 몸은 대개 옷 안에 있기 마련. 목으로부터 내리막을 타는 가파른 곡선은 곧 오목한 허리에서 넓은 하반신으로 이어지는 ‘커브’만큼 유혹적이다. 그리고 쇄골과 골반뼈라는 상대적으로 비슷한 위치의 관문을 지나면…. 목걸이처럼, 하지만 목둘레에 거의 꼭 맞게 차는 ‘초커’의 한바탕 대유행 또한 단발머리를 젖히면 솟아오르는 어떤 본능에 맞닿아 있는 건 아닐는지. 가늘고 팽팽한 스트랩으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적인 함의가 분명히 존재하는) 발목을 옭아매는 하이힐처럼.

머리 모양에 달린 꼬리표라면 이미 익숙하다. 긴 생머리는 청순하네, 커트 머리는 ‘보이시’하네, 세팅 파마는 우아하네, 한쪽으로 확 넘긴 금발은 섹시하네, 단발머리는 발랄하네…. 그렇다. 대개 단발엔 발랄 혹은 명랑 같은 수식이 머리핀처럼 따라붙는다. 글쎄. 과연 그렇기만 한가?

단발머리 여자와의 섹스. 어떤 자세, 어떤 체위, 어떤 행위 중에도 어렵잖게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꽤 특별하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브라질리언 왁싱’이 서로에게 얼마나 놀라운 즐거움을 주는지 알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달까.(시각적인 자극은 물론이고, 섹스 그 자체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침대에 오르면 손목에 묶어둔 머리끈으로 (그 머리끈을 입에 물고) 긴 머리를 질끈 ‘포니테일’로 묶는 경우도 많겠으나, 그것은 그 순간을 공유하는 쾌감에 가깝다. 온통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두고 ‘목부터 시작한’ 섹스에 풍덩 빠져드는 것 또한 거친 방식의 기쁨이겠으나 위로는 머리카락, 아래로는 체모 때문에 발생하는 정지 상황까지도 썩 반가운 건 아니니까.

머리맡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지난밤의 가장 명백한 증거. 물건을 놓고 간 게 아니라면, 그 나에겐 없는 몇 개의 곡선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 그래서 똑같이, 짧은 머리 남자는 여자의 이미 개어놓은 옷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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