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어른의 미래

겨울 초입에 전라북도 변산을 찾았다. <변산>을 촬영 중인 이준익 감독은 슬리퍼를 신고 마중을 나왔다. 그는 여기서 꼭 먹어야 할 것이 있다며 <GQ> 스태프 전부 단골집으로 데려가 돌게장과 갈치탕을 한 상 가득 먹였다. 그리고 변산의 노을에 대해, 쉬지 않고 영화를 찍는 마음에 대해, 간직하고 싶은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터틀넥은 디올 옴므.

변산에서 <변산>을 촬영 중이다. 여기 생활은 어떤가? 두 달째 있었는데 좋다. 최근 찍은 영화 중 제일 즐거운 현장이다. 변산반도의 노을이 아주 멋지고, 사람들도 좋다. 아까 갈치탕 집 인심 봤지 않나? 정민이, 고은이, 배우들, 스태프들이랑 하도 많이 몰려다녀서 아주 단골이 됐다.

<변산>이 사극일 거라 많이들 오해하는데, 무명 래퍼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벌어지는 얘기다. 코미디가 강한 드라마다. 은퇴 소동 한번 벌인 후 <소원>, <사도>, <동주>, <박열> 다 비극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해 와서 누적된 정신적 피로가 있었다. 이젠 그 중압감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희극은 사람을 치유하는 명약이니까. 필모그래피로 보면 <라디오 스타>와 <황산벌>로의 회귀다.

어쩌다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됐나?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때는 록으로 중년의 삶을 달랬는데, 이젠 힙합으로 청년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게 흥미롭다. 난 원래 음악 자체를 좋아한다. 인간의 어찌할 수 없음을 어루만져주는 놀랍고 마법 같은 장르니까. 음악은 개인이 사회와 불화를 겪을 때, 개인의 무력감과 한계를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에는 그것이 창이고, 소리였다. <왕의 남자>의 장생이 한 광대들의 사설은 지금의 힙합과 똑같다. 특정 지역에서 그곳의 사연을 가지고 프리스타일로 랩을 했다고 보면 된다. 록과 비교하자면, 록과 힙합은 관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저항이라는 면에서 태생적 배경이 같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의 세대에게는 록이 자기 치유 수단이었듯, 지금의 세대에겐 그게 힙합인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록에 심취했었다면 자식 세대는 힙합에 심취해 있는 거지. 지금 이 시대에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현재성을 반영하기엔 힙합이 딱이었다. 그래서 래퍼가 주인공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건가? <변산>은 삼십 대 초반 주인공이 아버지와의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사도>는 아버지가 아들을 이기는 이야기였다. 조선시대의 이념인 유교 사상이라는 것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구조다. 유교의 제사를 봐라. 죽은 자 앞에 모두가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죽은 자의 권력을 이용해서 산 자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제도 아닌가. 그래서 아버지 이기는 아들이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사도>와 달리 <변산>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이긴다. 이제 아버지가 져줘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드라마가 되나?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성장 드라이브가 멈춘 상태다. 그렇다면 이젠 성숙해져야지. 더 이상 청년들을 성장하라며 내몰아선 안 된다.

몸집을 불리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깊어져야 한다는 의미일까? 정확히 그렇다. 더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기보단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체크 수트, 셔츠, 타이, 모두 프라다. 선글라스는 에디터의 것.

사도세자와 윤동주와 비교해, 박열은 몇 세대를 뛰어넘은 듯 급진적인 청년이었다. 항일운동가일 뿐 아니라 넓은 개념의 무정부주의, 반제국주의, 탈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물이니까. 또한 “내가 후미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그녀의 주체적 진술에 맡기겠소”라는 대사는 훌륭한 페미니스트로서의 발언이었다. 그 시대에 그런 진보적 인물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실제로 고증한 대사다. 재판 기록에도 있는 말이다. 박열뿐 아니라, 20세기 초반엔 지금보다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아나키스트,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그때가 소위 말하는 전체주의를 깨뜨린 시기인데 아시아에는 조금 늦게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전근대를 타파하고 난 후에는 또다시 퇴보한 셈이 되겠다. 진보라는 것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 2보 전진 1보 후퇴를 거듭하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지.

장생의 모습에서도, 사도의 모습에서도 체제에 반항하는 박열의 모습이 엿보였다. 아나키스트 박열이 이상향으로서의 캐릭터인가? 이상향적 면모가 분명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라면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인물이니까. 그런데 나는 박열이 특정인에게만 있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라면 다 아나키스트의 모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 서열이 생기고 계급이 생긴다. 그건 무엇이 만들어낸 것일까? 비교하려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만들어낸 것일 테지. 이것이 경쟁 사회를 만든다. 경쟁이 있으면 승자와 패자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면 어느 쪽이 다수일까?

패자가 다수겠지. 당연히. 소수인 승자의 권력에 다수인 패자들이 순응하고 복종해야만 하는 사회가 된다. 우리는 그동안 생존을 위해 굴종하는 체제를 너무 많이 반복해왔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면, 패자들에 대해선 우리가 어떻게 위로하고 인정해줄 수 있느냐. 그들의 삶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중해줄 수 있느냐. 나는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이 지점에서 이타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존중한다.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내가 존중받는 방식이다. 아나키즘의 이론을 세운 피터 크로포트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에서 상호부조론에 대해서 말한다. 생명체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생존해나간다는 것인데, 생존 경쟁이라는 명목으로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정당화시키는 다윈의 진화론과 반대 논리다. 요즘 상생, 공생, 윈윈이라는 표현 많이들 쓰지 않나? 계급 사회 속에 묶여 있을지라도, 나는 모든 인간에겐 그런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스웨터와 청바지, 폴로 랄프 로렌. 첼시 부츠, 유니페어. 시계는 모델의 것.

그런 선의를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경쟁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인정해버리는 건 굉장히 비겁하고 미온적인 태도다. 그렇게 믿으니까 영원히 안 되는 거다.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세상을 원하지 않나? 원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자꾸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것이 점점 더 불평등을 관조하고 심화되게끔 만드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남에게 강요하고 싶진 않다. 이게 박열과 나의 차이일 거다. 그럴 용기도 자질도 없고, 나 혼자 그렇게 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 계몽을 어떻게 해. 하하.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박열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다면 뭘 하고 있을까? 뭐, 지금 힙합하는 애들이지. 사회 비판적인 랩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나키스트 래퍼라니 흥미롭다. 체제와 권력에 저항하는 게 힙합의 정신이니까.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격동의 시기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감독으로서 2017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사필귀정의 한 해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아주 뿌리 깊은 일이었는데 최근에 와서 그게 공론화된 것뿐이니까.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불순분자, 불온세력을 지칭하는 ‘요시찰 인물’이란 말이 있었다. 문화적 검열은 그 시절부터 쭉 있었다. 단지 이렇게 ‘뽀록’이 나고 그 대가까지 받은 건, 세대의 전진으로 봐야 한다.

최소한 참여정부 때는 없었겠지. 그간 눈치를 본 일은 없었나? <간첩 리철진> 이런 걸 제작하고 앉아있는데 눈치를 봤겠나? 아예 눈치라는 말이 없어야 한다. 눈치라는 건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을 상정한 관점이 있는 말이기 때문에, 볼까 말까를 생각하게 되는 거다. 결국 눈치를 본다는 건 눈치를 안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그런 것에 구속돼서 내 삶과 일을 규정짓고 싶지 않다.

2017년의 또 다른 변화는 페미니즘이 시대의 담론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영화계도 아주 밀접한 영향권 안에 있다. 산업 내부에선 영화계 내 성폭력이 이슈로 떠올랐고, 외부에선 등 여성 혐오에 대한 혐의를 받은 영화는 논란이 돼 흥행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변화가 시작돼 다행스럽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다. 단지 공론화되지 못했을 뿐이지. 이제까지 이어진 건 관성적 습관이었을 거다. 관습이라는 건 사실 무지에서 온 행위다. 문제의식 없이 살았기에 “뭐 원래 이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확신범이 되는 거지. 그런데 이게 문제가 돼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뉴스가 됐을 때 지금처럼 경각심을 주면, 이 관습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겠지. 결국은 세대가 바뀌면서 의심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이 사회적 담론으로 떠올라서 관습을 타파하게 되는 거다. 최근엔 직장 내 성폭력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지금 같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준익 감독의 현장에선 양성 평등이 이뤄지고 있나? 그럼. 내가 지향하는 건 인간 평등이다. 후미코의 동거서약을 떠올려보자. “첫째, 우린 동지로서 동거한다.” 남성, 여성이기 전에 같은 뜻을 지닌 사람이라는 거다.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그 다음에 각자 성의 특성에 맞게 배려해줘야 한다. “넌 남자 혹은 여자인데 그러면 어떡해”라든가 “여자한테 잘해줘” 같은 말도 차별이다. 난 현장에서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줄무늬 수트, 맨 온 더 분. 터틀넥, 자라 맨. 벨트와 스니커즈, 토즈. 모자는 에디터의 것.

이준익 감독의 현장은 의사결정 구조도 평등하다고 들었다. 우린 배우부터 스태프들까지 떼로 몰려다니면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다. 일대일로 앉아서 얘기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둘이 속닥거리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오픈해서 공개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답을 찾아서 해결하려 한다.

정보의 차등을 두지 않는 건가? 그렇다. 모든 정보는 다 열려 있다. 서로가 뭘 원하는지 다 알아야만 도울 수 있지 않나? 도와주고 싶어도 모르면 못 도와주니까. 그래야 시간도 늘어지지 않는다. 내가 늘 스케줄을 맞추는 비결이다.

어린 동료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 위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나? 후배한테 배우는 것. 지금 내가 영화를 찍는 건 나의 재능으로 찍는 게 아니다. 영화를 열몇 편 찍은 감독에게 무슨 재능이 남아 있겠나. 경험해보니, 서른아홉 살까지는 선배한테 배울 게 많다. 그런데 마흔 살이 넘으면, 선배한테 배울 게 거의 없어진다. 그때부턴 후배에게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나보다 더 훌륭한 재능과 의욕이 넘치는 존재들이 현장에 백 명씩 드글드글 거리는데, 내가 배우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 친구들 얘기만 듣고 있으면 영화가 저절로 된다. 지금의 난 후배들 덕에 영화를 찍는 거다.

상대를 존중하는 건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디렉션 대로 연기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의 안 준다. 디렉션 안 주는 게 내 디렉션이다. 정민이와 고은이에게도 너희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박정민과는 <동주> 이후 두 번째 호흡이고 김고은과는 첫 작업인데 잘 맞나? 너무너무. 아주 놀라울 정도로 혹은 기적적으로 잘 맞는다. 나는 박정민을 지적인 양아치라고 부른다. 양아치라는 건 멋을 안다는 의미다. 아주 똑똑하고 멋진 친구고, 김고은은 연기를 하는 데 천진한 무구성이 있다. 둘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선후배고 서로를 7, 8년간 알아왔다. 오랜 시간 알았기 때문에 서로의 장점을 발현시키는 데 뜸 들일 시간이 필요 없더라. 그래서 더더욱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

감독으로서 배우의 연기에 자신의 뜻을 개입시키지 않는 게 불안할 법도 한데. 내가 배우들한테 하는 말이 있다. 좋은 씨앗은 옥토에 뿌려져야 한다고. 난 캐스팅을 할 때 배우를 좋은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뭐겠나. 시나리오라는 땅을 곱게 갈아주고, 씨앗이 발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거다. 물이 촬영 제반 여건, 표준계약서에 따라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약속한 노동과 대가를 지키는 것이라면, 햇볕은 칭찬이다. 오케이! 계속 오케이만 때리면 된다. 오케이만 크게 해주면 배우는 무럭무럭 자란다.

턱시도는 루이 비통.

땅도 물도 볕도 디렉션이 아니라면, 연기는 온전히 배우의 몫인가? 맞다. 감나무면 감나무가 되는 거고 밤나무면 밤나무가 되겠지. 감독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소나무가 참나무 되겠나? 배우를 카메라 안에 가둬두지 말고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연기를 포착할 수 있다.

첫 테이크에 오케이를 내는 것도 배우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렇다. 내가 선택한 배우가 했으니까. 믿지 않으면 캐스팅부터 안 한다. 다르게 말하면, 일단 캐스팅했으면 무조건 믿는다. 그리고 난 현재성과 순간의 힘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대개 첫 테이크에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현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놀랍게도 이 영화는 콘티(촬영 전에 인물과 카메라의 동선과 사이즈, 앵글을 그린 스토리보드)가 없다. 스크립터(촬영장에서 매 컷마다 테이크의 내용을 기록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면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찍나? 다 찍는다. 충분히 가능하다. <동주> 때부터 없애서 벌써 세 편 째 이렇게 진행하고 있다.

간소화하니 좋은 점이 있던가? 콘티는 나에게 항상 발목을 잡는 부정확한 설계도 같은 거다. 난 현장에서 영화를 찍는 순간에 가장 정확한 그림이 그려진다. 사전에 미리 콘티를 그려 계획을 짜놓으면 그것에 얽매이게 되는데, 그게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오히려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크립터를 두지 않는 건, 스크립터가 있으면 내가 긴장을 안 하기 때문이다. 스크립터는 감독 옆에서 항상 기록하고 체크해주지 않나. 그럼 난 그에게 의존해서 게을러진다. 내가 잘못 판단하면 스크립터가 짚어주겠지, 하고 안일해진다는 거다. 그런데 스크립터가 없으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놓치는 거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면 감독으로서가 아닌 인간 이준익은 어떤 식으로 현재에 충실한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지 않고, 과거를 위해서 오늘을 인내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의 기록을 남겨두고 곱씹지도 않고, 미래의 어떤 것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내 작품 포스터 한 장 갖고 있지 않고, DVD도 모아놓지 않았다. 모은다는 건 묶인다는 거니까. 그걸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구속받지 않는거다. 여태껏 받은 상들? 그거야 어딘가의 창고에 다 있긴 있을 거다. 하지만 전시해놓거나 그러지 않는다. 과거의 성과에 탐닉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거든. 오늘의 문을 닫아야 내일의 문이 열리는 것 아닌가? 과거의 작품을 보고 앉았으면 내일의 문은 언제 열
거야. 그저 눈앞에 있는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때로는 일이고, 놀이고, 취미이거나 집단이고, 사람이고. 그것에 성실할 뿐이다.

좀 더 사적으로, 최근 집중하고 있는 욕망이 있나? 음…, 최근에는 네이버 페이로 하는 인터넷 쇼핑에 빠져 있다. 멋있는 사람보단 맛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내 인생관이라, 다양한 맛을 골고루 즐기고 음미하는 데 가치를 둔다. 상하좌우 폭넓게, 달리 말하면 잡스럽게 소비하는 편이다.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 중 하나가 소비 아닌가.

주로 어디서 어떤 것들을 쇼핑하나? 내겐 4대 쇼핑의 성지가 있다. 유니클로, 코스트코, 이케아, 다이소. 저렴하고 합리적인 쇼핑을 좋아한다. 명품이 마에스트로가 정성을 담은 것일 순 있겠지만, 그보다 값이 싼 저가 제품이라고 그걸 만든 사람의 삶이 더 누추한가? 그걸 소비하는 사람의 삶이 더 누추한가? 소비의 방식일 뿐, 그렇지 않다는 거다.

코트와 체크 팬츠, 모두 버버리. 울 모자 , 캉골. 티셔츠는 에디터의 것.

지난 25년간 인간적인 코미디부터 진중한 역사 드라마까지 많은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했다. 지금 이준익 감독을 매혹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이걸 말로 설명하려면 부정확해진다. 말도 글도 부정확하다. 단정 지어서 얘기한다거나 수사를 곁들여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자체가 가짜가 되어버리고 만다. 말과 글이라는 매체는 우리의 생각을 일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불일치하게 하더라.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내가 한 말들이 다 부메랑처럼, 모순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지금 인터뷰하는 중이니까,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면 반은 다 말실수고, 기자들은 또 말실수한 것만 적고, 그 잘못 싼 똥을 치우느라고 난 더 큰 실수를 하고, 어우, 점점 더 실수의 양이 많아져서 수습 불가능한 상태가 바로 지금 나다. 하하.

긴 이야기 끝에 인터뷰 무용론인가? 하지만 공감한다. 같은 언어로도 뜻을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우리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어도 서로 다른 범례를 지닌 경우가 많다. 선대가 만들어놓은 단어를 자기 삶의 경험치 안에 대입시켜서 활용하고 있는 거니까. 개개인의 경험 차이 때문에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고, 불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상을 그리고 있을 때는 아무리 대화를 많이 해도 헛돌 뿐이다.

말보다 영화로 보여주는 편이 훨씬 빠르겠다. 그렇다. 영화는 느끼는 거거든. 인간은 상황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상황에서 느낀 감정을 기억하는 거다. 물론 감정 역시도 부정확하다. 자기 감정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아주 모순된, 불완전한 존재가 인간이니까. 그래도 말보단 더 나은 방법이다.

은퇴 해프닝 이후 <소원>으로 복귀해 1년에 한 편 이상 찍고 개봉하며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중이다. 올해는 <박열>과 <변산> 두 편을 찍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다음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생기나? 난 천성이 부지런한 놈이다. 왜 부지런할 수 있냐면, 일을 하는 게 즐거우니까. 나는 일을 놀이처럼 한다. 달리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즐거우니까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온통 널려 있으니 하고 싶은 순서를 정해 가능한 대로 찍어나가는 거다.

동양화과 재학 시절, 스스로의 호를 ‘구마’로 지었다. 언덕 구에 갈 마. 지금도 그 언덕을 부단히 갈고 있나? 그럼. ‘겁나’ 갈고 있다. 이 언덕이 도대체 언제 평지가 될지는 모르겠고, 죽을 때까지 갈아야지. 스무 살 때 지었고 처음엔 아홉 구를 썼는데, 아홉은 꽉 찬 숫자라 너무 시건방진 것 같았다. 자질도 안 된 놈이 이런 숫자를 쓰는 건 너무 오만한 호가 될 것 같아서 한자를 바꿨다. 하지만 언젠가 언덕 구를 아홉 구로 바꿀 용기가 생긴다면, 그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아홉 구로 바뀌는 날은 언제 올까? 모른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라니까. 일단 지금 하듯 언덕부터 열심히 갈고 있겠다.

SHARE