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유선호를 지지했나

<프로듀스 101 시즌2>가 끝났다. 9명의 필자들이 각자 응원했던 소년에 대해 지지 이유를 밝혔다. 다섯 번째는 피자를 좋아한다는 유선호다.

이렇게 해맑고 힘차고 무해할 수가. 유선호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줄기 낯설고 생경한 존재였다. 그는 부모님과의 전화 시간에 눈물을 빼긴커녕 ‘삼시오끼’를 안 준다며 투정하더니, 유선호와 101명의 친구들을 만들러 나온 사람 마냥 안기고 치대고, 멍한 얼굴에 안경을 삐뚜름하게 쓰고 피자를 와구와구 집어 삼키는 열 여섯 살이었다(뱅글뱅글 도는 안경을 쓴 ‘중딩’ 유선호는 안경을 벗으면 미모의 아이돌이 되는 만화적 캐릭터다). 아니, 너무 ‘애’가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날 것의 ‘중딩’은 매회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훤칠하게 자랐고, 앳된 얼굴에선 슬슬 반듯한 청년이 보이기 시작했다.

빠른 건 신체 성장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꼼짝없이 F반이었던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 무대에서 곧잘 근사한 표정도 지을 줄 알았다. 루틴 댄스를 추던 6개월 차 병아리 연습생은 남성적인 곡 ‘Sorry, Sorry’에서는 버건디 메이크업을 하고 의외의 소화력을 선보였고, 곡 ‘봄날’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청아한 목소리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최상위권이 몰려있던 ‘NEVER’ 팀에서 방출돼 ‘열어줘’ 팀으로 간 그는 “무대 세트에 왜 커튼이 있냐”며 고개를 갸우뚱한 것과는 별개로, 성숙하고 섹시한 무드의 이 곡을 3일 만에 실수 없이 소화해냈다. 유선호는 형들에게 눈치 있고 싹싹한 제자였고, 열심히 배우고 빠르게 습득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지경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팬들이 말하는 ‘막내 롤’이 어떤 것이었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저런 막내가 있으면 팀 분위기가 얼마나 밝아질지는 쉽게 짐작이 갔으니까. 착하고 밝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인 유선호의 친화력, 악의 없음, 무해함, 거리낌 없음, 그리고 상대 또한 자신의 선의를 악의로 돌려주지 않을 거라는 천진한 확신. 그는 주인이 무색하리만큼 낯선 이의 품에 찰싹 안기는 말티즈처럼 뻔뻔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유선호가 더욱 천연덕스러워지는 지점은 상대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만큼 표현할 때였다. 가장 좋아하는 형인 황민현에게 코알라처럼 엉겨 붙어 저돌적인 애정공세를 펼칠 때는 그가 자신의 사이즈를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유선호의 탈락이 확정된 순간, 그가 단지 발랄한 소년이 아닌 상냥한 사람인 걸 알았다. 같은 소속사에서 나온 동기는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진 순간, 기약 없는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간 순간, 아무리 해맑은 그라도 절망이나 비애를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았겠나. 하지만 유선호는 울지 않았고, 낙심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는 황민현을 찾아가 웃겼고, 안겼고, 업혔다. 황민현이 눈물을 그치지 않자 “형, 나 때문에 우는 거야?”라고 농을 건넸다. 누군가의 복잡한 마음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속 깊은 소년을 보며, 그가 참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듯 한 치의 그늘도 구김도 없는 듯한 유선호가 탈락한 건, 간절함,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한국인 고유의 ‘한’이 부족해서가 아니었겠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신이 나있는 이 명랑한 친구에겐 절절한 눈물도 호소도 결연한 출사표도 없었고, 팬들이 비애와 오기로 뭉칠 구심점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선 탈락했을지언정, 밝고 행복한 유선호, 울지 않는 유선호, 손을 잡아달라 호소하기 전에 먼저 덥석 내미는 유선호는 특별하다. 이제는 서바이벌의 장외에서 또 다른 경기를 펼칠 그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간 그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었으면 좋겠다.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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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영화와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