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자동차 5 (시트로앵 DS / ‘고환’)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시트로엥 ‘DS’, < 고환 Les valseuses > 1974 젊은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 고환 >을 찍고 나서 얼마 후에 죽어버린 파트릭 드베르는 영화 안에서 손쓸 수 없는 망나니 좀도둑이다. 주로 차를 훔치고 여자를 희롱한다. 영화가 시작된 지 2분 20초 만에 차를 훔친다. 마칠 때까지 여러 대의 차가 나오는데, 처음 훔치는 차가 ‘DS’다. 덩치 큰 두 남자가 작은 차 속에 매장된 것 같은 모습이 귀엽다. 여자를 훔치려다 고환에 총알을 맞고 다시 ‘DS’를 타고 달린다. 고환에 총 맞았다고 뭘 그렇게 요란을 떠는지. 그 모습이 귀엽다.

 

 

닛산 ‘티아나’, < 아웃레이지 비욘드 Outrage Beyond > 2012 크레인이 바다에서 검정 세단을 끌어올린다. 차 있던 물이 틈새로 흘러내리면서 커튼처럼 드리워진다. 붉은색 제목이 박힌다. 육지로 건진 차에서 무거운 자루 같은 시체를 꺼낸다. 정통 야쿠자 영화의 오프닝 방식을 충실히 따른 도입부다. 이 영화는 멋진 아저씨 천국이며, 고급 세단의 전시장과도 같다. 세르시오나 시마, 센추리 같은 일본제 고급 세단이 넘치게 나오지만 물 속을 박차고 나오는 ‘티아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링컨 ‘프리미어 컨버터블 57년형’, < 슬럼버 파티 57 Slumber Party 57 > 1976 이 영화를 보진 못했다. VIDEOTAPEMUSIC이라는 일본의 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짧은 클립을 보았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7박 8일 동안 장기 대여를 해줄 만큼 퇴물이 된 데이프를 수거해 클립과 함께 음악을 믹스하는 작업이었다. 뚜껑이 없는 ‘프리미어’를 탄 여섯 소녀는 합창을 하며 놀러 나간다. 앞줄 세 명은 붉은 옷, 뒷줄 세 명은 푸른 옷을 입고 있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 괜히 손톱을 들여다보며 따분한 듯 어디론가 간다. 소녀들의 합창 위로 수십 년 후에 만든 노래가 겹칠 때 목에 음식이 걸린 것처럼 내 몸을 쳤다.

 

 

허머 ‘H2’, < 트웬티나인 팜스 Twentynine Palms > 2003 여자는 운전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다. 겁을 내지만 점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운전을 가르쳐주던 남자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는다. 붉은색 ‘H2’가 사막을 달린다. 갑자기 한 차가 뒤따르기 시작한다. 불쑥 나타난 차는 ‘H2’를 따라잡고 괴한이 남녀를 끌어내린다. 괴한은 폭력을 휘두른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동물처럼 부르짖는다. 사막 위에는 붉은 차와 고꾸라진 남녀가 엎어져 있다.

 

 

도요타 ‘코롤라 LX’, <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 2012 북송사업으로 가족과 떨어져 북한에 살던 성호는 3개월 동안 고향인 일본으로 잠시 돌아온다. 어디든 서성거리는 감시자와 함께. 고향집 길목으로 들어서던 성호는 차에서 내려 더듬더듬 길을 밟는다. 북으로 돌아가는 성호는 다시금 하얀 차에 실려 거리를 빠져나간다. 여동생 리에가 다리를 삐걱거리며 차를 놔주지 않겠다는 듯 따라간다. 성호는 차를 만지작거리는 리에의 손을 떨쳐낸다. 리에는 소리도 없이 울고 만다. 나는 그렇게 우는 여자애를 또 한 명 알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AMC ‘그레믈린 73년형’, < 미스테리어스 스킨 Mysterious Skin > 2004 작고 조용한 마을의 동네 일색인 닐은 섹스가 우습다는 듯이 공원에서 함께 잘 사람을 고른다. 홀로 앉아 있으면 좋은 차를 탄 각양의 남성들이 다가선다. 모르는 차를 따라다니는 닐은 용돈 버는 날을 제외하면 가장 친한 친구 에릭의 ‘그레믈린’을 탄다. 바둑판 무늬로 덧씌운 핸들,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괴상한 차에서 옆 차 운전자를 도발하려고 동성과 키스를 하다가 쫓기고 욕을 퍼붓는다. 지금 홍대 바닥에 이런 차 한 대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링컨 ‘타운카 이그제큐티브 L’, < 맵투더스타 Maps To The Stars > 2014 얼뜨기로 분한 미와 와시코브스카가 로버트 패틴슨이 모는 리무진 앞에 선다. 마치 홍상수 감독이 옷은 알아서 입고 오라고 배우에게 주문한 것처럼 촌스럽고 어색한데, 아마 다 명품이고 계산된 스타일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칠 무렵, 둘은 정말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밀치고 들어온다. 멋진 리무진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벤츠 ‘E280 83년형’, < 송곳니 Kynodontas > 2009 그리스 수도 근교의 저택에 이상한 가족이 산다.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세 남매는 아버지가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것들에 의지하며 지낸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 트렁크에서 식료품을 꺼내 라벨을 전부 제거한다. 아들의 성욕을 풀어주는 과외 선생님을 차로 실어 나른다. 남매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이윽고 딸은 한밤중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자기 몸을 가둔다. 아침이 되고 아버지의 일터 앞에 세워진 차가 오래도록 잡힌다.

 

 

뷰익 ‘르세이버 1960년형’, < 리치몬드 연애소동 Fast Times At Ridgemont High > 1982 어떻게든 이성과 자보려는 아이들의 이야기. 사랑과 섹스와 낙태, 마약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하이틴물에 자동차는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나오는 남자애들은 여자애만큼 차를 아낀다. 난데없이 The Ravyns의 ‘Raised On Radio’에 맞춰 ‘르세이버’를 세차하는 장면은 차라리 광고에 가깝다. 정말 열심히 닦다가 여동생이 지나가자 수영장 청소는 왜 안 하냐고 묻는다. 웃을 수밖에 없다.

 

 

시트로엥 ‘DS 택시’, <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1962 앞서 시트로엥을 언급했지만 택시는 다른 편에 놓았다. 건강검진 결과를 앞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젊은 가수 클레오는 두 시간 가까이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클레오가 여성 운전사의 택시를 잡아탄 후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만담이 펼쳐진다. 운전기사는 샹송을 틀고 클레오는 듣기 싫다고 고집을 부린다. 자신이 망친 노래다. 멈추라고 종용하자 운전기사는 차를 멈춘다. 클레오는 차가 아니라 노래라고 설명한다. 정신없이 대화를 따라가다 클레오가 내릴 때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운전석 옆자리에 번호판이 붙어 있다.

 

영화와 자동차 6 (쉐보레 콜벳 C3 / ‘애정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