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하여

언론이 바뀔 수 있을까? 질문은 돌림노래처럼 번진다.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실천하는 에너지가 폭발하는 지금, 새로운 저널리즘은 어떻게 가능할까.

한국 언론이 모처럼 활기차게 움직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해 활기찬 취재 경쟁을 벌였다. TV조선과 한겨레신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로운 보도를 쏟아냈다. 이들이 지핀 취재 불길은 JTBC가 기름을 부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몇 년째 실적과 독자 신뢰 측면에서 모두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 한국 언론에게 2016년은 근본에 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됐다. 저널리즘의 근본에 충실할 때 독자들은 다시 사랑을 보내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 한국 언론의 좌절과 희망은 ‘오래된 미래’란 케케묵은 담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잘 아는 것처럼 ‘오래된 미래’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의 현지 체험을 토대로 쓴 책의 제목이다. 호지는 오래된 것으로부터 미래의 이상향을 발견하는 것을 ‘오래된 미래’란 말 속에 담아냈다.

한동안 ‘기레기’란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한국 언론 역시 ‘오래된 미래’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맞아 새로운 것을 추구하되 언론의 근본 가치나 다름없는 것들을 되 살리는 데서 새로운 출발의 신호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2016년 중순 이후 국내 모든 매체가 펼친 최순실 게이트 보도 경쟁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한국 언론 변화 가능성의 작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협회보>도 2016년 12월 7일자에서 최순실 게이트 보도가 언론 문화 개선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파를 초월한 언론들 간의 공조 체제와 함께 그동안 국내 언론들이 굉장히 소극적이었던 ‘타사 인용 보도’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정파를 초월한 치열한 취재 경쟁과 성역 없는 비판, 그리고 다른 언론사 기사에 대한 저작권 존중을 새로운 저널리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게 조금은 생뚱맞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언론은 너무나 오랜 기간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을 망각해왔다. 따라서 2017년 한국 저널리즘이 거듭나기 위해선 이런 기본기를 되살려야만 할 것이다.

이런 기본 바탕 위에 기술과 시대 변화를 감안한 새로운 저널리즘의 집을 지어 올려야 한다. 이때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모바일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뉴스를 주고받는 것이 이젠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의 뉴스 생산 관행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기존 방식을 고수할 경우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오전 10시에 대통령이 엄청나게 중요한 발표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다음 날 조간신문의 1면 톱 자리엔 대부분 전날 오전에 공개된 대통령의 중대 발표가 올라가 있을 것이다. 전날 신문이 나온 이후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게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번 곰곰 따져보자. 조간신문이 배달될 즈음에 전날 오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모르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은 정보 홍수 시대, 실시간 뉴스 시대엔 그 정도 사안이면 사건 발생 한두 시간 내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다 알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건 TV 방송도 마찬가지다. 저녁 뉴스를 할 무렵이면 웬만한 사안들에 관한 팩트는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이런 뉴스 홍수 시대를 맞아 언론 매체들은 어떤 관점과 목표로 보도 경쟁에 나서야 할까?

<비욘드 뉴스>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는 지혜의 저널리즘이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 사실 보도로는 더 이상 달라진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그래서 언론의 기본 문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언론은 6하원칙에 충실했다. 언제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단 얘기다. 그런데 스티븐스는 앞으로 6하 원칙의 기본인 5W를 5I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Who, 언제 When, 어디서 Where, 무엇을What, 왜 Why 같은 단순 사실 보도에서 교양있고 Informed, 지적이면서 Intelligent, 흥미롭고 Interesting, 통찰력 있고 Insightful, 해석적인 Interpretive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저널리즘을 ‘지혜의 저널리즘’이라고 불렀다.

지혜의 저널리즘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다. 이 개념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JTBC <뉴스룸>을 이끌고 있는 손석희 앵커의 말에 살짝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손석희 앵커는 지난해 9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인’ 1위에 선정된 뒤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이나 SNS에서 낮에 본 뉴스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없는가를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석희 앵커의 이 말은 스티븐스가 ‘지혜의 저널리즘’이란 다소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눈에 확 들어오는 표현으로 바꿔놓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어지는 손 앵커의 말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해 논할 때 곰곰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뉴미디어 교과서는 수도 없이 바뀐다. 저널리즘의 본령에 대한 교과서는 바뀐 바 없다. 그걸 간과하면, 디지털이고 뉴미디어고 뿌리가 없어진다. (중략) 물론 디지털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포털에 가장 먼저 메인 뉴스 생방송을 볼 수 있게 했고, 디지털 뉴스룸 팀도 있다. <뉴스룸>의 콘텐츠도 다 디지털에 적합한 코너들이다. 그러나 저널리즘 본령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오늘도 저널리즘의 본령을 고민한다’ 손혜원 기자, <시사인>)”

지혜의 저널리즘이나 ‘한 뼘 더 들어가는 뉴스’는 필요조건일 따름이다. 이런 기본 위에 디지털과 모바일이라는 달라진 기술 환경에 적 합한 다양한 실험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목청껏 외치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선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디지털 퍼스트나 모바일 퍼스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 매체뿐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까지 고려한 콘텐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장기 경쟁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국내외 언론사들이 최근 들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드론이나 가상현 실VR을 활용한 보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신 기술들이다. 드론과 VR은 각각 취재 영역의 확장과 몰입이란 측면에서 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을 열 소중한 자산들이다. 오마이뉴스의 ‘4대강 탐사보고’나 한겨레의 ‘녹조 토하는 낙동강’ 같은 것들은 드론 덕분에 가능했던 보도들이다.

최근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4차산업혁명도 저널리즘 풍향계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사물인터넷IoT이나 로봇, 인공지능도 21세기 새로운 저널리즘의 밑거름이 될 가능이 많다. 미국의 AP통신은 주요 기업 실적과 대학 스포츠에 이어 최근엔 신문기사를 방송용으로 변환하는 등의 작업을 로봇으로 처리하겠다고 공언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국내 몇몇 언론사도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로봇 저널리즘 실험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센서 저널리즘 역시 21세기형 저널리즘 모형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이들의 실험은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 기술을 저널리즘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접목할 경우 새로운 변화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기자들의 일 중 상당 부분은 알고리즘화 돼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 정도에 따라선 기자들의 일상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자동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자들은 분석과 해석에 기반을 둔 ‘지혜의 저널리즘’ 쪽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일 필요도 있다.

2017년은 한국 언론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로 촉발된 변화의 동력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에 따라 그동안 독자들의 비아냥을 한 몸에 받았던 한국 저널리즘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는 쉽지 않다. 지금은 뜨겁게 달아오른 취재 열기나 보도 경쟁이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오래된 미래’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 바탕 위에 모바일과 인공지능 같은 각종 테크놀로지를 잘 접목 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게 ‘전통’과 ‘새로운 기술’의 행복한 결합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저널리즘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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