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는 언제 테니스를 그만두고 싶을까?

솔직히 말해, 선수로서의 로저 페더러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남은 건 우아하게 은퇴해 테니스 이후의 삶으로 들어가는 일 정도가 아닐까 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그가 또다시 우승을 일궈냈다. 냉정한 완벽주의자도 아닌 채, 승산조차 없던 약자로서 호주 오픈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페더러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꼭대기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코트 밖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얼마나 더 이루어낼 것인지, 언제쯤 테니스를 그만둘지 수줍게 말했다.

스웨터는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팬츠는 나이키, 시계는 롤렉스.
스웨터는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팬츠는 나이키, 시계는 롤렉스.

몇 달 전, 어떤 일이 일어났다. 그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테니스를 아끼고 좋아하는 모든 이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올해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 로저 페더러가 우승한 것이다. 통산 그의 18번째 메이저 타이틀이자 5년 만에 처음으로 달성한 그랜드 슬램이었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승리가 있을까. 대회 초반, 코트 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길 가망이 없는 자신의 경쟁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그의 팬들에게 자신이 최근 이룬 유일한 업적은 < GQ >의 ‘모스트 스타일리시 맨’(온라인에서 진행된 투표로, 그는 카니예 웨스트, 라이언 고슬링을 제치고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으로 꼽힌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 “적어도 하나 이기긴 했네요.” 지난 14개월간 지속되던 트로피 가뭄을 자조하듯이 그는 그렇게 말했다. 세계 남자 테니스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무려 302주간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한, 인생의 본질을 뭔가 이기는 것으로 단정했던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니. 만인에게, 그는 그야말로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번에 멜버른에서 17번 시드에 배정받았던 그는 8강 까지만 진출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호주에서 우승하면서 너무나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됐어요.” 성공으로 인한 약간의 고립감과 관대함이 느껴질 즈음, 그가 초대장을 보냈다. 결승전을 치른지 겨우 닷새 만이었다. 스위스 산자락에 위치한 그만의 둥지로 우리를 부른 것이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단순히 사람들의 야유를 잠재웠을 뿐만 아니라, 어떤 서사의 판도 자체를 바꿔놓았다. 페더러 자신은 물론 수백만 명의 팬도 그 변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마침내 그 답을 찾기 위해 스위스로 갔다. 동시에 그가 가장 대답하기 꺼려 하며 팬들로 하여금 거센 반발을 유발시키는 질문 하나를 조용히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취리히의 남동쪽에 위치한 발 벨라는 알파인 산자락 마을이다. 웅장한 산세를 보여주는 지역인생 모리츠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인 그곳은 솔직히 지루할 만큼 단조로운 곳이다. 크고 작은 방목지와 가축들, 따뜻한 머그잔에 따라 마시는 심심한 와인, 스키 팬들의 요란한 소리로 가득한 공기, 말 그대로 스위스다. 페더러와 그의 아내 미르카는 쉴 틈 없는 경기 일정과 도시 생활 그리고 주위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이곳 산자락에 별장을 지었다. 그들은 이 지역의 고요함과 근래에 보기 드문 평범함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제 생각엔 페더러의 평범함이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 같아요.” 전 프로 테니스 선수이자 현재 ESPN의 해설과 여자 세계 랭킹 4위 시모나 할렙의 코치를 맡고 있는 대런 카힐이 말한다. “성공한 사람 중에서도 페더러만큼 업적을 이룬 사람은 의례적으로 세상에 대한 외벽을 세우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는 벽이 없어요.” 그에게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세계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에게 ‘일상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만나자마자 얼굴을 봤을 때, 페더러는 확실히 평범해 보이긴 했다. 그리고 여지없는 스위스 사람으로 보였다. 어두운 터틀넥 스웨터에 빳빳한 울 바지 거기다 검은 부츠까지. 하이킹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자 유일한 취미인데,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고 호주 오픈으로 이미 다리의 힘이 많이 풀린 상태라서 무리하지 않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의 제안으로 라클렛-스키 후에 즐기는 음식으로 치즈를 녹여 감자와 피클을 곁들여 먹는 스위스 전통식-을 함께 먹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게 과연 있긴했나? 테니스 코트에서의 페더러는 비인간적일만큼 냉혹한 집중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유머 하나 없는 결단력 그리고 하역장의 인부를 연상케 하는 코와 티모시 달튼 시절의 제임스 본드 같은 머리를 하고서는 지상 최고의 포핸드를 보유한, 모든 게 균일할 것 같은 완벽주의자. 세상 그 많은 국가 중에서도 가장 뻣뻣한 나라에서, 딱히 다른 사람이 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페더러는 처음부터 사심은커녕 너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혹시 마리화나를 피웠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우리를 레스토랑으로 안내하며 벤츠를 운전했는데, 서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가 옛날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헤로인을 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게 됐는데, 얘기를 하면서도 멋쩍었으나 페더러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위안이 됐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페더러가 그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식사 중간에 다다르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척하며 보통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누가 녹은 치즈로 가득한 접시를 좋아하나?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페더러는 자신의 전용 테니스 코트를 소유하지도 않은 채, 아직도 동네에 있는 공공 테니스장에 연습 예약을 하는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페더러는 광고나 기업 후원을 제외해도 지금껏 대회에서 벌어들인 상금만 1천억원이 넘는 선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당신이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동네에 있는 공용 테니스장에 갔는데, 페더러와 경기를 해서 이기는 것.

레스토랑에서(“우리 이곳에 정말 자주 와요, 아이들 생일이거나 아님 그냥 저 테라스에 앉고 싶을때면”) 정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우리는 팬들의 촬영 요청에 응하느라 두 번이나 멈춰 섰다. 하지만 사진보다도, 그들은 호주 오픈 우승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녔는지 말해주고 싶어 했다, 경기 내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울었는가 하는 그런 얘기들. 페더러는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많은 사람이 제가 이번엔 우승하기를 내심 바랐던 것 같아요.” 자리에 앉으며 그가 조용히 말했다. “참 많은 분이 기뻐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크게 웃었다. 환희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이런 장면이 조금 낯설고 신기한 독자에게 다른 예를 조금 더 들자면, 페더러는 말을 무서워한다.(“다른 사람들도 그렇죠?” 그가 물었다.) 그리고 상대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을 때 유일하게 화를 낸다.(“저는 약속 시간에 늦으면 초조해져요.”)

페더러는 예술 작품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두통을 느낀다. 페더러는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정말 사랑한다. “저는 영화 속에서 살아요.”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드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실제로, 멜버른에서 나달과 결승전을 치르기 전날 밤 그와 그의 가족은, 인도의 어린이가 사고로 캘커타로 보내지는 바람에 자신의 가족과 헤어져 호주로 입양되었다가 25년 만에 인도를 찾아 떠나는,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영화 <라이언>을 봤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저는 거의 만신창이가 돼 있어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그러고는 생각했죠. ‘이렇게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 게 도움이 되나? 뭐 어차피 내일은 감정적인 날이 되겠지만!’” 로저 페더러는 영화 <라라 랜드>가 마음에 들었다. 단, 엔딩은 빼고. 로저 페더러는 해피 엔딩을 좋아한다.

로저 페더러는 정말 이 정도의 성공을 바란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게 테니스 덕분이죠.”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테니스는 제 시야를 넓고 충만하게 해줬어요. 테니스를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냥 어떤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바젤에 살았을 것 같아요. 삶의 테두리가 그렇게 폭넓진 않았겠죠.”

“이번에 호주에서 우승하면서 너무나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됐어요.”

스포츠재킷과 스웨터, 티셔츠와 반바지는 모두 랄프 로렌, 양말은 나이키, 팔찌는 미안사이, 시계는 롤렉스, 신발은 랄프 로렌.
스포츠재킷과 스웨터, 티셔츠와 반바지는 모두 랄프 로렌, 양말은 나이키, 팔찌는 미안사이, 시계는 롤렉스, 신발은 랄프 로렌.

세상 무엇보다도 로저 페더러는 가족을 사랑한다. 아내인 미르카는 그의 기반이다. 그녀 역시 프로 테니스 선수 출신. 그들은 2000년부터 함께했다. “그 후로 17년 동안 모든 걸 우리가 함께 이룬 거예요.” 그가 감탄스럽게 말한다. 그는 부모님과도 매우 가깝게 지내는데, 두 분 모두 경기장에선 극도로 긴장하는 나머지 옆자리에 앉지도 못한다고 한다. 대신 집에서 TV로 경기를 볼 때면, 큰 소리가 난다. “좋아, 에이스야, 이번에 에이스야!” 그가 서브를 넣을 때마다 어머니는 고함을 지른다. 팀도 빼놓을 수 없다. 함께 투어를 다니는 그의 ‘두 번째 가족’이다. 그리고 모든 투어를 관리하며 대회가 있을 때마다 수고해주는 사람들, 심판과 볼 보이, 볼 걸들 모두. 로저 페더러는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 편지 쓰는 걸 즐긴다.

음식이 절반 정도 남았을 때, 어떤 봉투를 든 사람이 긴장한 채 우리 쪽 테이블로 다가왔다. 페더러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앞서 레스토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길가에서 한 쌍의 마차를 끄는 무리를 만났는데, 페더러가 경적을 울리며 인사를 전했다. 알고 보니 그중 한 사람을 페더러가 알고 있었다. 함께 아이들을 썰매 놀이에 데려가곤 했는데, 그분의 친구가 공짜 마차권이 있다며 우리 테이블로 찾아온 것이다. 페더러가 웃으며, 오히려 그분을 진정시키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전에도 이런 광경을 몇 번 봤는데, 스위스 사람들은 그들의 영웅에게 다가가기 전, 정말 그래도 되는지, 프라이버시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확실히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타인의 사생활을 정말 존중해요. 방해하지 않으려 하구요. 그리고 한번 그 경계를 용이하게 해주면,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좀 더 편하게 다가오죠. 하지만 그 첫 제스처가 힘든 것 같아요, 그 불편함을 허무는 것이요. 스위스에 이런 말이 있어요. 친구를 만드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하는지 진정한 동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우리 눈엔 그저 경이롭다지만, 운동 선수들 역시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그토록 정교하고 복잡하며 기계적인 반응으로 순차적 결과에 다다르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시계와 초콜릿의 나라에서, 그것도 규율과 달콤함을 평등하게 받드는 이 영토에서, 테니스처럼 엄격한 관습으로 이루어진 종목을 지배하는 자가 나왔다는 건, 스토리의 구성상 어쩌면 정확히 부합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지는 매치에서, 너무나 정확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나머지, 엘리트 수준에서 흠 하나 없는 냉정한 결정 한두 번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테니스는 페더러처럼 제한된 상황에서 자신의 형태를, 그것도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한 사람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스포츠가 아닐까.

“다른 각도에서 치고, 다른 종류의 스핀을 넣으면서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는 것, 그게 정말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그러고는 이내 웃고 말았다. 진심을 다해서. 아직도 자신만의 테니스로 보여줄 게 많이 남았다는 듯이.

고백할 게 있다. 나는 한 번도 페더러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 물론 그의 테니스를 오랫동안 존중하긴 했지만, 그가 플레이하는 방식이며 자기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며, 그를 따라 하려고도 해봤고 애호자이기도 했지만, 심지어 페더러의 스트로크를 배우고 싶어서 그가 광고하는 속옷을 입고 거실에서 비디오를 몇 번씩 돌려 보기도 했지만, 그건 팬의 차원과는 다르다. 반대로, 나와 테니스를 같이 즐기는 친구들은 페더러를 정말 좋아한다. 그의 것과 같은 회사의 라켓과 신발로도 모자라 그의 이름을 새긴 모자까지 갖출 만큼이다. 그가 경기에서 지면, 친구들 역시 좌절한다. 그가 이길 땐 그나마 덜 고통스러워하긴 하지만 여전히 서운해한다.

왜냐하면 직접 관전할 수 있는 우승이 또 하나 줄어들었기 때문에. 페더러의 팬들은 그의 경기뿐만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형태 자체를 동경한다. 도덕성과 클래스 그리고 테니스 코트와 밖에서 보여주는 정제된 행동들. 반면에 바로 그런 점이 내겐 부정적으로 다가왔었다. 그 오점 하나 없는 완벽주의자적인 형태라니. 나는 뭔가 작은 티끌이라도 잡을 게 필요했다. 앤디 머레이의 자기 패배주의라든지, 스탄 바브린카의 시큼함, 아니면 나달의 긴장된 매너리즘 같은 것.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비극적인 실수가 가능하고 그걸 직접 증명해 보이기도 하면서 그 최악의 경향을 극복하려는 의지, 아님 적어도 계속 시도하는데 실패하기만 하는 그런 모습. 솔직히, 내 허영심의 측면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게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페더러의 팬이 되는 건 내게 너무 쉬운 일로 보였다.

하지만 여기 산속에서, 내 안의 뭔가가 변화화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우리 둘 다 라클렛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가 테니스를 향한 열정을 말할 때였다. 방송 해설가들은 정기적으로, 마치 페더러가 처음부터 라켓을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처럼, 경기에 임하는 그의 열정을 호소한다. 그게 사실이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열정은 그가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고 나서야 생겼다고 말했다. “정말요?” 내가 놀라자 그가 다시 웃었다.

2001년 윔블던 네 번째 라운드에서 페더러는 피트 샘프러스를 만났다. 당시 페더러는 모든 게 미숙한 열아홉 살 소년이었고, 상대는 윔블던 타이틀을 7번이나 차지한 위대한 선수였다. 이후 페더러는 샘프러스가 갖고 있던 기록을 갈아치운 유일한 선수가 되었지만 말이다. “생애 처음으로 최고 수준의 테니스를 경험해 본 거예요.” 그가 말한다. “윔블던의 센터 코트에 서본 첫 경험이기도 했고, 또한 피트를 상대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했죠. 세트 스코어 2-2에서, 이번 나달과의 호주 오픈 결승처럼, 제가 5세트 스코어 7-5로 피트를 꺾었어요. 열아홉 살이었던 제가요. 세상에, 스위스 어딘가의 휑한 코트에서 그저 연습하는 거 말고도 테니스에 이렇게 또 다른 풍경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이런 게 정말 테니스였구나, 그때 깨달은 거예요, 관중도 없는 작은 경기장이 아니라 계속 이렇게 센터 코트에서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만 있다면…. 갑자기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계속 웨이트를 들었고, 달렸으며, 경기장에 일찍 도착했고, 전날 잠을 잘 잤어야 했는지 등등, 계속되는 일상의 미세한 부분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엔 그런 것들이 중요한 변화를 만드니까요.”

“나이가 들면 시야는 넓어지지만 조바심도 커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요.”

1 93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모두 브루넬로 쿠치넬리, 보타이는 브룩스 브라더스, 트렌치코트는 발렌티노, 신발은 나이키, 시계는 롤렉스, 라켓은 윌슨.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모두 브루넬로 쿠치넬리, 보타이는 브룩스 브라더스, 트렌치코트는 발렌티노, 신발은 나이키, 시계는 롤렉스, 라켓은 윌슨.

그 후 페더러의 커리어를 정의하게 된 상대는 나달이었다. 그래서 이번 호주 오픈 결승은 수많은 팬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여자 결승에 진출한 선수들 또한 페더러와 나달처럼, 이제는 서른을 넘긴 윌리엄스 자매였다. 사실 이 네 명이 모두 결승에 진출했던 건 9년 전 2008년 윔블던이 마지막이었다. 페더러와 나달의 라이벌 관계는 경기를 떠나 실로 풍부한 서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관점에서 볼 때 페더러는 수년간 중요한 경기에서 나달을 호되게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더러에게 GOAT 칭호를 온전히 수여할 수 없었던 유일한 별표는 나달과의 통산 성적 때문이었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페더러는 나달에게 이번 호주 오픈 전까지 통산 성적 11승 23패 그리고 메이저 대회에선 2승 9패로 열세였다. 그러므로 이번 매치는 귀한 상대를 맞아 페더러가 입증할 뭔가가 남아 있던 경기였다. 또한 양쪽 모두에게 이번 경기는 복귀전이기도 했다. 두 명의 나이 든 유럽 친구들이 헤어밴드를 하고는 서로의 커리어를 부활시키려 애쓰는. 페더러는 “극도로 긴장했었어요” 라고 떠올렸다. 특이하지만, 지금도 페더러는 경기 전날이면 여전히 긴장한다고 한다. “약간 성가실 정도예요, 솔직히.” 4시간 가까이 경쟁하며 5세트까지 쭉 이어질 경기. 많은 사람처럼, 나도 그날 밤늦게까지 경기를 시청한 걸 다행으로 여기는데, ESPN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그날 새벽 3시까지 중계가 이어졌음에도 새로운 시청률을 경신했다고 한다. 호주에서만 4백50만 명이 시청했으며, 유럽에서는 1천1백만 명이었다. 그건 결코 놓치면 안되는 이벤트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느끼기에,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페더러는 게임을 포인트별로 기억한다. 이번 승리의 중요한 열쇠는 유난히 공격적이었던 그의 백핸드에 있었다. 한 손으로 치는 그의 백핸드는 정말 우아하지만, 스핀을 많이 줘 튀어오르는 공을 구사하는 나달에게는 사실 적정하지 않다고 지적받기도 했었다. 한 손으로 받아치는 백핸드는, 두 손으로 백핸드를 구사하던 안드레 아가시, 케이 니시코리 그리고 나달만큼, 어깨 높이에서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다. 하지만 약간의 자세와 형태 재보정을 통해, 페더러는 새로운 각도로 공을 받아내며 나달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잠시 흔들리면서 나달에게 2세트를 뺏기고 말았다. 이후 세 번째 세트는 페더러에게 그리고 네 번째 세트는 나달에게 가면서 긴장이 고조되었고 5세트에 들어서자 페더러는 다시 쓰러져가고 있었다. 우승이 코앞에 있을 만큼 나달이 기세를 잡은 듯했다. 그런데 그 기세는 어느새 바뀌어 다시 한 번 페더러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관중석의 많은 사람이 페더러의 이름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그의 수많은 우승과 카리스마 그리고 스캔들 한번 일으키지 않았던 성숙함으로, 그는 세계 어느 곳에 가서 플레이를 하든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코치 카힐이 내게 말했다. “내가 이제껏 봐온 수많은 선수 중 페더러만큼 인기를 누린 선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경기는 정말 맨 마지막 포인트까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는데, 선심의 라인 콜로 그 포인트가 결정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포인트가 결정되기 전 그의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스크린에 잡힌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페더러가 말했다. “나달에게 기세를 내주면 역전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의 마지막 샷은 아웃이 아니라 라인 안으로 들어온 걸로 판명났다. 그럼 이번 우승은 다른 많은 경기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페더러는 2009년 프렌치 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확정 짓고 샘프러스의 세계 기록이었던 메이저 14개의 타이틀과 동률을 이룬것, 몇 주 후 열린 윔블던 결승에서 앤디 로딕을 꺾으며 샘프러스를 뛰어넘어 새로운 기록의 소유자가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한 그해에 쌍둥이 두 딸이 태어난, 마법 같은 여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한다, “이번 우승은 매우 다르게 느껴요.” 조금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생각에 잠겼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래서 어쩔 땐 더욱 조바심이 커지고 더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요.”

점심을 마친 후, 페더러는 레스토랑 밖에서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 동네를 돌아다니며 풍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스키 센터에 가까워졌을 때 어느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소년이 횡단보도도 아닌데 갑자기 우리 앞으로 들이닥쳐 급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에선 거의 아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며, 불법으로 횡단해 갑자기 차를 세우는 일은 더더욱 없다. 당연히 페더러는 당황했는데, 도리어 그 소년은 우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5분 안에,” 내가 말했다. “저 애는 트위터에 접속해 ‘나 방금 로저 페더러의 자동차에 받혀 죽을 뻔했다’고 쓸 거예요.” 페더러가 웃었다. “그러면 저도 트위터에 저 친구가 횡단보도로 건너야 했다고 즉각 모두에게 말할 겁니다.”

새삼 이렇게 묻고 싶다. 로저 페더러는 어떤 사람인가? 우선 로저 페더러는 스위스인이다. 매우 평범하고 잘 웃는다. 어떤 면에서 그는 90년대의 산물 같기도 하다. 침실에 샤킬 오닐과 마이클 조던, 스테판 에드버그 그리고 보리스 베커 등의 포스터를 붙여놓았던. 아, 파멜라 앤더슨도. “그건 저도 기억해요.” 그가 낄낄거리며 이어갔다. “그녀의 사진은 문 쪽에 붙어 있었어요.” 그는 예의 바르고 까다롭다. 가족을 사랑하는 무비고어다.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정직하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흥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묘사하자면, 시골뜨기다.

마침내 나는 새롭게 개종했다. 집으로 돌아와 로저 페더러의 ‘RF’ 로고가 붙은 모자를 주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런 매력이 꼭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가 그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알고 있는 ‘로저 페더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사적인 투사이자 엄격한 리더인 사람. 한 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 “포커페이스를 해야 해요. 상대에게 어떤 것도 보여주면 안 돼요. 어릴 때도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라켓을 던지거나 소리치는 그런 행동은 상대방에게 우위를 내주는 것밖에 안 돼요. 점진적으로, 결국은 자신의 태도를 발전시킬 수밖에 없어요. 나달에게 틱 증세가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어떤 내 모습이 있죠. 자신을 위한 방어막을 치는 거예요.”

스위스로 떠나기 전 나는 페더러의 하드 코어 팬인 내 친구들에게 어떤 게 가장 알고 싶냐고 물었다. 그걸 종합한 결과는 이랬다. “언제쯤 당신의 은퇴를 예상해도 되겠습니까?” 페더러는 자신이 가끔 코치가 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혹은 방송에 나가 해설을 하는 모습도. 하지만 그가 날짜를 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가 또 다른 결승전에서 이기거나 지고 나면 그때? 그리고 작별의 투어를 마치고 나면 그때? 그 자신, 언제 떠나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페더러가 웃었다. 그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토너먼트가 있다고 해봅시다. 제 자신에게 물어요,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집을 떠날 수 있지? 왜냐하면 집에 머무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가방을 싸고 차에 싣고 뒤돌아보며, 그래 또 한번 해보자 생각할 때, 내가 정말 행복한가 아님 집에서 더 쉬고 싶은가? 그 생각을 해요. 지금까지는 항상, 그래 또 한번 해보자, 였어요. 저는 여전히 제 마음이 원하는대로 하고 있어요. 계속되는 시험인거죠. 그런데 어느날 그 순간이 왔을 때 이번엔, ‘음…’ 한숨을 돌리고 싶다면…. 그런데 주위의 선수 친구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요. 한 친구가 토너먼트에 참가하기 위해 공항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서서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갔대요.

토너먼트보다 가족이 더 보고 싶었던 거예요. 제게도 아마 그런 마지막이지 않을까요?” 그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는 다시 웃었다. “여기 조용한 스위스 산꼭대기가 너무 좋지만, 저는 아직은 더 움직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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