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대한 약속, 로스앤젤레스

이 도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완벽한 날씨도, 성실히 일하면 되돌려받는 아메리칸 드림 때문도 아니다. 궁지에 몰린 약자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곳곳을 사랑이야기에 담아 그려낸 작품이다. 이 도시에 정착한 지 햇수로 9년째인 나도, 미국 동부에서 나고 자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바라본 영화 속 장소들로 달려가고 싶은 감상에 빠졌다. 감독은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수평 도시의 역동적인 면면을 잘 포착했는데, 넓게 펼쳐진 실제 로스앤젤레스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비탈길이 많이 나와 색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막막한 삶 속에서 꿈을 좇는 젊은이들의 고단함을 표현하려는 의도였으리라. 등장인물들의 얇은 옷차림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로스앤젤레스는 천혜의 날씨를 가진 도시다. 한낮의 태양도 그늘만 있다면 피할 수 있고, 해진 뒤 밤거리는 걷기 좋게 선선하다. 완벽한 날씨의 도시에서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과 사랑을 좇으며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선남선녀 배우와 로스앤젤레스라는 무대, OST로 영화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그리 달갑게 보지 못했다. 내게 <라라랜드>는 이 땅에 사는 걸 걱정할 필요 없는 미국인들이 누리는 특권 또는 판타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생존을 걱정하는 장르였다면 이토록 성공했을리 없다. 관객은 더 짜릿한 자극, 더 말랑한 로맨스, 더 보기 좋은 그림을 선택하곤 한다.

솔직히, 나 역시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먹고 사는 이야기’ 장르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평범한 취향을 가진 평범한 대중으로 살아왔고, 중산층에 속한다고 믿고 싶은 비중산층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고, 국적에 따른 권리가 권리인지 모르는 채 누리며 살았다. 책임까지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신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런데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로스앤젤레스로 유학을 온 뒤 정착해 살게 된 지금까지 나는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됐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누구도 나의 신분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물어본 적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상대방의 신분을 묻는 건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만났을 때 이 질문은 에두르는 법이 없다. 상대의 신분을 확인한 뒤, 앞으로 신분 안정화를 위해 남은 단계들과 팁을 공유하는 것이 이민자들 사이의 흔한 대화의 주제다. 그리고 굳이 소리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민자’라는 신분을 얼굴로 말하고 있다. 뒤늦게 학생이 되어 미국 땅을 밟은 2009년 8월의 어느 날부터 나는 합법적인 신분을 지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로스앤젤레스가 내가 꿈꿔온 두 번째 삶의 터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앞날을 함께할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 손잡고 서 있던 땅이 로스앤젤레스였을 뿐이다.

한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게 됐을 때, 친구들은 농담을 반 정도 섞어 나를 부러워했다. 이제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이들은 그 당시에도 한목소리로 한국에서는 살기 힘들다며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도 내가 떠나온 서울만큼이나 치열한 도시였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도 주택난이 가장 심각한 도시 중 하나인데, 전세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집을 사든 월세를 살든 결국 버는 돈의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하는 것이 디폴트다. 2016년 로스앤젤레스의 월세 중간값은 2천2백 달러(약 2백44만원) 정도였고, 정부가 4퍼센트로 월세의 연간 상승률을 제한하지만 집값의 고공행진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극빈층을 위한 주거, 의료, 식량, 출산, 교육 등의 복지는 잘돼 있지만 그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빈곤함을 증명해야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신분’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떠나온 입장에서는 한국이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그리고 드러낸 적은 없지만 조심스럽게 탈로스앤젤레스를 꿈꿨다. 어디에 살아도 여기보다는 형편이 나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도시의 이름들을 검색창에 쳐넣었다. 번번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포기하기는 했지만 한번 떠나봤기에 못할 것도 없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지도를 붉게 물들이며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생각이 달라졌다. 트럼프에게 표를 준 도시들에 살지 않음을 안도하면서도, 이전보다 자주 이곳이 과연 살기 좋은 곳인지 의심하게 됐다. 사람들이 태어난 곳을 떠날 때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안정이 안전을 우선하지는 않는다. 안정이 아닌 안전을 걱정하게 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슬픈 소식들도 들려왔다.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이민세관단속국에 끌려가 추방을 앞둔 불법 체류자 아버지의 이야기나, 법원 등 공공기관에서 잠복했다가 불법 체류자를 체포한다는 루머, 이민국에서 입국이 거절되어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국에 살 때 여성으로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과 다르게 인간으로서 그렇게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당면한 위기는 아니었지만, 만약에 어떤 순간에 나와 가족이 곤란해지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로스앤젤레스와 로스앤젤레스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이른바 ‘피난처 도시’다. 1980년대 초, 중남미 지역 국가들에 독재 정권이 출현했을 때 망명 온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시작된 ‘피난처도시’ 정책은 독립적인 주들이 모여 연방국가를 이루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지자체의 독자적인 정책이다.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뉴욕, 시카고 등이 미국의 대표적인 피난처도시이며, 최근에는 그 의미가 불법 체류 이민자를 보호하는 도시로 좁혀져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며 반이민정책을 내세웠는데, 피난처 도시는 이러한 반이민정책에 대항하여 이민자들을 보호한다. 시의 직원이나 경찰이 사람들에게 신분을 묻는 것을 금지하며, 불법체류자의 체포를 위한 이민세관단속국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 물론 이 정책이 시민의 안전이라는 가치 아래 또 다른 딜레마와 마주할 수 있고, 이 정책이 생긴 뒤 불법 체류자가 더 많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연방정부는 피난처도시들의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로스앤젤레스가 불법 체류 이민자를 보호하겠다고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에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들이 특히 많은데,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생계형 노동자 대부분이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도시가 돌아가도록 돕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기에, 온전히 인권만을 이유로 로스앤젤레스가 피난처도시가 된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계산이 있을지언정 피난처 도시를 천명한 뒤, 시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행보는 믿음직스러웠다. 로스앤젤레스시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멕시코 장벽 건설에 입찰한 업체들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발의안을 통과시켰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난처 도시가 아닌 지역들로의 공무원의 출장과 여행을 금지했다. 도시의 정책과 뜻을 달리하는 지역 및 업체들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나처럼 로스앤젤레스를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두 친구와 만나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일본인 파올라와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인 모모코, 그리고 나까지 셋은 모두 배우자를 이유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게 된 공통점이 있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도록 이 도시의 특별한 미덕을 찾지 못했던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답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민자가 많은 덕분에 다양한 문화와 인종에 비교적 개방적인 도시,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위협받을 확률이 적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동의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어디에 살아도 사는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삶의 결은 인생의 지문과 같아서 많은 부분에서 타고난다고 믿고 있다. 나는 평생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진 적이 없었고, 그 필요한 만큼을 채우려 분투하며 살았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가 딛고 선 이 자리가 충분히 단단한 땅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도 로스앤젤레스가 아름다운 도시라고,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는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게 이 도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완벽한 날씨도, 성실히 일하면 되돌려 받는 아메리칸 드림도 아니다. 떠나온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궁지에 몰린 약자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엽기적인 살인사건, 묻지 마 테러, 지역 이기주의 등 세상은 매일 새롭게 추악한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이 약속이 꼭 이민자들에게만 이상향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그렇듯 고향도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가고 싶은 도시는 선택할 수 있다. 이름을 바꾸듯 결단이 필요한 일만은 아니다. 부쩍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살 수 없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스스로 가늠해 나가다 보면, 지금 이곳에서는 불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만난다. 이달, < GQ >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도시에 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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