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버스에서 생긴 일

2016년, 서울에서 내 나이로 산다는 것,  도시를 관찰하지만 발붙이지 않는 40대, 미로 속에 빠진 듯한 30대, 밥벌이를 고민하는 20대. 개인이 쌓고 제각각 흡수한 서울의 시간에 대하여.

김수지 29세, 번역가, 모바일 앱 리뷰어

서울의 어디에 사나? 서초동. 부모님 집에 살고, 집세를 안 내도 된다는 점과 조용한 동네라는 점이 좋다. 토박이가 많아 시골 마을처럼 서로 잘 안다는 점은 별로다. 낮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역삼동 사무실. 그렇다면 밤 시간은? 여름밤은 한강 공원과 이태원. 겨울엔 추워서 집에만 웅크리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양재천 콘크리트 다리 밑. 특히 밤에 좋다. 서울에서 가장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뭘까?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곳과 가장 달라 보인 세계의 도시는 어디인가? 홍콩. 서울이 손님을 맞을 때 집 안을 쓸고 닦는 도시라면 홍콩은 누가 오든 민낯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회사 사람들. 여기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미세 먼지가 몰려올 때. 최근 서울에서 10년간 벌어진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 코엑스 앞에 ‘강남스타일’ 동상이 세워진 것. 서울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무엇’을 꼽는다면? 편리함. 그렇다면 가장 과소평가된 것은? 기민한 서울 사람들. 이 도시에 살며 세운 계획이 있나? 없다. 단기적으로는 이번 주엔 맛있는 걸 먹자, 정도.

서울에 살며 자주 버스를 탄다. 대부분 세 자리 숫자를 단 파란 시내버스들. 대학 생활 4년은 한남대교와 종로를 가로지르는 등하교 노선 위에서 보냈다. 140번을 타고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앞을 지나다니며 거리에 상주하는 노인들의 일과를 구경했다. 공원에 나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란 것을 알게 됐고, 상가와 거리 뒷골목에서 리어카를 끌거나 쭈그려 앉아 장사를 해야하는 빈곤한 노인들을 보며 서울에서의 내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품기 시작했다. 470번은 관광객들이 가득한 안국역 앞에 나를 내려줬다. 내가 매일 감흥 없이 지나다니는 등굣 길을 누군가는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며 한옥 마을을 지나다녔다. 그 길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서울 토박이인 아버지가 졸업한 중앙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서울에 내린 나의 뿌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려주는 카운트업 숫자가 보이는 듯했다. 깃발과 메가폰을 들고 각종 구호를 외치는 친구들을 따라 신문로나 태평로를 행진한 다음 471번이나 472번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 버스들에서 내려, 후미진 주택가의 우리 집과 시내를 이어주는 144번으로 갈아타기 위해 강남역에 내려 나를 포위하듯 환하게 불을 밝힌 영어 학원들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140번 버스를 타고 느낀 미래의 빈곤에 대한 불안을 모두가 느끼고 있고 그걸 불식시키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애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더 다양하고 세밀한 장소들을 돌아다녔다. 주로 일 때문이었고, 길 찾기 어플로 찾은 처음 보는 번호의 버스를 자주 탔다. 여태 많이 돌아다녔다 생각했는데도 계속 모르는 동네가 나오니 서울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새삼 실감됐다. 여의도나 테헤란로는 물론이고 석촌호수 앞 아파트 단지에 가도 사무실이 있고 통의동 주택가에 가도 사무실이 있으니, 서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하는지 흥미가 솟구쳐 설레기도 했다. 돈을 쓰기 위해 버스를 타는 일도 잦아졌다. 더 재밌는 것, 더 맛있는 것을 찾아 돈을 쓰기 위해 가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동네로 향하는 버스들도 종종 탄다. 그런 동네들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740번이나 360번 등의 버스를 타고 익숙한 정류장이 나올 때까지 엉덩이가 아프도록 앉아 있는다. 때로는 익숙한 노선을 타고 가다 전에는 내려본 적 없는 정류장에 내려 을지로 일대나 연희동처럼 눈으로 보기만 했던 동네들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서울은 꽤 넓기에 10년 남짓 이렇게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고 해서 내가 서울의 구석구석을 전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제 이 도시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경우의 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일터로 가는 지름길부터 시작해, 어떤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 어느 카페로 가야 하는지, 어떤 작품을 보려면 어느 미술관에 가야 하는 지 같은 사소한 정보들까지 알고 있다. 설령 버스를 잘못 타거나 모르는 곳에 떨어지더라도 내가 대략 어디쯤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의 지리에 익숙하다. 들러본 장소의 수가 늘고 어느 동네에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게 되면서 나에게는 서울이 점점 좁아져 갔다. 버스 노선처럼 지점과 지점을 이은 선들로 구성 되어 있는 서울. 처음에 이곳은 나에게 세 자리 숫자로 이루어진 경우의 숫자만큼이나 커다란 도시였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직접 가보지 않은 곳까지 포함해 서울이란 이 큰 도시가 아주 익숙하고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대학생 때 동대문 원단 시장에 가기 위해 301번을 자주 탔다. 섬유에서 나온 각종 먼지들과 건조한 실내 공기로 뻑뻑해진 눈을 끔뻑이며, 짐을 한가득 실은 오토바이와 노점상들로 뒤덮여 정신 바짝 차리고 걸어야 하는 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301번, 420번 버스를 기다리며 밀리오레 건물 앞에 서 있으면 옆에 있는 빨갛고 파란 조명을 쏴대는 야외 무대에서 정체 모를 행사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석에서 모인 사람들 중 몇 명을 무대에 올리고 인기투표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밀리오레 건물 앞에 가면 “얼굴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세요”라던 그때 사회자의 외침 이 귓가에 맴돈다. 몇 년 후 노선이 바뀌어 301번을 타고 동대문에서 학교까지 가지 못하게 되었고, 또 몇 년 후에는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디자인 플라자라는 건물을 짓는단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원단 시장 앞에 메리어트 호텔이 생기더니 광희동 일대까지 부티크 호텔(서울에서 이 명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이 쭉 늘어섰다. 전에는 경동 교회부터 동대문운동장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구서울’의 모습을 전시하던 이 지역은 이제 은색으로 번쩍대는 거대한 공원과 금색으로 반짝이는 부티크 호텔 사이에서 여전히 마음을 보는 인기투표가 진행되는 초현실적 장소가 되었다. 버스 창밖으로 이도저도 아닌 모습이 되어버린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의 상념들까지 엉거주춤해지는 것 같다. 아무도 이 도시의 지향점이 어딘지 모른다.

서울이 좁다란 평면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속도다. 나의 욕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울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었다. 초등학생 때 전화선으로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고, 중학생 때부터는 이미 절반 이상의 정보를 인쇄된 활자가 아닌 모니터 속 코드로 전달 받았다. 앉아서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도서관 깊숙히 묻힌 정보까지 알 수 있다니, 내 머릿속의 세계는 빠른 속도로 팽창해갔다. 몇 년 전 뉴욕 현대 미술관에 갔을 때 모니터가 닳도록 검색해본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 한참 서 있다 온 후, 나는 내 안에서 뭔가 완전히 바뀐 걸 깨달았다. 현실에서 원하는 것을 충족하는 삶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서울에서 좋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 멋진 음악을 트는 사람들, 재밌는 파티를 여는 사람들을 찾아낸 다음 낯선 골목길을 굽이굽이 찾아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만든 것에 돈을 지불한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저임금이나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사라져버린다. 나는 강남역이나 홍대입구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다시 한없이 인터넷을 뒤진다. 매일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고 결국 서울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몰개성하고 의미 없는 여가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나의 욕구는 랜선의 속도로 달려가는 데, 서울은 버스를 타고 쫓아오는 셈이다.

언뜻 서울은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거리의 모습도 계속 바뀌고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양새도 지속적으로 바뀐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이 변화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아리송하다. 시내 어딜 가도 와이파이 접속이 되지만 그것으로 찾을 수 있는 서울 속 정보의 내용은 늘 비슷하다. 서울에 오는 외국인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들이 여기서 가지는 직업도, 하는 활동도, 모이는 동네도 별 차이가 없다. 동네마다 모습이 계속 바뀌긴 하는데 무엇을 위해 바뀌었는지 알 수 없고, 그렇다고 향수를 자극할 만한 옛 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다. 어느 장소에 가도 그곳의 분명한 실체를 알기 어렵다. 낡은 복도식 아파트가 허물어 진 자리엔 어김없이 로비에 대리석을 깔고 외벽에 커다랗게 브랜드 이름을 단 주상복합 아파트가 생긴다. 해마다 새로운 이름의 ‘힙한 동네’가 등장하지만 막상 가보면 직접 원두를 로스팅한다는 ‘스페셜티 커피’ 카페만 즐비하다. 주말에 하루 종일 커피만 마시고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인데.

이제 서울은 이 도시를 소비하고자 하는 나에게 무언가 뚜렷한 개성이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고,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말하기에도 애매한 곳이 돼버렸다. 더 다채로운 색깔의 도시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나의 욕구가 서울이 보여주는 변화의 속도를 훨씬 앞지른다. 그 느린 변화가 확실한 지향점을 갖고 나아가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20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뭐든 새롭고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일상의 권태이건 서울과는 다른 색채의 도시를 향한 갈망이건, 어쨌든 분명한 것은 버스를 타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는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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