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레게, 페어브라더의 ‘남편’

페어브라더의 데뷔 음반 < 남편 >이 나왔다.

이건 11년 전 사진이죠. ‘정소울’이라는 이름으로 < GQ >에 실렸고요. 음악가 정소울에게 묻는다면, 그 동안 뭘 했나요? 스스로 음악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음악가는 어떤 사람인가는 많이 생각했죠. 일을 제외한다면,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모든 의미를 좋아해요. 포털 사이트의 외래어 사전은 협소하고, < 어번 딕셔너리 > 정도면 적절하겠네요. 아마추어로서, 음악을 듣고 좋아하고 알고, 알고 있으므로 뭐든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죠.

페어브라더는 2002년 캬바레사운드의 컴필레이션 음반에 ‘잎떨어지는넓은잎큰키나무’를 발표한 이후론 감감무소식이었죠. 당시엔 밴드였고요. 군대에 다녀왔더니 친구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어요. 다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달까. 그럼에도 음악을 해보자고 억지를 썼는데 잘 안 됐죠. 그때 저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분노였어요. 어떻게 음악을 안 할 수 있지? 됐어, 나 혼자 할 거야! 라고.

그동안 드문드문 디제이 영몬드로 활동한 것 외에는, 음반을 낼 거란 단서도 없었고요. 창작은 늘 손과 발이 늦게 따라오는 의지죠. 하지만 음악을 튼다는 건(제가 전문적인 디제이가 아니므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겁고 쉬운 일이거든요.

< 남편 >을 듣고 뭘 꼬치꼬치 따지려는 생각을 접었어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악기를 다루는 요령도 그것을 배치하는 방식도 ‘난데없다’는 말이라면 어떨까요? 제대로 들으셨네요. 아주 쉬운 멜로디를 아주 이상한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거칠게나마 관점이었죠. 자신도 있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칠 줄 아는 노래가 없는 사람이 모든 악기를 다룬다면 분명히 이상한 연주를 할 테고, 그 문법을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 레게라는 장르는, 마치 노래를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들리거든요.

이를테면 선공개한 ‘여름밤’의 끝부분이 그렇죠. 전혀 등장하지 않던 스트링 샘플이 나온다든가. 창의력 수치를 좀 높여보고자 했죠. 모든 샘플링 중 90퍼센트의 출처가 레게인데, 애호가 분들이 그걸 알고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하필 그런데 보컬도, 멜로디언도, 기타도 흐르는 가운데 스틸팬 연주에서만큼은 욕심이 보였달까요? 순전히 ‘Skanking’ 때문이었어요. 군대에서 행군하는 중에 머릿속으로 끝까지 완성한 노래인데, 진짜 스틸팬으로 쳐야만 할 것 같았어요. 미친 가격을 지불하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주문했습니다.

라이브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랩톱을 쓰지 않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보여줄 만한 형식을 연구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덥’을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꽤 새로운 경험일 테고요. 제게 ‘덥’이라는 건 악기의 하나처럼 생각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혼자서 ‘그것까지’ 할 수 있는가가 문제죠.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들었을 때 더욱 좋았어요. 그 난데없고 낯선 냄새를 경계하지 않고 쭉 받아들이듯. 아주 거칠고 낯선 음악이 저라고 생각한 어린 시절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언제나 한번 들으면 좋은 쉬운 노래를 아껴온 것 같아요. ‘아주 쉬운 멜로디를 이상한 형식으로 만들자’는 이야기의 연장선인데, 저는 편곡이야말로 음악가의 취향, 지식, 이상 등등이라고 생각해요. 친절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그래서 느슨하게 묻자면, 이것은 100퍼센트 레게 음반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좀 더 BPM을 올렸을 거예요. 지금 세대가 듣기에 이 음악은 확실히 느리니까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레게라는 형식에 대한 계몽주의적인 뜻도 있었어요. 이 음반은 틀림없이 성공하지 않겠지만, 몇 명의 친구나마 더 생길 수 있다면 파티를 하든 뭘 하든 더 재밌어질 테니까.

직접 쓴 소개 글에서는 음반 이름 < 남편 >을 언급하며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노력”에 대해 말했죠. 음악은 도라에몽 같달까요. 제가 실수하고 좌절하고 망해도, 돌아가면 그 자리에 있어요. 심지어 마법을 보여주기도 하죠. 하지만 음악을 듣지 않을 때의 저는 마법을 믿지 않아요. 도라에몽도 없고, 마법도 없는 세상에 음악이 있었고, 음악을 만드는 건 이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어요.

흔히 ‘레게’ 하면 곧장 떠오르는 유의 그런 사람은 아닌 듯 보여요. 사랑하는 대상을 억지로 흉내 내기보다 멀리 두고 존중하는 쪽의 태도 같달까요.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제 관심은 백비트, 극도로 낮은 베이스, 아름다운 하모니가 어우러지는 형식이 어떻게 우리를 매혹시킬까고요.

비판이든 열광이든 그 대상이 되기 쉽지 않은 음반처럼 들리기도 해요. 시끄러워지기보단 아는 사람들끼리 즐기고 지나갈 것만 같은. 참을성이 많은 편인데, 유독 못 참는 게 시끄러운 거예요.

‘남편’이기보다는 분방한 애인의 태도를 취했다면, 좀 다른 음반이 나왔을까요? 분명히 애인의 태도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겠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어른을 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으로 이어졌죠.

FAIRBROTHER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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