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세계 챔피언을 만나다

지금 지구상 모든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서퍼는 하와이 출신의존 존 플로렌스다. 파도의 지배자, 바다의 제왕으로 불리는 스물 네 살의 서핑 챔피언을 오아후 노스쇼어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노스쇼어의 오후, 까무잡잡한 피부의 작고 날씬한 여자가 길고 멋진 빈티지 자동차를 타고 골목으로 들어왔다. 1963년형 뷰익 일렉트라 225, 푸른색과 녹색이 섞인 보기 드문 색깔. 그녀는 시동을 끄고 발을 페달 위에 올린 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는데, 그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맨발은 운명처럼 잘 어울렸다. 알렉스 플로렌스. 엄격하지만 따뜻한 눈빛의 그녀는 서핑 세계 타이틀 챔피언인 존 존 플로렌스의 엄마다. “여긴 아주 작은 동네예요.”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평생 고요하게 산 알렉스에게 요즘 존 존의 폭풍 같은  유명세는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전엔 그녀와 아들 셋은 그들만의 작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요즘은 동네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알렉스와 그녀의 가족이 누군지 안다. 알렉스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존 존이 글쎄 너무 유명해졌어요.” 그 유명한 아들 존 존 플로렌스는 아침 내내 투어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챔피언의 일과는 서프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헐리 로고를 맨 앞 제일 잘 보이는 쪽에, 초록 몬스터 에너지 로고는 그 뒤에, 출전 때마다 그의 보드를 만드는 동네 친구 존 파이젤의 이름은 가운데에, 닉슨 로고는 뒷부분에 붙인다.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서프 시즌 동안 스폰서들의 로고를 붙이고 떼고 하는 일로 존 존이 버는 돈은 수백만 달러다. 스티커 붙이는 일을 끝낸 존 존이 상의를 벗은 채 데크에 서 있는 모습은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돌고래 같다. 피부는 오랜 세월 맞선 햇볕에 완전히 바랬고 금발 머리는 바닷물에 시달린 나머지 단단한 솜뭉치처럼 말려 귀 옆에서 곱슬거린다. 이런 금발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다. 햇볕에 색이 죄다 빠져버리고 염분 때문에 엉키고 뭉친 가엽고 동물적인 금발. 존 존의 집 주변에는 아주 유명한 다섯 개의 브레이크가 있다. 로그 케빈즈, 록파일즈, 오프 더 월, 백 도어, 파이프라인. 존 존의 어린 시절 집은 파이프라인 반대쪽 해변에 있고 그 집엔 존 존의 엄마가 아직 살고 있다. 그녀는 모래투성이의서퍼들을 언제든 거실에서 쉬게 해준다. “존 존은 매일 아침 아주 일찍 일어났어요. 친구들이랑 실컷 서핑을 하다가 지각하기 일보 직전에야 학교로 뛰어 갔죠.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뭘 좀 집어 먹고 또 바다로 나갔어요. 그애는 늘 뛰어다녔고 언제나 맨발이었어요. 학교에도 신발을 신고 간 적이 없어요. 반바지와 티셔츠, 배낭 하나면 어디든 갔으니까요. 존 존은 그렇게 컸어요. 어릴 때부터 서핑만 하고 살았지만 처음부터 일등은 아니었죠.”

존 존의 첫 우승은 2016년 퀵실버 에디 아이카우 서핑 대회였다. 이 엄격한 대회는 20피트까지 파도가 올라와야만 열리는데, 그 이유로 1985년에 처음 개최된 후 지금까지 단 아홉 번만 진행됐다. 빅 웨이브를 6년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열린 이 대회에서 존 존은 엄청난 환호와 함께 감격적인 우승을 따냈다. 이날 존 존의 모습은 서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 생길 만하다. 그가 잡은 파도는 어림잡아도 4층짜리 건물보다 높다. 게다가 너무 큰 나머지 사람이 그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은 공포스럽고 당혹스럽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울컥하는 심정이 든다. 존 존은 서퍼들이 큰 파도에만 사용하는 10 ½풋의 보통 보드보다 조금 더 긴 보드 위에 있다. 순식간에 파도 꼭대기에 존 존이 나타난다. 하지만 조금 서 있다 곧 뚝 떨어진다. 파도는 그를 앞으로 털어내듯 밀어내고 납작한 보드는 빈 공기 속으로 사정없이 낙하한다. 존 존이 곤두박질해 떨어지다 갑자기 파도 위로 착지한다. 아주 부드럽게 살며시. 파도가 부서지면서 다시 그를 덮치지만 존 존은 여전히 파도 위에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대한 하얀 거품이 그를 완전히 삼킨다. 잠시 후, 존 존이 나타난다. 곧게 선 모습으로. 아직 죽지 않은 채로. 서핑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남을 이 대회 이후, 존 존은 11개의 세계 대회 시리즈로 이루어진 챔피언십 ‘월드 서프 리그 월드 투어’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기념비적인 성적과 함께 그가 고향인 하와이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그가 오는 길목마다 서서 하와이의 영웅을 환영했다. 이 귀엽고 조촐한 행사를 위해 일부 학교는 휴교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는 “존 존 축하해요! 노스쇼어 커뮤니티와 하와이 주민들로부터”라고 쓰여 있었다.

존 존은 열세 살 때 처음으로 ‘반스 트리플 크라운’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대회에 나온 가장 어린 선수였다. 금발 곱슬머리를 나부끼며 수줍어하는 소년이 노스쇼어에서 서툴게 서핑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길고 긴 자료 화면으로 남아 있다. 그때 그는 기록도 영광도 없는 풋내기 선수였지만 몇몇 카메라는 그때부터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당시 카메라맨들은 존 존을 “그 아이에겐 전에는 본 적 없는 뭔가가 있었다. 파도를 잡고 움직이고 하는 모습이 분명 남달랐다. 보기 드문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아기 수달처럼 어리고 귀엽지만 성적은 특별할 것 없었던 소년 서퍼가 자라서 챔피언이 된 후, 존 존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가 어디에 있건 팬들은 불쑥 나타난다. 예를 들면 오늘 아침, 보드 왁싱 작업을 끝낸 존 존이 보드를 들고 바다에 나섰을 때. 고요한 바다가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존 존은 몰려드는 팬보다 새로 바꿀 보드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존 존의 보드를 전담해서 만드는 파이젤이 ‘베스터드’라 부르는 미끈하고 날렵한 보드는 지난 3년 동안 존 존의 모든 경기에 함께했다. 하지만 이제 몇 가지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존 존의 코치인 전 프로 서퍼 로스는 이 모든 수고가 존 존에게 딱 맞는 마력의 보드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 존이 서핑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에릭, 존 존의 복잡한 스케줄과 일상을 관리하는 스펜서까지 해변에 도착했다. 모두 모이긴 했지만, 새 보드를 시험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비도 조금씩 오고 파도는 아주 작은데 심지어 흙탕물이다. 존 존이 조그만 파도를 잡아 그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래나 바위에 앉아 존 존을 바라봤다. 잠시 뭍에 나왔을 때 존 존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저 사람들은 나를 구경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신경 쓰이냐고 물었다. 그가 작게 웃으면서 답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존 존도 이제 자신이 서핑을 하는 젊은 남자애일 뿐이란 순진한 생각은 안 한다. 언제나 카메라가 따라다니고 군중이 몰려드는 유명인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불편한 유명세는 그가 지금 누리는 것들의 대가이기도 하다.

작년에 산, 나무가 제멋대로 뻗어 있는 모던한 복합 주택, 가족과 어린 시절에 살던 나무로 만든 아주 낮은 집, 그리고 그 바로 옆 집엔 존 존의 취미인 사진 작업을 위한 다크 룸과 경기를 분석하기 위한 필름 에디팅 랩, 또 다른 게스트 코티지가 있다. 존 존은 자신만의 성에서 엄마와 두 동생, 이반과 네이선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는 그와 가족이 함께 누리는 하와이 노스쇼어에서의 작고 수수한 인생을 유지하기 위해선, 바깥의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인생을 견뎌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 삶은 계속 더 커지고 있으니까. 잠깐 쉬는 동안 존 존이 파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파도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이 흘러가는 길도 참 재밌어요. 엄마는 뉴저지에서 태어났고, 스펜서는 코스타리카에서 왔어요. 로스는 오하이오에서 왔고요. 여기서 태어난 건 나뿐이지만 우리는 지금 모두 여기에 함께 있어요. 어쩌면 내가 이들을 모두 연결시킨 용접공일 수도 있죠.”

호놀룰루에서 북쪽으로 40마일 떨어진 노스 쇼어는 그야말로 야생적인 곳이다. 슈퍼마켓에서는 남자들이 맨발로 돌아다니고 주차장에선 닭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닌다. 해질 무렵 운전할 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부엉이가 길로 갑자기 뛰어들기도 하니까. 이곳 주민들은 약간 취한 듯한 얼굴로 명랑하면서도 지루하게 말한다. 남자들은 길이가 조금 긴 쇼츠와 언제든 벗어 던질 수 있는 신발을 신는다. 마을의 누구든 이모나 삼촌이 되고, 동네 어디에든 서핑보드가 굴러다닌다. 가끔은 별똥별처럼 하늘에서 서핑보드가 뚝 떨어지도 한다. 새로운 서핑 기술을 연마하는 소년들에게서 튕겨져 나온 보드들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두 동강이 나기도 한다. 존 존은 이 순박한 마을에서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자랐다. 존 존의 코치인 로스가 물이 더 깨끗하고 파도가 큰 다른 장소로 가자고 권했지만, 존 존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샤키해요. 이 동네는 내가 잘 알아요.” 실제로 노스쇼어의 바다에는 상어가 종종 출몰한다. 존 존은 거침없이 파도를 타지만 쓸데없는 호기를 부리지 않는다. 이럴 때의 그는 신중하고 아주 조심스럽다. 서핑 마니아들이 최고의 서프 필름으로 꼽는 ‘2015 뷰 프롬 어 블루 문’ 에서 존 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도를 탄다. 어떤 파도를 잡았건 그에겐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움직임은 빠르지만 부드럽고 유연하다. 필요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파도 위에 서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치 지구 전체를 뒤집듯 몸을 돌린다. 그래서 어떤 영상을 보면 파도가 영원히 멈췄거나 하늘이 뒤로 물러선 것처럼도 보인다. 존 존의 연습이 끝난 후, 에릭이 찍은 장면을 보기 위해 모두 그의 집에 모였다. 그들이 필름을 에디팅하는 곳을 ‘더 랩’이라고 부르는데, 그 방엔 몇 대의 세탁기와 평면 모니터 텔레비전, 스툴과 책상 의자 몇 개가 있다.

존 존의 보드를 만드는 파이젤은 오늘따라 심각하다. 반바지를 입고 플립플롭을 신은 햇볕에 바짝 탄 그는 각 세션을 세심하게 돌려보면서 새 보드가 파도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관찰한다. 보드에 이름이 필요하단 말에 엉뚱한 단어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다 큰 남자들이 별것 아닌 일로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라니. 존 존의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다. “서퍼들은 대부분 고독한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요. 하지만 난 그게 별로예요. 좋은 팀을 가졌고 그 사실에 감사해요. 서핑 말고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혼자 모든 걸 이루고 싶어 하고 거기서 자부심도 느끼겠죠. 난 아니예요. 이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고 저 사람의 도움도 필요해요.” 그의 말대로 노스쇼어의 많은 사람이 그의 성공에 기여했다.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 거리를 구경하다 만난 존 존의 오랜 이웃인 핏은 스스로를 존 존의 ‘헤드 어드바이저’라 불렀다. 그에게 존 존과 함께 큰 대회에 가봤냐고 물었다. 그는 햇볕에 너무 탄 나머지 흰 점들이 생긴 얼굴을 묘하게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나요? 아니요. 난 여기 있어야죠.” 노스쇼어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 역시 존 존과 함께 이곳에 머무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편, 올이 풀린 청 반바지에 대머리 독수리 프린트 티셔츠를 입은 존 존의 엄마 알렉스는 아들의 집 부엌에 있다. 그녀는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면서, 아들 셋을 키우는 싱글 맘의 삶이 어땠는지 말했다. 1953년형 흰색 폰티악 뒷자리에서 밖을 내다보는 막내아들 이반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좋은 것들을 가질 돈은 없었지만 언제나 쿨한 걸 좋아했어요. 이 차 좀 봐요. 멋지죠? 하지만 걸핏하면 엔진이 멈춰서 우리 가족은 늘 길 옆에 서 있곤 했어요” 하고는 크게 웃었다. 그녀는 곧 또 다른 사진을 찾아냈다. “이분이 존 존의 할아버지예요.” 핸섬한 노인이 매끈하게 가르마 탄 머리를 넘기면서 웃는 사진이다. 블랙 스웨트 셔츠를 입고 목발을 짚은 채 꼿꼿하게 서 있는 노인은 얼핏 자니 캐시를 닮았다. 이번엔 남의 집 뒷마당에서 그녀와 아이들이 스케이드보드를 타는 사진이 나왔다. 알렉스는 아들들에게 스케이트와 서핑을 가르쳤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고요하지만 눈에선 집념이 보인다. “얘들을 좀 보세요. 겉으론 건장한 운동 선수지만 우리 애들의 내면엔 각자의 펑크 록이 있어요.” 상념에 잠긴 모습으로 알렉스가 말했다.

존 존의 아버지 존 L. 플로렌스는 2014년 사재를 털어 회고록 < F.E.A.R >를 냈다. 책의 많은 페이지는 자신의 형편없는 점들을 나열하는 데 쓰였으며 알콜홀릭, 범죄자, 스릴을 찾는 사람이라 스스로 묘사한 그의 기행은 끝도 없었다. “나는 불안정 콤플렉스를 가진 병적인 자기중심주의자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존 존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이사 가기 전에 우리는 아주 잠깐 시간을 같이 보낸 적이 있어요. 지금은 재혼을 했으니까 내겐 이복 형제가 생겼고요. 애들이요? 슈퍼 나이스해요. 슈퍼 쿨해요. 자주 만나진 못하죠. 그들은 동부에 살거든요.”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떤지 물었을 때 존 존은 짧게 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좀 더 묻자 눈에 띄게 불편해했다. “그냥 그와 내 관계는 좋거나 아니면 좋은 거 비슷한 뭔가예요. 나는 스스로 자랐어요. 아시죠?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인생에 꽤 만족하고 이제는 모든 걸 편하게 느껴요.”

인터뷰 중간에 존 존은 그가 집에서 키우는 벌을 살펴보고 싶어 했다. 벌을 보러 가려면 보호 패드가 달린 특수 수트를 입고 신발도 신어야 한다. (그가 신발을 신은 모습을 이때 처음 보았다.) 한가로운 취미 시간까지도 그는 조금은 겁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동안 비행 수업을 받았고, 요즘은 요트에 빠져 있다. 파도 밖, 존 존의 개인적 삶은 벌을 키우고 연못에 코이 잉어를 두고 래디시와 양상추, 당근을 텃밭에서 키우는 식으로 한가롭고 순수하다. 마치 에덴 동산처럼. “무언가를 심어두면 그냥 잘 자라요.” 그가 말할 때마다 꿀벌들이 존 존의 주위를 후광처럼 맴돌았다. 그는 흐뭇한 얼굴로 벌들을 바라보다 순진한 어린 아이같이 그 자리를 떠나 낮잠을 자러 갔다.

누구보다 존 존이 더 잘 알 듯이, 서퍼를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정신이 강해야 한다. 존 존은 파이프라인에서 서핑하다 죽은 남자를 평생 기억한다. 그 역시 발목이 부러지고 허리도 부러졌다. 한번은 왼발의 인대가 전부 찢어졌다. 그에게 두려움에 대해 물었다. “음, 두려움과 아드레날린이 함께 있어요. 아드레날린이 발동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쭉 가는 거죠. 첫 파도를 잡을 때까지 쭉 가요. 파도를 타면 두려움이 사라져요. 서퍼들도 일종의 중독자들 같아요. 정말로요. 서핑에서 최고의 상황은 누구와도 경쟁을 하지 않는 거예요, 파도를 탈 땐 완전히 그 순간에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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