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리우에 가지 않는다 – 유도 왕기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왕기춘 간지 유도관’이 문을 열었다. 7월, 역시나 대구의 더위는 막강했다. 부채를 건네니 그가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다. “원래부터 체육관을 하고 싶었어요. 수도권에서 할까 대구에서 할까 고민했는데, 수도권에는 체육관이 이미 2백 개가 넘어요. 어떻게 보면 몸을 사린 거죠. 쉽게 가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말은 겸손이거나 엄살이거나, 그런 게 아니다. 판단 그리고 밀어붙이기. 그는 경기할 때도 그랬다. 왕기춘은 유도를 ‘어떤 식’으로 하지 않았다. 벼락 같은 한 방을 노릴지, 물고 늘어져 상대가 나가 떨어지게 만들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선수였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대라니. 그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왕기춘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여러 이야기 중에 ‘올림픽 금메달’은 없었다. “스무 살 때는 베이징 올림픽만 봤어요. 베이징 올림픽이 그렇게 끝나고는 런던만 봤고요. 런던 올림픽 끝나고 나서는, 솔직히 리우 올림픽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흔들렸다기보다는. “이번에 마지막 선발전을 할 때, 왠지 (이)승수가 1등할 것 같았어요. 그런 느낌이 스며들더라고요. 느낌이 팍 온 게 아니라 스며들었어요. 승수랑은 친해요. 특히 친한 선수끼리 어울리는 모임이 있는데 승수도 거기 멤버예요. 사석에서 항상 그랬어요. 승수야, 우리는 누가 올림픽을 나가든 서로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이다. 형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하자. 결국 제가 승수를 응원하게 됐네요. 전에는 목숨 걸고 올림픽을 준비했는데, 이제 에어컨 틀고 즐겁게 봐야죠. 저한테 올림픽은 갑자기 의미가 없어졌어요. 냉탕 온탕처럼 구분이 확실해진 것 같아요. 열탕처럼 뜨거웠다가 이제 그냥 냉탕처럼 차가워진.” 지구 저쪽에서 올림픽이 한창일 때, 그도 대회에 나간다. “8월 13일에 처음 시합을 나가요. 대구시장배 생활체육 유도 대회에 여자 1명, 남자는 고등부 3명, 청년부 4명 데리고 나가는데 정말 너무 설레요. 저는 이제 엘리트 체육에서는 나왔다고 생각해요. 인근 학교에서 선수들을 좀 봐달라는 요청도 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요. 목숨 걸고 하는 유도 말고, 그냥 즐거운 유도를 하고 싶어요.” 부채질을 하며 그가 웃는다. 생각해보니, 그는 유도를 하지 않을 때는 늘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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