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민낯, 발렌시아가 ‘블랙 아웃’ 백팩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 같다. 발렌시아가 블랙 아웃 백팩.

말끔히 씻은 후 눈썹이 흐려진 여배우의 민낯 같다. 분명 잘 알고 그래서 익숙한 얼굴인데 어딘가 허전하지만, 오히려 더 청순해 보이는 건 왜일까. 이 가방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이다. 그동안 발렌시아가의 상징이었던 스터드 장식이 바늘구멍 몇 개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인 발렌시아가 로고만 남긴 채 사라져서일 거다. 이름도 블랙 아웃이다. 더 좋은 이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발렌시아가 가방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했던 두 개의 스터드 장식을 들어낸 건, 지금 우주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의 결정이다. 그동안 발렌시아가 스터드는 여러 번 바뀌었다. 살짝 커졌다가, 색깔도 넣었다가, 위치도 조금 달라졌었다. 어떤 건 여자도 갖고 싶은 남자 제품이었고, 또 다른 건 남자도 탐낼 만한 여자의 것이었다. 블랙 아웃은 여자에겐 조금 섭섭한 변화일지 모르지만, 남자에겐 오히려 매력적이다. 일부러 낡은 느낌을 주려던 양가죽 대신, 만지면 손에 색이 뭍어날 것 같은 무광의 미네랄 태닝 송아지 가죽이 참 예쁘다. 가죽 백팩일 뿐이지만 냉철하고 사려 깊고 고급스러워 보여서 왠지 심심한 꽃 한 다발 넣고 싶어진다. 가격은 3백14만원. 선뜻 살 수 있는 가격은 아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 싶어진다. 진짜 이런 마음일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