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꼭 하고 싶은 섹스

2017년, 올 한해 꼭 하고 싶은 섹스에 대해 17명의 남녀에게 물었다.

사랑은 차가운 유혹 상대와 내가 섹스를 하며 주고 받는 기쁨들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듯한 곳을 상상해봤다. 차갑지만 정직한 곳. 테이블. 거기에 놓인 유리 위에서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유리의 차가움이란 어떤 것일까? 얼음 같은 것일까? 그리고 결국에는 얼음이 녹아 흐르는 기분 같은 것을 느끼게 될까? 어느새 미끄러워진 테이블의 유리 위에서 우리는 더욱 과감해지거나, 끈끈해진 유리를 닦아내며 부끄러운 듯 웃겠지. 이승연(포토그래퍼)

벗으라면 벗겠어요 상대방은 내게 명령하고 난 무조건 복종하는 것. 10년 전부터 꿈꿔왔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남자도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렵다. 독재자로 빙의하는 연기력과 뻔뻔함, 넘치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11분>에 가장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섹스 신 중 최고다.‘“옷을 전부 다 벗어. 그리고 내가 네 몸을 볼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봐.”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는 더 이상 그녀가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무방비인 동시에 든든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현주(패션 에디터)

그 겨울 그 옥상 어느 날, 당시 애인을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려는 찰나, 그녀가 손을 잡고 나를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집은 17층 정도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녀는 꼭대기 층을 눌렀다.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지막 층에서 다시 한 층을 걸어 옥상으로 향했다. 겨울이었다. 차가운 철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내 바지를 내렸고, 자기 스타킹을 내렸다. 체온이 뜨거워졌다 다시 차가워진 후 주변을 둘러봤다. 이 옥상은 단지 내에서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립진 않지만, 그 겨울의 옥상은 가끔 그립다. 한창헌(tvN마케터)

당신이 잠든 사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 섹스 판타지를 찾고자 지난 1년간 시청한 ‘야동’ 레이블을 되짚어보았다. NTR, FSET, NHDTA라는 명확한 교집합이 만들어졌는데, 주로 ‘네토라레’를 단골 소재로 삼는 레이블들이다. 술자리에서 친구가 담배를 사러 나간 틈을 타 그의 여자친구와 하거나, 회식 후 바래다준 만취한 직장 상사가 곯아떨어진 틈을 타 그의 부인과 하는 식이다. 빼앗음에서 오는 성취감, 위험한 상황이 주는 두려움이 쾌감의 근원인 셈. 따라서 빼앗김을 당하는 이와 나와의 관계가 중요할수록(베스트 프렌드, 회사 임원), 또 섹스를 하는 장소가 들키기 쉬울수록(그가 잠든 식탁 앞 소파) 쾌감은 배가 된다. 이런 건전함이란 없는 섹스 판타지라니. 명정한(마케터)

흔들리는 평일의 방 평일 아침의 창문 너머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내 옆에 누워 있던 상대도 함께 쫓기듯 준비하고 나간다. 치열하던 주말의 섹스는 그렇게 월요일이 되면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나의 주말을 뒤흔드는 사람이라면, 평일에도 그를 생각하게 되고야 만다. 어떤 평범한 날, 아침부터 그가 우리 집에 왔으면. 출근 도장을 나에게 찍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차가워진 귀와 볼을 제일 먼저 만지고 싶다. 그는 분명히 내 몸을 급하게 만지고 눕히겠지. 대신 나는 침착하게 그를 침대에 앉히고, 천천히 서로의 온몸을 탐닉할 것이다. 그렇게 종일 맨몸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다음 날 그의 출근 시간까지. 조한나(프리랜서 디자이너)

버추얼섹스 “로그인. VR기기를 얼굴에 쓰고 손 역할을 하는 스틱 두 개를 잡았다. 현금결제 서비스로 보기 좋게 보정된 내 아바타가 보인다. 향수를 뿌렸더니 제법 분위기가 잡힌다. 가본 적 없는 공간도 가상의 배경으로 설정할 수 있다. 3D 이어폰덕에 음악만으로 이미 현실은 아득하다. 상대 여성도 로그인했다. 매칭 앱처럼 외모나 취향이 잘 맞는 이성을 추천해주는데, 마음에 꼭 든다. 긴장된 마음에 술을 한잔 마셨다고 했다. 내 아바타의 볼이 발개진다. 눈앞에 팝업 창이 뜬다. 섹스에 대한 상대방의 허용 범위와 서명을 쓰는 칸이 있다. 현실의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묻고 싶은 걸 참았다. 여자가 내 손을 만졌다. 스틱이 오묘하게 떨렸다. ” ‘VR 야동’을 체험해보고 그린 가까운 미래. 기술은 언제나 기대보다 빠르니까. 이코베(일러스트레이터)

동굴 속으로 집구석을 마구 헤매며 섹스한 적있다. 어쩌다 거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는데, 옷장에서 할 때 좋았다. 여명 없는 어둠에 감각이 날을 세웠다. 옷장 안에서 울리는 내 소리에 내가 흥분했다. 섬유들이 주는 쾌감은 또 어떤가. 부드럽고 나풀나풀한것들이 머리카락과 함께 살갗을 스칠 때 또 다른 상대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불 밖은 위험해”가 아닌 새로운 세계. 그때의 섹스를 리플레이하고 싶다. 좀 더 어둡고, 음습하지만 안락하고, 서라운드 효과도 높으면 좋겠다. 동굴? 동굴이 어떨까. 맘껏 소리 지르면서. 이사민(<인디포스트> 에디터)

퀘 세라 세라 스페인 라스 팔마스에서 유치원을 졸업했다. 이성에 대한 감정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건 거기서다. 대상은 담임선생님. 열쇠고리와 종 미니어처를 갖다 바치며 환심을 샀다. 서울에서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다, 당시 스페인에서 만난 형과 잠시 같이 지냈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형의 섹스 라이프는 놀라웠다. 상상에 몸이 달아 그저 ‘외국인’과의 경험을 위해 섹스를 하기도 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 노래를 들어야 성감이 오른다는 등, 지금까지의 섹스와 다르긴 했지만 그녀는 스페인어를 하지 않았다. “무이 비엔”을 듣고 싶은데 “굿”이라고 말하고, “아스타 라 비스타” 대신 “굿바이”라며 손을 흔들었다. 스페인어로 말하는 상대와 섹스를 하고 싶다. 미성숙한 소년의 판타지같지만, 내 첫사랑은 스페인어를 썼으니까. 서솔(회사원)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청소할 때 리한나의 ‘Work’를 틀어놓는다. 청소를 잘 못해 그녀에게 혼나는 상상을 한다. 섹스는 늘 준비 없이 하게 돼 당시 나오던 음악이 BGM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비 오는 날 소닉 유스를 들으며 섹스를 하는 최상의 조합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를 순 없지만 제외하는 음악은 있다. 내가 운영하는 레이블 영기획에서 발매한 음악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음악가의 얼굴과 서로에게 지은 죄가 떠오른다. 둘째, 손익분기점을 넘겼는지, 정산을 받지 못한 곳은 어디인지 같은 잡생각이 든다. 셋째, 한 장의 음반을 만들기 위해 평균 백 번 이상 갖는 자기연민의 감정에 빠진다. 2017년에는 영기획 음반을 들으며 섹스를 하고싶다. 이를 위해 죄를 짓지 않아야 하고,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두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기연민 없이 한 장의 음반을 발매해야 가능한 일. 그나저나 섹스할 때 일 생각을 하지 않는 습관부터 들여야겠다. 하박국(영기획 Young, Gifted & Wack 대표)

창문에 비친 쾌락 애인과 일년에 한 번 다른 도시로 향한다. 나름 장기 연애 중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와의 섹스는 별로 실현성이 없다. 그렇다면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낯선 도시의 이질감 때문인지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도, 풍경도, 침대에 누워 있는 애인도 낯설기만 하다. 덕분에 애인은 그날만큼 다른 빛을 품고, 다른 인상과 다른 몸짓을 표현한다.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밤. 평소보다 적극적인 체위와 신음이 몸과 마음 모두 들썩이게 한다. 뜨거운 섹스가 끝나도 결코 녹다운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섹스 후 정적으로 변한 낯선 도시를 내다본다. 매년 새롭게 그렇게 하고 싶다. 서재우(<매거진 B> 에디터)

요리와 섹스 먹고싶다, 하고싶다. 특히 자정쯤. 야식과 섹스에 대한 열망은 식는 법이 없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는 때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같이 만든 음식을 먹은 뒤에 힘이 넘치는 기쁨의 몸으로 침대로 이동하고 싶다. 사실 섹스야말로 요리와 정말 비슷하지 않나? 손과 입이 섬세해야 하고, 불타는 순간을 지나며, 해치우고 나면 평화의 시간이 찾아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쾌감을 연달아 즐기긴 어렵지만, 절정이 두 번인 롤러코스터를 타듯 곧장 침대로 돌진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7년엔 꼭…. 이기범(요리사)

고립무원에서의 여러 밤 방해 없이 며칠이고 붙들고 하고 싶다. 꼭 무인도나 천국 같은 리조트, 인터넷도 없는 곳에서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떠올렸다. “어디라도 좋아요 당신은 외로운 별 아닌가요.” 상대와 나는 곳곳에서 사랑을 나눌 것이다. 옷가지는 하나도 안 걸치고, 발이 더러워지기 싫다면 실내화를 신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잠이 오면 잔다. 그러다 또 하고 싶으면 상대를 깨우겠지. 오래전 이렇게 3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땐 물론 자취방이었다. 배달 음식을 먹고, 전화기는 멀리 두고 주말이 끝나자 모른 척 회사에 나갔다. 2017년에는 더 오래, 훨씬 맛있는 음식을먹고싶다.여러 밤을 쉬지 않을 정력과 긴 휴가와 사랑이여 내게로 오라. 박공기(프리랜서 에디터)

사랑의 스튜디오 음악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오래 머물면서, 도통 해가 뜨는지 지는지 알 수 없는 이 공간에서의 섹스를 상상해본다. 단둘이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어폰으로 듣는 볼륨의 몇 배에 달하는 음악 소리에 파묻힌 섹스. 일단 리한나의 ‘Sex with Me’를 트는 것으로 시작이다. 발밑에서부터 온몸으로 울려 퍼지는 저음에 심장 박동 수도 더불어 올라가겠지. 그레이(뮤지션)

글쎄 발이 못생겨서 (이것은 픽션이다. 2017년엔 기필코 할 수 있었으면, 기원하며.) “발이 못생겨서.” 왜 신발만 신고 서 있느냐는 물음에 나는 답했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그녀의 명령. “변태 같아. 빨리 마저 벗어.” 그 후, 나는 그녀와 15분간 나체로 입씨름을 했다. 방금 이사 와서 아직 침대가 없잖아, 바닥은 추우니까 나는 신발을 신고 널 들어올려서…. 실랑이 끝에 결국 나는 신발을 신고 섹스를 하는데 성공했다. 꽉 묶은 신발 끈의 구속감과 신발 속에서 더 올라가는 체온의 열기를 원없이 느끼면서. 이제 다 끝났으니 대체 왜 신발은 신고 하냐고 털어놓으라는 그녀의 추궁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 글쎄 발이 못생겨서 그렇다니까.” 솔한(디제이)

달빛 아래 돌담길 신윤복의 그림 ‘월하밀회’로부터 출발한다. 어렴풋한 보름달 아래, 완전히 숨을 만큼 높은 담벼락, 몸을 꽁꽁 싸맨 한복의 비밀스러움. 밀폐된 주차장이나 빌딩 숲이 아니라 굳이 한옥 담벼락이었으면 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시에 ‘거기는 그러면 안 되는 곳’ 같아서다. 정갈히 걷고 옷매무새도 한번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은 장소. 그러니 충분한 전희도 없이 마무리까지 급할 것 같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만족을 얻으려 얼마나 우리는 아등바등하고 있을까. 윤석영(회사원)

섹스하지 않을 것 2주에 한 번 섹스 칼럼을 쓰고 2년 째 만나는 파트너가 있는 내게 섹스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제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하면 오히려 뒤처진 느낌도 들지 않나? 그리하여 2017년엔 섹스하지 않아볼까 생각 중이다. 대신 섹스 외에 몸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10대 때처럼 온종일 키스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당일 데이트도 괜찮고, 몸을 부딪칠 수 있는 뭔가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다음 2017년 12월 31일, 그동안 참았던 섹스를 몰아서 폭발시키는 걸로! 김얀(섹스 칼럼니스트)

묻지 않을 것 어떻게든 물어본다. 이름이 뭐예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무슨 일 하세요…. 사실 섹스에 관해서라면 아무 필요 없는 정보이기도 하다. 물론 그중 어떤 사실은 상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하지만…. 물리적으로만 강하게 끌리는 섹스에 대한 갈망이 있다. 동물적이라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상대도 나에 대해 똑같이 느껴야겠으나, 보자마자 저 사람과 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많지) 않나? 그럴 때 호르몬이 막 솟구쳐 머리가 핑핑 도는 그 상태에서 곧장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끝내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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