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문화유산? 경주타워와 현대 호텔

인스타그램과 에어비엔비 시대에 경주가 그대로이길 바랄 뿐이다.

경주 타워

“문화유산이란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 또는 젊은 세대에게 계승·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중략) 문화적 소산. 정신ㆍ물질적 각종 문화재나 문화 양식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표준국어대사전) 경주로 떠나기 전에 문화유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네이버에서 검색했다. 종이사전이 사라진 시대에 문화유산이란 대체 뭘까? 젊은 세대에 계승하고 상속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일까? 커다란 질문을 안고 고속버스를 탔다.

“모처럼 갖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데는 고속버스가 훨씬 좋다. (중략) 유별나게 옴지락거리고 칭얼대는 어린애가 곁에 있는 날은 망해도 보통 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위험부담은 고속버스도 마찬가지지만 달리는 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곧잘 잠들기 때문에 수다도 소란도 오래가지 않는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1권, 경주 1편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물론 그 글의 내용과 같은 연유로 고속버스를 탄 것은 아니지만, 고속버스는 참으로 조용했다. 여자든 남자든 애든 어른이든 모두 스마트폰을 보기 때문. 우등 고속버스 오른쪽 혼자 앉는 자리에서는 한 앳된 여학생이 연신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 이제 누가 그 모습을 이상하다고 여길까? 이미지로 #소통 #맞팔 한다는 말도 지겨운 마당에 ‘셀카’는 인류 사회 최대의 기록의 문화. 문화적 소산. 모든 기록은 유산이 될 자격이 있다. 인스타그램은 또 어떨까? 경주에 다다르기 직전에는 소셜 미디어가 문화유산이 되는 미래를 상상했다. 그러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을 때는 ‘에어비엔비는 또 어떨는지…’ 하는 생각에도 닿았다.

경주 현대 호텔은 1992년에 문을 열었다. 체크인 하는 오른쪽 한 편에는 25주년 기념 사은 행사를 알리는 추첨함이 있었다. “경주를 비롯한 경북의 큰 행사는 대부분 이 호텔에서 했습니다. 서울 강남 아래로 제일 큰 연회장이 우리 호텔에 있거든요. 해외 유명 호텔은 아니지만 최근 개장한 강릉 씨마크 호텔과 같이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가 저희 현대 호텔의 자부심입니다.” 이 호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질문에 직원은 자부심 가득히 대답했다. 호텔의 시설은 오래된 듯했지만 규모를 보니 작정하고 만든 것이 확실했다. 방에서는 보문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자연스럽게 보문호수 산책로와 연결 되었는데 호수를 따라 걸을 땐 콜드 플레이의 ‘Something Just Like This’가 흘러나왔다. 호수 쪽에서 호텔을 바라보니 완만한 듯 가파르게 꺾인 건물의 곡선이 꼭 커다란 파도 같아서 잔잔한 호수를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호텔은 호수와의 어떤 어울림을 고민하는 데 꽤 오랜 공을 들인 듯했고, 그 노력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지나가는 사람에게까지 잔잔히 닿는 듯했다. 예전부터 좋은 호텔의 조건으로 전망, 단정한 실내, 적절한 친절(과하지 않지만 무관심하지도 않은), 전통, 위생, 건물의 완성도, 호텔이 있는 장소의 여행지로서의 가치 등을 생각했는데, 이곳은 5성급 호텔이지만 저렴한 가격까지 더해 꽤나 훌륭한 편이라고 여겨졌다. 얼마나 화려한지, 방안 시설이 어느 정도 최신(이거나 스마트한 시설)인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묵는 경험이 여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도 좋은 호텔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에서 묵은 한 호텔은 수많은 전리품과 예술품으로 가득했는데, 어쩐지 라벤더가 펼쳐진 들과 지중해 해변을 지나 다시 호텔로 돌아오면 지역과의 괴리감 때문에 어색했고, 로마에서 묵은 한 부티크 호텔은 수없이 많은 샴푸의 종류와 동그랗고 붉은 침대로 눈과 코를 자극했지만 하루종일 로마의 문화유산을 보다가 객실에 들어서면 꼭 고전영화와 ‘미드’를 번갈아 보는 기분이 들어 흥이 깨지곤 했다. 경주 현대 호텔이 국내 호텔 중 더 특별한 호텔은 아니겠지만 경주를 여행하고 그 곳에서 묵는 것은 웬일인지 기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에어비엔비의 시대, 남의 집이 숙소가 되고, 그것이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요즘, 호텔에서 묵는 것은 어떤 의미일는지. 과장한다면 호텔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을까? (료칸과 비교하면 심한 과장이겠지만.) 산책을 마치고 호텔 1층 로비로 다시 돌아왔을 때쯤 경주 시민(으로 추정되는)들이 빵을 사고 있었다. “저도 이 호텔에서 부모님 칠순 잔치, 동생 결혼식 다 했습니더.” 호텔 밖으로 나가는 택시 기사의 말에 이곳에서 묵는 것이 경주 사람들의 온갖 ‘경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경주 보문공원 옆, 엑스포 공원 쪽을 향했다. 최근 경주를 찾는 일이 뜸해 경주 타워를 볼 기회가 없었기에 작정하고 볼 참이었다. 혹시 나도 모르게 거절한 쪽이었을 수도 있다. 경주 타워는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높이 82미터의 유리 타워다. 2007년 준공되었으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위해 엑스포 공원 안에 건립했다. 유리로 둘러싼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 광경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게 서울 신시청사다. (서울 시민은 어쩔 수 없을까?) 유리로 건물을 감싸는건 옛 건물이 많은 도시에서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현대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지으면 새로운 건물과 기존 건물간의 대비가 분명해져서 서로 더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서울 신시청사는 구시청사와 대비를 잘 이루었지만 유리가 지닌 치명적인 단점,즉 열 흐름이 제어되지 않아 에너지 낭비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 받았다. 서울 신시청사는 어쨌든 사무 공간이기 때문이다. 경주타워는 애초에 사무 공간이 아니기에 에너지 효율에 대한 큰 우려는 없지만 기존의 어떤 것과 대비를 이루기 위한 것인지 불분명해 보였다. 엑스포 공원은 유리 건물이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개발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주 타워를 짓기 전부터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렸을 단어는 아마도 랜드마크가 아닐까? 경주의 랜드마크를 만든다? 몇몇 건축가들은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권위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기묘한 형태의 건물이 도시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산과 강을 품고 꿋꿋이 서 있는 자체가 랜드마크라는 주장이다. 그들 말을 따르자면 고도古都 경주는 그대로 랜드마크가 아닐까? 경주 타워를 건설한 이유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때문이었다면 더욱더 ‘경주’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하는 게 어땠을까?

“랜드마크는 언제나 그렇듯이 지어졌을 때 흉물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그때마다 항상 이야기되는 대상은 파리의 에펠탑이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을 세웠는데 당시 파리지엔들은 사정없이 비판했으며 몇몇 예술가는 에펠탑을 바라보며 식사조차 거부했다는 이야기. 이후 프랑스를 넘어 유럽의 상징으로도 회자되는 에펠탑의 사례는 수많은 랜드마크를 지을때마다 합리화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준공된 지 10년이 된 지금 경주 타워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아니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할까?

인스타그램 시대에는 검색을 해시태그로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길 때 해시태그를 이용해서 검색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태그 검색을 통해 각 태그별로 게시물이 몇 개인지를 알려준다. ‘#경주타워’로 올라온 글은 2천35개다.(6월 13일 기준) ‘#경주스타벅스’가 3천3백13개이고 ‘#분황사’도 4천3백38개인 것을 감안하면 현저히 적은 숫자다. 바로 옆 ‘#보문단지’ 게시물이 7만6천6백90개, ‘#안압지’가 9만8천65개, ‘#첨성대’는 8만6천7백79개다. ‘#경주여행’이 약 20만개인 점까지 고려하면 단지 경주에 관한 해시태그가 적기 때문에 경주 타워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대는 20~30대다. 그들은 오히려 전통적인 경주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듯했다. 이들중에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던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경주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어떤 도시보다 싱그러움이 넘쳤다. 과거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를 찾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연관 검색어’는 경주였다. 젊은이들이 새롭게 만든 경주 타워 앞에서 사진을찍고 어떤 유산을 잘 남기지 않는다는 건 경주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소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시사점은 아닐는지. 경주 타워 맞은편엔 작년에 준공된 중도 타워가 자리 잡고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에서 모티브를 따와 지은 건물인데, 진짜 황룡사 9층 목탑도 복원과는 상관이없는 상업용 빌딩이다. 지난 2015년엔 중도 타워와 경주 타워가 결혼식을 올렸다. 중도 타워가 우뚝 솟아 있으니 총각 탑으로, 경주 타워가 음각으로 되어있으니 처녀 탑으로 상정하고 기획한 이벤트였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요즘 유행하는 말을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실화냐?” ‘#중도타워’를 태그한 게시물은 단 1백4개다.

경주에서 젊은 사람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오래된 보문단지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아덴이라는 카페에 북적이며 모여 있었다. 보문단지가 처음 생겼을 때 지은 40년 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다. 보문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외부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채 나무와 자연적인 인테리어로 꾸몄다. 본래의 기와지붕과 낡은 외관, 기둥조차 그대로 유지한 모습이다. 최근 경주엔 많은 카페가 생겨나고 있는데 과거 관광단지가 처음 생겼을 때 만든 기와지붕 상가를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인다. 카페가 많아지는 것을 꼭 바람직한 현상이라고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는 분명 수학여행과 같은 시끌벅적함이 있었다. 문화유산이란 무엇일까? “젊은 세대에게 계승·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문화적 소산. 정신·문화재나 문화 양식”이라면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주체는 역시 ‘젊은세대’다. 젊은 세대에게 오래된 호텔, 오래된 상가, 오래된 유원지는 있는 그대로 유산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사랑한다. 유리로 만든 최신식 건물보다, 오래된 것을 흉내 내어 새로 지은 빌딩보다 훨씬 더. 올해 4월에 문을 연카페 ‘#아덴’을 태그한 게시물은 현재 8천3백36개다. 커피를 산 젊은 커플은 이렇게 말했다.“내일은 분황사 가자. 거기 들렀다가 근처에서 황남빵 사먹게.”

“한국은 “전 국토가 박물관” 이라던 유홍준 교수의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유치’와 ‘개발’ 플래카드 앞에서 과거는 남루할 뿐이고 ‘(문화유산)지정’ 표어가 나붙어도 실은 앞날을 계산하기 바쁜 시절.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맛집을 골라줄 순 없어도 직접 발품을 팔아 답사해 차라리 호주머니에 넣은 듯이 간직한 개별의 문화유산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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