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마지막 바람

미국의 45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집무실을 곧 비우겠지만, 그의 생각과 바람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테크놀로지 잡지 <와이어드> 11월호에 객원 편집기자로서 참여하고, 또 직접 쓴 서문을 이곳에 옮긴다. 미래를 보는 오바마의 시각, 과학을 대하는 오바마의 태도, 아이들을 챙기는 오바마의 마음이 이 글에 모두 담겼다.

월간지 <와이어드>에서 11월호 객원 편집을 요청했을 때, 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요즘 한창 선거 시즌이고, 저에겐 여유를 별로 허락하지 않는 본업이 있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저에게 우주여행의 가능성이나 인공지능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지 흔쾌히 승낙할 겁니다. 전 이런 주제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언제나 그래왔죠. 최근 가장 즐겁게 본 영화도 <마션>이었으니까요. 물론, 미국인들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을 극복하고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는 내용의 영화라면 제가 좋아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 영화가 정말 저를 매료시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인류가, 천재성을 통해서, 사실과 논리에 의존해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어떠한 문제든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타트렉>을 보며 자란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쇼가 저의 세계관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죠. 저는 그 쇼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그 쇼 내용의 핵심에 있던 메시지.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의 사람들이 다양한 배경과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가 협력해서 미국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없지만, 과학과 기술이 우리에게 빛보다 빠른 속도의 변화를 가져다줄 원동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장애물들을 극복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케이블 뉴스와 SNS에서 보고 듣는 소란들과 상반되는 얘기란 것 압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누군가로부터 우리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든지, 세상이 말세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런 비관주의자들 혹은 두려움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무시해버리세요. 만약 인류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 살고 싶은 시대를 택할 수 있다면, 당신이 이 시대를 선택할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바로 여기 미국에서, 바로 지금 이 시대.

인단 큰 그림부터 보도록 합시다. 거의 모든 수치로 비교해봐도 이 나라는, 그리고 이 세계는 50년 전, 30년 전, 심지어 8년 전보다 향상 되어있습니다. 여성들, 소수인종들, 장애인들이 미국 생활의 다방면에서 제약을 받던 암흑 같은 1950년대는 제쳐두도록 합시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1983년과 비교하더라도 범죄율, 청소년 임신율, 빈곤율, 모두 떨어진 상태입니다. 기대수명은 올라갔습니다. 대학 교육을 받은 미국인의 비율도 올라갔죠. 최근 몇십억 명의 미국인이 건강보험이라는 안정의 테두리 안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흑인과 라틴계 국민들이 이제는 우리의 기업들과 사회의 리더로 우뚝 서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도 노동인구의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더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때 조용하던 공장들은 다시 살아났고, 새로운 클린 에너지 시대의 부품들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이 더 개선되었듯, 세상도 마찬가지로 좋아졌습니다. 더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빈곤과 기아가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20여 개 국가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든 결혼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작년, 역대 가장 포괄적인 기후 변화 대책을 위한 협약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진보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들이 더 나은 가능성을 위해 계획하고 투표했기 때문이고, 지도자들이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들을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점이 항상 열려 있었고 그와 함께 사회의 시선도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진보는 우리가 문제들을 과학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산성비와 에이즈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한 무기입니다. 우리가 다른 대륙에 있어도 서로 대할 수 있는 이유, 베를린의 벽이 무너졌을 때나 연예인이 커밍아웃을 한 순간을 공감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기술이죠.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의 밀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의 코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연필과 종이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의 끊임없는 요동. 제가 미래에 대해 이토록 긍정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의 임기 중에 일어났던 변화들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왔을 때, 블랙베리를 쓰던 제 모습이 놀랍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아이패드로 브리핑 자료를 읽고 가상현실 헤드셋으로 국립공원을 돌아다닙니다. 우리의 다음 대통령에겐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또 그 후의 대통령들에게는요?

그래서 이번 <와이어드> 11월호의 주제를 ‘개척’으로 정했습니다. 다음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얘기들, 우리가 아직 넘지 못한 경계선 반대편에 있는 얘기들 말입니다. 현재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개인으로서, 공동체로서, 국가로서, 하나의 행성으로서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굉장한 성과들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앞에 놓인 도전들도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 경제적 양극화, 사이버 안전, 테러와 총기 문제, 암, 알츠하이머, 항생물질 내성이 생긴 슈퍼버그들까지. 과거에 그랬듯이, 이 허들을 넘기 위해선 모두가 필요합니다. 정치인들과, 사회 리더들, 교사들, 노동자들, 시민운동가들, 대통령들, 그리고 곧 퇴임할 대통령까지. 그리고 더 빨리 변화하기 위해선 우리에겐 과학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연구자들, 학자들, 엔지니어들, 프로그래머들, 의사들, 식물학자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MIT나 스탠포드, NIH에 계시는 분들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3D 프린터를 만지작거리는 어머니, 시카고 남부에서 코딩을 배우는 소녀, 샌안토니오에서 자기의 새로운 앱을 위해 투자자를 찾는 몽상가, 녹색혁명을 이끌고 싶어서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는 노스 다코타의 아버지까지.

바로 그렇게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능성을,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마음껏 발휘하는 것. 운 좋은 소수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 말은, 더 빨리 다운타운으로 음식 배달할 방법만 찾는 것이 아니라, 남는 식재료들을 어떻게 배고픈 아이들이 있는 지역에 나눠줄지 찾는 것입니다. 차에 기름을 채워주는 기계만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이 필요 없는 차를 발명하는 것입니다. SNS를 재미있는 우리의 문화 공간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SNS로 극단적인 사상이나 악플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비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비상한 생각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타 트렉>이나 <스타워즈>, <형사 가제트>를 보면서 공상했던 것처럼 공상해보세요. 제가 매년 백악관 과학박람회에서 만나는 그 어린 친구들처럼 생각하세요. 이 박람회는 2010년, 간단한 전제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슈퍼볼 우승만이 아니라, 과학박람회의 우승 역시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전 암세포를 없앨 방법부터 조류藻類를 이용해 클린 에너지를 만들 방법, 백신약을 낙후 지역에 공급하는 방법까지, 투표도 아직 못하는 나이에 다양한 문제를 고심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서 5년, 20년, 50년 후의 백악관 박람회에선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 눈앞에서 인공 췌장을 만들어 환자들이 긴 시간을 기다리지도 않아도 되는 세상을 이끄는 학생을 상상해 봅니다. 태양열과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연료를 만드는 소녀, 투표와 시민운동을 트위터만큼 중독되게 만드는 청소년, 화성에서 가져온 토양으로 감자를 키우는 아이다호의 한 소년을 상상해봅니다. 또 새로운 망원경을 발명한 학생과 백악관 잔디밭을 거닐고 있는 한 대통령도 상상해봅니다. 대통령이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소녀가 자신이 새로 발견한 머나먼 은하계의 어느 행성을 소개해주는 모습도요. 그러면서 그 행성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발명품을 지금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 말입니다.

이런 순간들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어쩌면 여러분의 아이들이나 손자 손녀들) 오늘날 우리보다 더 호기심 많고 창의적이며 자신감에 가득 차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계속 과학, 기술, 의료 분야 연구에 투자해야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가능성에 끊임없이 앞장서서 도전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특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후세의 국민들이 우리가 해결한 질병과 사회 문제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이 행성을 지킨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망설임 없이 지금이 가장 살기 좋은 때라는 것을 깨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 아메리칸 스토리의 다음 챕터를 쓰기 시작하겠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날 자신감을 얻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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