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옷의 유행

요즘엔 낚시용 조끼나 캠핑용 플리스가 ‘패셔너블함’과 동의어로 쓰인다. 어쩌다 못생긴 옷들은 유행이 됐을까?

최근 SNS나 스트리트 패션을 보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옷차림이 있다. 낡아 빠진 아웃도어용 플리스에 80년대 콘서트 티셔츠를 입고, 샌들에 양말을 신고 못생긴 아저씨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커다란 패딩에 등산용 백팩이나 웨이스트 백 같은 걸 두르고 있기도 하다. 한 마디로 ‘못생긴 옷들’이다. 업계 용어로는 ‘어글리 프리티(Ugly Pretty)’ 혹은 ‘고프코어(Gorpcore)’라고 부른다. 전자는 ‘못생긴 게 패셔너블해지고 있다’는 의미고, 후자는 ‘캠핑과 아웃도어에 관련된 못생긴 옷들이 유행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

고프코어의 ‘고프(Gorp)’는 그래놀라(Granola), 귀리(Oat), 건포도(Raisin), 땅콩(Peanut)의 첫머리를 딴 약자다. 트레킹이나 캠핑을 갈 때 들고 가는 견과류 믹스를 뜻하는 이 말은, 캠핑이나 트레킹 용 아웃도어 의류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이렇게 말하면 몇 년 전 자주 볼 수 있었던 놈코어 유행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다만 놈코어가 훨씬 더 스타일리시하다. 브랜드도 네펜테스나 스노우 피크, 바튼웨어 등이다. 고프코어는 여기서 좀 더 못생긴 옷들, 리얼 캠핑 의류 쪽이다. 파타고니아의 레트로 X나 유니클로의 후리스, 노스페이스나 아크테릭스의 윈드 브레이커, 스톤 아일랜드 재킷, 등산용 써모 바지, 웨이스트 백, 단색의 빈티지 패딩, 테바의 샌들 같은 걸 떠올리면 된다.

이런 옷은 아웃도어의 기능에 맞춰져 있지만 실생활 용으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스포츠 샌들과 양말’ 조합이 고프코어의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름에 더우니까 편하고 시원한 스포츠 샌들을 신는다. 하지만 땀이 나니까 거기에 양말을 신는다. 이런 식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실용만이 있을 뿐이지 패션이 개입할 자리는 없다. 이런 옷들은 패션 따위 신경 쓸 돈도 시간도 없는 학생들, 편한 복장을 극히 선호하는 실용적인 여행자들, 옷이란 몸을 가리고 추울 때 따뜻하면 된다는 패션에 무심한 사람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소위 한국 중장년 층의 등산복 룩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툭하면 어떻게 저렇게 입고 다니냐고 개탄이나 들었던 게 사실이다.

출처 @BSRHpeyhdZ1

이런 옷에 대한 분위기가 바뀐 건 몇 년 전부터 파리와 밀라노 같은 주요 패션쇼에 못생긴 아이템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뚜렷한 전환점은 2013년 셀린느에 등장한 버켄스톡이다. 프라다와 랑방의 ‘스포츠 샌들과 두꺼운 양말’ 조합, HBA의 노스페이스 재킷 등을 거친 후 이 트렌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네이버후드, 오프닝 세레모니는 테바와 협업했고 베트멍은 캐나다 구스와 협업했으며 제레미 스콧 컬렉션에는 어그도 등장했다. 이번 발렌시아가는 고프코어와 하이 패션과의 교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출처 @denimtears

예전에 없던 이 새로운 룩은 곧 새로운 세대를 자극했다. 남들 눈치나 보고 인정 받으려는 패션보다 자기가 재밌는 패션이 더 좋다는 식이다. 이 태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못생긴 옷만큼 좋은 건 없다. 트렌드 패션에 대한 반항이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고프코어 옷들은 베트멍, 구찌, 발렌시아가와 마구 섞이고, 또 거기에 80년대 콘서트 티셔츠와 밑단을 잘라버린 물 빠진 청바지, 패러디 로고 아이템이 뒤섞인다. 바지와 재킷은 빈티지 숍에서 잘못 고른 옷처럼 너무 커 보이기 일쑤다. 섬세한 핏과 배치는 의도적인 투박함과 엉성함으로 대치된다. 고프코어 트렌드는 바지가 넓어졌다 좁아지거나, 꽃무늬 다음에 미니멀리즘이 온다든가 하는 이전의 트렌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 트렌드는 패션 자체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 기반하고 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많은 게 달라지고 있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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