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자동차 9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 / ‘자칼의 날’)

영화 역사에 등장한 가장 매혹적인 자동차 100대, 자동차 역사에 아로새길 100편의 영화. 우리는 영화를 떠올리며 자동차를 생각했다. 자동차를 기억하며 영화를 다시 봤다.

시트로엥 ‘DS 21’,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 2011 한 사람이 소유한 자동차는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기 마련이다. 원작에서 스포츠카(TV 시리즈에서는 모건 4/4)를 몰고 다니는, 조지 스마일리의 말마따나 ‘젊은’ 피터 길럼이 영화에서는 과연 어떤 차량과 함께 등장할지 기대하고 있던 차에 난데없이 나타난 시트로엥 DS 21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아한 외관과 부드러운 유압식 서스펜션을 자랑하는 DS는 새롭게 정의된 피터 길럼에 대한 단서와도 같았다.

 

 

람보르기니 ‘미우라’, <이탈리안 잡> 1969 오렌지색의 미우라가 알프스의 산중 도로를 달리고 있다. 미끄러지듯 터널 안으로 진입한 미우라는 잠시 후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되고, 미우라를 박살 낸 불도저는 그 잔해를 산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이 장면에는 두 대의 미우라가 사용되었고, 산 밑으로 떨어진 미우라는 진짜였다. 물론 여러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같은 영화에서 마피아의 포크레인 삽날에 박살 나는 애스턴 마틴 DB4 컨버터블이 란치아 플라미니아를 개조한 차량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알파 로메오 ‘6C 2500 프레시아 도로’, < 대부 > 1972 형의 복수를 마치고 시칠리아로 도피한 마이클은 ‘미켈레 코를레오네’의 삶에 적응해간다. 그는 루파라로 무장한 경호원을 대동하고 으리으리한 고급차, 즉 ‘프레시아 도로(금빛 화살)’를 몰고 다닌다. ‘프레시아 도로’는 알파 로메오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만든 그란 투리스모다. 극 중에서 암살자가 설치한 폭탄에 아폴로니아와 함께 불타버린 ‘프레시아 도로’는 이후 애호가와 연구자들의 집요한 추적에도 그 행적이 묘연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진짜로 이 차량을 박살냈다고 생각한다.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 < 자칼의 날 The Day of The Jackal > 1973 지금의 높아진 눈높이로 보면 어설프지만, 어린 내게 청부살인업자 ‘자칼’의 치밀함을 상징하는 것은 그의 분리식 저격총과 흰색의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를 숲 속에서 새로 칠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에서 자칼은 콤프레서와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멋지게 파란색으로 도색하지만 원작에서는 붓으로 칠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의 어느 모형 잡지에 연재되었던 영화 속 차량을 다룬 기사에는 “자칼은 암살보다 도색의 전문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언급되기도 했다.

 

 

경찰차 ‘롤라 T-70을 개조’, < THX-1138 > 1971 어릴 때 본 어떤 영화에 대한 기억은 멋진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벌이는 추적 장면이 전부였다. 어른이 되어서야 제목을 알았고, 디지털 효과가 추가된 감독판도 보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CG가 원래의 육중하고 어두운 매력을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 영화의 경찰차는 영국제 ‘스포츠카(최상위 성능 경주용 차량을 의미)’인 롤라 T-70을 개조한 것이다. 이 차의 굉음 덕분에 촬영 당시 인근 주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엔진 소리를 원했던 조지 루카스는 결국 F-86 세이버의 착륙 시 소음을 녹음해서 사용했다.

 

 

캐딜락 ‘알란테’, < 탱고와 캐쉬 > 1989 탱고(실베스타 스탤론)는 마약수사관이며 날렵한 수트 차림에 멋진 로드스터를 몰고 추격전을 벌인다. 다만 탱고의 차량은 페라리가 아니라 GM의 캐딜락 알란테다. 알란테는 < 폭주기관차 >의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와 스탤론의 조합만큼이나 기묘한 차량이다. GM이 만든 차대와 엔진에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에서 직접 제작한 차체를 조합한 알란테는 메르세데스-벤츠의 SL을 타깃으로 삼은 로드스터였지만 반응은 이 영화만큼이나 초라했다.

 

 

GMC ‘M211’, < 워맨 Sorcerer > 1977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 공포의 보수 >를 리메이크한 < 워맨 >의 원래 제목은 ‘마법사 Sorcerer’라는 뜻이다.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지 않으며 ‘마법사’는 주인공 일행이 타는 두 대의 트럭 중 하나(다른 하나는 ‘라자로’)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우 속에서 위태로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움직이는 ‘마법사’와 ‘라자로’는 마법사의 부름을 받고 몸을 일으키는 소환수를 연상시키고, 이야기 끝에 도사리고 있는 주인공의 운명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망크스 듄버기 ‘6기통 코베어 엔진 개조형’, <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 > 1968 스티브 매퀸은 자동차 열광자일 뿐만 아니라 차를 정말 거칠게 다루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 블리트 >의 추격전이지만 그를 상징하는 것은 <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 >에서 해변을 질주하는 망크스 듄버기가 아닐까. 듄버기는 폭스바겐 비틀의 플랫4 엔진으로도 60~70년대의 모래톱을 지배했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차량은 쉐보레 코베어의 6기통 엔진을 얹은 무지막지한 개조형이었다. 스티브 매퀸이 모래톱을 휩쓰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조수석에 앉은 비키(페이 더너웨이)의 목뼈 상태를 가장 먼저 걱정할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450SEL 6.9’, < 어떤 만남 > 1976 V12 엔진의 폭발음과 함께 새벽을 달리는 자동차의 전방 시점이 8분여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그게 이 영화의 전부다. 사실 엔진 소리와 기어 변속음은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보유했던 페라리 275GTB의 소리를 더빙한 것이고, 실제 촬영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450SEL 6.9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형 세단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이름 뒤에 수상한 ‘6.9’가 암시하듯이 최고속도가 시속 235킬로미터에 달했으며, 어떤 운전자들은 철없는 스포츠카를 골려주기 위해 일부러 ‘6.9’ 배지를 떼기도 했다.

 

 

볼보 ‘P1800’, < 스파이 브리지 > 2015 정체불명의 동독 변호사인 포겔은 그 동네의 살벌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볼보 P1800을 과속으로 몰아 도노반을 질리게 만든다. 사실 P1800은 빠른 속도로 유명한 자동차는 아니다. < 세인트 >의 주인공 사이먼 템플러의 차량으로 잘 알려진 P1800은 볼보에 대한 선입견인 ‘각지고 단단함’과 다소 거리가 있다. 아마도 카로체리아 프루아에서 수련한 펠레 페테르손이 디자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한때 프루아와 협업했던 카로체리아 기아의 스타일(이탈리아식 핀테일!)도 은연중에 가미되어 북구의 절제미와 함께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페라리 ‘250GT 캘리포니아’, < 페리스의 해방 Ferris Bueller’s Day Off > 1986 아버지에게 들킬까 봐 불안해하는 카메론을 뒤로한 채 페리스는 페라리 250GT 캘리포니아를 거침없이 몰고 나간다. 멀어져가는 차의 뒷모습에 ‘NRVOUS(소심)’라 쓰인 번호판이 선명하다. 하지만 카메론의 아버지를 소심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250GT 캘리포니아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단 50대만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주행거리가 1백26마일에 불과할 정도로 카메론의 아버지가 애지중지했던 이 차량은 저 유명한 ‘스타워즈 비행’을 하며 신나게 굴려지다가 결국 낭떠러지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

영화와 자동차 10 (랜드로버 디펜더90 / ‘섹스 앤 더 시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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