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를, 엑소 카이

아침에 카이를 만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 노래를 떠올렸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 못 본 척 눈감으며 외면하고 / 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 / 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 / 비 적신 꽃잎에 깨끗한 기억마저 휘파람 불며 하늘로 날리면 / 행복은 멀리 파도를 넘는다 / 행복은 멀리 파도를 넘는다.” – 이수만 ‘행복’ 1977.

흰 셔츠, 프라다. 남색 와이드 팬츠, 준지.

“저는 빨간색이 좋아요. 솔직히 어울리지는 않아요. 가지라면 갖고 싶지도 않은 색깔이에요. 그런 게 아닌데도 빨간색이 제일 좋아요. 저한테는 아무 관계없는 색깔인데, 딱 보기만 해도 그냥 ‘색깔’이라는 게 좋아요. 근데 옷장엔 흰색이랑 검정색이 많아요.”

아침이라 눈이 부었을 거라며, 사진가랑 내심 기대했는데 말이죠. 아, 원래 신경 잘 안 쓰는데, 오늘은 신경을 쓰긴 했네요. 일찍 자고 물도 안 마시고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제가 사랑니를 뺐어요. 그래서 좀 붓긴 했는데.

사랑니를 뺐다니 그럼 첫 질문은 사랑에 대해…. 사랑니에 대해 되게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

그러니, 묻지 말라? 아뇨(웃음). 사랑니 하나를 처음 뺐을 때 세상에서 제일 심한 고통을 느꼈어요. 정말 너무 아팠어요. 이번에는 다행히 쑥 빠지더라고요.

매사 정확하게 느끼려 하나요? 저는 정확한 것보다는 애매한 게 좋은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 편이에요. 그걸 춤으로 표현하고자 하거든요. 안무를 짜더라도 되게 사소한 이미지에서 시작해요. 저는 그냥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걷는 거, 노래 듣는 거, 뭔가 이미지를 떠올리는 거. 어렸을 때부터요. 지금도 어리지만.

어려요? 네. 그런데 언제부터 어른인 거예요? 스무 살이 지나면 어른이 되는 건가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이 생기니까 좀 더 어른스럽다고 할 수는 있겠죠. 근데 전에는 어떻게 했길래요? 자기 말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저는 저를 어른이라고, 어른이 아니라고 구분하고 싶지 않아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스무 살을 통과한 것 같아요.

턱시도 수트, 생 로랑. 빈티지 티셔츠는 에디터의 것.

스스로 자주 돌아보고 조율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네요.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혼자 이렇게 가만히 있어요. 노래 들으면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거 너무 좋아해요.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물방울 하나가 똑 떨어지면 그게 막 튀잖아요. 거기서 점점 퍼져나가는 이미지. 그럴 땐 꼭 색깔을 넣어서 생각해요. 흑백일 때도 있고.

그룹 활동을 하다 보면 혼자 시간을 갖기가 쉽지만은 않죠? 저는 사실 친구가 많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전학도 많이 다녔고. 연습생 친구 몇 명, 멤버들 몇 명. 원래 사색을 즐기는 편이에요. 혼자 있는 것에 대해 어색한 게 전혀 없어요. 뭐, 외롭다 이런 거 없고, 심심하다 이런 것도 없어요.

외롭거나 심심하긴 할 거예요. 그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 말이 정확한 거 같아요. 저도 외롭고, 분명 심심한 것도 있지만 그걸 반드시 풀려고 하지는 않아요.

낮이 좋아요, 밤이 좋아요? 밤. 저녁 8시쯤. 아니면 새벽 2시. 예민해서 좋아요. 그 예민한 시간이.

터틀넥, 톰 포드.

“처음 제대로 맡아본 꽃 냄새가 졸업식 때 받은 꽃이었어요. 그때 이후로 꽃을 받으면 항상 냄새를 맡아요. 너무 좋아서. 근데 제가 꽃 냄새를 하나하나 기억할 정도로 꽃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향수도 많이 안 써요. 솔직히 상대방이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계절은 겨울을 좋아하나요? 네, 겨울을 좋아해요.

대개 태어난 계절을 좋아하죠. 맞아요. 좀 편안해요.

지금은 한여름이네요. 여름은 무조건 시원하게 나야 하는 거죠. 사실 여름은 바쁘게 살아야 되는 시간 같아요. 저도 늘 여름에 바빴어요. 항상 땀이 나 있었던 것 같아요. 춤을 췄고, 뭘 막 열심히 했어요. 여름은 제게 땀나라고 있는 계절 같아요.

음악은 늘 달고 살죠? 그렇죠. 솔직히 안 들을 수가 없죠. 하지만 “음악은 제 친구고요, 평생 함께할 동반자고요” 이렇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 같아요. 굳이 의미를 두면서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물론 까다롭게 고르겠죠? 그런 편이에요. 조용한 소리 좋아하고, 흑인 음악 좋아하고. 저는 그러니까, 노래가 없어도 춤을 출 수 있거든요. 소리만 있으면 돼요. 누가 옆에서, 오늘 나는 물을 마셨고, 물을 마셨는데 배가 아팠고, 말만 해줘도 춤을 출 수 있어요. 그냥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 무라마사를 자주 듣는데, 퓨처 베이스 하는 뮤지션인데, 제가 지금 틀어볼게요. 이런 거예요.

끝이 없을 것 같은 소리네요. 춤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라기보다는 저한테 그냥 자연스러운 게 춤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찾게 해주셨어요. 운이 정말 좋게도. 학원을 다 다녔어요. 모든 학원을 다 다녔는데, 재즈댄스 학원에 간 첫 날부터 춤을 미친 듯이 췄대요. 여덟 살 때. 솔직히 여덟 살 때 기억 안 나거든요. 아홉 살 때는 기억나는데, 여덟 살은 기억이 안 나요. 기억도 안 날 때부터 저는 이미 춤을 추고 있었던 거니까, 솔직히 제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태어날 때부터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제 기억의 처음은 춤과 함께였던 것 같아요. 특별히 내가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는 것이 행복하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제 첫 번째 기억이 춤이에요.

타고난 것처럼요. 근데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춘다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그런 춤은 싫었어요. 그냥 혼자 춘다는 게 좋았어요. 연습할 때도 항상 끝까지 남아서 혼자 연습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요. 지금도 솔직히 그런 부분이 남아 있어요. 제가 만족하지 않는 이상, 과정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연습 과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는 건 관객을 위한 일이지만, 그전에 첫 번째는 그냥 제 자신이에요. 그래서 하는 거죠, 솔직히.

시간이 지나고 있구나, 어떤 시간을 거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는 훌쩍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죠. 그때가 되어 뭔가 달라져 있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오늘을 기억하면서요.

갈색 실크 셔츠, 김서룡 옴므. 저지 팬츠, 버버리.

“요리는 못해요. 상상은 해요. 왠지 계란찜에 콘을 넣으면 맛있겟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요. 그래서 해봤더니 맛이 없더라고요. 정말 맛이 없었어요. 왜 맛이 없을까, 케첩이 없어서? 다시 도전해서 케첩을 올렸어요. 와, 정말 맛이 더 없더라고요. 그때 진짜 느꼈어요. 나는 요리를 못 한다.”

매순간 첨예하게 접점을 지나는 게 중요할 거예요. 시간이 흐르고, 뭔가 감각을 다시 찾는다는 얘기가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초심을 찾자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초심이라는 게, 그때 먹었던 마음가짐도 있겠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라는 생각도 해요. 데뷔 때 쇼케이스를 하던 순간의 감정이 제 초심 같아요. 올라갔을 때 느꼈던 행복. 그걸 느끼고 싶어요.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감정과는 다른 흥분이 느껴져요. 근데 생각을 해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느꼈던 그 행복한 흥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초심이라고 기억하나 봐요. 그걸 찾으려고 하고, 끊임없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게 있어요.

이제 촬영도 끝났고, 뭐 좀 먹어요. 그리고 여름 잘 보내요. 잘 보내고 싶어요. 근데 아까 얘기하다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그런 생각을 지금 계속하고 있거든요.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스스로에게 뭔가 말해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저는 아무 얘기도 안 할 것 같아요. 얘기하면 뒤에 있는 시간이 바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이제까지 지나온 시간이 너무 아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데님 셔츠, 준지.

“나중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죠. 그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을 옛날에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재미 없다, 찾아 듣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20년 뒤에 제가 클래식을 정말 좋아할 수도 있겠죠? 기분이 되게 묘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늘 돌이켜 생각하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사람이라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지? 그런 생각 많이 해요. 뭔가 강렬한 행복은 많았어요.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인가 싶은 그런 거요. 근데 소소한 행복, 마음이 오래도록 길게 행복한 그런 행복은 언제였을까. 방금 생각해봤는데 두 시절이 생각났어요. 하나는 연습생 때. 연습 끝나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집에 갈 때, 5백원짜리 음료수 하나 먹을 때. 다른 하나는 연습생이 되기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 어머니랑 둘이 살았을 때. 힘들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근데 이게 행복한 기억 맞는 걸까요? 행복한 기억은 아닌 것도 같아요. 많이 힘들었으니까요. 어느 날 제가 학원 땡땡이를 쳤어요. 너무 가기 싫어서요. 어머니한테는 학원 간다고 말하고 나왔는데 안 갔어요. 친구도 없고, 딱히 놀 것도 없었어요. 그냥 MP3 꽂고 정류장 근처를 정처 없이 계속 돌고 있었어요. 그냥 걷고, 보고, 노래 듣고 이러면서. 그러다 어머니랑 딱 마주친 거예요. 어머니한테 제 가방으로 등을 빡 맞았어요.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가기 싫어서 안 갔어.”, “너 지금 어디 가? 집으로 가?”, “아니, 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 “그래? 가자 그럼.” 그러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 시절. 그런 느낌. 지나간 느낌인데, 기억들. 아까부터 자꾸 그런 생각이 나요. 진짜 행복했어요.

그때 얼굴은 지금과 달랐어요? 조금 더 까맸어요. 조금 더 어두웠고 말도 없었고. 그리고 엄마랑 단둘이 있었어요.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힘들었던 만큼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땐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돈이 있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이 많다고 행복하지도 않고요. 갖고 싶은 걸 다 가져도 행복한 것과는 다를 것 같아요. 진짜 행복한 시간은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야 아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앞으로 가는 거겠죠. 좋은 걸 보고, 듣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저도 먹고 싶은데, 지금 사랑니 때문에…. 아까 촬영할 때, 소리를 한번 질러보자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실 이가 너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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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