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 이하, 아는 사람만 아는 호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 지구 구석구석의 호텔을 모았다. 며칠을 머물러야 제대로 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하룻밤 가격이 20만원 이하인 곳으로만 찾았다.

THE ROBEY │ 미국 시카고

객실 사진만 보고 제대로된 바리스타의 카페, 부티크 숍, ‘핫한’ 팝업 레스토랑이 지척인 동네에 있는 호텔일 거라 예상했다면, 제대로 적중했다. 멕시코 호텔 그룹 ‘그루포 아비타’ 계열 호텔 중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이곳은 시카고 안에서도 원조 힙스터 동네인 벅타운과 위커파크 사이에 우뚝 솟았다.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밀집한 곳이다. 호텔이 둥지를 튼 노스웨스트 타워는 날렵한 삼각형의 주옥같은 아르데코 건물로 밀워키, 노스, 데이먼 애비뉴가 교차하는 지점에 삼각 파이 조각처럼 꼭 끼워져 있다. 이 호텔은 시작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었는데, 이런 인기에는 북적거리는 1층 레스토랑도 한몫 톡톡히 한다. 레스토랑은 조식으로 제공되는 스크램블드에그와 바삭한 해시브라운부터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의 저녁 만찬까지, 일종의 미국식 프랑스 요리를 제공한다. 저녁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자기 전에 한잔할 겸, 루프톱 바 ‘Up & Up’으로 슬렁슬렁 올라가 좍 펼쳐진 시카고의 야경을 감상한다. 2층 라운지와 비슷하게, 바에는 주문 제작한 나지막한 의자들이 미드센추리 모던 빈티지 가구들 사이사이에 섞여 있다. 하지만 이 가구들이 건물 본래의 특징을 죽이는 건 아니다. 길게 띠를 이룬 테라초 바닥, 황동 디테일, 대리석 벽널 등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총 69개의 객실은 은은한 녹색 톤으로 꾸며져 있고, 나뭇결이 살아 있는 마루가 깔려 있으며,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특히 코너 스위트룸은 여덟 개의 커다란 창문이 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어 한낮의 햇살이 장관을 이룬다. 맞붙어 있는 자매 호텔 ‘The Hollander’의 옥상에 새로 문을 열 ‘Cabana Club’은 아마도 올 여름 최고의 피서지가 될 예상이다. 풀장 옆에서 모히토 한잔 마시며 시카고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한껏 즐길 수 있을 테니까. therobey.com, 더블 룸 약 17만원부터.

 

LE RIAD BERBERE │ 모로코 마라케시

파리에 오스만의 타운하우스가 있고 뉴욕에 고층 빌딩이 있다면, 마라케시를 상징하는 건축은 리아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마라케시의 메디나에는 이 유명한 전통 가옥이 북아프리카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많다. 건축가 캉탱 윌보는 유네스코와 협력해 역사적인 건물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건물 보존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시장의 동쪽 끝 카트벤나히드 지역에 위치한 이 호텔은 윌보 소유의 건물이다. 일대에는 메디나의 사회적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빵집, 이발소, 음식 노점이 골목골목 들어차 있어 강렬한 기운을 자아낸다. 하지만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호텔로 들어서면, 향 냄새가 코끝에 감돌면서 느낌이 확 달라진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소리를 차단하는 1미터쯤 되는 두께의 벽을 지나면 소담한 정원이 있는 안뜰이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2층으로 된 공간을 올려다보면 옥상 테라스에 먼저 눈길이 간다. 한때는 주부들이 수다를 떨었을 이곳은 이제 촛불을 밝힌 채 손님들을 맞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다시 건물의 중심으로 돌아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조각 같은 아치, 손으로 칠을 한 삼나무 천장, 단순한 모로코 전통 타일이 깔린 바닥 사이로 17세기에 완성된 골격이 비로소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객실은 발코니가 있는 방 3개를 포함해 5개에 불과하고 건물의 끝에서 끝까지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묵는 경험은 단순히 세련된 숙소에서 잠을 자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라케시 여성 네 명과 함께 이 리아드를 운영하는 잉그리드 드베르트리는 투숙객들을 위해 모로코 가정식 요리 교습, 요가 강습, 네일 케어, 마사지 등의 서비스를 마련하고, 주변의 독특한 건축이 자아내는 마라케시만의 문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leriadberbere.com, 더블 룸 약 10만원부터.

 

CASA MODESTA │ 포르투갈 올량

요즘 포르투갈 전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고요한 은신처 형태의 호텔이다. 문명의 이기와 떨어져 있는 숨겨진 장소. 그러면서도 스타일링이 멋지고 가격 또한 놀라운 곳. 남쪽의 작은 어촌 마을 쿠아트링의 염습지와 인적 드문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은 해와 모래와 바다의 품 안에 있다. 이런 조건은 사실 알가르브 지방 히아 포르모자 국립공원 일대에서는 기본이다. 그렇다면 근처 윌라모라나 파루의 5성급 인기 호텔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이곳을 선택하고 얻는 건 뭘까? 가장 매력적은 평온과 고요, 그리고 개개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서비스다. 주인장 카를루스 페르난드스는 손님이 오면 미소로 환영하며 갓 짠 오렌지 주스를 내주는데, 이런 모습에서 포르투갈인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호텔 이름은 그의 어머니 모데스타 마리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원래 이곳은 어머니가 자란 집이고 어부였던 할아버지가 아랍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지었다. 리넨이 드리워진 산뜻한 스위트룸 9개가 있고, 각 객실에 딸린 옥상 테라스에는 돌로 만든 욕조가 준비돼 있다. 조식을 먹고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올량과 타비라를 연결하는 이 자전거길을 가다 보면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철새 플라밍고와 도요새를 볼 수 있다. casamodesta.pt, 더블 룸 12만5천원부터.

 

MAMA SHELTER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낡은 저택과 담 사이로 가파르게 굽이진 길, 보헤미안적 분위기의 산동네 산타테레자에 새로운 호텔이 등장했다. 프랑스에 넷, 로스앤젤레스에 한 개의 호텔을 두고 있는 호텔 체인이 이곳에 여섯 번째 지점을 연 것. 객실 55개 규모에, 지역 아티스트들의 벽화가 눈길을 확 잡아끄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열대의 감성이 폭발한다. 이와 달리 건물의 구조는 도시적인 미가 흐르는데, 두 동의 주택 내부를 싹 갈아엎어 개조하는 과정에서 벽돌과 거친 목재, 산업용 강재 따위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싱그러운 색상, 칠판 벽의 낙서, 다채로운 오브제 등으로 꾸민 인테리어는 디자이너 자릴 아모르의 작품이다. 필립 스탁의 어시스턴트로 일했고 지금은 상파울루에서 활동하는 그는 색색의 세뇨르두본핑 리본(보통은 행운을 빌기 위해 손목이나 발목에 묶는다)으로 전등갓을 만드는가 하면 조명 위에 플라스틱 상자를 엎어 침대 옆 테이블로 재탄생시키고, 루니 툰 가면를 장식품으로 활용해 유쾌한 느낌을 더했다. 투숙객은 비디오 부스, 가상 컨시어지, 공동 작업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룸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으니 낯을 가려도, 귀찮아도 현지인들이 북적거리는 바 겸 레스토랑을 이용해야 한다. 크래프트 맥주와 대용량 카이피리냐 칵테일, 남미 음식 위주의 메뉴가 귀찮음을 상쇄시킨다. 이 호텔은 프랑스 브랜드일지 몰라도 여길 보면 그 본성은 너무나도 브라질이다. mamashelter.com, 더블 룸 약 13만원부터.

 

THE DREAMCATCHER│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호텔&레스토랑 디자이너 실비아 데 마르코는 수십 년간 빈티지를 수집해왔다. 그녀가 운영하는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의 야외 공간과 호젓한 객실에는 곳곳마다 그 취향과 손길이 묻어 있다. 미드센추리 사이드 테이블과 다이얼식 전화기가 마크라메 장식과 식물 프린트로 장식한 벽 옆에 놓여 있는 식이다. 이 보헤미안풍 ‘B&B’는 관광객이 들끓는 올드 산후안에서 좀 떨어진, 비교적 한산한 오션파크 지역 해변 가까이에 있다. 독특한 분위기의 객실 12개는 저마다 이름이 있으며, 크로셰 레이스 침대 커버와 베르베르 러그, 레트로 벽지, 1970년대 조명 기구 등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정원에는 해먹과 불상과 열대 식물이 독특한 분위기로 한데 엉겨 있는 산책로가 있고, 구석진 곳에 옥외 샤워 시설도 마련돼 있다. 전반적으로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다. 코코넛 워터가 매일 채워지는 공동 주방과 공용 공간에서 투숙객들은 서로 여행 팁과 경험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해질녘엔 옥외 테라스에서 요가 강습이 진행되고, 프런트 데스크 매니저 알렉스에게 요청하면 열대우림 투어나 근처 바닷가에서 하는 패들보딩 세션에 참가할 수도 있다. 마르코가 손으로 그린 동네 지도를 들고 인근 카페, 농산물 직판장, 서핑 숍을 탐방해보는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할 스케줄 중 하나다. 지도에는 그녀가 즐겨 찾는 장소들이 정성스럽게 표시돼 있다. 하지만 아침 식사를 거르고 너무 일찍 숙소를 나서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자. 제롬 발렌시아 셰프가 준비하는 감미로운 3코스 채식 요리(신선한 히비스커스 주스, 치아 푸딩, 초콜릿 아보카도 무스)는 섬나라의 건강식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dreamcatcherpr.com, 더블 룸 약 10만원부터.

 

STONE HOUSE │ 인도네시아 발리

힌두교 사당이 산재한 지역이면서 발리의 예술적 중심지인 우붓은 독특한 카페가 많지만, 차가 막히고 관광객이 붐벼 정신없는 마을이다. 하지만 북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호텔에 도달하면 그런 번잡함이 사라진다. 석회석으로 쌓은 벽과 초록 야자수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들어가면 계단에 꽃잎이 흩뿌려져 있고, 그네가 산들바람에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가운데 큰코칼의 꾹꾹 우는 소리가 정적을 가른다. 중앙에는 손으로 자른 자바산 돌로 만든 연못이 있다. 떨어지는 플루메리아 꽃잎이 연못의 수면에 내려앉고, 아래로 조각보 같은 논이 내려다보인다. 미국인 커플 워커 자브리스키와 웬디 카셀이 좋아서 하는 일인 이 ‘B&B’는 문을 연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이다. 발리 섬에 거주하는 외국인치고 이들은 현지인과의 잘 교류하는 편이다. 딸이 선구적인 학교로 유명한 그린스쿨에 다니고 있으며 예술가 친구들이 쉼 없이 들락거린다. 카셀은 벽에 예술 작품을 장식하고 이 우아한 공간에 매력적인 서비스를 더하는 일을 담당하며, 가구 디자이너인 자브리스키는 지속 가능한 인도네시아산 나무를 세공해 필요한 것을 만든다. 그가 사용하는 목재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술라웨시 섬 부근 바다에 100년 넘게 수몰돼 있다가 발견된 경질의 목재가 지금은 캐노피 침대가 되었고, 자바 섬의 궁전에서 구조한 벽널이 객실의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세 채의 빌라는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그리스 섬의 산비탈 집을 연상시키는 흰색과 파란색 톤 객실부터, 어두운 빛깔의 재생 목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듀리 러그와 보르네오산 라탄 수공예품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가미한 객실까지. 빌라 한쪽의 오두막 공간에선 차가운 코코넛 워터와 신선한 과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활기를 더하고 싶다면 붉은 고추 덕에 더 맛깔스러운 달걀을 고르도록 한다. 카셀은 손님들이 너무 붐비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운이 좋으면 이 매력 넘치는 곳을 혼자 다 차지할 수도 있다. stonehousebali.com, 더블 룸 약 21만원부터.

 

ROOMS HOTEL │ 조지아 트리빌시

트빌리시는 눈 덮인 산으로 에워싸인 분지다. 각기 다른 세기에 지은 노후 건물들 곁으로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흐른다. 오래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이 도시가 기원후 479년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호텔 근처 모퉁이를 돌면 할머니들이 추르치헬라(호두에 포도즙을 두껍게 입힌 전통 당과)를 파는 페트레 멜리키슈빌리 대로가 나오고, 바로 맞은편에는 맥주와 고구마 튀김을 먹을 수 있는 클럽도 있다. 동네 느낌은 파리나 빈 또는 부다페스트 같은 도시의 보헤미안적 분위기와 구소련의 빛바랜 매력을 섞어놓은 듯하다. 호텔은 스틸과 목재의 조화가 인상적인데 호텔 주인인 테무르 우굴라바의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Soho House’와 브루클린의 ‘Wythe Hotel’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침실은 실크 벽지가 도배되어 있고, 서브웨이 타일로 마감한 욕실이 딸려 있다. 아래층에는 벨벳 커튼과 체스터필드 소파에 북유럽풍 의자가 어우려져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모두 조지아 예술가의 작품이다. 레스토랑엔 초목이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어, 조식으로 나오는 홈메이드 그래놀라를 오독오독 씹고 있자면 마치 거대한 온실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녁엔 이곳에서 베를린 ‘Grill Royal’ 출신 셰프가 스테이크를 요리해준다. 힌칼리(고기 만두의 일종) 같은 현지 음식을 먹고 싶다면 직원에게 한번 잘 이야기해보라. 특별 요리를 재빨리 준비해줄지 모른다. roomshotels.com, 더블 룸 약 21만원부터.

 

THE JENNINGS HOTEL │ 미국 오리건 주

조지프는 샌타페이와 애스펀을 섞어놓은 것 같은 소도시다. 돌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 여남은 개의 동상은 공공미술로, 모두 지역 주조소에서 만들었다. 북쪽으로 인접한 줌월트 대초원은 초여름이면 야생화가 약 97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뒤덮으며 미국 서부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을 연출한다. 인구 1천1백 명의 이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놀랍도록 겸손하고 더없이 따뜻하다. 이 호텔은 이 동네의 가장 좋은 요소들을 한 지붕 아래 다 그러모은 것만 같다. 지난 2015년 여름에 문을 연 이 호텔은 주로 포틀랜드에서 구한 앤티크와 빈티지 제품들로 꾸며져 있고, 비대칭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객실 6개를 갖추고 있다. 지역 아티스트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공공 프로그램과 실내 양궁장이 있는 이벤트 공간도 운영한다. 이 호텔에 머문다면 사우나를 하고 나와 공동 주방 겸 도서관으로 가서 장작이 타는 난로 앞에서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일곱 명의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도서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한 가지를 꼽자면 단연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6미터가 넘는 전나무 선반이다. 방을 고를 수 있다면 벽돌로 장식한 2호실을 추천하지만, 이 방에 묵으면 너무 아늑하고 평화로워서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을 수 있다. jenningshotel.com, 더블 룸 약 10만원부터.

 

SIR SAVIGNY │ 독일 베를린

베를린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한 수도다.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호텔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격식 있는 이름과 과시적 사치를 하는 사람이 많은 부자 동네 샤를로텐부르크에 있다는 것에 속지 말 것. 44개의 객실을 갖춘 이 호텔은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닌 현대 귀족의 우아한 주거지와 닮았지만, 어깨 힘을 빼고 즐길 줄도 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그린 천장화로 멋을 낸 벽돌 아치의 통로를 지나면 독특한 구조가 기다리고 있다. 이 호텔에 일반적인 로비와 리셉션 데스크는 없다. 1층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서가와 커다란 공용 테이블이 있고 책이 잘 갖춰진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 한쪽은 사방에서 불을 쬘 수 있는 난로가 설치된 ‘Wintergarden’까지 확장된다. 그런가 하면 고품격 패스트푸드를 지향하는 버거 바 ‘The Butcher’에는 진짜 소만 한 봉제 소 인형이 창가 쪽에 매달려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무료로 제공되는 와인을 홀짝이고 있으면 쾌활한 직원이 와서 체크인을 도와준다. 방향제 냄새가 살짝 진하게 나는 공용 공간과 객실 곳곳에 호텔 주인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런저런 소품들이 흩어져 있다. 근사한 체스판과 다이얼식 레트로 전화기, 큼직한 골든레트리버 주철 조각상도 보인다. 객실에는 남성적인 느낌의 물건들이 겹겹이 배치돼 있는데 겨자색 벨벳 안락의자, 가죽 소재의 이끼색 침대 헤드보드, 세이지색 베드 스프레드, 지역 예술가 카타리나 무지크의 콜라주, 여기저기 보이는 황동과 거울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이 호텔은 인근에 아르누보 건축, 재즈 클럽, 갤러리, 웅장한 영화관, 일류 아시아 레스토랑이 많아 둘러보기에 아주 좋다. 하지만 어쩌면 방에서 ‘dial-a-burger’ 버튼을 누르면 배달되는 레어 송로버섯 버거를 먹는 것으로 충분한 관광이 될지도 모르겠다. sirsavignyhotel.com, 더블 룸 약 11만원부터.

 

CITZEN M TOWER OF LONDON │ 영국 런던

예전이라면 타워힐은 쿨한 호텔이 어울리지 않는 동네였을 테다. 이스트엔드도 시티오브런던도 아니면서 소호까지는 또 엄청 머니까. 하지만 번화한 쇼디치가 걸어서 10분 거리이니 힙한 것과 역사적인 것 둘 다 맛보고 싶은 이들에겐 훌륭한 위치다. 침대에 누워 바닥에서 천장까지 난 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앞의 런던 타워가 보이고, 그 뒤로 타워 브리지가 반짝인다. 8층으로 올라가면 층고가 두 배로 높은 바가 있어 런던의 유명한 마천루들이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Citizen M’의 회장 라탄 차드하는 패션 브랜드 멕스를 창립한 인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경험이 풍부해 투숙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안다. 조그마한 방에 아주 크고 아주 편안한 침대와 매끈한 비트라 가구를 놓고, 화장실엔 물줄기가 센 해바라기 샤워기를 설치하고, 심플한 하이테크 태블릿 형태의 컨트롤러를 비치해뒀다. 이걸 이용해 블라인드, 음악, 무료로 제공하는 영화, 난방, 심지어 조명(분홍색도 가능하다)까지 제어할 수 있다. 요컨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것은 전부 다 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셀프 체크인 카운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명랑한 앰배서더들(이곳에선 직원을 ‘앰배서더’라고 부른다), 활기 넘치는 칵테일 바, 빵과 신선한 초밥을 비롯해 인근의 버로우마켓에서 사온 것들로 선반을 가득 채운 24시간 무인 매점 등도 모두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네덜란드 건축 회사 ‘콘크리트’에서 디자인한 널찍한 공용 공간은 창고형 거실처럼 여유로운 느낌이 난다. 장 프루베 의자와 베르너 판톤 풋 스툴, 아이맥을 일렬로 설치해둔 테이블, 두꺼운 디자이너 서적, 재밌는 영국 소품(크리켓 공이 담긴 병이나 앤 공주가 그려진 키치한 접시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따위가 곳곳에 놓여 있다. 딱 알맞은 정도의 가벼운 사치를 누릴 수 있는 호텔이다. citizen.com, 더블 룸 약 18만원부터.

 

PLANTATION │ 캄보디아 프놈펜

칙칙하고 혼잡한 도시 프놈펜을 좋아하게 되기까진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 리조트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고 열대식물이 무성한 이 성역은 왕궁과 국립박물관과 강변에서 5분 거리인 데다 도시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길이 20미터 수영장은 투숙객 전용이며 녹음과 카바나, 바 겸 레스토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레스토랑은 피자, 그린망고 샐러드, 레몬그라스와 고수와 진저 비어로 만든 시그니처 칵테일 등을 판매한다. 그리고 새로 오픈한 스파에선 1만7천원부터 시작하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리조트의 역사 또한 흥미롭다. 건물은 1930년대에 지은 것으로 식민지 시절엔 프랑스의 행정기관으로 사용됐고, 독립 이후엔 노동부가 있었다. 호텔 경영자 알렉시 드 쉬르맹의 ‘Maads’ 그룹이 철거 위기에 처한 건물을 구해냈고, 2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2011년에 문을 열었다. 객실은 차분하고 중성적인 동시에 세련됐다. 4주식 침대와 크메르 실크 커버를 씌운 쿠션, 따뜻한 느낌의 목재 가구로 꾸며져 있으며, 욕실이 개방형이라 한층 더 밝고 바람도 잘 통한다. 저녁 식사만 제공하는 레스토랑 ‘La Pergola’에서는 셰프 올리비에 기용이 세계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온다. 향신료를 넣은 초콜릿 푸딩, 리코타 라비올리, 캄폿 후추 소스를 곁들인 오리 등이 대표적이다. ‘Lotus Pond Gallery’와 안뜰의 ‘Red Pool Lounge’에선 전시가 자주 열린다. 총면적이 대략 5천 제곱미터에 달하다 보니 여느 부티크 호텔과 비교하면 아늑한 느낌은 덜 하지만, 같은 가격에 이만큼 호화롭고 널찍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합창을 하는 캄보디아의 수도에서 이런 안식처는 금싸라기와도 같다. theplantation.asia, 더블 룸 약 11만원부터.

 

THE EDISON │ 말레이시아 페낭

페낭 섬의 주도 조지타운은 여러 겹의 문화를 동시에 품은 도시다. 나이 든 장인들이 새로 생긴 카페 옆에서 장사를 하고, 세계유산 건축물 앞에서 노점상들이 차퀘이테오(볶음 쌀국수)를 접시에 담아낸다. 요컨대 유서 깊은 도시이면서 독창성이 콸콸 샘솟는 곳이다. 객실이 35개인 이 호텔은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지닌 빌라에 둥지를 틀었다. 원래는 푸젠 성 출신의 재계 거물 ‘Yeoh Wee Gark’을 위해 지은 집이었으나 후에 아편굴이 되었고, 전쟁 중엔 일본군 사무실로 쓰이다가 이후 다시 배낭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변모했다. 2015년, 싱가포르의 호텔 경영자 에디 탠은 한동안 비어 있던 이 건물에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주기로 했다. 복원 작업은 본래의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바꾸는 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품격 있게 완성됐다. 여기에 아르데코풍 가구와 장식을 더하는 한편, 색으로 간결한 포인트를 줬다. 손님들은 우아하게 굽은 나무 계단과 100년이 넘은 대리석 타일 바닥을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라운지에서 프랑케 커피 머신으로 뽑은 훌륭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라운지에는 알아서 가져다 먹으면 되는 간식거리가 24시간 준비돼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푹신한 소파와 흔들의자가 놓인 도서관이 있고, 덮개를 친옥외 정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조식을 먹을 수 있다. 어찌 보면 낭만과 노스탤지어에 휩싸인 곳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이 호텔은 무엇보다 편안하다. 문화 탐방을 좀 더 해보고 싶다면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중국식 박물관 블루 맨션의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보라. 그 밖에도 조지타운의 명소 대부분과 세계 최고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몇 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에 있다. theedisonhotels.com, 더블 룸 약 14만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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