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최영진이 포착한 지금, 서울

압축된 시간들이 동네에 그대로 쌓인다. 제각각 다른 욕망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이질적인 나이테를 만든다. 사진작가 최영진이 서울의 가장 무뚝뚝한 얼굴을 담담하게 담았다.

무너지고 있는 것은 세운 지 20년도 되지 않은 미아동의 한 연립 주택이다.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를 비워주는 중이다. ‘포맷’이고 ‘리셋’이다. 14층짜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35층 규제를 뚫고 ‘49층 초고층 정비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지만 통과못했다. 그래도 뚝심이 우뚝해 재상정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청담 사거리에는 ‘천지개벽 수준의 영동대로 개발계획 경축’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사진작가 최영진은 북한산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사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굽이치는 북한산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을 함께 찍었다. 새만금의 앙상한 뒷모습을 기록하던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부터다. 그러다 지난 2015년, 험한 산길에서 장비와 함께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이후로 작업실이 있는 정릉동에서 북한산을 올려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30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을 참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했다. “도시에도 나이테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 시대가 다른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 그리고 저 멀리 함께 보이는 산까지. 시간이 만들어낸 경계이자 흔적이겠지요. 이런 도시의 나이테는 사람들의 감성과 관심을 끌어들여 쾌적한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는 서울의 나이테는 어딘지 좀 폭력적이랄까. 아예 닦아내거나 기이한 속도로 생겨나는…. 그래서 기록하는 거죠. 날씨도 빛도 스펙터클도 이벤트도 다 뺀 그대로를요. 조화롭거나 그렇지 않거나, 선명한 그 경계를요.”

천지개벽. 누군가에게는 이 단어가 흐뭇하게 읽힐까. 논현동의 한 아파트 벽면에 붙은 플래카드에는 빨간 풍선, 파란 풍선과 함께 느낌표가 두 개나 붙었다. ‘재건축 안전진단 정밀검사 통과 경축’. 노후, 불량 건축물에 매기는 D등급을 판정 받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앞에 박수를 얹는 건 누구일까.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에서 강남 4구와 함께 투기 지역으로 선정된 노원구의 부동산에서는 ‘강남과 동급’, ‘지금 가장 핫한 지역’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웃어 넘기려해도 막상 웃어지지 않는다.

최영진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 위에서 본 돈암동 한신·한진 아파트는 그 자체로 도시의 병풍이자 산이다. 높은 지대에 높은 건물을 세워서 길에서 보면 머리 위로 아파트가 쏟아진다. 최영진은 이 사진을 성신여중 운동장에서 찍었다. 한쪽 끄트머리에 원래 보이던 산자락을 겨우 넣었다. 누군가는 매일 보는 풍경이겠지만 영원한 풍경은 아니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 최영진은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든다.

부동산을 좀 기웃거려본 사람은 조망권 위에 영구조망권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안다. 언제 또 그 앞에 건물이 솟아버릴지 장담할 수 없으니 영구조망권으로 못을 박는 셈이다. 그 못은 돈으로 박는다. 난개발, 도시 계획의 부재, 부동산 과열 같은 단어가 순진해 빠진 이야기가 된 지금, 최영진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